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2/02/19 12:43:25
Name 雲庭 꿈꾸는구보
File #1 x9788967350543.jpg (189.5 KB), Download : 128
Subject 도서리뷰 -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의 책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를 읽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동양과 서양간에 왜 이렇게 발전의 차이가 났는가 라는 의문은 비교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대중들에게도 끊이지 않는 관심의 소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서 2010년에 나온 이 책은 이 테마에 관한 이전까지의 논의들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완벽하진 않지만 명쾌한 답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2022년 현재까지도 아직까지 더 나은 담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뛰어난 명저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앞쪽 추천사에서 언급된 ‘역사의 통일장 이론이다’라는 표현에 공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패러다임은 깨지지 않은 것으로 보여요.

[1. 장기고착 VS 단기우연]

모리스는 이전까지의 논의들을 크게 장기고착과 단기우연으로 나누어서 정리합니다.  장기고착이론은 쉽게말해 태초부터 어떤 결정적 요인이 서양의 지배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단기우연이론은 아예 관점을 바꿔서 ‘진짜 서양이 계속 지배하기는 해?’ 라고 장기고착이론의 전제 자체를 무의미하게 보는 관점입니다.

물론 이 이론들 각각의 내부에서도 또다른 이론들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예를들어 단기우연론의 발생지인 캘리포니아 학파에서는 지난 서양의 지배를 동양의 일시적 쇠퇴로 보는 관점(프랑크)과 운빨(골드스톤)로 보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또한 장기고착이론의 간극은 훨씬 심해서 그냥 인종차별적인 인종론부터 고대 그리스인의 찬란한 문화가 지금의 서양을 만들었다는 문화결정론, 정치체제가 문제라는 관점(마르크스), 지리결정론(제레드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그 간극이 매우 넓죠. 그리고 모리스는 장기고착이론과 단기우연론 둘다 역사의 모습을 잘못 이해했으며, 따라서 항상 부분적이고 모순적인 결론에만 도달했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사회발전지수]라는 기준을 제시하지요.

[2. 모리스의 사회발전지수]

모리스는 이 논의에 명쾌한 답을 위해서는 인류의 역사 전체의 사회발전 수준을 측정해서 그래프로 그려내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장기론자와 단기론자들은 모두 상대방의 논증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대신 서로 다른 부분, 서로 다른 증거, 서로 다른 용어정의 등을 통해 서로를 비판한다고 봤기 때문이죠. 즉, 서로가 아예 다른 기반과 디딤대 위에서 싸운다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방대한 역사의 사실들을 사회발전지수라는 단순한 점수로 환원하는 것은 단점이 있지만, 모두가 동일한 증거를 직시하게 만드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또한 환원주의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전기톱 예술’이라는 비유를 통해 변호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거대한 역사를 모두 조망하는 사회발전지수를 만드는 것은 벌목용 전기톱으로 나무둥치에서 덩치 큰 회색곰을 깎아내는 예술이라는 말이지요. 이말인즉슨, 포괄적 비교역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생기다만 곰을 그래도 곰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보편적인 역사의 패턴이나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곰을 곰이라고 만드는 요소들을 어떻게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겠지요. 호랑이를 그려놓고 곰이라고 우기면 안되니까요.

결국 이 책은 모리스가 곰을 정의하는 사회발전지수라는 기준의 적합성을 독자들에게 논증하는 과정인 3장까지의 내용(생물학, 사회학, 지리학이라는 세가지 판단의 도구와 에너지 획득, 도시성, 정보처리기능, 전쟁수행능력이라는 4가지 사회발전지수의 지표들을 왜 선택했고 어떠한 방식으로 측정했는지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비판들을 반론하는)과 그 후 사회발전지수와 그래프를 사용해서 인류의 발전과정의 전 역사를 설명하는 뒷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대한 참고문헌을 인용하면서 역사와 고고학, 사회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리스의 깊은 사유, 그리고 그걸 통해 이끌어내는 명쾌한 결론은 정말이지 감탄이 나오더군요

