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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12/17 06:16:45
Name i_terran
Subject [일반] 마지막엔 아버지처럼 죽고 싶습니다. (수정됨)
아버지는 술꾼이었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아버지는 이미 50이 넘은 술꾼이었죠.
제가 늦둥이라서 아버진 전성기 직장생활도 지났고
2차전직에 실패하셔서 잡스런 일 전전하며 항상 취해 있었어요.
술취한 아버지를 경찰서에서 데려온게 한 30번은 된거 같네요.
형 어머니 제가 돌아가면서요.

그래도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죽기전 2달전까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하루에 만보 걸어다니면서
실컷 술마시고 살다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밥 끊고 나서 바로 죽어버렸죠.
적어도 아버지는 자신이 죽을 자리를 스스로 결정했던 거예요.

반대로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10년을 누워서 보내다 돌아가셨습니다.
삶은 고사하고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힘도 의지도 없었고
그저 요양병원에서 10년동안 주는 밥먹고 말도 잘 안통하고
그 10년의 세월동안 우리형은 빚이란 빚은 다지고
제가 해준 보증도 말아먹고 파산해버렸죠.

아버지는 집에 돈도 거의 안벌어왔지만,
오직 피는 물보다 진한 단하나 족보의 힘으로 월세방전전하던 가족을 잠시?나마
3층집의 집주인으로 만들어줬습니다.
물론 그 3층집은 사업에 실패한 형하고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가 말아먹었죠.

아버지 마지막에 체온이 식어가는 손을 제가 직접 잡았는데
정말 끔찍하고 비참한 죽음이라고 생각됐지만,
지나놓고 보니 정말 멋진 죽음이었습니다.
능동적으로 스스로 인생을 마감한 어떤 남자의 그림같은 최후였어요.

인생이 부조리한데,
이글이 쓸데없이 감동적으로 끝나봐야 저한테 코인정보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스스로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건강'이었습니다.
술을 많이 먹었지만, 항상 안주랑 드셨고
담배 안하셨고 외국식 인스턴트 안드셨고 커피 안먹고
몸을 알칼리로 만드는 음식을 많이 섭취하셨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포인트는
어머니가 잔소리를 많이해서 스트레스를 주면
참지 않고 반드시 술을 먹어서 그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여러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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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17 06:30
수정 아이콘
웰빙만큼이나 웰다잉도 중요한 시대인것 같습니다.
시뻘건거북
17/12/17 07:26
수정 아이콘
이 인생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지나가는회원1
17/12/17 09:02
수정 아이콘
멋있는 마무리네요. 가야 할 때를 아는이가 얼마나 아름다운건지 느껴집니다. 그래도, 글에서 인생의 무게가 보이는데 그 무게를 잘 감당하셨으니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벌써1년
17/12/17 09:21
수정 아이콘
건강하셨던 이유가 '반드시 술을 먹어서 그 스트레스를 풀었'기 때문이군요!
몸에 좋은 음식따위 하등 필요없다는...!
그런데 어머님은... 잔소리를 많이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진 않으셨나 봅니다.
술취한 남편을 경찰서에서 데려오는 어머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좋은 삶의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i_terran
17/12/17 10:00
수정 아이콘
어찌보면 어머니의 인생과 그마무리가 너무 안타깝고 끔찍하기 때문에 그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니처럼은 제가 죽고싶지 않은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집이 가난하거나 먹고살만하거나 상관없이 살짝 비만이있고 운동 안하셨고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 결론적으로 대사증후군이었습니다. 고혈압에 의한 중풍으로 그렇게 되셨죠.
근데 중요한게 제가 딱 엄마를 닮아서 병력도 비슷하고 건강에 신경써야 할것 같아요.
BloodDarkFire
17/12/17 09:29
수정 아이콘
군데군데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많네요.
아침부터 많이 배우고 갑니다.
꽃이나까잡숴
17/12/17 09:45
수정 아이콘
강렬하게 뭔가를 저한테 느끼게 해주는 글이네요.
새벽포도
17/12/17 10:54
수정 아이콘
스코트 니어링이 자연 속에 살다가 100세 생일에 맞춰서 곡기를 끊고 떠났죠.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미리 죽음을 알고 준비하거나 스스로 결정하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7/12/17 11:15
수정 아이콘
죽기 전 마지막 1달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저도 내 인생의 마무리는 내가 택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전 잘살아도 제환공 처럼 죽으면 성공했다고 볼 수가 없죠.
그 닉네임
17/12/17 12:14
수정 아이콘
느끼는 바가 많은 글입니다.
Normalize
17/12/17 12:44
수정 아이콘
거칠게 쓰셨지만, 그런 만큼 더 많은 생각이 들게 해주시는 군요...
Minkypapa
17/12/17 12:4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아내랑 마지막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다가 75살 넘어가서, 아프면서 사는건 사는게 아니잖지 않나에 동의했습니다.
그때 죽어도 여한없게 그때까진 열심히 살고, 그때가 넘으면 병원에서 버티는건 안하기로요.
무덤을 만들어도 일년에 한두번 가기도 힘드니, 묘지도 안하고, 납골단지에 넣어서 집안 한쪽에 놔두고, 생각나면 가끔 혼잣말 대화나 하자고 했습니다.
말년계획이 저랑 비슷한 사람들이랑 이야기해보니 대부분 타임머신타고 다시 어렸을적으로 돌아가는건 하고싶지않다고 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도 후회되는일을 많이 했고 지금도 하지만,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진 않네요. 모두들 후회없이 사시길...
진산월(陳山月)
17/12/17 13:39
수정 아이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지 몇년 되었지만 납골당에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실 당시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구요. 기일도 막내동생이 챙기고 있을 겁니다.

