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들어올 때 집 앞 마트에서 당근 하나만 사와'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의 봄 소풍 도시락을 준비해보자면,
맘 같아서는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한번은 봤을 법한,
기상천외한, 푸드아트에 도전해보겠노라, 난 특별한 아빠니까, 각오를 다지지만,
이래 저래해서, 어쩌다보니, 그래 난 평범한 아빠가 될 거야,
김밥이나 유부초밥 정도로 합의를 보게 된다
그래, 사랑이 듬뿍 담긴 김밥을 (아내가) 싸주면 되는 것이다
난, 당근을 사가면 될 뿐이고.
여느 때보다 분주해 보이는 아침 분위기에,
우리 할머니는 소풍 날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셨는데, 괜히 한마디 꺼냈다가
뒤통수로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은 자연스럽게 회피.
딱히 도와주는 것은 아니지만,
시어머니 모드로 고나리질 정도는 해줄 수 있어서 지켜보는데,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집에서 만드는 김밥에도 우엉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람.
바쁜 엄마들을 위해 김밥 속재료들만 따로 파는 게 있다더라에 놀람.
만드는 족족 입에 넣어보는데, 분식집에서 먹던 그 맛과 다르다는 것에 한번 더 놀람
분명 재료는 전부 똑같다고 하지 않았어? 아무튼.
그래, 이것은 김밥의 형태를 취할 뿐, 창작활동인 것이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햄은 제일 큰 걸로, 오이 당근은 제일 얇은 걸로.
모시는 상전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은 즉각즉각 반영.
마주 앉은 모녀의 꽁냥꽁냥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어렸을 적 할머니가 싸주셨던 김밥 생각에 잠시 감상에 젖어본다
20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내 방문에는 커다란 반투명 유리창이 있었다.
소풍가는 날, 주방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깨면,
평소와 달리 불 켜진 주방 조명 불빛에 쉽사리 다시 잠에 들기 힘들었다.
새벽 네 시나, 그 언저리 정도 될 시간이겠지.
해가 늦게 뜨는 겨울이 아니라면, 아침에 주방등을 켜지 않던 할머니 성격에,
직감적으로 깜깜한 새벽임을 알 수 있었고.
그 다음엔 후각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
아마도 손주 녀석 싸줄 도시락, 김밥을 말고 계시는 거겠지.
그 시절, 할머니가 만든 김밥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분홍소세지를 볶고,
단무지도 기름에 볶고,
밥도 참기름에 한번 볶고,
돌김인지, 파래김인지
거기에 계란에, 시금치
그게 전부였다.
그냥 김밥재료들을 기본적으로 기름에 볶는 것 같은데,
이쯤되면 시금치도 따로 볶아 놓았던 게 아니었을지.
아무튼, 굳이 따지자면, 아! 김밥에 기름을 많이 쓰시는 스타일이셨구나.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짜장면을 좋아하는 성격인 것처럼.
그래서인지, 점심이 되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친구들과 도시락을 열어보면,
다른 이들의 김밥과는 사뭇 다른 모양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모양을 묘사해보자면, 김이 기름기를 많이 머금어서인지,
새끼손톱만한 크기들로 인수분해되어, 각자가 따로노는,
아마 파래무침을 얇게 펴서 김밥을 싸면 그런 모양이 될 수 있을까.
아무튼, 그런 모양이었다
(아마 나중에 추정건데, 김밥용김이 아닌 돌김이나, 파래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화룡점정의 분홍소세지는 정말이지, 촌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싫었는지,
소풍날 점심시간이 되면,
누구 김밥은 맛살에 오뎅까지 들어있다더라.
누구 엄마는 누드김밥 가능한데, 바빠서 못하셨다더라.
서로 간에 어머님들의 음식실력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될 때,
어느새부턴가, 도시락을 열지 않고, 가방 안에 두게 되었다.
