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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1 11:44
조총병만 있으니 일어난 일이죠. 뭐. 기본적으로 총검 발명 전까지는 기병은 창병이 보호해주고 보병의 약점은 총병이 보호해줘야 하는데
조선은 화력 덕후라 보니 총병에 올인 했죠. 그결과 망. 그런데 그후도 딱히 고친거 같지도 않더군요.
13/06/01 12:26
쓸만한 지휘관이야 있었겠죠.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국가 전체에 쓸만한 지휘관이 단 한명도 없었으리라 생각하기는 힘들고, 경상우병사 민영이 지휘하는 부대는 양호하게 전투를 수행한 편입니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부대내에 민영에게 불만을 품은 자가 있어 화약을 분배하는 장소에 불을 던져 폭발이 발생, 대 혼란이 벌어졌"고 이것이 주요한 패인입니다.
지휘관 개개인의 능력보다도 당시 조선군의 군제, 병력의 자질 등을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죠.
13/06/01 12:36
에초에 화약 딱 두냥씩만 나눠주고 사격통제 안된거 부터가 문제였죠. 불만을 품은자가 있어 화약 분배장소에서 불을 던졌다... 라는 이야기 신빙성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전부 조총병만 있는 상황에서 화약 떨어져서 아비규환 일어났을걸 상상해 본다면 사고라는 쪽이 더 정설이 맞는거 같구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지휘관은 지휘관대로 병은 병대로 문제가 흘러넘쳤죠. 신재호씨 연구에 따르면, 조선군은 훈련/통제 전혀 없는 군대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도망가다가 압사당해서 죽었고 말이죠.
13/06/01 12:55
신재호 본좌님 블로그는 오랜만에 보네요. "불을 던진"이야기는 윤민혁씨 쪽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출처는 승정원일기일 겁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히는 것이 탄약 지급량 부족이기는 한데, 훈련도가 충분치 않은 군대에게 탄약을 충분히 지급하면 사격통제는 아예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생각해서 내린 조치라고 봐야합니다. 현대전이라면 모를까 흑색화약시대에는 딱히 크게 문제되는 조치는 아닙니다. 조선 중앙군 전기에 보여주었던 폐단 상당수는 임란(-호란)을 통해 군제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적지 않은 진보를 보여주기는 하는데, 속오군으로 대표되는 조선지방군의 전투의지는 솔직히 대대로 문제가 있기는 하죠.
13/06/01 12:41
조선군 실태에 대한 전통 군사사의 권위자이신 신재호 선생의 연구 결과를 좀더 설명해 보자면
http://lyuen.egloos.com/4649265 (전문은 여기서 확인 가능하십니다) 조선 전기 중앙군의 일반 병사들은 “수방사 근무를 명받았으나 매일 출근하지는 않는 방위” + “무단 탈영병” + “동원훈련도 아닌 동원소집점검만 받는 예비군”+ “동원소집점검조차 대리출석시키는 예비군”+ “동원훈련 소집되서 사역만 열나게 하는 예비군”의 기괴한 결합체였다죠. 개인 훈련은 뭐 가당치도 않고 다수가 모였을때 어떻게 할것인가 훈련하는 진법훈련(대열, 강무)은 1년단위로, 궁궐 경호하는 시위업무는 비교적 자주 돌아왔지만 그냥 이건 걸어다니면서 경비나 하는거고. 점호나 소집점검은 기본적으로 매일 실시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웃긴게 뭐냐면 지방에서 소집되어 온 중앙군이 군 병영이 불편하다고 다 개인 사가에 월세내고 셋방살이 하느라고 실록에 군 병영에 사람도 없고 말도 없어서 텅텅 비었으니 어쩌면 좋냐고 실릴정도... 더 웃긴건 이게 단순히 병사들의 의식해이가 아니라... [[군병영 관리할 장교들이 병영 관리하기 귀찮다고 병사들 병영에 출근하는놈 있으면 벌주자고 해서(다시 이야기 하지만, 출근 안하는 놈이 아니라 출근 하는 놈입니다) 실록에 실릴정도]]라는거지요. 이 상황에서 점호나 소집점검이 제대로 이뤄질리도 없고 이말인즉슨 한번 근무서러 오는 그나마 상비군인 정병도 실제 근무일수가 10일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것이 신재호님의 연구결과였습니다. 원래 제도상은 2개월인데도요. 이말인즉슨 개인훈련은 고사하고 부대의 단결과 전투력 유지를 위한 훈련도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거죠. 그러면 정식으로 취재, 시험보고 들어오는 정예 무술인력, 갑사는 어쩐지 볼까요? 공무원 시험하면 미어터지는 현대만큼 그래도 가려서 뽑는 직장이니 그나마 나... 을리가 없죠. 정예군인 갑사도 체아직- 정해진 녹봉 없이 계절마다 그냥 근무뭐했냐 따라서 녹봉 줬다 말았다 하는 식으로 바꿔서 임란 전에는 그냥 무예에 대한 최소기준도 없이 되는대로 양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달사태가 나는 지경이었습니다. 미달사태요... 그리고 충순위 충찬위같은 공신들 후손 녹봉챙겨주려고 만든 무반 체아직은 임란당시 군사라고 불러모으자 평생 붓이나 들던 의관정제한 백면서생이 나오더라 하던 상태였고. (즉 전문 인력이라는 갑사도 제대로 점검이나 훈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신립 탄금대 전투 당시에 그나마 정예군이라고 끌고 내려간 경군 편제가 대부분 기병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미 직전에 훈련 및 검열시스템이 제대로 안돌아가서 정식 편제로는 기병들이 창, 칼을 제대로 익히고 전체 편제에서 40%가량이 창기병이어야 하는데 눈가리고 아웅하는 훈련 평가는 철저하게 궁술에만 치중되어 있어서 당대에 이미 기병들은 창칼이 버려진 무기나 다름없다고 개탄스럽다 기록되는걸 봐서는 달리면서 활이나 쏘는 민간인 수준이나 진배 없을것이라고 짐작되었고 그나마도 말이 없어서 나귀까지 징발했다는 야담이야기도 있죠. 주로 임란때 이야깁니다만... 호란때도 마찬가지입니다.
13/06/01 12:54
https://pgrer.net/?b=8&n=30237
아래 이순신 글도 그렇고 숫자에 관련 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기록 중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는듯... 좋아하는 영웅이면 말도 전과를 안 되게 부풀리고, 비난하고 싶은 내용이면 상대 전력을 말도 안 되게 축소하고..
13/06/01 13:08
아뇨. 제 말은 청군의 규모입니다
300대 4만이라고 하지만, 실제 청군의 규모 역시 수천은 됐다는 겁니다. 지금보니 윗 게시물에도 그렇게 적혀 있긴 하네요.
13/06/01 13:57
참고로 하자면, 영화 300처럼 스파르타인이 실제로 300명으로 싸운 것도 아닙니다.
노예 900명과 함께 싸웠죠. 실제로는 1200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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