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7/13 23:33:14
Name 해맑은 전사
Subject [일반] [미드]성난사람들 BEEF (수정됨)
BEEF 성난 사람들

오! 스티븐 연이 주인공이네. 의리로 봐줘야겠구먼.


출연진이 극동아시아인인데 여주인공 외에 대부분 주·조연이 한국계입니다.(침착맨 닮은 배우도 한국계입니다) 제가 이 드라마 포스터를 보고 가진 선입견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동양계의 이야기’였습니다. 미국 내 소수민족으로서 받는 차별이나 절망 이런 감정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드라마로 생각했습니다. 스티븐 연이 아니었으면 누르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동양계가 주연인 것은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내용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흑인이나 히스패닉으로 바뀌었어도 감독이 표현을 전달하는 데 크게 무리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덜 신선했을 겁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동양인이지만 이미 미국사회에 미국식으로 살고 있어서 서양문화권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애정, 특히 같은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것이나 한인교회 같은 미국사회에서 조금은 마이너한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첫 화를 보면 짜증이 솟구칩니다.

주인공인 대니(스티븐 연)는 열심히 살아보려 별의별 노력을 하지만 주변 환경 특히 주변 사람들이 쉣다빡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미국에서 모텔을 운영하시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 쫄딱 망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친척의 일을 도우며 생활합니다. 미국에서 하나뿐인 혈육 남동생 폴은 게임에 빠져 살고 코인으로 대박을 꿈꾸는 답답이입니다. 감옥을 들락거리는 사촌형은 제대로 된 대화는 할 수 있나 의심될 정도로 사고방식이 남다릅니다. 부모님을 다시 미국으로 모셔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대니는 기댈 곳 하나 없이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자살을 시도합니다.

또 다른 주인공 에이미(앨리 웡)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으로 작은 사업체를 만들고 죽어라 일해서 다음 단계로 상승하기 직전의 여성입니다. 이 사업체를 큰 회사에 많은 돈을 받고 팔기 원합니다. 에이미는 회사를 팔기 위한 샤바샤바가 너무 힘듭니다. 그 누구와도 시원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아참, 일본계 남편과 결혼해서 귀여운 딸이 하나 있습니다. 문제는 남편이나 시어머니와 말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분명 좋은 분들인데 이상하게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내면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두 명이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서로 얼굴도 모른 상태에서 주차로 시비가 붙어 분노의 질주를 하는 것으로 이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부터는 이 드라마를 보신 분만 이해하도록 글을 썼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느낀 감정은 솔직함입니다. 솔직하면 손해 봅니다. 특히 감정을 표출하면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에이미가 남편에게 그날 있었던 짜증 나는 일에 대해 말하려 하자 남편은 에이미의 짜증이라는 감정이 잘못된 것인 양 호들갑 떨며 심호흡과 심리치료를 권합니다. 대니는 가족을 사랑하며 장남 역할을 하고 싶어 합니다. 안타깝게도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주변사람을 위해 사는 이타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실상은 주변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합니다.

모두 가면을 씁니다. 과장된 표정과 억양. 대니는 동생 폴에게 똑바로 살라는 잔소리 하지만 자기도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에이미가 사랑하는 딸에게 모든 것을 쏟지만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어린 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딸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마다 엄마인 에이미에게 지적받습니다.

솔직하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에이미는 폴과 첫 전화에서 솔직한 감정을 토해냅니다. 싫지 않은 척하기 싫다. 일하기 싫다. 폴은 들어 줍니다.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라 들어 주고 물어봅니다. 이런 대화가 에이미의 삶에 없었습니다. 거짓된 사진과 프로필로 나눈 대화지만 가장 솔직한 대화입니다.

솔직하지 못한 삶에서 나오는 분노가 쌓이다 폭발하는데 대상은 분노를 일으킨 사람이 아닙니다. 분노를 쌓게 만든 사람은 내 주변 사람입니다. 가족, 친구, 동료. 가깝고 중요한 관계일수록 더 많이 분노를 일으키고 솔직하게 대하지 못합니다. 가족이기에, 친구이기에, 동료이기에.

또 다른 솔직하지 못한 상황이 나옵니다. 조지의 부모님은 금전적인 문제를 무시해서 빛 좋은 개살구처럼 살아갑니다. 에이미의 부모님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외도를 무시하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에이미는 혼란스럽습니다. 무시해서 안 될 중요한 것, 돈과 신뢰의 문제를 무시하고 외면하면 해결되는 것인가? 내가 감정을 숨기고 사는 것은 부모님 때문인가? 솔직하지 못한 시어머니와 부모님의 삶이 행복한가? 에이미는 솔직한 감정을 딸과 함께 집을 나갔던 남편에게 털어놓습니다. 남편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둘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속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이혼을 결정합니다.

