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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10 20:32
제겐 과거의 류중일, 현재의 이승엽이로군요. 사실 냉정하게 봤을 때 이종범 선수의 가치는 가공할 공격력과 강력한 리더쉽(카리스마?)에 있습니다. 수비력은 가끔 말도 안되는 수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실 실책도 은근히 많고(8개구단 최다를 기록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그렇게까지 뛰어난 수비를 지닌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수비만 따지면 라이온즈의 류중일-김태균이나 트윈스의 유지현(어깨가 약하다는 것이 평생 짐으로 따라다니고, 결국 그 때문에 2루수로 전업하긴 했지만 그는 최고의 유격수중의 하나죠. 어깨를 풋워크로 만회하는 특이한 케이스죠)이 낫다고 봅니다. 뛰어난 공격력, 주루플레이가 정말 예술인 선수죠. 그러나 이제 유격수가 아니라 외야수인 그는, 수준급의 외야수일 뿐 예전처럼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선수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원래 그의 슬라이딩은 위험천만하지만 그 만큼 유용했습니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베이스를 보면서 들어간다는 장점이 있죠. 이종범 선수는 몸은 완전히 밖으로 빠지고 베이스에는 쭉 뻗은 손끝만을 댑니다. 태그를 피하는 아주 유용한 기술이죠. 하지만 역시 부상위험이 너무 컸나 봅니다. 그리고 유머게시판보다는 자게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03/09/10 20:33
아, 참고로 전 라이온즈 팬이구요^^ 위에 말씀드렸다시피 예전엔 류중일 선수(지금은 코치)를 정말 좋아했고, 지금은 이승엽 선수를 좋아합니다:)
03/09/10 21:30
NoNo. 우리나라에서 4할 타율은 백인천 롯데 감독 외에는 없습니다. 2번째 고타율을 기록한 선수가 이종범 선수입니다. 참고로 유지현 선수는 국가대표시절 이종범 선수와 최강의 피스톤 콤비였습니다. 소속팀에서는 유격수였지만 대표팀에서는 2루수...
03/09/10 22:18
이상님 키스톤 코비 쓰시려던 거 맞죠?^^
참고로 유지현 선수는 이종범 선수 땜에 골든글러브를 못 받았죠^^ 이종범 선수 일본 진출 후에야 마침내 수상의 기쁨을...^^
03/09/10 23:26
그런데 공필성선수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요?
한때 야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보이지 않으시더군요. p.s 예전 삼성에서 활약하시던 강기웅선수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나요? 제가 알기로는 95년(96년?)이후 현대(불확실;;;)에 트레이드된 것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해서 임의탈퇴로 선수생활을 접은 걸로 알고 있는데... 자세히 아시는 분 없으시나요?
03/09/10 23:35
데드볼 황태자 공필성 선수라... 참 좋아 했었지요,, 전 롯데 팬이었기때문에.. 3루 수비를 보던 공필성 선수를 아직도 기억하고 최고의 3루수라고 생각했지요.. 전준호 선수가 떠나고, 마해영선수도 떠나고,, 임수혁선수가 병상에 누워있는 지금;; 이제 더이상 야구는 제 관심권 안에 있지 못하지만.. 아직도 야구장을 찾았던 그때가... 기억이 나네요..^^ 홈페이지라도 가서 ... 예전에 좋아했던 팀이 지금은 어떤지.. 한번 봐야겠네요..
어떤 신인들이 지키고 있는지..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여.. 옛영화만을 바라게 된게 아닌지...... 음.. 다시한번 야구에 애정을 쏟게 만드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03/09/11 00:08
공필성 선수 움직이는 화약고라 불리며 한방씩 터트려주었죠!
전성기때 한해에 30개가량의 데드볼을 창출해낸걸로 기억되는군요 부인되는분이 신문에선가 온몸에 멍든 남편 몸을 보면서 울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롯데하면 전준호-김민호-김응국-조성옥-...이 좌타라인업이죠!! 한때 유명했는데 9타자중 7타자가 왼쪽타석에서 치고 그랬습죠.
