13. 지금 찾아갑니다, 파멸
“네? 팀장이 바뀐다고요?”
어느 한가한 오후.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기획 회의를 하러 들어간 자리.
난데없이 난입한 PD 때문에 기분이 싸했는데.
회의에 팀장인 c가 안 들어왔다. 그게 더 싸했는데
그리고 왜 아침부터 c의 표정과 태도에 싸했는지 몰랐는데
“무슨 말이에요 그게?”
“c가 그만둔다고.”
어제까지 멀쩡하게 잘 지내던 c가 왜 그만 두지?
이런 의문이 머리 속을 꽉 채우며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그 자리에서 PD가 쐐기를 박았다.
“그 친구 있지? Sy? 그 친구가 기획팀장이 될 거니까 그렇게 알고, 모두 해산.”
뭐시라?
Sy?
“지금 우리 파트 Sy 이야기하는 거, 맞아?”
PD가 나가고, 정적이 흐르는 회의실 안. 내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없는 표정과 함께.
Sy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c가 왜 나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전 편에서 말한 ‘메테오’가 바로 원인이요 결과였었다.
그 운석 마법을 시전한 분이 누구냐하면, 바로
이 회사편에 최초로 소개한 Y본부장.
메테오라는 마법이 너무 거대한 마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블 캐스팅을 시전해 주신 분이 바로 마케팅 실장인 HW.
그리고 시전자를 보호하며 경계를 서던 현 PM인 H.
이렇게 3인방이 황제 폐하의 ‘고’ 사인을 받자마자 메테오를 쏜 것이다.
물론 메테오를 우리같은 피래미에게 쐈느냐?
설마.
절대 아니다.
메테오의 피격 대상은 다름 아닌 개발본부장이자 우리 PD인 J.
이 빙신 같은 인간은, 지가 피격 대상인지도 모르고 직격탄을 맞은 것이고.
그 결과는…얼마 후에 이야기 드릴 거대한 파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맞은 건 메테오의 파편 쪼가리 하나.
물론 길 가다 튀거나 구른 돌멩이에 깔려 죽는 개미가 부지기수이듯
우리 팀은 아주 난장판이 난 것이었다.
길었는데, 아무튼 그런데 말입니다.
왜 c가 나가나요?
눼. PD 눈 밖에 났기 때문입니다.
또 다시 말하지만, 이 빙신 같은 PD놈은 기획팀장을 자신의 탱커로 만들어 키우기는 커녕, 사사건건 방해만 했던 인물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 권력 3인방이 쏜 메테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c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권력 3인방의 공격 포인트는 바로 ‘왜 이렇게 개발 진척이 늦냐’는 것이었을 테고, 그 책임은 PD인 J에게 있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PD는 그걸 기획팀장에게 떠넘긴 것이다.
물론 기획팀장인 c가 PD의 말에 고분고분하진 않았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너무 많았었기도 했다. 우리 팀 자체가 그다지 고분고분하지도 않았었기도 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맞서기도 많이 했고. 나도, 시스템 파트장도 하긴 했지만, 당연히 팀장인 c가 제일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기획팀이, c가 미운 J.
느그들만 아니었어도 개발이 더 빨랐을 테고
내가 그런 메테오 안 맞잖아!
이런 의식의 흐름은 당연했던 것.
협조적이긴 커녕 무조건 안 된다고 빽 시키고, 구리다고 까고 그러면서 일정 안 맞추는 아트실 팀장들.
기획 이상하다고 까고, 모른다고 까고, 기획서 부실하다고 까면서 정작 제대로 만들어 지지도 않고 버그 투성이에, 그것도 모자라 일 잘하는 팀원들 정치질로 내보내며 개발실을 썩어들어가게 만드는 서버 출신 개발실장.
이런 인간들이 개발 딜레이의 핵심이건만…지가 하라는 기획 맞춰서 땀 뻘뻘 흘리며 매일 야근 철야하며 기획서 만들던 c와, QA 없어서 개발 테스트 하느라 기획서를 맨날 야근 철야하면서 쓰는 기획팀이 원흉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크크크.
