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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03 07:14:42
Name 저글링아빠
Subject [일반] 고기를 익혀봅시다.
이 모든 일은, 지난 주 머리를 깎으러 갔던 미용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읽게 된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죠) 남성잡지의 기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진짜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가? 밀봉해서 끓지 않는 물에 조리한 뒤 앞뒷면을 굽는다면 새로운 차원을 만나게 될 것이다. 뭐 이런 이야기였죠.

마침 2월에 집에서 고기를 많이 드신 어느 피지알러분의 글을 읽고 필을 받아서 지난 주에 사둔 고기를 구우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침 그게 진공포장이 된 놈이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오호라... 물에다 익힌 스테이크를 해주마 하고 검색을 시작했고, 곧 그 요리법의 이름이 수 비드(Sous Vide) 조리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엔하위키에 항목이 없다니!!)
그러고보니 작년에 본 엘불리라는 다큐멘타리 영화에서도 이 얘기가 나온 것 같아요. 그분들 요리하라고 뽑아놨더니 물리,화학시험 하고 계십디다.

원리는 고기의 목표 심부온도에 고정된 온수 안에 진공포장된대로 오래 넣어두면, 고기 전체가 고르게 원하는 정도로 익으며 육즙 손실도 최소화될 뿐 아니라 결합조직이 분해되어 굉장히 부드러운 새로운 식감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오늘 처음 들은 이야기이니까, 자세한 내용은 남이 써 둔 내용을 보십시다.
http://lifehacker.com/5868685/sous+vide-101-how-to-cook-the-most-tender-and-flavorful-meat-youve-ever-tasted

영어 울렁증이 있으시면 요기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icedoozy&logNo=20115682221

조리 데이터는 요기
https://www.cuisinetechnology.com/blog/time-and-temperature-reference/

문제는 어떻게 진공포장을 할 것인가인데, 이미 진공포장이 되어 있으니 따듯한 물에만 오래 넣어두면 그만이라고 생각이 되더군요.
링크 글엔 철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지만 어차피 걍 가정집 가정요리인데 야매로 해보면 어떠하냐 그말입니다.
그래서 도전해 보았습니다. 남자의 요리, 수 비드 스테이크!!!


거룩한 꽃등심(Rib eye)입니다. 지난 주에 마트 갔다가 세일중이어서 사왔죠. 김치냉장고에서 8일정도 추가 숙성(이라고 쓰고 방치라고 읽는다)된 상태입니다.
왼쪽 위에 천조국 깃발이 왠지 거슬리는듯 하지만 기분 탓이겠죠.
종간나 내래 너를 저온화상을 입혀버리갔어.
원래는 고기를 손질한 후 밑간과 럽을 해서 진공포장을 해야 하는듯 하지만 저거 진공팩 풀면 다시 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갑니다.


이제 저 고기를 담글 물 온도를 유지할 도구가 필요합니다. 영어 링크에서는 큰 아이스박스에 온도를 맞춘 물을 넣는 방법이 나오던데, 마침 지난 가을에 아이스박스 아는 사람 빌려줬다 아직 안 받아왔네요. 다른게 뭐 없을까 하다가 전기밥솥 보온기능을 사용해보면 어떨까 하고 시도해봅니다.


한 시간정도 보온 기능을 돌려 온도를 안정화시키고 측정해보니 온도가 73도네요. 보온 온도조절기능을 최저로 했는데도 저 정도로군요.
여러분 쿠쿠의 보온온도는 70도대 중반이었습니다.
온도가 적정(58-59도)보다 꽤나 높긴 한데 어차피 첨이고 귀찮은데 걍 넣어봅시다.


안들어감. 두둥.
밥솥이 작아서 안들어가네요. 고기 너님 생각보다 크구나...
어차피 온도도 잘 안맞았잖아 곧바로 신포도 시전하고 다른 길을 찾아봅니다.


집에 있는 제일 큰 압력솥에, 사이즈 맞는 냄비뚜껑 덮고 물을 데워서 온도를 맞춰봅니다.
대략 6.5리터 정도의 물이 들어갔습니다.
얼마 전에 피지알 자게에도 올라와 욕을(?) 먹었던 전기렌지가 보이네요.