자세한 논증의 내용들은 책을 읽으실 분들의 즐거움을 위해 생략하고 결론만 말씀드리면 결국 모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발전은 모든 곳에서 전 지구적 유사성을 띄고 같은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즉, 생물학과 사회학 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인류의 사회발전 수준은 일반적으로 상승하고, 어떤 시기에는 더 빠르게 상승하며 어떤 시기에는 느려지거나 감소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칙들은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불변의 상수이지요. 대신 지리가 인류의 발전의 차이를 결정합니다. 다만 기존의 지리결정론과 다른것은 지리는 어느 지역이 가장 빠르게 사회발전을 할 지를 결정하지만 상승하는 사회발전의 수준이 또한 지리의 의미를 바꾼다는 것입니다. 즉, 사회발전지수를 1000점만점이라고 한다면 10점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지역과 100점, 500점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지역은 전혀 다르다는 얘기이지요. 일종의 변형된 지리결정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리스 본인은 이걸 [장기 가능성론]이라고 말합니다. 즉, 모리스에게 ‘시간을 다시 되돌려도 서기 2000년에 또다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서기 2000년에 서양이 세계를 지배할 가능성은 지리의 이점으로 매우 높지만 어디까지나 높은 가능성의 문제이지 고착이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라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소결]

이 책을 읽고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많이 떠올랐습니다(모리스도 본문에서 언급을 많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리 결정론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총균쇠에서 주장한 지리결정론은 몇가지 모순이나 애매한 지점, 논리적인 약점들이 분명히 있었고 비판의 요소들이 확실히 있습니다. 반면 모리스의 장기 가능성론은 그러한 비판들을 보완한 업그레이드된 지리결정론이자 끝판왕의 느낌이랄까요?  쉽게 까기 어려운 단단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또한 이 책이 나온지도 벌써 12년이 지났지만 생각보다 포괄적 비교역사학에서의 한국 인터넷 대중들의 담론이 매우 느리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은 2010년에 나왔고 총균쇠는 97년도에 나왔으며 단기우연이론을 주장한 캘리포니아 학파는 90년대에 나왔는데 아직도 한국 인터넷에는 인종론 어그로를 제외하더라도 그리스/로마 얘기를 꺼내거나 마르크스 역사발전 이론을 꺼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20대 30대도 그런데 아마 고령층에는 더 많겠죠. 이미 철지난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재야사학 같은것도 못놓는 국회의원들도 아직까지 몇몇 있는걸 보면요. 사실 식민사학이던 그것에 대한 반박으로써의 내재적발전론이던 이제는 이미 다 의미없어보이는데 말이죠.

그리고 책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였던 건 모리스가 SF소설 ‘파운데이션’을 언급하는 부분이였어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는 셀던이라는 수학자가 나오고 이 셀던은 수학자 총회에서 심리역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이론적 태도를 설명하는 학술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 심리역사학이라는 학문은 역사와 대중 심리학, 고급 통계학을 결합해서 인류를 추진하는 힘을 파악할 수 있고, 이걸 적용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문이죠. 그리고 모리스는 이 역사심리학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아시모프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우스갯소리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과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웬지 폴 크루그먼도 생각이 났습니다. 크루그먼이 파운데이션을 읽고 역사심리학자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현실에서는 경제학이 역사심리학과 가장 비슷한 것 같아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일화가 생각이 나서요.

모리스는 책에서 선언합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커다란 시간의 덩어리로부터 보편적인 커다란 패턴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요. 그리고 역사학을 통해 그 패턴을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요. 이 부분이 자기 자신의 이론에 대한 모리스의 대가로서의 자부심과 확신이 느껴지는 멋진 대목인 것 같습니다. 모리스의 또 다른 책 ‘가치관의 탄생’에서의 모리스의 말로 이 리뷰를 마무리 해볼까합니다.

