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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3/06/03 10:50:12 |
Name |
공룡 |
Subject |
[연재] 최면을 걸어요 (6) |
6. 파멸의 먹구름
테란을 상대로 테란의 병력을 쓴다는 발상은 운재의 생각이었다. 그 동안 모아온 테란의 우주선과 무기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이다. 운재는 종족간 힘의 균형이 기울어진 이상 테란의 병력을 소수의 테란 병력으로 막기로 했고, 그 판단는 매우 적절했다. 침략해 오던 테란의 대부대가 순간적으로 쩔쩔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연합군의 반격 기회를 만든 것이나 같았다. 이제 포위하여 공격을 하면 승산이 생길 수도 있는 문제였다. 상황을 살펴보던 연합군측은 모두 만세를 불렀고, 뒤이어 저그와 프로토스의 전 병력도 양쪽에서 테란을 포위하듯 감싸며 공격을 시작했다.
“하하, 정민이 이 자식 겨우 이 정도였냐? 역시 실전이 중요하지. 해적 생활이 몇 년인데 감히 나한테 까불어?”
운재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고, 진광과 그 외의 부하들도 모두 춤이라도 출 분위기였다. 하지만 운재의 얼굴은 그렇게 기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이번에 패배하게 되면 혹시나 정민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선택이 운재에게 있어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대장! 아...아니 사령관님!”
부하 하나가 정신없이 운재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정면 스크린을 돌아보던 운재의 입이 벌어졌다.
“저게 뭐야?”
앞쪽 상황판이 모두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엄청난 공격이 운재가 지휘하던 전함들에 부딪혀 왔고, 그 충격으로 수많은 전함들이 파괴된 듯 했다. 온통 하얗게 변했던 빛이 사라지면서 완벽하게 포위 했다고 생각했던 테란족의 우주선들이 어느새 사방을 향해 퍼지듯 진형을 짜고 있는 모습이 보여졌다. 그리고 중앙에 있던 배틀크루저들이 거대한 포문을 열어 에너지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2차 공격이 진행됩니다. 저 에너지포를 또 맞으면 우리 부대는 전멸이에요!”
운재는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테란의 병력을 저지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방어망 체계는 어떻게 된 것일까? 체크되는 방어망은 모두 해체가 된 상태였다. 황당하게도 레이스들이 자폭공격을 했던 것이다. 옛날 2차대전 때 카미카제를 그대로 구현한 것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신의 병력을 희생하는 이 잔인한 방법으로 인해 이운재가 지휘하던 테란병력은 거의 몰살되다시피 했고, 갑자기 벌어진 일에 프로토스와 저그의 병력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 쪽이 개방되어 포위공격은 의미가 없었다. 테란의 병력은 운재가 지휘하던 병력이 있던 곳으로 유유히 빠져나가 약한 저그의 병력을 먼저 몰아쳐갔다. 빈틈이 없는 공격이었다. 그러면서도 후방 부대는 뒤를 치려는 프로토스의 병력을 효과적으로 막고 있었다. 막고만 있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저그를 모두 처리하고 나면 그때 프로토스를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운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싸우고 있는 저 전함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 지휘를 하고 싶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정민이 이 *자식! 으흐흑!”
운재는 부하들이 보건 말건 울음을 터트렸고, 그것은 프로토스와 저그를 지휘하던 이재훈과 강도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은 최후의 보루였다. 더 이상 테란의 병력을 상대할 연합군의 병력이 없었던 것이다. 연합군 수뇌부에서는 그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이대로 두면 모두 전멸할 것이다. 하지만 후퇴도 쉽지 않았다. 이미 테란의 병력들은 얼마 남지 않은 저그의 병력들과 프로토스의 병력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대로 10여 분의 시간만 흐른다면 연합군의 병력은 모두 전멸될 것이 뻔했다.
“이제 끝인가?”
동수는 눈을 감았다. 이제 베틀크루저에서 다시 한번 에너지포를 쏠 것이다. 그러면 프로토스의 주력 병력 역시 소멸되어 가겠지. 너무나 병력의 차이가 확실했고, 작전에 있어서도 뒤졌다.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테란족이 지금 지휘를 맡긴 이는 김정민이었고, 만약 테란족 지휘관이었다면 하지 못했을 유인우주선의 자폭공격조차 서슴없이 해낼 만큼 잔혹하게 변해 있었다.
“아!”