'오늘 못 싸왔어'
아니면 아까 버스안에서 까서 먹지 않았냐고 대충 둘러대고서는.
집에 터벅터벅 돌아가는 길에 몇 개 꺼내서 먹다가, 배부르면 버리기도 했던 것 같고.
상했을 법도 한데, 개의치 않았고,
그만큼 건강했었는지, 배탈 한번이 없었거든.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가을소풍이었던 것 같은데, 일이 발생했다.
시골의 학교에서 멀리 간답시고 관광버스 대절해서,
어디 놀이공원이나 박물관 이런데 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안이었던거 같다.
'누구 김밥좀 남은거 없냐'
버스 맨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좀 노는 친구의 말에 못 들은척, 자는 척하려 했었다.
그런데 앞 좌석에 걸어놨던 내 가방이,
누가 봐도 안에 무엇인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볼록했고(마치 남성 팬티 모델의 그 물건처럼),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축 쳐져있었다.
그건 자기를 한번 봐 달라는 어필이자, 소리없는 외침이었던 것이다.
'저 안에 뭔가 있다'
여튼 주목을 받게 된 내 가방은,
파도를 탄 것처럼 손에 손을 거쳐 뒷자리로 옮겨졌고, 벗김 당했다.
봉지 과자의 마지막 부스러기를 입안에 털어 넣듯이,
그 과정에서 반짝반짝한 은박지 도시락 하나가 버스 바닥에 툭 떨어졌고,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노란색 고무밴드가 도시락을 꽉 잡아주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슬로비디오처럼 그 광경은 정말 느리게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주워서 뚜껑을 여는 찰나에,
그 안에 있어야 할 것은, 반드시 먹을 것이어야만 한다는,
그 외의 선택지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들 직감했던 것 같다.
손은 눈보다 빨랐다.
순식간에 은박지 도시락이 시야에서 가려질 정도로,
여기저기 마수의 손길이 뻗쳐왔고 (아비규환),
도시락 껍데기가 주먹만한 테니스공 크기로 찌그러져 나뒹굴기까지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오늘 배가 안 고파서 안 꺼냈어'
'맛없을 것 같아서'
'있는 줄 깜빡했어'
어줍잖게 둘러댄 변명 몇마디는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여기저기에서 극찬을 표했을 뿐이다.
다만, 단어선택을 통해 진심과 존경을 함께 표했었지. (x발, x나)
'x라 맛있구만, X끼가 혼자만 쳐먹을라고 아껴놨네'
뒤에 앉은 어떤 친구놈이 내 뒤통수를 한 대 후린 것 같은데,
왠지 아프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정말 맛이 있었던건지, 그 나이 때 배고플 시간엔 뭘 씹어먹어도 맛있는 거였는지,
물어보지 못했으니 지금에 와선 알 길이 없다.
그냥 어렴풋이 뿌듯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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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이 안 나는데'
지금 내 눈앞에 김밥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창작물을
참기름에 한번 찍어 먹어볼까 생각해본다.
그 시절, 고작 속재료 너댓개로 만든 투박하고 소박한 김밥이었는데,
분명 맛이 있었어, 정말 고소했었거든.
기억이 가르키는 흐름을 따라서, 그 시절 그 김밥을 만들어보면
정말 같은 맛이 날까? 그 맛이 기억날까?
하루에 읍내로 나가는 버스는 고작 다섯 대였다.
버스를 놓치면 20분 걸어나가서 버스를 타야했던,
그 정도의 시골 깡촌에서, 그 분홍소세지 김밥은 말이야.
없는 살림에, 손주녀석 하나를, 붙어있는 혹처럼, 키워야했던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거든.
갑자기 궁금해진다.
꼭 만들어봐야지, 당장 내일이라도 마트가서 재료를 사볼까.
근데, 안 만들려고,,,
다시 보게 되서,
그 맛이 되살아나면,
마주치게 되면,
울어버리게 될 거 같아.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1-2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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