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10/29 21:07:29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2914194512
Subject [일반] <화양연화> - 당신과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스포)

전에 <중경삼림> 얘기를 하면서 잠깐 얘기를 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넷플릭스로 본 <화양연화>는 두 번째 관람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군대 IPTV에서 있던 무료 영화 리스트로 봤었으니까 근 4년 만에 재관람인 셈입니다.


<화양연화>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더할 수 있을까요. 상당히 강렬한 시각적 미장센을 보여주는 영화이고, 그 시각적 효과만으로도 많은 감정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또, 많은 분들이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기도 하셨고, 영화 자체가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건, 영화를 보면서 영화 팬으로서의 나름대로 감상을 적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이건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상당히 오랜 시간, 인물들을 분리시킵니다. 어디에 갇혀있는 것처럼 묘사하든지, 혹은 문, 문턱, 창문 같은 걸로 인물들을 분리시켜 '외롭게' 만듭니다. 그리고선 두 인물이 같이 있는 장면은 그나마 숨구멍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니까, 겹겹이 싸인 문과 좁은 복도, 계단은 모두 인물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배경처럼 느껴져요. 몇몇 조연 캐릭터를 제외하고선 얼굴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구요.


그런데, 둘의 관계는 이해받지 못하는 관계입니다. 또, 동시에, 둘은 서로의 '대안'으로 서로를 찾았지만 (내 남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 수 없고, 어떻게 끝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좁은 복도와 좁은 계단, 좁은 문과 창문은 서로가 서로의 탈출구인 동시에 억누르는 모든 상황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영화는 어긋난 시간에 대한 영화가 됩니다. 어쩌면 왕가위 감독이 항상 드러내듯, '기억과 순간에 대한 영화'로서 움직이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영화의 마지막에 나무를 파내고 비밀을 말하는 장소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입니다. 영화 상에서는 나무가 아니라 돌들 사이에 비밀을 숨겨놓고 막아놓습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어느 동자승이 바라봅니다. 글쎄요.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이 동자승이 어쩌면 관객을 말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나가고 나서야 가장 아름다웠던, 혹은 가장 붉게 빛나던 순간을 우리는 모르고, 무심결에 지나치는 어린 아이 같은 관객은 아닐까 하구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닥터페인
22/10/29 22:24
수정 아이콘
깊디깊은 여운이 무엇인지 알려준 작품입니다. 더불어, 냇 킹 콜의 ‘Quizás, Quizás, Quizás’, 그리고 ‘Aquellos Ojos Verdes’의 멜로디 또한 귓전을 맴돌죠.
aDayInTheLife
22/10/29 23:39
수정 아이콘
여운이 참 길더라구요. 노래도 참 임팩트 넘치고… 그레고리 포터의 리메이크판으로 접해서 이 버전도 좋지만 역시 오리지널도…
새벽이
22/10/29 23:43
수정 아이콘
20년 전에 처음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넷플 미리보기에 나오는 스테이크 씬도 정말 좋아합니다.
aDayInTheLife
22/10/30 00:17
수정 아이콘
저도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보단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22/10/30 00:03
수정 아이콘
2046을 비롯한 왕가위 감독의 다른 영화와의 알레고리 속에서 보면 더 재미있죠.
물론 해당 영화 자체만으로도 정말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수통 들고 국수 받으러 가는 게 어찌나 섹시한지...크

2006년에, 당시 여자친구가 승무원이었는데
씨엠립에 오후에 도착해서 그 다음날 인천으로 돌아오는 거의 퀵턴에 가까운 비행 일정이었는데도
순전히 앙코르와트 하나 보자고 같이 따라가서,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앙코르와트만 딱 보고 왔던 기억이...
aDayInTheLife
22/10/30 00:17
수정 아이콘
왕가위 감독은 되게 즉흥적으로 짜고 찍는다는 작업 스타일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그 안에서도 묘하게 연결성이 있는 서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흐흐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7062 [일반] 따거와 실수 [36] 이러다가는다죽어10336 22/11/02 10336 68
97061 [일반] 의경들의 희생으로 치안을 지켜온 대가, 이태원 참사 [607] 머랭이29742 22/11/02 29742 126
97060 [일반] 핸드폰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40] 능숙한문제해결사12406 22/11/02 12406 0
97059 [정치] 애도기간에 시위하지 말라? [53] 로사16469 22/11/02 16469 0
97058 [일반] 자동차 구입기 [40] 요망한피망11299 22/11/02 11299 8
97057 [일반] 살아남은 행운의 공포 [98] lexicon18266 22/11/02 18266 39
97056 [정치] [속보] 합참 "북, 동해로 탄도미사일 발사"…울릉도에 공습경보 [65] 카루오스17142 22/11/02 17142 0
97055 [일반] 흥국생명 콜옵션 행사포기가 국내 경제 멸망의 트리거가 될 수 있습니다. [78] 네야20547 22/11/02 20547 5
97054 [일반] 글 쓰는 걸로 먹고살고 있지만, 글 좀 잘 쓰고 싶다 [32] Fig.110593 22/11/02 10593 24
97053 [일반] 이태원 압사 참사에서 경찰과 용산구청의 대비가 허술했던 이유 [193] 리클라이너26481 22/11/01 26481 21
97052 [일반] 건물주가(?) 됐습니다. 이벤트 [350] 꿀깅이13976 22/11/01 13976 3
97051 [일반] J-POP 여성보컬 밴드의 차세대 여왕으로 떠오르는 녹황색사회 Best Song [12] 환상회랑13354 22/11/01 13354 8
97050 [일반] 판협지의 시초작들이 웹툰으로 다시 살아나다 - 웹툰 추천 [30] LuckyPop11515 22/11/01 11515 2
97048 [정치] 경찰청 감찰팀 용산경찰서 감찰 착수 [55] kurt17605 22/11/01 17605 0
97047 [일반] 경북 봉화 매몰 사고 2차 시추 실패 [27] 똥진국12248 22/11/01 12248 4
97046 [일반] 이태원 사고, 불법 건축도 한 원인이다? [64] 이른취침14702 22/11/01 14702 2
97045 [정치] 강원도 발 금융 경색이 터져나오는 모양새입니다. [177] 네야20774 22/11/01 20774 0
97044 [정치] 이태원 사고 이전, 112 신고 요약 [297] 26509 22/11/01 26509 0
97043 [일반] 이태원 사고, 119 최초 신고자 녹취록 공개 [98] Leeka17425 22/11/01 17425 10
97042 [정치] 한 총리, 외신에 "치안 인원 더 투입했더라도 한계 있었을 것" [130] 빼사스16881 22/11/01 16881 0
97041 [일반] 소상공인 항체 무료 검사 피싱 (보험 가입 ) [7] 한사영우5999 22/11/01 5999 1
97040 [일반] RTX 4080이 미국에서 1200달러, 핀란드에서 1621유로 등록 [19] SAS Tony Parker 9845 22/11/01 9845 0
97039 [정치] 행안부 “객관적 상황 확인되지 않아 중립적으로 ‘사망자’ 표현” [79] 선인장17358 22/11/01 1735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