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tvN '더 지니어스' 관련 게시글을 위한 임시 게시판입니다.
- 방송 기간 한정 임시로 운영됩니다. (선거, 올림픽, 월드컵 게시판과 같음)
Date 2015/09/07 01:00:25
Name 트롤러
Subject [분석] 가장 빛났던 플레이어에 대한 단상





그랜드 파이널 11회전의 탈락자가 오현민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데스매치 종목은 오현민이 가장 자신을 보였던 십이장기였고, 대결 상대는 장동민이었습니다. 장동민은 사실상 지니어스 속 오현민의 유일한 적수이자 인생 선배였고 든든한 아군임에 동시에 넘기 어려운 산이었습니다. 데스매치가 메인매치보다 흥미로웠던 건 두 시즌을 교차하면서 이어진 이 두 사람의 드라마성 덕분이었겠죠. 결과적으로 장동민은 이 리벤지 매치에서 승리했으며 유일하게 두 시즌의 결승에 진출한 플레이어로서 두 번째 우승를 목전에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원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방송이니만큼 지니어스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어를 고르자면 다양한 답이 나올 겁니다. 기발한 전략과 뛰어난 관찰력으로 지니어스의 아이콘이 된 홍진호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명실상부 지니어스의 최강자로 불리는 장동민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몇 번이나 배신당하면서도 생존을 게임으로 즐겼던 이준석을 프로타고니스트로 이입하는 저같은 사람도 있겠죠.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니까요.


그러나 지니어스에서 가장 반짝였던 플레이어를 한 명 꼽는다면 저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오현민을 고를 겁니다. 물론 오현민이 무결점의 플레이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뚜렷한 장점만큼 단점 역시 선명하죠. 아마 누구나 지니어스 내 오현민의 플레이를 보면 이 친구의 넘침과 부족함을 동시에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오현민은 이기고 생존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지니어스의 섭리에서 누구보다 약고 민첩했으며 그런 스스로를 잘 알기에 욕심이 많고 서툴렀습니다.

저는 오현민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307 별자리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회차에서 오현민은 게임을 보자마자 필승법을 만들어냅니다. 다섯 명이 만들어지면 두 명은 무조건 배제당하는 룰을 간파한 오현민은 그 즉시 블랙가넷으로 구제받을 수 없는 두 명을 상정하고 다섯 명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배신당하죠.

꼴찌가 된 오현민은 복수심에 이종범을 고르고 탈락시킵니다. 그 이후에 울어버려요. 자기는 누구를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 모순되는 맥락에서 오현민은 항상 진심입니다. 자기의 전략을 뺏어서 자신을 데스매치로 떨어뜨린 이종범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거고, 정말로 이기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유리해지자 들뜨다가도 종래에 친한 형이 서바이벌에서 자기 손에 의해 낙오되었다는 사실에 눈물을 떨굽니다. 오현민이 가장 스무 살처럼 빛날 때는 이 미묘한 굴절에 존재합니다. 소위 ‘어른’처럼 갈고 닳아져 평평해지지 못한 거죠. 이 플레이어는 지니어스에서 매사 감정에 솔직하고, 이기적이고, 정에 쉽게 휘둘리니까요.


그랜드 파이널에서의 오현민은 블랙가넷에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주던 장동민에게 자립하고자 합니다. 장동민보다 더 노련한 어른처럼 보이는 이상민과 연합하고, 배신당한 후 결국 다시 돌아와 한동안 같이 플레이를 하다가도 자기의 게임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죠. 장동민을 속이려다가도 자신이 되레 읽혀졌다는 걸 모르고 결과에 상처받고 그러면서도 온전한 개인전에 들어가서는 긴장감에 떨리는 손으로 퍼즐을 맞추며 이기기 위해 승부욕을 불태웁니다. 저는 지니어스 속의 오현민이라는 플레이어를 볼 때마다 어떤 성장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이 서사 안에서 오현민이라는 플레이어는 거듭 실패하고 자기의 부족함으로 인해 무너짐으로서 오히려 주인공으로 존재합니다.

