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본 모든 애니메이션 작품을 통틀어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무런 주저없이 1분기에 방영된 “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를 꼽겠습니다.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여자 고등학생이 일본 전통인형 도제과정을 밟는 남학생에게 의상 제작을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다룬 작품인데, 이 작품은 코스프레라는 소재를 단순히 배경으로만 쓰는게 아니라 세밀한 고증을 통해 코스프레 과정을 보는 것 자체도 하나의 즐거움으로 만들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코스프레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이 작품을 보고 라이트한 코스프레라면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작품은 후쿠다 신이치(성별은 여성)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데, 원작 자체도 재미있고 일본 국내외를 막론하고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애니메이션의 흥행으로 더욱 부스터를 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원작 전개상황에 비하면 극히 초반부의 상황만이 영상화되었는데, 앞으로 훨씬 꿀잼인 에피소드들이 남아서 이미 제작이 확정된 2기에서 얼마나 더 환상적인 장면들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팬들로선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키세코이의 정말로 대단한 점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를 TV판에서 구현했다는 데 있습니다. 작품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개 다량의 자본이 투입되는 극장판에 비해 상대적으로 TV판은 제작 퀄리티 면에서 다소 부족한 것이 보통이고, 이러한 열세를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연출로 극복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저예산 TV 애니메이션을 비교해보면 분명함.)
그런데 이 작품은 매주 방영되는 TV판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웰메이드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뺨을 후드려 패는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애니메이션 작품의 완성도를 보는 방법 중 하나가 배경미술의 수준을 보는 것인데, 작중 주인공 커플이 이케부쿠로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보면 대고 그린 듯한 정밀한 배경묘사와 실제로 지나가는 것 같이 유려한 자동차의 움직임 등 고예상 극장판 애니메이션 수준의 수려한 배경묘사로 보는 사람이 즐겁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작화의 경우에도 뻣뻣하게 뚝뚝 끊어지는 움직임이 아닌 실제 사람을 모션캡쳐한 것만 같은 사실적이고 유연한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극중에서 남자 주인공이 카나가와의 해변에서 허우적거리다 바다에 빠지는 모습, 마지막 화에서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는 주인공을 좌에서 우로 180도로 회전하면서 3차원에 가까운 사람얼굴을 2차원 화면에 구현한 장면 등등) 뿐만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인체의 골격과 근육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이정도 수준의 구현이 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국 커뮤니티에 흔히 퍼져있는 신화 중 하나가 일본이 경제력이 부강했던 90년대 초 버블경제 시대에는 수려한 작화가 애니메이션에 구현되다가 잃어버린 20년을 맞으면서 작화의 질이 하락했다는 이야기인데, 본 작품을 보면 쇼와 시대의 그 어떤 고전 애니메이션도 이정도 작화를 구현한 작품은 드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의 영상미의 수준은 21세기 들어 양적 질적으로 급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신인 성우가 공동 주인공으로 기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작두를 탄 것 같은 혼신의 연기를 들을 수 있는 점도 이 작품의 대단한 점입니다.
여자 주인공 키타가와 마린을 맡은 스구타 히나는 모바일게임 뱅드림에 출연한 것 이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캐스팅은 없는 신진 성우인데, 작품에서 이누이 사쥬나 역으로 공연했고 스파이 패밀리의 ‘아냐’ 역으로 유명한 타네자키 아츠미가 “질투심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신들린 듯한 ‘갸루’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숱한 갸루연기를 봐왔지만 이정도 수준은 아직까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원작 사이드에 더 가까운 이야기겠지만 스토리적으로도 만족감이 높은 것이, 이 작품은 여성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전형적인 남성 타겟의 러브스토리를 흡인력 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 왕자가 키스를 하던 예전부터 남성들을 위한 러브스토리는 대개 남자 주인공이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히로인의 마음을 얻는 줄기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지만, 이런 남성들의 판타지는 수천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본 작품에서도 대인관계에 서툴고, 코스프레 의상을 제작한 적이 없는 남자 주인공이 히로인을 위해 멋진 옷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랑을 쟁취해 나가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쟁취가 좀 빠른 것 같기는 한데…) 타겟층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들이 가장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야말로 대중문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원작과 본 애니메이션은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감상평을 보면 은근히 여성 시청자들이 남자 주인공의 매력에 빠진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여성 작가의 필력 덕분인지 남성향 러브코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시청자들의 지지도 상당히 확보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점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22년도의 패왕은 리코리스 리코일과 봇치 더 락
서초패왕 항우는 칭제를 하지 않았음에도 사마천은 본기에 그를 수록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왕은 황제보다는 한단계 낮은 칭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키세코이가 황제라면, 리코리스 리코일과 봇치 더 락은 패왕이라고 하겠습니다.