[“나의 견해는 언제나 옳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11-14 00:0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 게시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02/19 13:02
수정 아이콘
소개된 책을 이토록 직접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리뷰는 오래간만이네요!
글 감사합니다!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2:20
수정 아이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긴 하루의 끝에서
22/02/19 13:23
수정 아이콘
이 책 너무 두꺼워요. 사 놓은 지는 한참 됐는데 아직도 다 못 읽고 있습니다.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2:22
수정 아이콘
1000P가 넘으니 확실히 너무 두껍긴 합니다..
22/02/19 13:25
수정 아이콘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팬으로서,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론이나 그리스 로마 기원을 얘기하는 인문주의가 심리역사학(의 가능한 현실적 형태)보다 훨씬 설명력이나 생명력이 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파운데이션 시리즈부터가 통속적으로 각색한 로마제국 쇠망사의 유물론 버전 트리뷰트잖아요? 그게 매력인 건데..
ioi(아이오아이)
22/02/19 13:38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서양과 동양의 범위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는 점에서 비교 자체가 서양에 유리한 게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서양의 범위는 미국+유럽일텐데 이건 아무리 봐도 너무나도 좁아요.
일반적인 동양의 범위가 아시아 전체라는 걸 감안하면 말이죠.
22/02/19 13:47
수정 아이콘
이런 류의 수량적 비교는 아날 학파부터 성립된 전통인데 보통 유럽과 중국을 비교합니다. 좀 범위 확장해서 선사시대 근처까지 가면 중동+유럽 대 초원+중국 정도.. 저는 오히려 유럽과 중국이 인류사의 다른 영역과 비교할 때 아웃라이어까진 아니더라도 공통점이 훨씬 많은 특이한 두 문명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점을 더 지적하고 싶어요.
ioi(아이오아이)
22/02/19 13:51
수정 아이콘
미국을 뺀 유럽과 중국의 비교라면 ‘진짜 서양이 계속 지배하기는 해?’라는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22/02/19 14:08
수정 아이콘
미국을 빼는 게 아니라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에 올라서는 건 서양의 승리가 이미 확고해진 이후죠. 미국은 당연히 서양(유럽문명)의 일부고요.
숨고르기
22/02/19 14:19
수정 아이콘
애초에 지중해권역이라는 사기적 여건을 갖춘 인류문명의 요람이 있었고 유럽문명은 그 다양성의 보고에서 진화를 거쳐 최종 승리한 적자인데 고립되어 있던 중국등 극동지역 몇나라를 일대일로 놓고 비비는것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전국체전 우승자를 비비는 격이 아닌가 합니다.
22/02/19 14:55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제가 볼때는 중국도 유럽 바로 다음 수준으로 만만치 않게 수십, 마이너한 것까치 치면 적어도 수백종의 문명 또는 종족의 수천년간 경쟁, 멸살, 융합을 거쳐 태어난 승자고, 세계적으로 볼 때는 유럽과 함께 가장 극심한 인구성장, 경쟁, 자연변형을 통해 나타난 두 문명이라는 점에서 인류문명사 전체를 논할 때는 두개의 대표적 표본이 아니라 한 극단에 치우쳐 있는 두 개의 표본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거든요. 이 두 문명을 수량적으로 비교하여 인류문명 흥망이나 사회발전의 어떤 객관화된 보편적 법칙을 도출한다는 게 방법론적으로 말이 되는가 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물론 중국 대 유럽 이라는 케이스 비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건 당연하지만요.
어둠의그림자
22/02/19 15:58
수정 아이콘
철기나 농경에 쓰이던 종자, 가축품종들의 확산만 봐도 알수 있듯 중국은 전혀 고립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고립되어 있었죠.
22/02/19 13:48
수정 아이콘
그것도 그렇네요.
태생부터 다른, 그래서 고대로부터 이어진 역사적 맥락과는 유리된 미국을 제외하고 나면, 서양과 동양의 비교는 결국 도시국가 하나와 도농이 복합된 거대한 나라의 평균적인 발전상을 비교하는 것과 같을테니.
계층방정
23/07/14 20:10
수정 아이콘
좀 많이 늦은 댓글이긴 한데 이 글에서 서양 = 미국 + 유럽 + 북아프리카 + 서아시아이고, 동양은 중국 + 한국 + 일본 정도입니다. 세계의 구분을 독자적인 농경문화 발상 기준으로 해서, 서양은 비옥한 초승달 일대의 농경문화에서 농경을 도입한 지역, 동양은 황하의 농경문화에서 농경을 도입한 지역으로 정의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8세기 무렵은 서양의 핵심은 이슬람 칼리프 제국이었다고까지 말합니다.
22/02/19 14:58
수정 아이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리뷰를 보고나니 꼭 읽어보고 싶네요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2:38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22/02/19 15:16
수정 아이콘
"생물학, 사회학, 지리학이라는 세가지 판단의 도구와 에너지 획득, 도시성, 정보처리기능, 전쟁수행능력이라는 4가지 사회발전지수의 지표"
라고 해서는 종잡기 힘들고,

