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미있는 성경이야기. 오늘도 시작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주제로 적는 “소설”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말이 안 될수도 있지만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성경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동감을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요단강 동쪽 지파들은 지난 18년간 암몬 족속의 끊임없는 침공에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암몬 족속이란 어떤 족속일까요?
사실 이들은 위의 그림과 같이 이스라엘 12지파와 매우 가까운 친족 관계입니다.
암몬의 아버지는 롯이라는 사람이며,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이자 사실상 아브라함이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며 아들처럼 여겼던 자입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사건으로 인해 아브라함과 롯은 갈라지게 되었고,
또 롯의 아내 소금 기둥 사건 등등으로 인해 롯의 두 아들(손자??)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셨기 때문에 롯의 자녀들 - 모압과 암몬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셨고,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던 것처럼, 모압과 암몬에게도 적당히 거주할 지역을 주는 걸로 약속해주셨습니다.
(
[물론 이후 모압과 암몬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그냥 자신들의 힘으로 땅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이스라엘과 가까운 핏줄이었지만 이들은 성경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역할을 자주 가지게 되는데요.
하지만 아래 모압과 암몬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가나안 지방이 교통의 핵심이자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유는
오리엔탈 문명 = 즉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만나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통로는 자세히 보면 사실상 이스라엘, 블레셋, 페니키아 (두로+시돈) 그리고 아람 족속이 조금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압과 암몬은 힘이 없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 중심에서 상당히 떨어져있습니다.
따라서 보통 이스라엘과 가나안 땅의 패권을 가지고 다투었던 민족은 보통 블레셋 or 아람 민족을 뜻하고,
모압과 암몬은 평소에는 이스라엘에게 털리면서 조공이나 바치다가 가끔씩 이스라엘이 혼란스러울 때 반란을 일으키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모압과 암몬 중에 그나마 형이었던 모압의 힘이 암몬 보다는 조금 나은 듯 한데...
지금 성경에서는 그 약한 암몬이 무려 18년 동안이나 요단강 동쪽 지파들을 털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이유로는 서쪽에 있는 블레셋이 동쪽의 암몬을 지원해줬기 때문입니다.
당시 블레셋은 이미 막강한 군대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통일 정권이 세워지기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땅 패권 싸움에 끼어들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세력을 키워가는 이스라엘을 계속 놔둘수는 없으니 아마 경제적으로 암몬을 많이 지원해준 듯 합니다.
(
[ 때문에 사사기 10장 7절에 말하길 여호와 하나님께서 블레셋과 암몬에게 이스라엘을 팔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상 전쟁은 암몬 혼자서 했지만, 그 뒤를 조종하고 있는건 사실상 블레셋이었던 겁니다.
요단강 동쪽 지파들이 18년간 암몬 족속에게 털릴 동안 본토 요단강 서쪽 지파들은 단 한번도 지원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요단강 동쪽 지파들이 끝내 멸망까지 당하지 않았던 것은 오로지 당시 그 유명한 장군 “길르앗”이 요단강 동쪽 지파들을 어찌 어찌 이끌며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영웅 길르앗 장군이 죽자 암몬은 이제야말로 요단강 동쪽 지파들을 멸절 시킬 생각으로 다시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요단 서쪽 본토에서 지원은 여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영웅 길르앗 장군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있었지만 다 그 아비만 못한 찌질이들이라..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백성들을 이끌지 못했습니다.
요단 동쪽 지파의 백성들은
[“누가 이 전쟁에서 우리를 이끌면서 우리를 구해준다면, 우리는 앞으로 그를 평생의 지도자로 삼을 것이다!”] 라고 선포했지만..
아무도 승산이 없는 싸움에 나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예전에 자신들이 쫓아냈던 길르앗 장군의 서자 - 입다를 찾아갑니다.
비록 집안에서 쫓겨난 후 지금은 불량배들과 어울리고 있지만, 그렇다고해도 장군 길르앗의 능력을 가장 많이 닮은건 입다였습니다.
동쪽 지파의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와 부탁합니다.
동쪽 지파 장로들 : 입다여!! 암몬 족속이 우리를 공격하려고하니, 당신이 우리의 장관이 되는 것이 어떠하오?
입다 : 날 장관 시켜주겠다고? 내가 기생의 아들이라고 날 쫓아 낼 때는 언제고 지금에야 급하니까 임시로 장관을 세워준다고? 그럼 전쟁에서 이기고 평화가 찾아오면 날 또 내쫓겠네?