리코리스 리코일은 10대 소녀 킬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국내 팬덤 한정으로는 악평이 엄청나게 많은 작품이기도 한데, 주로 제기되는 비판이 후반부의 맥빠진 각본에 대한 것들입니다. 저도 이러한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후반부의 각본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현지의 반응, 그리고 저 스스로의 평가 등을 종합해볼 때 이 작품은 각본상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금년도 패왕의 자리를 차지함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 작품은 컨셉이 그야말로 미쳤습니다. 소녀들이 제복을 입고 택티컬한 특수임무를 한다는 컨셉은 아무리 스토리가 쓰레기라도 대박이 날 수밖에 없는 미친 컨셉입니다. 마치 존윅 시리즈가 아무리 스토리상 허접한 부분이 난무해도 총기 백화점, 킬러 호텔과 같은 미친 컨셉으로 흥행수익을 쓸어담는 것처럼 쇼 비즈니스는 화제성 있는 컨셉이 처음이자 끝이고 작품성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리코리스 리코일은 컨셉만큼이나 미친 매력을 가진 공동 주인공의 버디무비이기도 합니다. 총알을 피하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졌지만 천하태평에 활달한 매력을 가진 니시키기 치사토와 냉정하고 쿨하지만 동료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엘리트 요원 이노우에 타키나라는 대조적 매력의 쌍두 주인공은 헐리웃 버디무비의 콤비같은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솔직히 주인공의 매력 한정으로만 본다면 최근 10년내 나온 모든 작품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끝없는 매력의 두 주인공은 각본상의 구멍을 모두 덮고도 탑을 쌓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국내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본 현지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어서 찐팬들이 아니면 듣지도 않는 홍보용 라디오가 수십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가 하면, 라노베, 코믹스, 무대공연에 이르는 미디어믹스가 신속하게 제작되고 관련 도서들이 한동안 아마존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고가의 블루레이 디스크가 연간 최고 판매량을 찍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인기가 작품성을 담보하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감상과 별개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밈 문화가 확산되면서 어떤 작품이건 약점이 잡히면 죽일때까지 욕을 먹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분명히 다른 장점이 많은 작품도 까일만한 구석 하나만 있으면 나노단위로 해체해서 죽을때까지 조리돌림하는 문화가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 쌍두마차 패왕의 나머지 한 쪽은 현재 방영중인 ‘봇치 더 락’ (국내 정발명은 ‘외톨이 The Rock’)입니다. 이 작품은 케이온의 맥을 잇는 여고생 밴드를 다룬 작품입니다. 공교롭게도 원작도 ‘망가타임 키라라’라는 동일한 잡지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대인기피증이 심하다 못해 각종 기행을 일삼지만 기타실력 하나만큼은 유튜브를 제패할 정도로 대단한 고토 히토리가 역시 개성적인 다른 밴드 멤버들과 함께 프로 밴드를 지향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젊은 세대의 고민과 갈등을 코믹하면서도 깊이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을 이루는 줄기가 대인기피증이 심해 봇치(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외톨이를 ‘톨이’로 줄인 것 같은 느낌)라는 별명을 가진 히토리가 점점 세상으로 나아가는 내용입니다. 본명인 고토 히토리를 앞뒤로 뒤집으면 혼잣말(히토리고토)가 되는 이 열등감투성이의 인물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사회화(?)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솔직히 이런 내용이야말로 그 어떤 판타지보다 더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가문, 종교, 지역사회 등 봉건적인 굴레로부터 벗어난 현대인은 자유를 가진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본인의 매력 하나로 인간관계를 제로부터 쌓아올려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운명이 모두에게 부여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매력 만점에 인싸기질이 충만한 사람들에게야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조건이지만, 그렇지 않은 다수의 아싸들에게는 이러한 환경이 너무나도 가혹할 뿐입니다.
