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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2/21 11:32:21
Name Fig.1
Subject [역사] 삼성 반도체는 오락실이 있어 가능했다?! / 오락실의 역사 (수정됨)
#1. 갤러그는 메이드인 청계천?!
갤러그와 갤러가
[갤러그(왼쪽), 갤러가(오른쪽)]

1978년 ‘아타리 브레이크아웃(일명 벽돌 깨기)’이 한국에 등장해 인기를 얻었고, 1979년에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도입되며 오락실도 전국적으로 확산하였습니다. 그리고 1982년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갤럭시안의 계보를 잇는 슈팅 게임 '갤러그'의 등장으로 전자오락실이 대유행하기 시작했죠. 당시 갤러그의 등장으로 1979년 서울 시내에 900여 곳이었던 전자오락실이 1982년 3,570여 곳으로, 1983년에는 6,000여 곳으로 늘어났습니다.

‘갤러그gallag’는 일본 반다이 남코에서 제작한 게임으로 원래 ‘갤러가galaga’인데요. 하지만 청계천에서 해적판을 만들면서 남코Namco 사 타이틀이 사라지고, 제목도 ‘갤러그’로 표시된 것이었죠.



#2. 오리지널보다 좋은 청계천 해적판

갤러그의 예처럼 청계천의 제조업체들은 해적판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는데요. 1980년대 중반 전자오락 기판 누적 판매는 300만 대에 이르렀죠. 이는 해적판을 복사해 동남아 등지로 수출했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였어요.

사실 업체 입장에서는 해적판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긴 했어요. 한국에 수입된 오락기의 대부분이 일본 회사의 기판이었는데요. 일본 문화에 대한 법적 족쇄 때문에 일본 제품은 수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청계천의 업체들은 일본에서 새로운 게임기가 나오면 5일 안에 초정밀 필름을 입수하여, 칩보드를 풀고 금성반도체로 다시 구성해 해적기판을 만들었어요. 카피 되는 과정에서 보드는 커지고, 실제 자동차 중고 핸들을 개조해 레이싱 게임의 조이스틱으로 사용하는 등 그야말로 마개조였지만, 오리지널 게임기의 성능을 거의 그대로 구현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정품보다 고장이 잘 안 나는 기판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3. 게임의 역사는 곧 게임 탄압의 역사

전자오락이 인기를 끌자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재밌는 건 최초의 이의제기는 교육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2차 석유파동의 여파 속에서 전자오락실만이 절전하지 않는다고 여론의 야단을 맞은 게 먼저였죠.

또 다른 이의제기는 전자오락실에서 훼손된 동전이 유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10원짜리 한쪽을 갈아 50원으로 인식시키는 일이 잦았고, 90년까지 동전에 구멍을 뚫어 낚싯줄로 매달아 넣다가 다시 빼는 행위도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죠.

물론 교육계에도 ‘전자 독버섯’, ‘컴퓨터에 빼앗긴 영혼의 활자’ 등의 비판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이에 국무총리 산하 사회정화위원회가 거리 질서를 명목으로 전자오락실을 단속해 폐쇄했으나 줄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했죠. 이 때문에 전자오락실은 '컴퓨터 지능개발실’ 같은 이름으로 운영하기도 했어요.

70~80년대에는 게임이 정치적 논란이 되기도 했었는데요. 갤러그를 두고도 어떤 이는 공산주의적 호전성을 길러낸다고 말하는 한편, 어떤 이는 빨간 마후라가 되어 적기를 격추하는 기상을 길러볼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죠. 1976년 미국에서 개발된 두더지 게임이 1980년대의 한국에서는 ‘멸공 두더지 잡기’라든가 ‘땅굴 파는 두더지’라는 제목을 달고 나와 흥행하기도 했어요.

농민반란

그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사례는 1986년 ‘농민반란’(원작명: いっき, 썬소프트)이라는 게임이 전량 수거된 사건인데요. 이 게임은 세금공무원과 농부의 싸움을 다루는 만큼 아시아 경기를 앞두고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하지만 국내에서 게임에 관해 강력한 억압정책을 펼쳤던 정부는 모순되게 수출용 오락기의 생산은 장려했어요. 심지어 국내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이 유행하기도 전인 1970년대 중반부터 이미 콘솔 게임기를 수출하고 있었죠.