한 시간정도 이리저리 삽질을 한 끝에 61도를 조금 넘는 정도에서 온도 안정화에 성공합니다.
이것도 온도가 조금 높지만 이미 시작한지 두시간 반이 지났을 뿐이고.. 고기는 울고 있을 뿐이고..
우씨 몰라 내 입이 3도 차이를 느끼겠어? 걍 푹 익으면 미뎜웰던 먹지 뭐..하고
걍 투입합니다.


삼십분쯤 지나 잘 되어가고 있나 하고 열어보니 부력때문에 고기 일부가 물 밖으로 나왔네요.
여러분 죽은 고기도 수영 잘만 합디다..는 농담이고 포장지가 좀 크긴 한가보네요.


서랍을 뒤져서 나온 라임스퀴저로 걍 눌러버립니다. 너무 무거우면 또 고기를 바닥면에 붙일거라.. 이정도면 적당한 듯 하네요.


2시간 40분 조리했습니다. 물에 넣어두고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박테리아 제거하려면 이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여튼 점심 설겆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한 요리는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완성되네요.
이 와중에 맨체스터 시티가 캐피털 원 컵을 들었습니다. 올레!!
사실은 이 중간에 애들이 배고프다고 해서 파스타 한접시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니쉬 만들려고 손질해둔 야채를 써버린건 함은정.
여튼 온도는 아직 61정도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 순환장비가 없으니 높낮이에 따라 온도차가 있겠지만 어차피 야매요린데 그런 정도는 넘어갑시다.


스테이크 고기에 시즈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먹기가 어떨까 싶어서 꺼내기 전에 간단히 소스를 만듭니다.
자게에 마눌님께서 전기렌지 사고프다고 하신 분, 전기렌지 소스 만들때 좋아요. 제가 말씀드렸죠? 크크


조리가 끝난 상태입니다. 고기 상태가 이건 뭐 삶긴 것도 아니고 안 삶긴 것도 아녀.


진공팩을 풀고 흘러나온 육즙을 제거합니다. 수 비드로 조리하면 육즙 손실이 없다더니 아닌데요?
아마 진공포장을 해서 바로 한 게 아니라 원래 나온 육즙이 있거나 온도조절에 문제가 있거나.. 뭐 제가 좀 잘못한거겠죠. 어때요 걍 계속 갑시다.
고기 색깔은 보시다시피 핑크핑크 합니다. 처음 보는 익은 상태라 좀 징그럽네요.


시어링을 위해 팬을 최대한 바짝 달구고 얹습니다.
역시 온도탓인지 미디엄 이상으로 구워져서 고기가 좀 얇아진 탓에, 쫄아서 시어링을 길게 못하겠더군요.
잘못하면 속까지 팬으로 다 구워져서 지금까지 삽질한 게 헛짓 될까봐.. -_-;;
시어링은 수 비드 실시 전에 할 수도 후에 할 수도 있고 (물론 양쪽 다 할 수도) 구운 상태와 맛에 차이가 난다는데
저는 진공포장기가 없으니 전에 실시하는 건 어차피 못하는 거였죠.


키친 타올로 기름 빨아내고 레스팅합니다.
역시 쫄아서 시어링이 약간 약하네요.


아이고 고기 한 점 먹기 힘듭니다.
단면을 보니 미디엄 웰던 정도(우리나라의 많은 레스토랑에서 미디움을 주문하면 나오는)네요. 다만 희한한건 미디엄 웰던의 가장 가운데 부분 익은 정도로 전체가 다 익었습니다. 그라데이션이 없네요.
이 놈들이 뻥쟁이들은 아니었어...


먹어봅시다.
굉장히 부드러운 식감인데, 스테이크도 아닌 수육도 아닌 독특한, 희한한 맛입니다.
다행히 애들은 부드러워서 그런지 맛있다고 잘 먹네요.  
지방의 녹은 정도가 단백질과 멋지게 어울린다는게 제일 큰 장점같아보이고,
마이야르반응이 약해서 스테이크 특유의 풍미가 적다는게 단점이네요.
과감하게 시어링을 해서 크러스트 형성이 가능하도록, 더 두꺼운 고기를 더 낮은 온도에서 조리해보면 어떨까 싶고,
참숯같이 향을 강하게 입힐 수 있는 시어링을 하면 좋을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여건상 생략한 시즈닝도 하구요.
그리고 난 수비드 조리기와 진공포장기를 아마존에서 검색하고 있겠지.

