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2/03/16 14:13:54
Name 초모완
Subject 철권 하는 남규리를 보자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유튜브를 뒤적거리다 남규리씨가 철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예쁜 얼굴로 이 앙다물고 거침없이 레버를 휘저으며 버튼을 파파박 눌러대는 모습을 보니 잠금장치 해놓았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수년 전, 신논현에 철권 기계로만 채워진 오락장이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폴을 주캐로 사용하는 친구를 꼬셔 그곳에 놀러 가기로 했다. 부풀고 설렌 마음으로 우린 그곳으로 향했다. 오락장 문을 열자 내 눈앞에 한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검정 가죽 자켓에 짧은 가죽 치마를 입고,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로 입구로 들어오는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그녀 곁에는 여왕벌의 총애를 받으려는 듯 남자 네명이 둘러 싸고 있었다. 환히 웃고 있는 남자들 속에 무표정한 그녀 얼굴이 대비되어 기억에 남았다.

‘머야. 저건. 오락장 왔으면 게임을 해야지. 지 이쁜거 자랑하고 있어.’

속으로 흉 보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이 이뻤음을 잊지는 않았다.


친구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기계에 동전을 흘려 넣었다. 나 또한 적당한 기계를 찾아 보는데 내가 쉬이 도전할 만한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롤에서 라인전을 시작하며 한합, 두합, 세합을 겨루게 되면 알게 된다.

‘아. 이노마는 내 상대가 아니구나.’

움직임이라든지, 스킬 쓰는 위치, 타이밍, 스킬 피하는 모습등을 통해 실력차를 알 수 있게 된다. 그걸 깨닫지 못하면

‘0/6/0 : 아. 저게 안 죽네’

가 나온게 된다.



그날의 그 게임장에서 플레이 하는 사람들의 횡이동, 백대쉬, 콤보 수준을 보니 내가 상대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아놔. 일단 컴퓨터랑 몸 한번 풀고 있어야겠다. 싶어 빈 기계를 찾아 동전을 넣었다. 컴퓨터랑 몇판 정도 진행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도전해 왔다. 잔뜩 긴장 되었다.

상대는 금발 머리 부잣집 딸과 팬더를 골랐다. 근데 캐릭터 커스터 마이징이 괴이했다. 온갖 핑크분홍한 악세사리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아. 이 오타쿠 새퀴. 이런놈한테 지면 안되는데.”

레버를 쥔 왼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경기 내용은 박빙이었다. 아마 이 사람도 내가 하는 모습을 보고 할 만하다 싶어 도전한 듯 싶었다. 간발의 차로 내가 승리를 챙겼다. 속으로 캬캬캬 거리며 좋아하고 있자 바로 재도전이 들어왔다. 내 캐릭터의 승리 포즈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이는 상대가 빡쳤음을 의미한다.

이번엔 내가 패배했다. 정말 한 끗차이였다. 이상한 커마를 한 캐릭터가 잔뜩 신나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바로 동전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내가 이겼다. 다시금 재도전이 들어왔다.

한판 이기고 한판 지고를 수차례 반복했다. 연속으로 두판 이기면 진짜 째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거 같은데 그게 쉬이 되지 않았다. 같은 상대와 계속 싸우다 보니 서로서로가 상대의 패턴 파악이 되었다. 처음에 통했던 기술이 이제는 곧잘 막혔다.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2연승은 내가 아니라 상대가 차지할 것만 같았다. 내 불안한 마음을 상대가 읽었던지 더욱 공격적으로 플레이 하였고 나는 패배 하였다. 이제 내가 동전을 넣어야 할 차례였지만 나는 망설였다. 여기서 넣으면 또 질 것 같아서 였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도망치기로 했다. 상대에게 2연승을 선사해 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사람에게 재도전 하지 않고 옆의 빈 기계로 가서 동전을 넣었다. 비굴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내 캐릭터를 고르고 첫판을 시작하려는데 누군가가 도전해 왔다. 설마 했는데 그 사람 이었다. 옆자리로 넘어 와서 나에게 ‘히어 컴스 더 뉴 챌린저’ 한 것이었다.


굳이 자기가 하던 기계를 놔두고 옆자리로 따라 왔다는 것은…

‘너 개 못하잖아.’

를 돌직구로 날린 것이었다.
- 비슷한 것으로 상대방 캐릭터 고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고르고 나면 동일 캐릭터 고르는 것이 있다.


갑자기 전투력이 급상승했다.

‘넌 뒤졌다. 내가 오늘 널 철권계에서 은퇴시켜 주마’

수차례 되뇌이며 플레이에 임했다. 이번에 지면 2연패다. 라는 압박감이 날 짓눌렀다. 하지만 나는 그걸 극복해 내고 승리를 쟁취하였다. 나의 의기양양함도 잠시 바로 재도전이 들어왔다.