#4. 오락기 양성화 정책이 망했기 때문에 반도체가 발전했다?!

1983년 10대 소녀가 게임기 내부의 동전을 훔치려다 감전사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불법적으로 개발되던 기판에 안전장치가 제대로 있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죠.

이런 안전사고를 계기로 정부에서는 1983년 게임기 양성화 조치를 취했어요. 게임기 기준을 통일하고 손기정, 심청전, 이순신, 애국가 등을 소재로 한 국산 게임 제작계획을 세웠죠. 하지만 정부의 양성화 정책은 컴퓨터 전자제품에 대한 이해가 없어 정교한 기준을 만들지 못하고, 오락기 캐비넷에 대한 통일성만을 간신히 맞추는 정도였죠. 국산 게임 제작도 중단되어버렸어요.

실패한 정부의 게임기 양성화 정책은 의외의 곳에서 성과가 있었는데요. 형식승인 비용과 세금납부에 부담을 느낀 일부 업체들이 다른 산업으로 퍼져나간 것이었어요. 이로써 오락기 기판을 제조하던 PCB 제작기술이 산업 현장에 쓰이는 전자기기 개발 기술로 전환되었죠.

게다가 1983년 세계적으로 전자 오락기판 칩이 64K ROM으로 추세가 바뀌자 32K ROM을 개발하고 있던 한국전자기술연구소는 관련 기술을 금성, 삼성, 대우, 아남전자, 한국전자, 현대전자 등에 이양했는데요. 이처럼 전자오락 기판을 제작했던 경험이 오늘날 반도체 대량유통구조 발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죠.




#5. 철권은 무릎, 버추어파이터는 신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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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어파이터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만난 이게라우 조학동과 아키라 키즈 신의욱]

90년대 오락실의 전성기를 이끈 것은 ‘버추어파이터’, ‘킹오브파이터즈’, ‘철권’ 등의 격투 게임입니다. 특히 버추어파이터2의 경우 액션 게임 최초로 프로팀이 생겨나고 여러 대회를 진행하면서 더욱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죠. 대표적인 버추어파이터2 스타 플레이어로는 '아키라 키즈' 신의욱이 있었어요.


당시 중학생에 불과했던 신의욱은 국내 오프라인 대회는 물론 일본에서 열린 세계대회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했었죠. 이후 버추어파이터 세계대회는 열리지 않았고, 대회 영상도 일본 국내전으로 대부분 채우는 치졸함을 보여주었죠. 자세한 영상은 G식백과

90년대 초 중반은 격투 게임의 전성기였다면 90년대 중반은 리듬 게임의 시대였습니다. KONAMI에서 출시한 ‘비트매니아'와 ‘DDR(댄스댄스레볼루션)’이 게이머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지상파 방송에서도 연예인들(스티븐 유 등등)이 나와 DDR 대회를 방영하기도 했어요. 리듬게임의 대중적인 인기를 계기로 오락실은 기존의 퇴폐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소라는 긍정적 인식을 얻게 되었죠.



#6. 바다이야기로 오락실 초토화
바다이야기


하지만 리듬 게임의 인기도 2002년부터 하락하게 되는데요. 수록곡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지고 난해해져 결국 특정 매니아만의 리그가 되었죠. 게다가 2000년대는 PC방의 선풍적인 인기로 오락실은 2000년 2만5341개 지점에서 2002년에는 7,404개로 1/4로 줄어들게 되었죠.

수입원이 줄어들던 오락실들은 불법 사행성 게임에 발을 들이게 되는 데 바로 '바다이야기'였죠. 높은 중독성과 현금 환전이 가능한 바다이야기는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하며 경찰의 단속을 받게 되었죠.