서양이 동양을 근본적으로 압도하게 된 계기가 1637년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 및 부록인 "기하학" 출판이라고 봅니다.
22/02/19 15:55
수정 아이콘
저도 데카르트 혁명이 한국에서 평가가 너무 박하거나 무시되는 편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 요즘 한국에서 철학자는 수학 못해서 인류에 도움 안되는 문돌이 대표라 그런가 - 데카르트냐 신대륙 발견(약탈)이냐 고르자면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까요.
22/02/20 09:06
수정 아이콘
데카르트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의 기하학은 좌표계를 도입함으로써 기하학의 계량화/수식화의 발전을 이끌기는 했지만, 뉴튼이 발전시킨 미적분과 물리학이 근대 과학과 근대 서구 문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뉴튼이 데카르트의 기하학에 많이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수천년 전의 유클리드 기하학과 공리체계에도 엄청난 빚을 지고 있잖아요. [서양이 동양을 근본적으로 압도하게 된 계기]는 많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학자를 꼽으라면 저는 뉴튼을 꼽겠습니다.
22/02/20 11:5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데카르트 기하학은 그의 철학적 혁명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한 파트이고 정신사적으로 말하면 이원론으로 정신과 물질의 분리를 확립한 것이 모더니티를 가장 근본적으로 규정한다고 볼 수 있겠죠. 좀 비약하면 인류 정신사는 물활론과 기계론 관점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할 정도로요. 뉴튼 역학 같은 것이 대표적으로 그런 기계론적 세계 이해에서 꽃피게 되는데 그 이전에는 물리적 운동이나 화학적 변성을 그 물체에 깃든 어떤 인과성이나 선호성의 결과 또는 신에 의한 잠재적 포텐셜의 실현으로 탐구하는 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이해 방식이었습니다. (좀 보충설명하자면 이런 세계관에서 물질과 정신의 작동원리는 다르지 않고 그 진리성은 '신'에 의해 보증되는데, 데카르트는 그러한 진리의 계시성을 철폐하고 정신의 주관성이 이해하는 바로서의 진리라는 엄청나게 혁명적인 인식론적 차원을 도입합니다. 만유인력이나 지동설로 얘기하자면 신의 의도를 정확히 해석하는 게 진리가 아니고 인간의 계측으로 이해되는 것이 과학의 대상이 되는 거죠) 애니미즘으로 퉁치기도 하는데 훨씬 철학적으로 발전되고 경험적으로 합리적 설명을 추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이나 동양의 이기론 등도 물질에 대한 관점이 모더니티와 다른 세계에 있습니다. 양자역학적 패러다임으로 보면 어떻고 하는 건 건너뛰고 우리는 아직 데카르트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거죠. 너무 익숙해져서 그 의미를 잘 이해 못할 뿐.

물론 이렇게 말한다면 데카르트가 그러한 정신사적 혁명을 일으킨 게 아니라 일어나고 있던 변화를 이론화하고 정식화하여 앞당긴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는데 해석의 문제죠. 사실 데카르트가 없다 해서 모더니티가 사라지진 않았을 테니.. 근데 그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얘기될 수 있는 거라. 어떻게 보면 철학은 고전물리학처럼 답이 정해진 길이 있는 게 아니라서 데카르트 개인의 개성이 향후 철학사에 끼친 영향은 단순히 몇십년 앞당겼다든가 하는 걸로 정리할 수 없는 부분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죠.

