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은 신경과학자 입니다. 책의 제목과 표지, 저자의 직업 등을 비추어 봤을 때 왠지 이 책은 인간이 창조하는 과정에서 뇌가 어떻게 활동하는 지 탐구하는 딱딱한 과학 서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있고 풍부한 창조의 사례들을 통해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결국은 '창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독자들에게 자신감과 동기부여를 전달하는 책으로 감상했습니다.
지구 상의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수많은 혁신을 거듭하며 발전했습니다. 그러면 혁신과 혁신을 일으키는 창조성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근래에 인간의 삶에 가장 혁신을 만든 인물인 스티브 잡스의 발언을 인용합니다.
그저 이것저것을 연결하는 일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걸 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자신이 실제로 그것을 한 것이 아니라서 약간의 죄의식 같은 걸 느낀다. 그들은 단지 무언가를 봤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분명해 보이면 여기에 자신의 경험을 연결해 새로운 것으로 합성한다.
즉, 창조와 혁신이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천재들의 치열한 고민을 통해 '유레카'를 외치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기억과 인상을 기반으로 발전합니다. 예를 들면 출시 당시 '지저스폰(Jejus Phone)'이라 불리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인상을 준 아이폰만 하더라도 곳곳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폰이 탄생하기 13년 전 IBM은 '사이먼'이라는 휴대 전화에 터치스크린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현재 삼성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펜과 같은 스타일러스 펜도 있었으며, 스마트폰의 기본적인 앱들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조 아이폰'이 되지 못한 것은 당시 기술의 한계로 배터리가 1시간 밖에 지속되지 못했으며 휴대 전화 요금은 너무 비쌌습니다. 지금처럼 유용한 앱이 끊임없이 등장할 생태계도 구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너럴 매직(General Magic)에서 나온 데이터 로버 840에서 이동식 메모리를 통해 휴대용 컴퓨터의 가능성을 봤으며, 팜(Palm)에서 나온 Vx에서 얇은 디스플레이가 구현됩니다. 이렇게 아이폰은 과거 조상들로부터 다양한 유전자들을 물려받은 후 배터리 용량과 같은 기반 기술의 발전,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와 미래를 향한 비전 등이 추가되어 탄생합니다. 이렇게 과거로 부터 받은 영향들은 아이폰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피카소의 그림들 곳곳에서도 발견됩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일단 많이 읽고, 보고, 느껴라'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일단 작가에게 입력된 것이 많아야 풍부한 이야기 거리가 생깁니다. 창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그 동안 '창조'라고 하면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창조는 천재적인 몇몇의 소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저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일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폰의 탄생 일화를 보면서 세상의 그 어떤 창조물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 잠시나마 그 두려움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서두에서 말씀드린대로 '창조'에 대한 좋은 동기부여를 주는 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폰의 조상 격인 IBM의 사이먼(출처 : 위키백과)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위대한 창조물들이 항상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창조물을 내놓지만, 대부분의 창조물들이 세상의 무시를 받습니다. 관심을 받고 살아남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수 많은 창조물들이 폐기되는 이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창조물의 평가가 극명하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수 세기 동안 조경의 기준이 서로 달랐다고 합니다. 17~18세기의 프랑스의 정원은 뚜렷한 대칭과 깔끔한 손질이 특징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영국 정원은 구불구불하고 둥글게 가는 길과 자유롭게 자라는 꽃나무가 주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 영국의 리젠츠 공원에 갔을 때를 떠올리니 그 차이점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조경 방식 중 한 쪽의 방식은 다른 국가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헤밍웨이의 소설과 그 이전 시대의 문학 작품들의 문체를 비교하였습니다. 딱히 시대 별로 형식적 제약이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특정 시대의 작품들은 비슷한 형태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요즘 생각나는 것은 우리나라의 '사극'의 트렌드 변화입니다. 똑같이 '여말선초'시기를 묘사하는 20년 전 사극 '용의 눈물'과 최신작 '태종 이방원'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용의 눈물'에서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조선시대 실제 집인듯 촛불만 있는 어두운 세트에서 촬영됩니다. 인물들끼리 만나면 본론에 들어가기 전 각종 안부 인사와 시종에게 술상을 내오라는 명령까지 시시콜콜한 장면들도 모두 화면에 담습니다. 극은 총 159부작의 대서사시가 됩니다. 하지만 최신작 '태종 이방원'에서는 유튜브를 넘어 틱톡의 시대에 익숙한 현대인의 취향에 따라 자잘한 장면들은 죄다 건너 뛰고 32부작으로 압축하여 빠르게 극을 전개합니다.
용의 눈물의 한 장면,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어두컴컴한 세트와 지금 기준에선 상당히 긴 분량의 대화(출처 : 유튜브 KBS Drama Classic 채널 캡쳐)
그러면 이렇게 불확실성 속에서 창조가 성공하는 전략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유일한 전략으로 '다양한 옵션'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극히 낮은 성공 확률을 이기기 위해선 시도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대표작인 『무기여 잘 있거라』의 초안에서 총 47가지의 결말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동료 작곡가들의 왈츠 변주곡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려는 출판업자로부터 한 곡의 변주곡을 요청받앗습니다. 한 곡에 만족하지 못한 베토벤은 무려 33곡의 변주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축음기에 대한 대중의 애매한 관심도에 대비하여 축음기의 용도를 10가지로 늘려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구글 묘지'라 불리는 곳에는 구글 웨이브, 구글 라이블리, 구글 버즈 등 세상을 빛을 보지 못하여 명칭마저 생소한 구글의 각종 서비스 아이디어들이 사방에 널려있습니다. 발명가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의 최대 약점은 포기하는 것이고 성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한 번 더 시도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일단 많이 보고, 많이 본 것들에서 영감을 받고, 영감을 받은 것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라는 기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패의 원인은 환경의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필연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많은 시도를 할 것을 권장합니다. 물론 창조를 하는데 많은 시도로만 커버할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전엔 창조라고 하면 막막하고 나와는 별로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에 비하면 창조에 대한 장벽이 많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책을 과학계와 예술계를 어우르며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해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며, 창조에 대한 막연한 장벽을 낮춰 성공적으로 동기부여를 전달하는 좋은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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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12-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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