게다가 여권 유력 인사 중 한 명이 바다이야기 게임기 제조 회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요. 이로 인해 바다이야기는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전담팀까지 꾸려 수사를 진행하게 되었죠. 조사 결과 정치권 유력인사의 개입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게임 허가과정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도박 기능의 탑재 사실을 경찰에게 은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결국 영등위의 게임 심의 자격이 완전히 박탈되었고,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출범하게 되었죠.

바다이야기 사건의 여파로 아케이드 게임 시장 역시 쑥대밭이 되었는데요. 아케이드 관련 게임에 대한 법률이 대대적으로 제정되어 오락실의 발전이 어렵게 되었죠.



#7. 게임을 부추기는 데에는 경쟁 심리만 한 게 없다
kkLebMV.jpg
[이 카드를 게임기에 넣으면 자신의 플레이 기록이 저장되었다.]

2000년대 초 중반, 바다이야기 사건과 정부의 규제로 오락실 시장이 무너지자 오히려 게이머의 수요보다 오락실이 적어졌는데요. 그러자 시장의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시 문을 여는 오락실도 생겨났죠.

2008년 발매된 리듬 게임인 ‘디제이맥스 테크니카’와 ‘유비트’ 등이 인기를 얻고, ‘MBC GAME’을 통해 철권도 인기를 얻게 되었죠. 특히 이때부터는 오락실 게임들도 카드를 넣고 플레이하면 자신의 플레이가 기록되었는데요. 이는 한국인 특유의 경쟁 심리를 건드려 호황을 가져왔다고도 하죠.



#8. 네임드 오락실의 폐업
하지만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며 운영해왔던 오락실들의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로 집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갔기 때문이었죠. 특히 철권이 온라인 게임 플랫폼인 스팀에서 판매를 시작하면서 격투 게임이 주류였던 오프라인 오락실의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는데요.

이로 인해 수많은 프로게이머가 탄생하고 해외 유저들도 방문하는 곳이었던 철권의 성지, 대림 그린오락실 마저 2018년 10월 폐업하게 됩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발생하면서 결국 많은 오락실이 폐업하게 되었는데요. 스트리트 파이터의 성지였던 노량진의 정인 오락실도 2020년 6월 결국 문을 닫게 되었죠.



<참고문헌>
이상우. (2012). 게임, 게이머, 플레이. 자음과모음
임태훈 외 4명. (2017).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 배반당한 과학기술 입국의 해부도. 알마
Tong. (2016). 오락실 게임의 ‘뿌리’를 보여주마. (검색일:2021.12.15) URL: https://www.joongang.co.kr/article/19801540#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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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1 11:39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21/12/21 11:4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쵸코커피
21/12/21 11:56
수정 아이콘
90년대 오락실 문화를 이끈건 파이널 화이터와 스트리트 파이터 아니었나요?
오히려, 버츄어 파이터, 킹오파, 철권으로 가면서 그냥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되었죠.
리듬 게임 시절 이전 유일하게 대중적인 유행을 이끈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 농민반란 참 좋아했었는데, 언젠부턴가 안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이런 뒷 이야기가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저 게임이 2인용이 가능해서 형이랑 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저거랑 또 손오공이랑 저팔개랑 나와서 따발총 쏘는 서유기랑.
스토리북
21/12/21 12:05
수정 아이콘
철권 TT는 그냥 전국 오락실 평정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쵸코커피
21/12/21 12:34
수정 아이콘
철권 TT이전에 철권3로 이미 오락실 격겜의 왕자리를 잡긴 했지만, 그래봤자 그건 오락실을 가는 친구들만의 이야기였고요.
스트리트 파이터2 시절엔 정말 저희 반 전체가 오락실로 향했었죠.
스트리트 파이터2 이후로는 격겜이 가볍게 즐기기엔 너무 난이도가 높아졌다는 문제가 있었죠.
잉차잉차
21/12/21 13:20
수정 아이콘
이게 맞죠. 스트리트 파이터2는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점유율이었습니다.
철권TT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좋은 게임인건 맞지만, 버추어파이터, 킹오파 등이 지분 나눠먹었죠.
라방백
21/12/21 12:47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게임들은 초기 오락실이 생겨날때의 게임들이고 오락실 문화를 이끈건 본문에 나온대로 대전격투게임들이 맞습니다. 그 이후로 오락실들이 크게 성장하고 늘어났는데 게임의 회전율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죠. 같은 종류의 게임을 한두개만 놓다가 대전게임이 나오면서 여러개를 깔수 있게되었거든요. 대전격투게임외에 꽃놀이같은 게임들도 해당되기는 하는데 일단 본문에는 없는 내용이니...
쵸코커피
21/12/21 15:21
수정 아이콘
80년대 중반부터 오락실 다녔습니다만, 파이널 파이터와 스파2는 초기오락실과는 별로 상관없어요.
오락실의 역사는 그보다 깁니다. 오히려 오락실의 전성기였죠.
숨고르기
21/12/21 12:26
수정 아이콘
어렸을적 그 많던 오락실의 해적판 기기는 대체 누가 어떻게 공급한 것일까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잘 봤습니다.
암드맨
21/12/21 13:18
수정 아이콘
90년대는 한국이 지금의 중국 역할 하던 시기였죠. 세계 분업 시장에서의 지위도 비슷하고
아무 양심의 가책없이 모든 장르의 짭퉁을 양산하면서 세계 창작자들의 고혈 빨아 먹던것도..