대피님의 의도는 이런 제 해석과는 다를 수도 있고요.
아빠는외계인
22/02/19 15:49
수정 아이콘
이 글 보고 e북 구입하러 갑니다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2:40
수정 아이콘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banelingMD
22/02/19 15:53
수정 아이콘
분명 클릭하기 전에는 도시어부 였는데…
22/02/19 16:23
수정 아이콘
제목 번역이 너무 아쉽습니다.
"Why the West Rules - For Now"
에서 'for now'는 부제가 아니라 제목의 일부일 뿐 아니라 책의 핵심 주제에 가까운 부분인데
그냥 무시해버렸네요.
깔끔한 번역이 딱히 떠오르지는 않긴 하지만...
AaronJudge99
22/02/19 17:16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는…? 이려나요
왜 서양은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해왔나?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2:50
수정 아이콘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모리스의 예측이라는게 앞으로 서양이 지배할지 동양이 지배할지 따지자는게 아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거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요ㅠ. 사실 저도 생략해버려서 할 말은 없습니다 ㅠㅠ. 다만 말미의 모리스의 경고는 좀 진부한 느낌이 있는 탓도 해요.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나 그 외 비슷한 주제들의 책들이랑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지금까지의 역사를 설명하는 앞부분이 좀 너무 탁월해서 거기에 더 자연스럽게 포커싱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AaronJudge99
22/02/19 17:20
수정 아이콘
역사애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글 읽다가 생긴 의문인데, 제가 고등학교때 세계사에서 배운건 ‘그리스/로마 문명이 서양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였는데… 이건 문화결정론에 해당될까요? 뭔가 골똘히 생각해봐도 딱히 틀린 말이 아닌것 같아서….
기반이 되었다 와 다른거 다 아니고 문화로 이러한 성장이 가능했다!는 좀 다른 말인가 싶기도 하네요 흐흐
22/02/19 17:25
수정 아이콘
'무엇무엇이 서양문화의 토대가 되었다'와 '무엇무엇으로 인해 서양이 동양보다 앞서게 되었다'의 차이 아닐까요?
전자는 주지의 사실이고, 본서는 후자의 견해가 과연 맞는 것인가 (다른 이론들과 비교해가며) 고찰하는 내용일테구요.
antidote
22/02/19 17:48
수정 아이콘
저는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현대적 삶의 양태의 기원 중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이 몇개 있는데 대표적인게 민법입니다.
역사에서 배우셨다시피 고대에 여러 나라 여러 지역에 다들 지역의 법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법들은 무슨 죄를 지으면 벌을 주고 남의 물건을 훔치면 눈을 멀게하거나 손을 자르고 노예로 살게하거나 뭐 이런 류의 형법적 개념이나 남의 물건을 마음대로 쓰면 뭐로 갚아야 한다. 같은 원시적 물권의 개념이 다소 들어가 있었을 겁니다만. 이런건 거의 세계에 어느나라를 가도 인민을 규율하기 위해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법에서는 체계적으로 사인간의 법률적인 채권, 채무를 규율하고 있었는데 이건 잔혹하고 억압적이었던 고대의 형법들에 비해 한차원 더 나아간 것이고 이것이 로마 멸망 이후에도 게르만 사회에서 어느정도 준용이 되었습니다. 물론 유럽 중세의 암흑기가 그렇듯이 좀 많이 소실되었다가 르네상스-근대를 거치면서 어떤개념들은 재발굴되어 다시 복원되었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소위 현대적인 민법의 뿌리는 로마법을 그 기원으로 합니다. 로마시대에 로마와 멀면서 잘나간 문명들(로마가 정복하지 못한 오리엔트 끝자락, 인도, 중국 등)이야 있었지만 채권으로 대표되는 민법적 개념을 세워놓은게 로마사람들이고 이것은 로마문명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갖지 못했던 유산이라고 봐야죠.
임전즉퇴
22/02/19 19:41
수정 아이콘
근본 원인이랄 것은 없지만 쪼끄만 국가들 사이를 쉽게 옮겨다니는 사람이 많았던 느낌이 있어요. 공통적인 농업문명인데도 성공하는 이민들이 있다면 가치있는 동산들이 있고 무형의 자산도 인정되는 풍토의 방증일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데 바다가 도움이 됐지만 땅이라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어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도 비슷한 느낌인데.. 그러나 춘추전국은 '난세'의 이미지가 됐죠. 서양은 평화롭게 교류만 잘했나 하면 그런 것도 아닌데.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3:02
수정 아이콘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하신건 위의 BTS님 댓글이랑 같은 생각입니다. 문화결정론자는 다른 그 어떤것보다도 사회발전에 있어서 문화가 중요하고 패권에 있어서도 그것이 결정적인 요소라고 보는 사람이니까 단순히 어떤 나라의 토대가 무엇이다 라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이죠.
번개맞은씨앗
22/02/19 23:11
수정 아이콘
짧게 답하자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스(철학, 종교)
연결성(물길, 상인)