쓰면서도 다시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네.
정말 주옥 같은 인물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던 시기였었다. 그 때 개발실과 아트실은.
아니, 개발실과 아트실의 직책자들.
그 밑에서 묵묵히 만들고 또 고치던 팀원들이 없었다면 CBT는 커녕 FGT때 벌써 무너졌었어야 했던 프로젝트.
개발실과 아트실 팀원들과 함께 마시며 열변을 토하던 당시 내가 쓴 술 값만 따져도 얼마 였을까 싶다. 경차 반 대 값 정도는 썼을 텐데 크크.
Anyway.
메테오는 떨어졌고, 우린 맞았고, X됐다.
c는 군소리 없이 퇴사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해 봐야 뭐, 멍멍이 소리만 됐을 테니 그들 귀에는.
그리고 c는 능력이 좋은 친구였기에, 불러주는 곳은 많았다.
당시 업계 넘사벽 탑이었던 N모사를 거르고 욱일승천하던 신규 회사로 골라 갈 정도로.
나보고도 빨리 탈출하라고 했고 크크.
물론 난 버텼다.
억울했다. 아니, 개짜증났다.
내가 거의 베타부터 만들었던 게임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었다. 이전 회사에서도 열심히 했었지만.
정말 이 게임은 끝을 보고 싶었다.
절대 나가기 싫었다.
그리고, 더더욱 나가기 싫었던 이유는. 파트원이 팀장이 됐다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도 있었다.
이제 그 Sy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좋은 파트원은 아니었다.
뚱땡이, 오덕씹덕, 글루미, 또 뭐였지?
그 친구를 칭하던 별명들이 말해주듯이, 아 물론 이렇게 부르던 사람들이 맞다던가 좋은 사람이었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별명이 돌게끔 Sy는 팀원들하고 섞이지 않았고 업무에도 협조적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능력도 없었고 보여줄 의지도 없어 보였다.
이 Sy는 아래 층에서 진행되던 플젝인 Y의 직책자였고, 거기서 인정 받아 개발 본부장 Y와 친분이 공고했고, 그 덕에 이 프로젝트에 꽂혔고. 그래서 팀원들 일부는 Sy를 ‘새작’ ‘간첩’ ‘스파이’로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물론 난 표면적으로 그런 언사를 막고 순화하려고 했지만, Sy의 비협조적 태도 때문에 갈수록 지쳐가서 그 즈음에는 방치 수준에 가까웠었고.
다른 얘기지만, 내 파트원은 거의 8명에 육박했었다. 시스템은 그 반 정도인 5명이었는데.
왜 이렇게 됐냐? Sy같은 낙하산이 무려 넷이었기 때문.
결국 나 포함, 일하는 사람 넷과 나머지 떨거지들 넷이 있는 기형적인 파트였던 것이다.
아무튼, 이 기형 구조도 Sy가 팀장으로 등극하며 단숨에 바뀐다.
Sy는 그의 측근이자 내 파트원이었던 둘을 ‘원래 시스템이었음’ 이라는 이유로 시스템 파트로 옮겨 버렸다.
그 결과는? 뻔하지. 단숨에 시스템파트장과 파트원 둘을 날려버리는 훌륭한 효과를 가지고 왔다. 크크. 둘 다 평소 Sy와는 사이가 안 좋았던 사이. 특히 시스템파트장은 Sy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었다.
시스템파트장이 나가자, 내 파트에 있던 나머지 한 측근도 옮겨 버렸고. 이로써 내 파트는 소수 정예(?)가 됐다.
그리고 내 파트에 대한 칼질이 시작됐다.
“CY님은 잘라야 할 것 같아요.”
?
이건 또 뭔 개소리인가 싶어서 대꾸도 없이 쳐다보는 나에게, Sy는 음흉한 눈웃음(정말 아직도 기억난다.)을 지으며 덧붙여 말했었다.