지니어스 바깥의 오현민에 대해서 저는 전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지니어스 안의 플레이어 오현민이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단순화된 캐릭터로서의 미숙한 소년 오현민이 더 매력적이게 그려질 수 있는 거겠죠. 오현민에게 각자의 스무 살을 대입하는 많은 플레이어들도 그 이유로 인해 그들이 가장 빛났던 모습을 플레이어 오현민에게서 찾는 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어서 고마웠고,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외계인
15/09/07 01:23
수정 아이콘
누구보다도 비범하지만 어느 누구만큼의 스무살만큼이나 평범한 오현민죠.
BetterThanYesterday
15/09/07 01:25
수정 아이콘
저의 스무살을 대입하고 싶지만 너무 대단한 친구인 것 같아요,,,, 괴리감이 크

아무튼 스무살에 저런 스펙과 많은 경험.... 정말 부러워요,, 성격도 좋은 것 같고요,,

앞으로 자기가 알아서 크게 될 친구 같아서 따로 응원은 안할려고요 크크
게바라
15/09/07 02:36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친구죠
몽키.D.루피
15/09/07 09:05
수정 아이콘
추천기능이 없어서 아쉽네요.
아포가르토
15/09/07 17:01
수정 아이콘
추천 누르고 싶다.
Winterspring
15/09/07 18:07
수정 아이콘
오현민 군의 명장면이 정말 많지만 이번 시즌 1화 때,
인터뷰 도중에 갑자기 골똘히 생각하더니,
"윤선 변호사님이랑 준석이 형이 오시면 돼요"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알았습니다.
이 친구 진짜 빠르구나 두뇌회전이.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716 [분석] 홍진호가 탈락하길 바랍니다. [58] 주본좌6653 14/01/13 6653
713 [분석] [암전게임] IF 만약에 [3] 2'o clock3784 14/01/13 3784
710 [분석] 더지니어스 연출자의 생각은 이러하지 않았을까 [28] 해비6021 14/01/13 6021
707 [분석] 임ㆍ홍이 살아남고 불멸의 징표를 날려버릴 수 있는 경우의 수 [6] 쵸비4669 14/01/13 4669
702 [분석] 낡은 시스템 안에서의 가넷의 무게감 [1] Falling4206 14/01/13 4206
698 [분석] 시즌2에 아쉬운 점들. [5] Leeka4126 14/01/13 4126
691 [분석] 데스매치의 구성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51] 레이몬드5311 14/01/12 5311
686 [분석] (뜬금없는 스포?)원색적 비난이라기 보단 심리학적으로? 재미있는거 본거같네요 [9] 기계공학4583 14/01/12 4583
684 [분석] 이두희는 정말로 홍진호 편이었을까요 ? [25] 엔타이어6964 14/01/12 6964
674 [분석] 제작진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14] 산타4918 14/01/12 4918
672 [분석] 지니어스2는 왜 이렇게 독해졌을까?? [14] 주본좌5361 14/01/12 5361
661 [분석] 임요환, 이랬다면 어땠을까요? [16] 다인5158 14/01/12 5158
2458 [분석] 결승전 1회전 숫자장기 리뷰 [21] 트롤러31602 15/09/14 31602
652 [분석] 황신이 대단한건 냉정한 승부사 기질이 있다는거죠. [9] Leeka5598 14/01/12 5598
2446 [분석] 2라운드 게임,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12] SarAng_nAmoO11509 15/09/12 11509
645 [분석] 결국 3회전 때 배신했던 플레이어 다 떨어졌네요 [4] tristan4152 14/01/12 4152
638 [분석] 정말 조작이 없었을까? [60] 슈우6923 14/01/12 6923
2424 [분석] BGM을 통해 알아보는 PD의 속마음 [13] 아포가르토20741 15/09/07 20741
621 [분석] 이상민의 게임, 홍진호의 게임, 임요환이라는 말 [14] 한니발15196 14/01/12 15196
2419 [분석] 가장 빛났던 플레이어에 대한 단상 [6] 트롤러10531 15/09/07 10531
2418 [분석] 데스매치도 데스매치지만 전 메인매치 장동민 모습이 참 인상깊었네요 [14] 게바라12538 15/09/06 12538
618 [분석] 초반 탈락자는 출연자의 팬덤을 보고 사실상 제작진이 고르네요. & 나비효과 [36] 피자6147 14/01/12 6147
610 [분석] 6회게임의 나쁜 절도와 착한 계약불이행 [22] 산타4648 14/01/12 464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