이 두 가지가 주요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근대 이후에는 농민의 나라보다 상인의 나라가 우월하다 생각하고요. 농민의 나라에서는 집단주의가 강하고, 창조적인 생각이 잘 안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쌀먹고 인구가 많아지더라도 혁신이 없는 거죠. 권위주의 ・ 전제정치에 머물러 있기 쉽고요. 상인의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개인주의가 강하고, 창조적인 생각도 잘 만들어지고, '계약'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성주의가 발달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철학이 어디서 발달했는지 생각해보면, 시장 옆에서죠. 아테네는 상업도시였고요. 농민의 나라에서는 권위로 찍어누르기 때문에 '어디서 말대꾸야!'가 되지만, 상인의 나라에서는 논박이 이뤄지면서 언어와 문화와 사상이 객관성을 향해 가기 쉬운 거라 생각합니다. 논리학이 발달한 이유도 이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게다가 특이한 점은 피타고라스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기하학 같은 수학에 '신'을 느낀 사람 말이죠. 보통 신이라 하면, 불확실성에 신성을 느끼곤 합니다. 잘 모르겠으니 무서워서 신이라 생각하는 식인 거죠. 그리고 그 신을 인격화해서 보게 되고요. 왜냐하면 자기들 경험이 인간에 대한 경험이니 그걸 잘라다가 신에 붙여 상상하는 거죠.

그런데 수학에 신을 느낀 것은 '확실성', '완벽성' 이런 것이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그 점이 정말 결정적이라 생각합니다. 플라톤과 유클리드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겠고요. 기하학을 생각해보면, 그거 과학입니다. 단지 수학이라 보기 곤란하고, 작도가 있고 관찰이 있고 측정이 있는 과학이죠.

근대의 시작을 대표하는 인물로 데카르트가 있습니다만, 데카르트가 그동안 배운 거 다 의심하고 믿을 게 못된다고 해서, 남긴게 딱 세 가지가 있었죠. 논리학, 기하학, 대수학이었습니다. 동양에서도 대수학은 어느 정도 발달했다고 볼 때, 결국 차이는 논리학과 기하학에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논리학과 기하학을 그만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밥이 나오지도 않고 떡도 나오지도 않는데', 그런거 신성하다면서 엄청 똑똑한 사람들이 일생을 걸고 헌신해서 해낸 거라 생각합니다.

당장 쓸모도 없는 것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놀이이고, 다른 하나가 신이죠. 여기에 차이가 있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동양은 불확실한 것에 신성을 느꼈고,
서양은 확실한 것에도 신성을 느꼈다는 것 말이죠. 그래서 논리학과 기하학이 발달하고, 언어가 정확해지고, 그것이 근대 과학기술과 근대 법질서로 이어졌다는 것 말이죠.
12년째도피중
22/02/19 23:13
수정 아이콘
인터넷의 담론이 느리다는데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사형제 폐지가 한국인들만의 의사대로 되는 것인가. 탄소배출정책이 한국만의 의사로 될 수 있는가. 그리고 PC... 이런 부분들에서 서구의 의도대로 돌아가는 구조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봤으면 좋겠네요. 덕택에 저도 부족한 공부로도 밥벌어먹고 사는 거긴 하지만 가끔은 이래도 되나? 싶거든요.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3:07
수정 아이콘
맞는 말씀이신것 같애요. 좀 너무 심하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쥬라기재림교
22/02/20 01:54
수정 아이콘
안녕하세요. 서평을 제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출처를 서두와 말미에 밝히고 퍼가도 될 지 여쭙니다.

