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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4 14:46
이게 역사적으로도, 전통적으로 고려 초중기의 외교전술을 잘 보여준 거죠
고려의 양아치 외교 전술... 서희때부터 입벌구로 강동 6주 얻은후 나몰라라 입 씻은거랑... 거란을 2차 3차때 격퇴하고나서 그 양아치 외교술이 더 극에 달했으니 잠재적 동맹국이었던 송나라도 치를 떨었고... 제 기억이 맞다면 소동파가 당시 고려 사신들은 굉장히 불손, 오만방자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하니... 거란은 2차때 사실상 침략국 입장에서 의미없는 협정으로 마무리 당했고 3차때 격퇴당해서 호구처럼 당해줬고... 그래도 자력으로 외침을 연달아 이겨낸 고려 초중기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거죠...
23/12/04 14:52
송은 거란한테 털려서 전영의 맹으로
매년 30만씩 바치기로 했는데 그 뒤에 고려는 3차침공으로 쳐발랐으니.. 100년간 고려가 사신 콧대가 높을수 밖에 없죠..
23/12/04 14:58
맞습니다 사실 거란도 송을 상대로 두고 후방의 고려까지 끝장을 볼 의지는 없었으니 그냥 적당히 마무리하자고 한거고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죠
거란도 강동 6주를 주긴 줬지만 당시 여진족의 주무대였던 강동 6주를 고려가 요새화하여 빨리 안정화시킬줄 몰랐을 겁니다
23/12/04 15:01
사실 그건 무신정권의 강짜라고 봐야... 그 결말은 유목민족의 아니 세계사 적으로도 이레귤러인 몽고제국의 앞에서 처참하게 당했고...
고려국왕들은 결국 앞에 글자에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충자를 붙임당했죠
23/12/04 15:48
사실 웃자고 양아치전술이라고 하신거겠지만 일반적인 한반도-중국왕조간의 관계가 겉으로는 꿇고 들어가도 내적으로는 자주적이었던 조공-책봉관계였던 거죠.
비슷하게 대응하다가 몽골한테 한번 작살나면서 내정간섭이 심화된 조공책봉 관계로 바꼈다고 봐야할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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