동쪽 지파 장로들 : 하... 깐깐하시네. 좋소. 그럼 임시 장관이 아니라 이번에 전쟁에서 이기면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로 삼겠소!! 이러면 콜?
사실 장로들은 입다를 찾기 전에 다른 사람을 알아볼 때만해도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한 자를 지도자로 삼겠다고 공표했습니다.
그래놓고서는 입다를 처음 찾아왔을 때는 그저 장관으로만 삼겠다고 말하면서 지도자의 자리까지는 내어 줄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그걸 입다는 이것을 빠르게 눈치 채고 바로 지도자의 자리를 요구했던 겁니다.
하지만 입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입다는 동쪽 지파 장로들과의 말싸움을 통해
갤럭시 통화 녹음보다도 더 확실한 증거 효력이 있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한 맹세]를 증거로 받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걸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가장 큰 문제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18년동안 털린 빈털터리 동쪽 지파들 가지고 블레셋의 지원을 받는 암몬을 어떻게 이길건데??]말싸움의 대가 입다는 우선 전쟁을 하기에 앞서 암몬 족속의 왕과 회담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입다의
[입 모터]가 다시 돌아갑니다.
입다 :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암몬 왕 : 너희 이스라엘은 원래 이집트에서 탈출한 민족이잖여~
그때 너희 선조들이 가나안 땅 점령하면서 우리 땅도 빼앗았음!!
이제 우리가 그 땅을 평화롭게 돌려받기를 원함!
입다 : 우리 선조들이 예전에 니네 땅을 빼앗았다고?
어디 땅을 말하는 건데?
암몬 왕 : 원래 아르논 강에서부터 얍복강 까지는 우리의 영토였음. 빨리 돌려주삼!!
암몬이 주장하는 영토 반환은 아래 지도에 있는 파란색 표시된 구역입니다.
즉 암몬은 위 지도의 파란색 영토가 원래 암몬 땅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불법적으로 빼앗았으니 다시 돌려달라는 뜻인데요.
그리고 이때 입다는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사실 꼭 전투를 하라는 법은 없고 평화롭게 협상으로 끝낼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요단 서쪽 본토에서 지원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 암몬과의 전투는 승산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위의 지도의 파란색 영토 = 암몬이 반환을 요청하는 땅은 사실상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의 영토입니다.
입다는 그 위의 므낫세 절반 지파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만 살리려고 한다면 그냥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의 땅을 포기하고 암몬과 평화조약을 맺을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입다는 이 요단 동편 전체를
[길르앗] 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민족으로 본 대인배였으며,
이 길르앗 땅 - 단 한뼘의 땅도 양보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에 입다가 말합니다.
암몬 왕 : 그럼 니들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요단 동편은 누구한테 빼앗은건데?
하늘에서 땅이 떨어졌냐??
무슨 말도 안되는 말장난 하고 있으삼??
암몬 왕 :
[???? 무슨 소리야???]그리고 입다의 역사 강의가 시작됩니다. 원래 진실은 이렇습니다.
약 300년전 모세가 출애굽 = 이집트를 탈출하고, 광야에서 40년의 방황을 마치고,
이제 가데스 광야에서 기나안 땅을 공략하러 가야하는데..
루트를 다시 복습해 봅시다.
모세가 선택한 루트는 아래 그림에서 3번 루트!!
즉 요단강 오른쪽으로 갔다가 요단강을 건너 서진하는 루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때 당시 무려 200만명의 엄청난 인구가 이동 중이었고,
때문에 당시 지도자 모세는 최대한 편하게 행군을 하고자 넓을 길을 통해 행군을 하길 원했습니다.
다행히 당시 모세가 가려는 루트에는 아래 지도 오렌지 색상의 넓은 길 =
[왕의 대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달된 도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또한 국가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왕의 대로의 최남단에는 당시
[에돔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즉 왕의 대로를 이용하려면 우선 에돔 족속의 땅부터 가로질러야 하는데..
모세는 일단 최대한 정중히 에돔의 왕에게 부탁했습니다.
모세 : 에돔 당신들은 우리의 친척 아닙니까? (이스라엘은 야곱의 자손이고,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입니다.)