치열하게 합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너무 흥분했던 탓이었을까. 어림도 없는 큰 공격을 내지르다가 뒤지게 쳐 맞았다. 너무도 쉽게 패배를 내 주었다. 크게 쉼호흡을 한번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려는데 잡히지 않았다. 총알이 다 떨어졌다. 동전을 바꾸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내 자리 차지할까 싶어 서두르며 돌아오다가 보게 되었다.


나와 상대 했던 사람은 출입문을 열때 무표정한 얼굴로 맞아주었던 그 여왕벌이었다.

면상 붕권 맞은 듯 그 자리에서  얼어 붙었다.

그녀는 여전히 다리를 꼬고 허리는 꼿꼿이 세운 채로 화면 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멍 때리고 있다가 터덜터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얼굴도 예쁜데 게임도 나보다 잘하네.’

‘얼굴은 못생겼지만 게임은 잘해’ 라던 평소의 내 자위는 이제 할 수 없게 되었다.
‘얼굴도 못생긴게 게임도 못해’ 가 되어버렸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서둘러 친구를 찾아 나가자고 했다. 친구는 의아한 표정으로 왜? 라고 물었다.

“나 어제 육회 먹었어.”
“뭔 개소리야?”
“그냥 나와.”


그리고 출입문을 나설때 고민했었다. 그녀를 뒤돌아 볼 것인지 말 것인지. 뒤돌아 보면 소금 기둥이 될 것 같았지만 왜인지 나는 돌아보게 되었다. 뜻밖에도 화면을 보고 있을 줄 알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예의 그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소금 기둥이 된 나를 친구가 끌고 나왔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12-01 01:45)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 게시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미고띠
22/03/16 14:15
수정 아이콘
연재물이죠?? 그렇죠??
스컬로매니아
22/03/16 14:20
수정 아이콘
그래서 요즘도 와이프분이랑 철권 가끔 하시는건가요??
아브렐슈드
22/03/16 14:30
수정 아이콘
안 궁금하시겠지만???
일단 저희 부부는 로아로 넘어와서 데스는 안 하구요 의자단에 주차중입니다
아 카포에라와 브라이언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다빈치
22/03/16 17:03
수정 아이콘
의자단이면 잘하시네요 덜덜
마카롱
22/03/16 14:21
수정 아이콘
[그녀의 얼굴이 이뻤음을 잊지는 않았다]
이게 중요하죠
Cazellnu
22/03/16 14:22
수정 아이콘
그래서 했나요
22/03/16 14:45
수정 아이콘
선생님 아무리 급하셔도 벌써 그러심 안되죠.
한 3화쯤 되야 나올 듯
읽음체크
22/03/16 14:22
수정 아이콘
그런 그녀가~
Lainworks
22/03/16 14:24
수정 아이콘
여기서 육회가
aDayInTheLife
22/03/16 14:26
수정 아이콘
이거 연재죠? 맞죠? 제발.. 없으면 써오세요. 크크크
재밌게 읽었습니다.
22/03/16 14:33
수정 아이콘
다음 편...빨리....
마이스타일
22/03/16 14:38
수정 아이콘
내일 출근시간 맞춰서 다음 연재분 올려주세요
22/03/16 14:43
수정 아이콘
내일 출근시간 맞춰서 다음 연재분 올려주세요 (2)
아, 저는 10시 반쯤 커피마시면서 루팡을 즐기니깐 참고해주시구요
22/03/17 13:43
수정 아이콘
10시반에 시작하신 루팡이 3시가 다되어갑니다 선생님
22/03/16 14:44
수정 아이콘
여성철권유저하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철권 태그 초창기 시절 건대 앞 환타지아에서 대회가 열려서 아는 형과 참가했었죠(2인 1조).. 당시 실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타지 원정이라 약간 긴장했었는데 32강에서 첫상대가 나름 철권계에서는 알려진 여성유저팀이였네요.. 잘하는줄 알고 긴장했는데 제가 그냥 이김.. 그래서 약간 실망했던 기억이... 크크크..
Cazellnu
22/03/16 15:08
수정 아이콘
여류 만화가중에 한분이 버파2의 파이를 주캐로 배틀팀에서 배틀을 했었습니다.
갑자기 그분 대표작이 생각이 안나네요
22/03/16 15:31
수정 아이콘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22/03/16 15:40
수정 아이콘
하이스코어 걸 생각나네요
마카롱
22/03/16 16:15
수정 아이콘
만화 속 배경 시점과 일치하는 세대라서 진짜 추억에 젖는 만화였어요.
22/03/16 15:44
수정 아이콘
게임좀 한다는 남자면 사실 오프라인에서는 남자한테도 질일이 잘 없는데 여자한테 지면 충격이 상당하죠.