12년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현재 직장에 매일 출근을 함에도 생일날 연락할 친구 하나 없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그런 점에서 고독이란 현대인들의 천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친구 하나 없어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주인공이 기타실력 하나로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내용은 어느날 눈을 떠보니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전생한 것보다 더 감동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대단한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히토리의 좌충우돌을 본작의 감독은 대단히 실험적인 연출로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클레이애니메이션을 삽입한다던지, 주인공 캐릭터를 풍선으로 만들어 터뜨린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전성기 가이낙스 작품에나 나올법한 이런 전위적인 시도들은 보는 즐거움 못지않게 애니메이션 기법의 발전이라는 점에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키라라 계열로 많은 공통점을 가진 이 작품은 밴드 애니메이션의 세종대왕 격은 케이온을 보다 업그레이드시켰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케이온 역시도 성장과 우정이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지만, 봇치 더 락은 보다 격하게 인간적인 성장과 우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동호회로 끝나는 케이온과는 달리 메이저 데뷔를 노리고 있는 점에서 이 작품은 더욱 본격적이고 진지한 밴드 작품이기도 합니다.
케이온은 거창한 갈등구조가 아닌 일상에서의 성장과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그렸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봇치 더 락은 이러한 케이온의 계보를 훨씬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지 않았나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밴드 작품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굉장히 퀄리티가 높은 OST를 출시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위에 링크한 곡 이외에도 지금 당장 유튜브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Kessoku Band(작중 주인공이 속한 밴드의 영어명칭)라는 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어지간한 정통 록밴드의 앨범 뺨싸다구를 후려치는 퀄리티의 오리지널 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보통 애니송이라고 하면 유명 아티스트와 타이업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소 ‘애니송스럽다’는 카테고리 느낌이 없지가 않은데,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은 그런 틀을 깨고 기성 밴드 수준의 고퀄리티 곡을 삽입하여 그 자체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락큰롤을 안 들었는데 이 작품의 수록곡은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작중 보컬인 키타 이쿠요를 연기하는 하세가와 이쿠미(에이티 식스의 히로인으로 유명한 성우)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를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맛은 안정적이야: 오오니시 사오리 주연의 러브코메 2작품, 귀엽기만 한 게 아닌 시키모리 양, 부부이상 연인미만
귀엽기만 한 게 아닌 시키모리양과 부부이상 연인미만은 공교롭게도 모두 성우 오오니시 사오리가 주연을 맡고 있으며 동시에 주인공의 머리색깔이 핑크색(핑뚝이)입니다. 이 두 작품은 분기를 제패하는 강력한 파워는 없지만 러브코메 팬에게는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시키모리양’은 일본식 표현으로 ‘남자친구 여친’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쿨하고 멋지지만 내남자 앞에서만 소녀가 되는 히로인이라는 컨셉으로, 부부이상 연인미만이라는 작품은 일본의 모 고등학교가 전교생에게 가짜 부부실습을 시킨다는 말도 안되는 컨셉을 가진 작품인데 이런 컨셉빨에 러브코메의 왕도적인 전개를 얹은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장르 자체가 클리쉐 범벅인데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서 뻔할 수밖에 없는 장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클리쉐를 왕도적으로 잘 모아서 러브코메 팬들을 만족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취미가 요리여서 늘 느끼는 것인데 버거킹이나 롯데리아처럼 뻔한 메뉴를 균일하게 매번 잘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실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작품들이 