우리가 이집트에서 고생하다가 이제야 겨우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디 우리가 왕의 대로를 이용할 수 있게 길만 좀 빌려 주십시오.]우리가 절대로 당신 나라의 밭이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고, 그저 왕의 대로만 따라서 행군만 하겠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우리 짐승들이 그 땅의 물을 마신다면 우리가 값을 내겠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이런 비슷한 사건이 있었죠? 바로
[대명가도]당시 일본군이 하던 논리나 지금 모세가 요구하는 거나 사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모세는 엄연히
[군대]를 이끌고 요단강 서쪽을 공격하기 위해
[왕의 대로를 빌려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에돔 왕은 당연히 이 요구를 거부하며 군대를 동원해 이스라엘이 조금이라도 영토를 침범하면 바로 공격을 하려고 합니다.
그럼 모세와 이스라엘은 에돔과 전쟁을 해서 이 왕의 대로를 확보했냐??? 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
[내가 예전에 에서한테 땅을 약속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에돔의 땅을 빼앗으면 안됌!!]”
따라서 모세는 할 수 없이 에돔 땅에 있는 왕의 대로를 포기하고 아래 지도처럼 오른쪽의 사막길로 행군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어떻게든 최대한 왕의 대로를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
[행군의 고통...])
지도를 보면 그 바로 위에 모압도 왕의 대로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압 역시 이스라엘의 친척 국가입니다.
하지만 모압도 마찬가지로 왕의 대로를 빌려주는 것에 반대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돔과 마찬가지로 “
[모압 땅도 공격해서는 안됌!!]”을 선언하셔서..
결국 모세는 또 다시 경로를 오른쪽으로 틀게 됩니다.
결국 모세는 위의 지도와 같이 모압과 암몬 땅의 경계를 겨우 가로지르며 위쪽 지도 파란색 영토에 진입합니다.
이곳은 당시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과 바산 지방의 왕
[옥]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다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간청합니다.
모세 :
[제발 길만 빌려주삼... 우리는 지금 이 땅에 관심 없음. 우리는 요단강 건너서 서쪽을 치러 갈거임. 제발 길만 빌려줘...]하지만 이전 에돔 & 모압과 마찬가지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이 요청을 무시합니다.
하지만 이제 모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모세는 어찌되었건 요단강을 건너야했고, 지금까지는 에돔과 모압을 피해 오른쪽으로 최대한 우회했지만,
결국은 요단 동편 땅을 지나야만 요단강을 건너 서쪽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마침 하나님께서도 “아모리 족속과 바산 지방은 내가 예전에 땅을 약속한 놈들도 아니고, 원래 그놈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니 걍 공격해라!!”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모세는 군대를 동원해 전투를 벌였고, 크게 승리하여 이 요단강 동쪽 영토를 모두 차지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이스라엘 2.5 지파가 요단강 동편 = 길르앗 땅을 차지하게 된 경위입니다.
그런데 암몬은 왜 이 요단강 동편 = 길르앗 땅이 원래 자기 땅이라고 주장했던 걸까요?
위 지도의 파란색 영토 = 즉 아모리왕 시혼 & 바산왕 옥이 차지하고 있던 저 영토는 요단강 동편 땅에서도 가장 핵심 지역입니다.
일단 요단강을 끼고 있어 물이 풍부하고, 또 왕의 대로도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저 지역은 모압과 암몬이 차지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요단강 서쪽에 있던 아모리 족속이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모압과 암몬을 그 땅에서 쫓아내고 자기들이 핵심 지역을 차지했던 겁니다.
즉 엄밀히 따지면
아모리 족속이 모압과 암몬 땅을 빼앗았고 ->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 땅을 빼앗았다 = 즉 이스라엘이 암몬 땅을 빼앗은거다?? 이런 논리가 되던 겁니다.
입다는 계속 말합니다.
논리에 어긋남이 없는 입다의 입 모터 공격에 암몬의 왕이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입다는 이제 암몬 왕에게 마지막 타격을 입힐 말을 합니다.
입다 : 내가 이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암몬 너희들 상당히 찌질한 거는 알고 있음?
1. 애초에 이 역사 논쟁에서 암몬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알고 있냐?
당시 모세가 길을 빌려달라고 한거는 에돔, 모압, 아모리 족속이었어..
너네한테는 애초에 길을 빌려달라고도 안했어..
왜냐고??