금전적인 문제 많았죠. 파산정도가 아니라 온갖 빚이 상속을 포기했음에도 상환독촉장이 몇년전까지도 날라왔습니다. 명절에 찾아가면 까칠한 (말을 걸면 좋은 소리 나오지 않는) 아들 보다 죽을 병을 머리 속에 담고 있는 며느리에게 온갖 엄살을 떨며 용돈을 갈취하는 짓을 자행했었죠.

그나마 별 번거러움 없이 돌아가신 것 만으로도 어머니께 큰 짐을 덜어줬다고 생각하기에 지금은 미움조차 없습니다. 부모로서의 역할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깊은 물음을 안겨준 양반. '당신도 당신 아버지 닮았어' 라는 집사람의 말에 소스라치게 끔찍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핏줄(DNA)의 무서움을 실감하며 절대로 닮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아이들에겐 무능력한 아버지이지만 죽었을 때 욕먹지 않기를 바랄뿐...
17/12/17 15:35
수정 아이콘
이 글 묘합니다.
묘하게 부조리하고 참을 수 없게 유쾌하고, 유머가 흘러넘칩니다.
괴괴한 명문입니다.
17/12/17 16:32
수정 아이콘
저도 참 글이 묘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17/12/17 16:33
수정 아이콘
저도 요즘에는 왠지 내 의지로 내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나이먹은게 새삼 느껴지는 하루하루입니다
17/12/17 17:23
수정 아이콘
제 주변에 비슷한(?) 분이 한분 계십니다.
이제 몇일 뒤면 50대가 되시는 직장 동료분인데
아직 평사원(?)이라서 월급이 200이 안됩니다.
고2 고3 두 아들이 있고, 형수님은 식당일을 하십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요양 병원에 계시기에,
요양병원비 마련을 위해 매일 밤12시부터 아침까지 투잡을 뛰고 계시죠.
제 직장이 밤 12시 퇴근과 오후 6시 퇴근이 있어서,
스케쥴이 꼬이면 36시간 이상 일을 하실때도 많습니다.
다행히도 장인장모님이 효심을 좋게 봐주셔서,
형수님에게 현상황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당부하셨다고 하더군요.
항상 보면서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라면? 전 절대 못할 것 같거든요. 이기적인 놈이라.....
멋진 형이지만 항상 안쓰러운 마음도 함께 들어서 복잡미묘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간접적으로나마 짐작이 됩니다.
17/12/17 19:20
수정 아이콘
은지원씨가 예능 나와서 자신의 장래 희망이 호상이라고 하더군요. 웃자고 한 얘기겠지만 많을 걸 느꼈습니다. 마지막도 아름다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쭌쭌아빠
17/12/18 10:49
수정 아이콘
아니, 뭐 어떤 캐릭터이시길래 글을 이렇게 쓰실 수 있으신 건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아침부터 이런 쾌문(?, 표현이 맞을 지는 모르겠슴미당)을 보고 한 주 시작 월요병 우울함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크크
더불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나고요.
더불어 한국 글은 미괄식...마지막 두 줄(거의 매일 술 먹는 저로썬) 잊지 않겠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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