야매 수비드 요리가 아닌 진짜를 공부해 보시려면 http://www.amazon.com/Under-Pressure-Cooking-Sous-Vide/dp/1579653510/ref=sr_1_1?ie=UTF8&qid=1393798441&sr=8-1&keywords=thomas+keller+sous+vide 이 책이 좋다 카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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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현실
14/03/03 07:25
수정 아이콘
하아...배고프다...밥먹으러가야겠네요..
삼분카레를 온수에 담그면 그게바로 수비드...
저글링아빠
14/03/03 16:59
수정 아이콘
60도에 두 시간 담그세요. 두 번 담그세요.
14/03/03 07:32
수정 아이콘
살짝 더 레어한 상태를 좋아하긴합니다만 굉장히 맛있어보이네요. 스읍-
저글링아빠
14/03/03 17:37
수정 아이콘
도전해보는 겁니다. 도전!!!!
종이사진
14/03/03 08:03
수정 아이콘
어젯밤 고기 구우러 가신다더니...바로 이것이군요..크크.

요즘은 유행에 밀려 슬슬 사라지는 추세인데 '24시간 저온조리한 삼겹살'에서 '저온조리' 부분이 수비드라더군요.
글쓴이님처럼 팬에 살짝 지지는 것이 겉과 속의 식감대비를 살리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침에 아몬드 몇개와 단호박찜으로 요기를 했는데...이렇게 역습을 당하네요...크크
저글링아빠
14/03/03 17:00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이게 유행까지나 할 방법인가 싶긴 하더라구요.
대중식당에서 시도할 방법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업장에서 섣불리 시도하기엔 시간과 자원소모가 심하고,
규모 있는 식당에서 하려면 주방에 실험실 차려야 할 듯 하더군요.
종이사진
14/03/03 19:39
수정 아이콘
실제로 '분자요리'라고, 주방에 실험실을 차린 장르의 요리가 있긴합니다.
시간과 자원소모만큼 가격은 올라가지만, 그래도 이윤은 별로라네요.
저글링아빠
14/03/04 03:51
수정 아이콘
그 업계 사람은 아닙니다만, 얼추 생각해도 그럴 것 같습니다.
王天君
14/03/03 08:20
수정 아이콘
오오 쩌는데요?
저글링아빠
14/03/03 17:35
수정 아이콘
야맵니다... 야매가 쩔긴 하죠...
레지엔
14/03/03 08:38
수정 아이콘
제길 실패하길 바랬는데...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로......ㅠㅠ 살찌면 책임지세요.
저글링아빠
14/03/03 17:35
수정 아이콘
고기는 언제나 옳습니다.
켈로그김
14/03/03 08:41
수정 아이콘
며칠 전에 자게에 마눌님이 전기렌지 사고파한다는사람입니당..;
좋은 글 감사하고요... 저희 집엔 진공포장기가 있어요..!
저글링아빠
14/03/03 17:00
수정 아이콘
이번엔 제가 여쭤야겠는데요.
진공포장기가 있으면 유용한가요? ^^;;
켈로그김
14/03/03 18:57
수정 아이콘
대부분의 경우에 무용지물이더라고요.. 흐흐;;
놀러갈 때, 음식물 포장하는 용도 외에는 거의 쓸 일이 없다시피 했어요.. ㅠㅠ
14/03/03 09:46
수정 아이콘
색이 오븐에 구운것처럼 나오네요 흐흐
저글링아빠
14/03/03 17:02
수정 아이콘
오븐구이보단 많이 촉촉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폰 카메라가 후져서.. 차이가 제가 봐도 잘 안 드러나네요.
좀 고기가 두꺼워야 차이가 눈으로도 확실하게 보일 것 같아요~
HOOK간다
14/03/03 10:23
수정 아이콘
아침부터 고기... -0-;;;