[너네 땅은 빌릴 가치도 없었거든... 왕의 대로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거길 왜 빌리냐??]좋은 땅은 아모리 족속에게 다 빼앗긴 약소국이면서 지금 블레셋 지원 좀 받는다고 뭔 유세야?
2. 솔직히 모압이 우리한테 이런 역사 논쟁으로 항의 한다면 이해나 한다.
모압은 어찌되었든 당시 왕의 대로를 일부 가지고 있었고,
당시 모세 시대때 우리랑 이런 저런 갈등도 있던 민족이니까.. 모압이 우리한테 따진다면 그러려니 하겠다.
근데 너희 암몬은 당시 우리랑 아무런 문제가 생길 만한 껀덕지도 없었는데 왜 지금에서야 난리임?
그때 이후 무려 300년이나 지났는데, 그 300년 동안은 뭐하다가 지금에서야 난리임?
[솔직히 너희들 언제나 모압보다 약했자나.. 모압도 가만히 있는데 왜 니들이 난리야??]암몬 왕은 입다의 입 모터 공격에 심한 불쾌감을 느끼고 협상의 자리를 깨고 본진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이 입다의 말빨 논리로 인해 암몬군의 사기는 매우 저하되었으며.. 사실상 전투 의지를 잃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입다는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전투는 아직 시작도 안했고, 그토록 기다리던 요단 서쪽 본토의 지원군은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으며..
따라서 객관적인 전력상... 입다가 사실상 이길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입다가 암몬 왕의 평화조약 조건에 응하지 않고 전투에 임한 것을 높이 사며 그에게
[하나님의 영을] 임하게 하셨지만...
문제는 입다가 단 한번도 하나님의 영을 체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입다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쫓겨나 불량배들과 어울려 지냈고, 제대로된 신앙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기드온처럼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고 한들, 그게 진짜 하나님의 영인지?
그냥 자신의 착각인건지? 확신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는 표현은 추상적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영이 임했음에도 여전히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고 믿은 입다는...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죽음을 각오하며 병사들과 다짐을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BK_Zju의 각색이 들어갑니다)]병사 1 : 아... 이제 죽으러 가는구나.
그래도 내 가족을 지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면?
난 전투에 임할거다. 만약 우리가 이 전투에서 이긴다면?
난 내가 소중히 아끼던 소 한마리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거야~~
병사 2 : 야~~ 이 이길 가능성이 없는 전투에서 이기는데 고작 소 한 마리가 대수냐?
난 우리 집 모든 재산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거다!
병사 3 : 입다 님은 어떠세요? 전투에서 이기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입다 : 어차피 우리는 이 전투에서 다 죽을거고, 우리가 죽으면 우리 가족들도 다 죽지 않겠냐?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이기게 된다면 어차피 다 죽을 운명이었던 우리 가족 중 한명 = [즉 전투에서 이기고 내 집에서 나와서 나를 처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을 내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겠다!!]
사실 이런 목숨을 바치는 전투를 앞두고는 이런 허풍??의 다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희 그런거 있잖아요..
[아... 이것만 할 수 있다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문제는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다짐 = 서원이었다는 겁니다.
이미 입다는 요단 동편 장로들과의 협상에서 여호와 하나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것이 웬만한 법정 증거보다 훨씬 효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전투를 앞두고 이런 [실언]을 하게 된겁니다.
당연히 죽을줄 알았던 그 전투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신 이스라엘 + 입다의 설전으로 인해 사기가 떨어진 암몬의 콜라보로
전혀 예상 외로 싱겁게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때까지도 입다는 전투 시작 전에 자기가 했던 실언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죽을 줄 알았던 전투에서 살아남은 것에 기뻐하며 집으로 귀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다가 집으로 도착하자..
그의 딸이 가장 먼저 나와 즐겁게 소고를 잡고 춤추며 아버지를 영접합니다.
하필 그녀는 입다가 가진 유일한 자녀였습니다. (입다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입다는 그제서야 자기가 했던 그 어처구니 없던 맹세를 기억합니다.
이것을 다시 비유해보자면..
입다는 이로 인해 기적적인 전투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큰 슬픔에 빠집니다.
하지만 자기가 이미 뱉은 말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을 지켜 자신의 딸을 하나님께 바쳐야만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법은 언제나 예외가 있습니다.
레위기 27장에 보면 하나님께 재물을 걸고 서원을 했지만 만약 그것을 취소하고 싶다면?
그 바치기로 했던 재물의 1/5을 더해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합니다.