저도 대학생때 폰팔이 하다가 여자알바랑 게임방 간적이 있었는데 한게임 테트리스 한다길래 내가 신이라고 주접떨다가 개발렸는데 진짜 손이 막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나중에 알고보니 테트리스나 퍼즐게임류는 여자고수들도 상당히 많더군요.
탑클라우드
22/03/16 15:50
수정 아이콘
예전 삼성 감독하시던 김가을횽님이 한게임 테트리스 고수라고 온게임넷에 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그 상대는...
다빈치
22/03/16 17:04
수정 아이콘
테트리스는 리듬게임처럼 이길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이 어느정도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크크크크
김밥먹고얌얌
22/03/16 15:44
수정 아이콘
여성유저 교복진님 생각나네요

철권태그1 전국 여성유저최강자
Kof 전국여성유저2위
남친분도 철권태그1 전국최강자중 한명인 광팀의 광풍.

저도 오락실서 수십년 짬이 있는데
교복진님 시라누이 마이에게 kof는 압도적으로 발리고
철권태그1은 겨우비등비등하던..
Q=(-_-Q)
22/03/16 16:06
수정 아이콘
친구분의 깨알같은 육회드립
콩까지마! 크크
22/03/16 16:09
수정 아이콘
필력이 크크크 다음회를 내놓으시오.
조메론
22/03/16 17:22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ㅜㅜ
얼른 다음회 쥬세요…
신류진
22/03/16 17:36
수정 아이콘
그래서 지금 결혼하셨나요
22/03/16 18:16
수정 아이콘
(수정됨) 마지막 단락 긴장감 크크크크
빨리 다음화 주세요

잼민이 시절
킹 연잡 무브리스트
싹다 인쇄해가지고
마스터할 때까지 오락실에서
하나하나 연습할 만큼 좋아했는데......
급 땡기네요
자취방
22/03/16 18:43
수정 아이콘
제목에 (1)이 빠졌습니다 선생님
얼른 (2) 달고 올려주세요........
카사네
22/03/16 18:59
수정 아이콘
크 이런 글 너무 반가워요
22/03/16 19:09
수정 아이콘
콩...
22/03/16 20:00
수정 아이콘
오호? 자게로 옮겼다는 건??
늘지금처럼
22/03/16 21:06
수정 아이콘
육회를 언급하신거 보니 총 육부작이란 암시군요 기대하겠습니다
바보영구
22/03/16 21:07
수정 아이콘
샤넬님이랑 막상막하면 디게 잘하시네요
버드맨
22/03/16 23:09
수정 아이콘
팬더(엄연히 설정상 암컷)
아난시
22/03/17 04:30
수정 아이콘
결제 어디서 하면 되죠??
난 아직도...
22/03/17 08:17
수정 아이콘
남규리 이뻐요
세인트루이스
23/12/02 00:04
수정 아이콘
간만에 명문을 읽었네요. 제발 2편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599 [역사] 고등고시 행정과(1950~1962) 역대 합격자 일람 [20] comet2114019 22/10/10 14019
3598 [역사] 한민족은 어디에서 왔는가 [40] meson13892 22/10/03 13892
3597 내가 너를 칼로 찌르지 않는 것은 [24] 노익장14239 22/09/28 14239
3596 참 좋은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38] 及時雨13311 22/09/27 13311
3595 [테크히스토리] 80년 동안 바뀌지 않던 기술을 바꾼 다이슨 / 청소기의 역사 [4] Fig.113141 22/09/20 13141
3594 전쟁 같은 공포 [25] 시드마이어16256 22/09/27 16256
3593 [일상글] 24개월을 앞두고. [26] Hammuzzi15502 22/09/26 15502
3592 뛰어난 AI가 당신의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면? [47] Farce16385 22/09/25 16385
3591 엄마의 잔소리 [6] SAS Tony Parker 14769 22/09/20 14769
3590 [테크히스토리] 애플이 프린터도 만들어? / 프린터의 역사 [5] Fig.114650 22/09/07 14650
3589 [역사] 일제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조선인 합격자들 [10] comet2111851 22/09/20 11851
3588 (스포리뷰) <수리남> 방정식, 수리(數理)에 밝은 남자의 인생 계산법 [40] mmOmm11645 22/09/19 11645
3587 다 함께 영차영차 [31] 초모완11356 22/09/14 11356
3586 '내가 제국을 무너트려줄게': 아즈텍 멸망사 상편 [36] Farce11802 22/09/13 11802
3585 구글 검색이 별로인 이유 (feat.정보를 검색하는 법) [63] Fig.111971 22/08/31 11971
3584 아즈텍 창조신들의 조별과제 수준 [29] Farce16173 19/04/10 16173
3583 (약스포)<수리남> - 윤종빈의 힘 [96] 마스터충달15554 22/09/10 15554
3582 구축아파트 반셀프 인테리어 후기 (장문주의) [63] 김용민15429 22/08/29 15429
3581 여러분은 어떤 목적으로 책을 읽으시나요? (feat.인사이트를 얻는 방법) [23] Fig.115055 22/08/27 15055
3580 너는 마땅히 부러워하라 [29] 노익장14906 22/08/27 14906
3579 혼자 엉뚱한 상상 했던 일들 [39] 종이컵12994 22/08/26 12994
3578 롯데샌드 [25] aura13790 22/08/26 13790
3577 헌혈 후기 [37] 겨울삼각형12910 22/08/24 1291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