대니는 수리공이자 인테리어 업자인데 직접 지은 집의 전기 배선을 제대로 설치하지 못해 집을 태워 먹습니다. 화초 사업체 사장인 에이미는 독초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둘 다 전문가라 말하면서 각자 전문분야로 전 재산과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업계에 대해 잘 몰라도 어느 정도 일하며 시간이 지나면 전문가라 말합니다. 이제 20대 중반의 지인들이 보험과 금융전문가라며 명함 줄 때마다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고민에 빠집니다. 저 또한 나의 일에 전문가인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하게 모르겠다 말해도 알려줄 사람이 과연 있을지 고민됩니다.

독초의 후유증으로 몽롱해진 정신으로 긴 시간 동안 대니와 에이미는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화는 상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상대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바쁘게 살기에 돈보다 중요한 시간을 나에게 줄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이 둘에게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공동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절된 공간에서 처음으로 모든 것을 쏟습니다. 긴 시간의 대화를 통해 공감을 넘어 초월적 감정을 공유합니다.

오늘 저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힘든 대상이 누구일까 고민해 봤습니다. 징징거리는 사람을 견디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답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자기 힘든 감정을 일방적으로 들어 주길 원하는 사람.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며 깨닫습니다. 아.. 내가 대니구나. 내가 에이미구나. 내가 폴이구나. 내가 조지구나.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마리오30년
23/07/14 07:44
수정 아이콘
이거 개꿀잼이죠. 올해 본 미드 중 손에 꼽습니다.
23/07/14 10:48
수정 아이콘
드라마가 정말 재미있더군요
제작사 A24의 폼이 미쳐 날뛰는 중이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9202 [일반] 물 들어올 때 노젓는 제로 음료수 평가 [86] 무냐고11534 23/07/14 11534 3
99201 [일반]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을 책임지는 BGM (발칙한 아이유/ 에세이) [4] 두괴즐5954 23/07/14 5954 5
99200 [정치] 지도에서 '광주' 쏙 빠졌다…국토부 행사 포스터 논란 [71] 졸업14735 23/07/14 14735 0
99199 [일반] [주식] 삼성중공우 근황 [10] TheZone10578 23/07/14 10578 0
99198 [일반] 제로 콜라 그럼 먹어 말어? [68] 여왕의심복11794 23/07/14 11794 68
99197 [정치] 재생에너지에 목숨 건 대만과 느긋한 한국 [65] 크레토스12990 23/07/14 12990 0
99196 [정치] 명품샵 이슈가 발생한 김건희 여사 [310] 빼사스18510 23/07/14 18510 0
99195 [일반] 미션임파서블 7 DR p.1 감상 [26] 닉언급금지5736 23/07/14 5736 0
99194 [일반] 왠지 모르게 서글픈 건강검진 [16] Cazellnu8063 23/07/14 8063 3
99193 [일반] [미드]성난사람들 BEEF [2] 해맑은 전사7653 23/07/13 7653 13
99192 [정치]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은 용역업체가 착수 50일만에 스스로 제안했답니다 [111] 잉명15914 23/07/13 15914 0
99191 [일반] 경보를 남발하면 과연 그게 경보인가? [66] 달은다시차오른다11408 23/07/13 11408 15
99190 [일반] 인연 찾기 힘드네요 [41] 검정머리외국인10666 23/07/13 10666 11
99188 [정치] 순서 바뀐 '오세훈 수상버스'…운영자 먼저 뽑고 타당성 따진다? [66] 덴드로븀11795 23/07/13 11795 0
99187 [일반] 초복날의 생각 [21] Amiel8155 23/07/13 8155 14
99185 [일반] 밀란 쿤데라, 그리고 키치 [9] 형리7221 23/07/13 7221 19
99183 [정치] 당정 공청회에서 "여자·청년들은 실업급여로 해외여행, 샤넬 선글라스 사" [234] 기찻길20489 23/07/12 20489 0
99182 [일반] [컴덕] 인텔 차기 CPU 라인업 유출? [18] manymaster8869 23/07/12 8869 2
99181 [일반] 정수리 모발이식 1년10개월 후기 [32] Croove10036 23/07/12 10036 11
99180 [일반] 대단히 개인적인 웹소설 추천글. [27] reionel10812 23/07/12 10812 8
99179 [일반] 노트북 간단 후기+(놋북 스피커 맘에 안들어서 스피커 산 썰) [29] SAS Tony Parker 8393 23/07/12 8393 2
99177 [일반] 보건의료노조 7/13 산별총파업 관련 [154] lexicon14951 23/07/12 14951 12
99176 [일반] 영화 'Past Lives' 소개 [3] 휵스8326 23/07/12 8326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