저도 피쟐 자게에 옛날에 썼던 글 좀 올리고 싶은데 이미지 첨부가 안돼서 매번 미루고 있네요....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3:03
수정 아이콘
네 괜찮습니다 ^^.
20060828
22/02/20 01:55
수정 아이콘
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3:04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22/02/20 02:05
수정 아이콘
좋은 리뷰글 감사합니다!
雲庭 꿈꾸는구보
22/02/20 03:0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2/02/20 13:04
수정 아이콘
예전에 한창 역사 관련 책들 찾아볼 때 재미있게 봤던 책이네요. 오래된 역사적 사실은 계량화 하기 어려운데 나름 수치화해서 비교하는 시도가 신선했던 것 같습니다. 책장에 묵혀놓은 지 몇 년 되었는데 시간되면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22/02/20 13:06
수정 아이콘
책 초반에 사회발전지수를 설명하고 인류의 문명화과정을 설명하고 비옥한 초승달지대 어쩌구 할때가 더럽게 재미없어요. 로마시대 한나라시대부턴 재밌습니다. 초반부 재미없으면 스킵하시고 아는 역사이야기부분부터 읽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빠는외계인
22/03/07 19:50
수정 아이콘
이제 다읽고 부록부분만 남겨두고있는데 근래 읽은 책중 제일 만족스러웠네요 글올라온지 거의 한달이 지났지만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댓글한번 더남깁니다
雲庭 꿈꾸는구보
22/03/07 21:15
수정 아이콘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계층방정
23/07/14 20:1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책 리뷰 찾아보고 있는데 두 번째로 보이는 게 바로 피지알 글이라니 반갑네요. 그래서 1년 전 글이지만 댓글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회발전이 바로 곧 사회위기를 야기하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수천년간의 발전이 모두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리적 이점 때문에 서양이 몇천 년간 동양보다 앞섰지만, 사회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동양이 서양을 역전하는 천년간의 세월이 찾아오더군요. 그래서 이 책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설명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급격하게 사회가 발전하는 현대가 바로 곧 위기의 순간이라고 경고하는 것 같습니다.
雲庭 꿈꾸는구보
23/07/16 16:11
수정 아이콘
달아주신 댓글에 저도 동의해요. 또한 요즘같이 세계화된 세상에서 사회위기란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류 전체의 위기겠죠. 제 생각으론 기후위기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 위기는 온 것 같은데 인류가 대비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여튼 오래된 글 읽어주시고 좋은 댓글까지!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489 믿을 수 없는 이야기 [7] 초모완3623 22/04/24 3623
3488 어느 육군 상사의 귀환 [54] 일신4419 22/04/22 4419
3487 (스크롤 압박 주의) 이효리 헌정사 (부제 : 어쩌다보니 '서울 체크인' 감상평 쓰다가...) [76] 마음속의빛3925 22/04/19 3925
3486 [테크 히스토리] 커피 부심이 있는 이탈리아인 아내를 두면 생기는 일 / 캡슐커피의 역사 [38] Fig.12940 22/04/18 2940
3485 『창조하는 뇌』창조가 막연한 사람들을 위한 동기부여 [12] 라울리스타2890 22/04/17 2890
3484 코로나19 음압 병동 간호사의 소소한 이야기 [68] 청보랏빛 영혼 s3294 22/04/16 3294
3483 [기타] 잊혀지지 않는 철권 재능러 꼬마에 대한 기억 [27] 암드맨3866 22/04/15 3866
3482 [일상글] 게임을 못해도 괜찮아. 육아가 있으니까. [50] Hammuzzi2897 22/04/14 2897
3481 새벽녘의 어느 편의점 [15] 초모완2874 22/04/13 2874
3480 Hyena는 왜 혜나가 아니고 하이에나일까요? - 영어 y와 반모음 /j/ 이야기 [30] 계층방정2795 22/04/05 2795
3479 [LOL] 이순(耳順) [38] 쎌라비4029 22/04/11 4029
3478 [테크 히스토리] 기괴한 세탁기의 세계.. [56] Fig.13581 22/04/11 3581
3477 음식 사진과 전하는 최근의 안부 [37] 비싼치킨2825 22/04/07 2825
3476 꿈을 꾸었다. [21] 마이바흐2714 22/04/02 2714
3475 왜 미국에서 '류'는 '라이유', '리우', '루'가 될까요? - 음소배열론과 j [26] 계층방정3439 22/04/01 3439
3474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1) [34] 공염불3525 22/03/29 3525
3473 소소한 학부시절 미팅 이야기 [45] 피우피우3032 22/03/30 3032
3472 [테크 히스토리] 결국 애플이 다 이기는 이어폰의 역사 [42] Fig.12830 22/03/29 2830
3471 만두 [10] 녹용젤리1986 22/03/29 1986
3470 당신이 불러주는 나의 이름 [35] 사랑해 Ji1970 22/03/28 1970
3469 코로나시대 배달도시락 창업 알아보셨나요? [64] 소시3739 22/03/22 3739
3468 톰켓을 만들어 봅시다. [25] 한국화약주식회사2638 22/03/19 2638
3467 밀알못이 파악한 ' 전차 무용론 ' 의 무용함 . [62] 아스라이3707 22/03/17 370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