여기서 입다가 한 서원의 재물은 = 입다의 딸이었기 때문에,
입다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 입다 자신 + 다른 사람 추가의 생명?
예를 들어 입다의 아내가 같이 죽는다면 [율법 상으로는 어찌 되었든 딸의 죽음을 피할 수는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입다의 딸은 효녀였습니다.
그녀는 우선 입다에게 감사해하며 말합니다.
[어차피 아버지가 아니였으면 우리는 모두 암몬 족속에게 죽었을 운명!!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죽는 것보다는 제가 죽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는 앞으로도 길르앗 지방을 지켜주셔야지요..]
[하지만 단 한가지만 청이 있으니... 내가 제물로 바쳐지기 전에 두 달만 자유시간을 허락해주세요. 내가 다른 여자 사람 친구들과 같이 산에 올라가 내가 이렇게 결혼도 못하고 죽게 된 것을 애곡하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입다의 마음은 찢어졌습니다.
그 어느 부모가 자녀를 죽음으로 내몰고 싶겠습니까? 차라리 자기가 죽고 말지요...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을 담을 방법은 없었고, 결국 입다는 딸을 제물로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딸의 마지막 소원도 들어주며 그녀에게 두 달간의 자유 시간을 줍니다.
보통 이런 경우면... 딸이 두 달의 자유 시간을 이용해 도망간다거나 or [아놔 xx도 못해보고 죽게 생겼네. xx나 하고 죽어버리자]는 클리셰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성경 다른 이야기에는 그런 비슷한 클리셰가 등장합니다.)
효녀였던 입다의 딸은 정확히 두 달 후 산에서 내려와 입다에게 돌아옵니다.
입다가 그녀의 딸을 어떻게 제물로 바쳤는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원래 입다가 서원한대로 [번제물]로 마친다는 것은 사람을 죽여 불로 태운다는 건인데...
당시 하나님의 영이 임했던 입다가 이런 인신제사를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을거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설령 인신제사라고 해도 성경에서 꼭 인신제사가 무조건 불법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무조건이라는 표현은 참 조심스럽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인 것]은 사실상 인신제사나 다름없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 때문에 예수님을 제물로 바치셨고,
입다가 자신의 죄 때문에 딸을 제물로 바쳤다?? 인신제사가 꼭 불법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까지 해야했던 이유이며, 그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셨냐는 거겠죠.
성경에서는 입다가 딸을 제물로 바치는 이 운명이 안타깝다고만 표현하지,
그것이 죄이며 하나님께서 분노하셨다는 표현은 전혀 없습니다.
혹자는 입다가 인신제사 같은 살인 행위를 하기 보다는,
온건하게 자신의 딸을 평생 처녀인 상태로 성전 봉사를 하게하는 형태로 제물을 바치는 것을 대체했다고 표현합니다.
이것도 사실상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것과 비슷한 방식이라고도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입다의 딸의 운명은 사실상 인신제사로 바쳐지는 것보다 더욱 혹독합니다.
차라리 빨리 죽는게 낫지...
평생을 결혼도 못하고 (이때 당시의 이스라엘 문화는 결혼 못하고 자녀를 못가지는 여자 = 저주를 받으며 비난을 받는 운명입니다)
아니... 차라리 몸에 장애가 있어서 결혼을 못하는거면 인정이나 하겠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정상인데 평생 그 욕구를 절제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
사실상 죽는것 만큼 고통스러운 운명입니다.
올바른 비교 방식일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어떤 여자가 많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강간 당하고 평생 그 유출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면?
그 강간 가해자는 사실상 살인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죄를 지었다고 볼 수 있을겁니다.
즉 입다가 인신제사를 드렸는지? 혹은 평생 처녀인 상태로 성전 봉사를 시켰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둘 다 최고의 비극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입다는 슬픔을 무릅쓰고 딸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거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슬퍼만 하셨지 그것을 비난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입다는 사사기 이후 성경에서 딱 2번 언급되는데 모두 긍정정인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한편 딸을 잃은 입다의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런 실언은 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입다의 마음도 모르고...
어찌 보면 이 사태의 모든 원인의 당사자 = 같은 형제임에도 끝내 지원군을 파견하지 않아서 입다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던 그 존재들...
요단강 서쪽의 에브라임 지파가 군대를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입다를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은 입다 vs 에브라임 지파의 내전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