03/09/11 01:00
네, 저도 그런 기사를 본적이 있지요^^ 김민호 김응국 선수도 당연히 너무 너무 좋아했구요 ,,,,,/// 아아.. 저녘6시엔 아부지랑 같이 앉아서 밥먹으면서. 야구보면서 열올렸던 생각이 나네요^^
03/09/11 03:05
박정석테란김정민님//강기웅 선수는 저도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다른 선수 하나와 묶여서 현대의 이희성(외야수), 또다른 선수 한명과 2대2 트레이드되었습니다. 95년은 아닌듯합니다. 피차 양팀 전력에 큰 차질은 없는(아! 강기웅 선수 좋아했는데...아직도 태평양전, 대타 이광근, 투수 마무리 김상엽, 무사 1,2루, 초구! 깡! 트리플 플레이의 감동이잊혀지지 않는 제겐 너무 가슴아픈 말이군요)트레이드였습니다. 팬으로서의 정신적 타격은 꽤나 컸습니다만;;(그때 소식 듣고 "감히 강기웅 선수를 이희성 따위와 바꾸다닛! 삼성 미쳤어!"라고 외쳤던 기억이 있군요-이희성 선수 팬분들껜 죄송합니다;;)결국 강기웅 선수는 은퇴해버렸고, 말씀드린 대로 별 영향없는 트레이드였기에 현대는 보상트레이드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세 선수 모두 트레이드 후 한 것 없이 은퇴했지요.
03/09/11 09:41
강기웅 선수는 선수생활 중에...사업에 눈을 돌려서...경기에 전념을 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삼성에서 트레이드를 했다고 예전에 한 잡지 기사에 서 봤습니다. 그리고 강기웅 선수도 트레이드 직후, 바로 은퇴를 해버렸 다고 합니다. 현재는 한 병원에서 총무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03/09/11 13:28
최초의 20-20 클럽의 개설자는 김성한 감독이지요. 이후 이종범 선수 이전에 이순철, 이정훈, 양준혁 선수등 몇 선수가 달성했지요. 김성한 감독의 추후 인터뷰 멘트를 보면 그 당시에는 20-20 , 30-30같은게 좋은 건지도 모르고 야구 했었답니다.^^ 요즘처럼 높이 평가될 줄 알았으면 신경 더 썼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종범 선수의 경우는.. 93,94시즌에 홈런 부족(몬스터 시즌이었던 94시즌의 전반기에 무려 15개를 때리고 후반기에 체력저하로 4개에 그친 점이 아쉬웠지요)으로.. 95시즌은 방위복무 탓에 제한된 출장으로 인한 홈런부족으로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96시즌, 라이벌이었던 양준혁 선수가 이종범 선수보다 몇 경기 앞서 20 - 20클럽에 '의외로' 먼저 가입을 했지요. 두 선수 모두 도루는 여유있게 20개를 채운 상황에서 양준혁 선수의 홈런페이스가 조금 더 빨랐기 때문이지요. 위원장 님 말씀대로 이듬해인 97시즌에 딱 30 홈런을 기록하며 박재홍 선수에 이어 2번째로 30-30클럽에 가입했습니다. 리그의 공격력 인플레가 극심했던 99시즌에 이종범 선수가 국내에서 활약했더라면.. 40-40클럽의 달성이 '아마'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03/09/12 02:34
맞출려고 하다가 맞추지 못해서.. 아직도 이런 정신연령을 가지신 분이 있네요.. 멀쩡하게 시구하러 나온사람을 무슨 심정으로 맞추려고 했다고 하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그냥 싫어하면 싫어한다고 쓰면 되지.. 굳이 그런말까지 들먹인다는게.. 참..
03/09/12 21:57
신문 검색을 한번 해보시죠.. 그때 분명히 이종범선수가 장나라씨에게 가서 고의가 아니었다고 백배사죄를 했다고 제가 다음날 조간 스포츠신문기사를 봤습니다..
뭐 인신공격은 아니지만 무정보시대에 각박한 인심을 가지고 사시는 분 같네요..
03/09/13 04:59
이종범선수가 이벤트성으로 공을 쳐냈는데, 우연히 장나라씨 쪽으로 공이 갔던것이지요.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이종번선수도 언론으로 공개 사과를 했었구요. 장나라씨도 고의가 아닌것을 알기에 대수롭지않게 여겼었는데...
참... 어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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