“유부녀라, 야근도 안 하고 태도도 안 좋잖아요? 나도 일할 때 같이 했었는데, 너무 비협조적이고 퀄도 안 나오고…”
“아니아니, 야근 안하고 태도 어떻고 이런 건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유부녀가 왜 들어가요?”
잠시 침묵. 그리고 다시 눈웃음
“그렇잖아요? 유부녀니까 칼퇴근하려고 하는거죠. 태도가 딱딱한 거고. (아줌마니까. 작게 덧붙였던 말. 역시 아직도 기억남)”
“업무 퀄리티 안 좋은 거 인정 못합니다. 시놉도 대사도 잘 나와요. 경험도 많고. CY님 나가시면, 만화 (당시 홍보 웹툰도 그리고 있었던지라) 쪽 업무도 다시 제가 해야 한다고요. 제 업무 진행은 그럼 어떻게 합니까? 새로 뽑아 주시나요?”
“네. 새로 뽑아드릴게요. 당장은 힘들고…”
말이야 방구야.
아무튼 난 절대 못 자른다고 버텼지만.
잘렸다, CY는.
그리고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공염불님…면담 좀.”
퇴사가 확정되고 사흘도 안 남은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CY가 이야기했다.
권고사직 처리를 안 해준다고 했다는 것을.
“이게 무슨 개소리예요? (실제 한 말.)”
내 말을 들은 Sy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더랬다.
“업무능력 부족, 그로 인한 손실. 이런 사유면 권고사직 안 해도 되잖아요?”
“그거 사실입니까? 아니,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얘기고. 그 전에, 업무능력 부족과 손실은 사실이 아닌데요?”
“전 맞는데요? 사유로 그렇게 써 냈습니다.”
“아 눼. 제가 인사팀장을 만나겠습니다.”
나가려는 나를 붙잡고 Sy는 이야기했다.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예요? 공염불님께 아무 피해도 안 가는데.”
“피해가 안 간다고요? 하.”
“사람 뽑아준다니까요? 부족한 일손은 시스템파트쪽 사람이 처리하면 되요. 해봤던 일이니까.”
“그럴 수 있죠. 그런데요. 사람을 이렇게 자르고 파트를 병신 만드는 게 팀장이 할 짓입니까?”
“새 판을 짜고자 하는 게 바뀐 팀장이 못할 짓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이런 맥락으로 했던 기억)”
“그 새판을 왜 짜야 하는데요?”
“기획팀 때문에 CBT가 늦어지고 있으니까.”
아.
나오셨네.
이 지랄을 하는 목적.
범인 찾기.
그리고 이 Sy는 만든 범인에게 증거를 쥐어주기 위해 칼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 날 술을 진탕 마신 걸로 기억한다. 완전히 꽐라가 되어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다음날 찾으러 간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크크
CY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결국 인사팀장을 만나 지랄을 했지만 권고사직 처리는 못 해줬다. 위로금을 좀 더 주겠노라 이야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얼어죽을 위로금은 무슨. 돈 백만원 정도 줬으면 감지덕지겠지.
그렇게 일 잘하던 파트원 한 명이 나가고.
당연히 인원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믿으며 일하고 있던, 신입으로 내가 뽑아서 함께 일 잘하고 있던
띠동갑 차이의 파트원마저 Sy는 무능력하다며 자르려고 했다.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지고 있었다. 마음도 사라지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뽑았던 신입 친구보다 내가 먼저 퇴사를 했을 것이다. 왜인지, 그때는 내가 나가지 않으니 저 지롤을 하나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나가겠다고 하자, 이제 평온해질 텐데 왜 나가냐는 식으로 Sy가 이야기했던 것 같은 기억도 나고. 어쨌든 정나미가 떨어진 회사에,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남은 미련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난 이직을 하게 됐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하지만 타의로 이직한 걸로, 명분을 만들어 준 사건이 얼마 뒤에 일어났다. 크크
업계를 진동 시킨, 당시로써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퇴사하고나서도 어메이징한 소식들을 안겨주는 회사에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크크크
그 소식이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