무슨 어마어마한 셀링 포인트가 있는 작품들은 아니지만, 러브코메의 클리쉐를 잘 이용하여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편 성우계의 부침이 격한 성우판에서 10년이나 균일하게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 성우 오오니시 사오리의 연기에 대해서도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스트라이크 더 블러드의 라포리아 리하바인으로 데뷔한 이후 사에카노의 에리리, 우마 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메지로 맥퀸 등 어마어마한 조연들을 주로 맡았지만 최근에는 검증된 연기력을 바탕으로 주연급에도 점점 도전하고 있는데, 어떤 작품을 해도 평타 이상을 치는 검증된 성우라는 점에서 2작품이나 주연을 맡은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뜻밖의 수확: 데아이몬, 닌자 잇토키
두 작품 다 방영 전에는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작품인데 완결까지 보고서는 아 이런게 찐 명작이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화도 그렇고 모든게 다 그렇지만 방영 전부터 밀리언셀러 원작에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앞세우며 화제를 모으는 작품이 있는 반면에 조용히 시작해서 조용히 끝나는 작품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명작인지는 그런 유명세에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데아이몬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한 초등학생이 교토의 오래된 화과자집에 눌러앉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휴먼드라마를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한편 닌자 잇토키는 “닌자라는 것이 지금까지도 실존한다면?”이라는 기발한 설정을 가진 작품입니다. 두 작품 모두 작화상태를 고려하면 대단하게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것은 아닌 것 같으나 이런 한정된 조건 안에서도 수작을 뽑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데아이몬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녀를 화과자집 가족들이 품어주는 드라마를 통해 가족과 관계의 소중함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닌자 잇토키의 경우에는 현대판 닌자들이 일본의 패권을 쥐기 위해 막후에서 죽고 죽이는 액션과 스릴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극히 대조적인 작품들이지만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성우들의 호연을 통해 소리소문없이 명작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닌자 잇토키의 경우에는 주조연 라인업에 죄다 빅타이틀의 주연급 성우들을 싹다 기용해 넣은 미친 캐스팅이라는 점에서도 재미있습니다. (성우들 기용하느라 제작비 떨어진건 아니겠죠?) 일하는 마왕님과 우리는 공부를 못해의 오오사카 료타를 주인공으로, 심포기어의 유우이 아오이와 골든 카무이의 시라이시 하루카가 여성 조연으로, 극주부도와 주술회전의(사실 이것들만이 아니지만) 츠다 켄지로가 악역으로, PGR의 선배님들이라면 아실 수도 있는 오나의여신님의 이노우에 키쿠코가 주인공 어머니 역으로 등등 이외에도 많습니다. 실제로도 연기적으로는 굉장히 안정된 작품이었습니다.
아무튼 꼭 화려한 작화와 어마어마한 원작이 없더라도 작품 내적인 완성도만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들은 어마어마한 화제를 불러모으지는 못했지만 2022년을 빛낸 명작에는 충분히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돌은 어디로 가는가: 러브라이브 슈퍼스타 2기
말이 필요없는 아이돌물의 최고 타이틀인 러브라이브의 4세대 애니메이션 2기가 방영되었습니다. 평은… 국내외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봤습니다. 아이돌물의 단점이 대개 멤버들 1명씩 소개하느라 시간을 다 써서 스토리는 그닥인 경우가 많은데, 슈퍼스타의 경우 멤버들의 비중을 과감히 축소하고 하나의 굵직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갈등해결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보기에 편했습니다. 동시에 작중 멤버들이 동호회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보면서 리더쉽과 커뮤니티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도 던지면서 말이죠.
한일 양국 막론하고 슈퍼스타보다는 직전에 방영된 3세대 러브라이브 니지가사키 동호회(니지가쿠)의 2기가 더 수작이었다는 평가가 우세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니지가쿠의 경우 지나치게 많은 멤버 숫자와 불투명한 갈등구조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각본상으로 퍼져버렸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일반적인 평가는 좀 다른 것 같군요. 물론 제 감상평이 무조건 맞다는건 아닙니다.