당시에 한국발 짭퉁 기판, 청계천발 플스1 각종 개조가 전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걸 찬양하는 듯한 뉘앙스의 청계천 천재 몇인방
이런 기사도 기억나고, 개오동 등지에서도 나쁜거란걸 알지만 다들 하니깐 우린 죄의식 없다 는게 그 시절의 의식이었죠.
물론 글쓰고 있는 90년대 게이머인 저도 전혀 자유롭지 못하구요.
21/12/21 14:56
수정 아이콘
오 이런이야기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오락실의 열풍을 이끈 것은 스파2가 비교불가1위가 맞습니다. Pc방이랑 비교한다면 스파2가 스타크래프트고 킹오파 버파 철권은 카트라이더 포트리스죠. 스파2가 유행하던 때 우리 동네오락실은 기기가 30대라고 치면 20대가 스파2였습니다. 그마저도 기기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죠. 주인아저씨 마감때 마대자루들고 동전수거 하던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건물올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적부터 오락실 죽돌이로 지냈었는데 그시절 오락실은 정말로 다이나믹했죠. 삥뜯기, 뒷통수 갈기기, 전원끄기, 심하면 체어샷. 담배연기 자욱한 곳에서 하루종일 간접흡연해가며 여기저기 다녀서 얻은 노하우로 동네를 주름잡았지만 후에 배틀팀에도 들어가보고 대회도 다녀보고 하면서 결국 우물안 개구리란걸 깨닫고 스타크래프트로 넘어갔죠.
40넘어서 추억으로 파케랑 철권에 잠시 손대봤는데 역시 안따라주네요. 스틱 샀다가 바로 팔아부렀습니다.
쵸코커피
21/12/21 15:17
수정 아이콘
정말로 당시엔 오락실은 근처도 안갈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까지 전부 스파2 하러 오락실로 향했었죠.
동네 오락실엔 전체 기기중 절반이 스파2였고요.
그리고 오락실에 사람이 가득차 만원 지하철 같은 시절 또한 그때가 처음이지 마지막이었고요.
스파2 이후엔 글쎄요.
물론, 반에 킹오파나 철권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저 몇명에 불과했죠.
한때 동네에서 스파2는 자신있었던 저 또한 스파2 이후 게임들은 콤보 배우는 것부터 귀찮고 어려워서 그냥 안했죠.
구라리오
21/12/21 15:40
수정 아이콘
다들 스파2 개조 기판 한번씩 해보지 않으셨나요?
류가 승룡권 쓰면 장풍 여러개가 앞으로 날아가고
소닉붐이 엄청 느리게 날아가서 여러개가 중복으로 날아가고
점프-스킬-점프-스킬 이런식으로 화면위로 올라가기도 하던 마개조 버전....크크크크
전 사실 보글보글하러 다녔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보글보글 끝까지 깨본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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