오늘은 삼겹살 사들고 가야겠습니다... 어엌..
저글링아빠
14/03/03 17:36
수정 아이콘
고기는 언제나 옳습니다.(2)
저 윗 댓글분이 삼겹살도 수비드로 먹는대요.
14/03/03 11:45
수정 아이콘
sous vide는 프렌치로 영어로 번역하자면 under vacuum입니다. 거두절미하고 해외의 많은 파인다이닝(고급레스토랑)에서 수비드는 이제 흔한 테크닉으로 많이들 사용합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레스토랑이 수비드 기계(sous-vide machine)을 사용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네요. 수비드의 장점은 음식에서 고기를 구울 때 온도를 일정시간동안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인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잠시 일했던 레스토랑에서는 소의 short rip(갈비)부분을 58'c에서 20시간동안 수비드를 했었죠. 20시간을 둔 이유는 고기의 단백질의 조직을 파괴시켜 최대한 부드럽게 하는시간을 준 것이구요. 20시간동안 조리되었지만 고기 단면을 잘랐을 땐 여전히 핑크, 즉 미디엄 레어(medium rare)를 유지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팬에 고기를 구울 때, rare-125'F(52'C), medium rare-134'F(57'C), medium-145'F(63'C) etc등등 온도계를 고기의 가장 가운데 부분에 꽂아 템퍼를 조절하는데 수비드의 최대 장점으로 short rip을 구울 때 58도 이상을 초과하지 않기 때문에 핑크, 즉 미디엄 레어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서비스 시간에 오더에 맞추어서 팬에 시어(Sear), 즉 구워서 마이야르반응(mailliard reaction)을 이끌어 냅니다. 앞뒤로 구운 후 레스팅(resting)을 5분에서 7분(고기의 크기에 따라 다름)을 거친 후 잘라서 서빙하지요. 구운 후 고기를 바로 자르면 육즙이 줄줄 흐르게 됩니다. 즉 잘 구웠더라고 맛없는 고기를 먹게된다는 말이지요. 마이야르 반응에 대한 설명은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하기에 생략할게요.
즉, 수비드로 고기를 조리하는 것은 일반적인 그릴이나 팬에 구워먹을 때와는 다른 결과(쉽게말하자면 질긴 부위의 고기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테크닉)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지요. 가정에서는 본문의 글처럼 압력밥솥이나 가정용 오븐으로 온도를 고정해서 수비드를 실현시킬 수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저글링아빠
14/03/03 17:03
수정 아이콘
헐... 진짜가 나타났네요.
제가 한 건 그냥 야맵니다. 전 어제까지 수 비드가 뭔지도 몰랐어요.
14/03/03 13:11
수정 아이콘
요리프로그램을 보면 rib eye는 버터를 사용해서 요리를 하더군요. 후라이팬에서 쌘불에 searing 하면서 굽다가 버터 왕창넣어서 계속 끼얹으면서 굽던데 그러면 고기가 매우 부드러워 지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닭가슴살 요리에도 많이 쓰이는 방법이고요.
저글링아빠
14/03/03 17:04
수정 아이콘
이게 수 비드후 시어링에선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빨리 안 끝내면 속이 과하게 익겠더라구요.
4월이야기
14/03/03 19:30
수정 아이콘
아흑 배고파라;;
뻔히 제목만 봐도 공복에는 클릭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조만간 저도 마눌님과 두 딸을 위해 꼬기.. 스테키 꼬기를 요리해야 할 날이 머지 않았기에..
저에게는 참 유익한 정보 입니다.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저글링아빠
14/03/04 03:51
수정 아이콘
애들은 고기, 특히 소고기 많이 묵어야 해서,
스테키 잘 하시면 사랑받으실 겁니다... ^^
타나토노트
14/03/04 05:13
수정 아이콘
http://youtu.be/gsaoWSXHGIk?t=7m8s
지난주 토요일에 식신로드에서 수비드 조리법으로 음식 만드는 홍대 레스토랑 나왔었는데 (제가 늦게 읽은 거지만) 이렇게 글을 보게 되네요. 크크
저글링아빠
14/03/04 05:15
수정 아이콘
흐흐 그분들은 프론데 이런 야매에서 떠올리시면 안되구요..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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