사실 제작사 선라이즈 측에서도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조한 흥행성적에도 불구히고 슈퍼스타의 3기를 제작결정했다는 점에서(지금까지 러브라이브는 3기 티비판 애니가 나온 적이 없음) 메이커에서는 슈퍼스타를 러브라이브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강력하게 푸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애니메이션의 저조한 흥행에도 불구하고 출연 멤버 성우들의 실력 면에서 슈퍼스타는 이전세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기존 성우들이 아닌 오디션 및 신인성우들을 대거 기용하여 신선함이라는 면에서 더 뛰어난 부분도 있습니다. 게다가 캐릭터와 신인성우여서 가능한 압도적인 각종 이벤트 출연회수 등등에서도 슈퍼스타는 여러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의 저조한 흥행은 앞으로의 러브라이브를 걱정하게 하는 요소인 것은 분명합니다. 슈퍼스타 자체만을 냉정하게 보면 스토리적인 면에서 막판 유학드립이라던가, 주인공 이외 멤버들을 각본상 유기적으로 사용하지 못하였다던가, 막판 클라이맥스가 맥이 빠지는 등등 각본상의 단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중의 냉정한 평가는 분명 일리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러브라이브의 핵심이라 할 오리지널 곡의 흥행이라는 점에서 전작의 스노우 할레이션과 같은 메가 히트를 내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프게 걸릴 겁니다.
하지만 러브라이브 4세대는 이제 막 시동을 올린 참이고, 앞으로 애니메이션 3기와 이외에도 많은 활동들이 남아있는 만큼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을 팬으로서 기대합니다. 분명히 포텐셜이 있는 프로젝트니까요.
해피 SF는 가능한가: 에스타브 라이프 그레이트 이스케이프
에스타브 라이프는 코드 기어스의 타니구치 고로가 원안을 맡은 SF 액션 작품입니다.
(본 문단에 스포일러 있음) 먼 미래 대도시 과밀화로 인한 인구감소로 골머리를 앓던 일본은 사람들을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거주구로 분리해서 살게 하고, 각각의 거주구 안에서는 개성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폅니다. 하지만 본인이 속한 거주의 라이프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거주구로 이주하려고 하는데 주인공들은 이들을 돕는 어둠의 조직(작중 탈출업자라는 뜻의 니가시야逃し屋)으로 활동하는 존재들입니다.
아직까지는 일본산 3D 작품이 전통적인 애니메이션과는 퀄리티 차이가 있다보니 비주얼적인 면에서 매력적이지 못하고 그래서인지 큰 흥행을 하지는 못한 작품입니다. 평점도 낮고 타카하시 리에, 나가나와 마리아 등 캐스팅에 비해 화제성도 별로 없었죠. 저 역시도 2번 3번 돌려보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SF의 팬으로서 SF의 새로운 도전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올해의 SF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를 꼽을 겁니다. 전 뭐 시청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시청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제가 SF라는 장르에 갖는 느낌은 이것 이외의 컨셉은 없는가? 라는 물음입니다.
SF라는 장르가 자기반복을 계속하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입니다만, 세계의 비밀을 품은 주인공이 하이테크 사회의 모순에 도전한다는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 이래로 계속되는 하드 SF의 클리쉐는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에서도 보이듯 여전히 견고한 것 같습니다. (사실 작년에도 아쿠다마 드라이브라는 정통 사이버펑크 작품이 방영되기도 했었죠.)
물론 캠벨의 신화의 구조처럼 항상 잘 팔리는 프레임은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르의 생명력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불가결하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SF가 새로운 시도에 상대적으로 인색한 점은 그 자체로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에스타브 라이프는 SF에 학원 일상물과 코믹을 가미하려는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주인공들은 탈출업자 영업을 하면서 동시에 고등학교에 다니고, 코믹한 사건들을 계속 겪습니다. 생각해보면 코믹은 SF와 지금까지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전지구급 대작 SF 타이틀들은 대개 진지하고 웃음기 하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외라면 패트레이버 시리즈 정도?