동수는 갑자기 조용해진 상황실의 분위기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눈을 떴다가 놀라서 탄성을 질렀다. 온통 하얀 빛을 뿜어내며 금방이라도 에너지포를 쏠 것 같던 베틀크루저들의 함포들이 에너지를 거둬들였던 것이다. 상황실에서도 이러한 상황에 매우 놀란 눈치였다.
“지금이 기회에요. 빨리 워프를!”
동수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아이우는 프로토스의 아비터 부대에게 명령을 하달하고 남은 병력의 워프를 시도했다. 신기하게도 워프를 시도하는 동안 테란의 병력은 전혀 공격을 하지 않았고, 결국 모두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테란족 지휘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아니면 봐주는 것인가?”
백소란의 말에 동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좀 전의 상황을 상기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자신의 부대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폭 공격에 사용했던 정민이가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렸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소란아!”
“네?...네!”
“너 저번에 테란족과 연합군측의 첫 전투 기록 있다고 했지? 도경이가 처음 지휘를 했던!”
소란은 존칭도 생략하고 급하게 질문하는 동수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남편이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을 그렇게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던 그가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일로 인해 흥분한 상태인 것이 분명했다.
“있어요. 마지막 전함이 터지기 전까지 기록된 모든 자료가 다 있어요.”
“지금 보여줄 수 있어? 이건 매우 중요한 일이야. 그리고 아이우님은 후퇴한 병력들을 정비해 주세요. 어쩌면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우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기회가 있단 말인가? 이제 테란의 병력은 곧장 지구로 달려들 것이 뻔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희망은 없어 보인다. 차라리 남은 지구인들을 우주선에 태우고 달아나자는 제안을 하려던 아이우였지만 동수의 눈빛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어차피 다시 이곳 지구인과 같은 종족을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영원히 도망만 다니다가는 다시는 테란족을 이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우는 저그족 수장 힐주스에게 동의를 구했고, 힐주스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프로토스의 전 병력이 지구를 둘러싸기 시작했고, 지구 표면에 나와 있는 저그의 크립들 곳곳에 스포어콜로니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결의가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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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은 2차전을 역전승으로 장식하고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레이스를 터렛에 대주며 상대 테란의 조이기를 뚫고 한방러시에 성공한 것이다. 최근 승리 중 가장 통쾌한 승리였다. 하지만 환호를 해줄 줄 알았던 광중들은 너무나 조용했다. 상대했던 이재훈은 쉬기 위해 뒤돌아 나갔고, 정민은 소연에게 가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얼굴에 매서운 손바닥이 날아왔고, ‘짝!’하는 소리와 함께 정민의 왼쪽 볼이 부풀어 올랐다.
“소...... 소연아!”
정민은 자신을 때린 소연을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연은 마치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여전히 정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왜 그래? 내가 게임을 이겼다구!”
“왜 엘리를 시키지 않은 거야?”
사납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다짜고짜 한 말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정민은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소연이 너무나 진지했기에 웃을 수 없었다.
“잘 들어 소연아, 이 게임은 엘리를 시키지 않아도 되. 상대가 gg를 치고 먼저 나가면 승리하는 게임이라구!”
“알아! 내게 가르치려 들지 마! 마지막 게임 때는 무조건 엘리시켜! 알았어?”
정민은 소연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지금 소연은 조금도 자신의 애인 같지가 않아 보였다. 눈은 매섭게 올라가 있었고, 당장이라도 또 때릴 기세다. 그리고 그 눈빛에 겁을 집어먹는 자신을 느끼고 또 한번 놀랐다. 정말 이 여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그 여자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되는 이상한 분위기로 인해 정민은 주춤주춤 물러서야 했다. 소연의 옆에 있는 다른 관중들 역시 성난 분위기였다. 정민은 재빨리 경기석에 앉았다. 이미 재훈은 나와 있었지만 상당히 침울한 분위기였다. 아직 한 판이 남아있고, 1대1의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경기가 다 끝나버린 듯 하다. 정민은 소연 쪽으로 눈도 돌리지 못했다. 우선 이 게임을 이기고 봐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또다시 사방이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정말 지진이라도 있는 것일까? 더 이상 앞의 게이머는 재훈으로 보이지 않았다.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것 같다. 아니, 재훈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게임에 너무 집중해서였을까? 정민은 자신의 볼을 양 손바닥으로 강하게 몇 번 쳤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였지만 별로 짜릿한 감각은 느낄 수 없었다. 대신 소연에게 맞았던 자리는 여전히 싸한 감정의 아픔으로 남아 있었다. 어쨌든 이기고 생각해 볼 일이었다. 카운트가 들어갔고, 정민은 다시 온 정신을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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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즐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06-0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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