이런 SF의 기존 문법에서 볼 때 최근 20년간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는 학원 일상물의 터치와 코믹을 가미하는 것은 참신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타니구치 지로가 참여했던 수년 전 방영된 작품인 ‘액티브 레이드’ 역시 이런 컨셉을 가져가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작품 역시 2쿨이나 방영되었음에도 아무도 모르는 작품으로 남았죠.
SF의 팬으로서 장르가 장기적으로 생명력을 가져가려면 새로운 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타니구치 고로와 에스타브 라이프의 시도는 앞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재미있게 본 작품이 많았지만 최근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보여주는 데 적합한 작품, 그리고 제가 스스로 할 이야기가 많고 높이 평가했던 작품들 위주로 꼽아보았습니다.
샤인포스트
인게이지 키스
금장의 벨메이유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
스파이 패밀리
카구야님은 고백받고싶어 3기
천재왕자의 적자국가 재생술
등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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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케이온도 그렇고 코믹스를 초월번안 하는게 키라라 애니메이션의 전통이기도 한데 이번에는 그 정점을 찍은 듯합니다. 원작만화를 보았습니다만 그렇게까지 다이나믹하지는 않았거든요. 덧붙여 주인공 성우들의 호연도 한몫 한 것 같은게, 스즈시로 사유미(니지카)와 키타 이쿠요(하세과 이쿠미) 모두 연기력으로 최근 급부상하는 인재들이고 주연 아오야마 요시노도 WUG 이후로 주목을 못받아서 그렇지 짬은 상당히 높죠.
-이세계 미소녀 수육 아저씨와
별 기대 없이 봤는데, 기대치 안에서 최선을 다해준 기분입니다. 저예산 애니로 거의 각색없이 원작을 따라간 정도긴 하지만, 그 기본을 아주 충실하게 해준 느낌. 원작이 제법 탄탄한 편이라 덕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파티피플 공명
랩 시작하면 어지간하면 못 버틸거라고 그리 겁을 주는 사람이 많았는데 의외로 그 뒤로도 볼만했습니다. 다만 그렇게 음악 애니 역사에 남을 최종화! 하면서 바람을 잡더니 딱히 별 것 없어서 약간 김이 샌 느낌. 그래도 아예 소재를 대책없이 섞어버리면 의외의 맛이 난다는 좋은 발견을 시켜준 애니.
-길모퉁이 마족 2번지
일본과 한국의 온도차가 어마어마한 이 작품. 역대 키라라 작품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정도로 훌륭한 원작이 베이스고 특별히 무리하게 각색 시도하다 엎어지는 일도 없다 보니 딱 1기의 기대치만큼 뽑아줬습니다. 원작의 기대치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닌데 1기 시점에서 받아들인 부분들이라 이제와서 푸념할 것도 아닌듯. 원작의 장기 휴재덕에 3기가 나오면 꽤나 진도도 따라잡힐 듯 하고, 3기 분량부터 본격적으로 떡밥들이 풀리는 만큼 3기 역시 기대중입니다.
-아하렌 양은 알 수가 없어
애니화에는 큰 기대를 안했는데 의외로 잘 뽑혀나온 물건. 올해 개인적으로 기대치와 실물의 갭이 좋은 방향으로 가장 컸던 작품을 뽑으라면 이걸 뽑을 것 같습니다. 성우들 열연(이라기에는 텐션이 엄청 낮지만)도 훌륭하고, 작화도 엄청나게 안정적인데다, 무엇보다 아하렌이 귀엽습니다. 진짜 귀엽습니다.
-철야의 노래
메인 스토리는 거의 시작도 못했지만 그 특유의 감성은 잘 살려내는데 성공. 특히 만화와는 달리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는게 장점입니다. 아무래도 떡밥이라든가는 애니 종료 이후 분량에서 풀리다보니 그 부분은 조금 아쉽지만 2기를 기대해야. 삽입곡인 LOSSTIME은 정말로 이 작품을 위해 쓰인 노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찰떡궁합의 가사.
-4인은 각자 거짓말을 한다
원작을 거의 숨도 못쉬고 웃으면서 봤던지라 애니화에도 기대했는데 살짝 올드한 감성으로 애니화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템포가 한박자씩 느린 느낌이지만 그래도 적응하면 볼만합니다. 다만 일본 개그만화(애니)라는게 한국에서는 워낙 취향을 타는지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긴 어려운 작품.
파리피 공명은 카베 타이진 파트가 다른 스토리라인과 유기적으로 혼합되지 못하고 이질적으로 붕 떠버린 느낌이 가장 큰 패착이었던 것 같습니다. 클라이막스의 대결 역시 기대만큼은 아니었구요. 소재면에서는 신선했지만 그걸 잘 살리지는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오프닝 댄스나 쿠로네코와의 콜라보 등등으로 화제성은 만발이었던 것 같습니다.
4인은 각자 거짓말을 한다, 이 작품은 제가 뒤늦게 정주행중인데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본문에 의외의 다크호스로 넣어야하는데 깜빡했군요. 그냥 순수 슬랩스틱 개그로 준수한 작품입니다.
리코리스 리코일
후반부 각본은 분명 허접한데 인기가 폭발한 이유가 있습니다
초중반으로 이미 다 박살내놨음...
봇치 더 락
이 작품 감독인지 연출가인지 아무튼 천재가 분명합니다
연출이 너무 재밌습니다 이걸 이렇게 연출한다고
러브라이브 슈퍼스타 2기
개인적인 평가로 1기에 비해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1기는 전 럽라시리즈 중에서든 비슷한 장르 애니메이션 중에서든 정말 빼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타 럽라시리즈에 비해 인원수가 확 줄은만큼 캐릭터 한명한명 빌드업을 워낙 깔끔하게 잘해서
근데 2기 오자마자 인원수 두배가까이 늘어난걸 1쿨안에 쑤셔박으니
모든 안좋은부분이 그대로 나옴
샤인포스트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잘만듬...아이돌장르의 정석of정석
별 화제는 안되는데 그냥 조용하고 깔끔하게 잘만듬
저도 후반부를 다소 말아먹어도 초중반 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평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내팬들 성향 자체가 각본의 완성도와 주제의식 등등 문학적인 부분들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보니, 딱떨어지는 웰메이드가 아니면 평가가 좀 박한면이 있죠.
샤인포스트도 제가 언급할까말까 하다가 별로 할이야기가 없어서 빼긴 했는데, 나름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돌물은 원작의 광고판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꽤 괜찮았습니다. 샤인포스트 자체가 스퀘어에닉스에서 추진중인 미디어믹스로 알고 있는데 대기업이 붙어서인지 곡의 퀄리티가 생각보다 괜찮더군요. 캐스팅도 현역 아이돌로 비주얼을 커버하면서 스즈시로 사유미, 나츠요시 유우코와 같은 실력파 성우들을 캐스팅한 것도 좋았네요. 유튜브로 이벤트도 적극적으로 송출하는 점도 장점입니다.
키타가와 마린은 굉장히 흔한 갸루계 캐릭터죠. 본문에 소개한 부부이상 연인미만의 와타나베 아카리도 뭐 비슷한 계열이고 그외에도 많을겁니다. 아무래도 요즘 내성적인 오타쿠와 활달한 갸루가 엮이는 남성향 러브코메가 인기가 있다보니 어떻게보면 굉장히 흔한 컨셉이긴 한데 이걸 캐릭터 디자인과 미친 연기로 대박을 친 것 같습니다.
다만 남주가 여성 시청자층에게 굉장히 지지를 받는다는 데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전 그냥 내성적인 남주캐릭터로만 생각하는데 생각외로 여성층에 먹히는 셀링포인트가 있나봅니다. 하긴 애초에 180이 넘는 신장과 나키보쿠로(눈물점)이 있다는데서부터 범상치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