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기로 유명한 강원도 양구에서 군 생활을 했다. 전방은 후방보다 보급이 빠르기 때문에 시설만큼은 최신식일 거라는 얘기를 듣고 갔는데, 웬걸. 102 보충대와 똑같은 나무 관물대에 쥐가 돌아다니는 것 아닌가. 담배와 지폐를 갉아먹던 쥐를 생포해 '처형식' 을 치르던 선임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자대에 관한 내 첫 인상이다.
내가 군 생활을 한 시기는 일종의 과도기로서 GOP와 최전방 부대는 설비가 최신식으로 이미 바뀐 반면, 우리 부대는 산 밑에 남아 있는 예비부대로서 보급이 후순위로 밀린 곳이었다. 같은 양구에서도 우선 순위가 달랐던 것이다. 전투조끼 라는 것이 이미 보급되고 있을 무렵 X반도니 H반도니 하는 너덜너덜한 장비를 차고 넝마주이 떼처럼 훈련을 받곤 했다.
군 생활 내내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등병 때 자대 배치를 받으며 걱정이 앞서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 병장 때까지도 남은 훈련 갯수를 세며 스트레스를 받는 비관주의자는 많지 않다. 동기들이 까마득한 막내 시절부터 전역일을 손꼽다가 선임들에게 놀림을 받은 반면, 나는 훈련 일정표에 적혀 있는 낯선 훈련의 이름을 되뇌이며 두려움에 떨곤 했다.
두려움의 절정은 유격훈련이니 혹한기 훈련이니 하는 커다란 건더기들이 아니었다. 군 생활을 했던 많은 이들이 공감할만한 공포의 사이렌, 전투준비태세가 내 심장을 두들겼다. 강렬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화스트 페이스' 가 전달되면, 난데없이 새벽녘에 벌떡 일어나 군장을 싸고 물자를 옮겨야 하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는 듯한 압박감과, 조금이라도 어리버리한 모습을 취하면 쏟아지는 욕설.
돌발적인 준비태세가 아니라, 상급부대가 넌지시 일정을 공개한 훈련일 때에도 나는 전투준비태세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거의 노이로제에 걸려서 소대의 고참 자리를 꿰찼을 때는 아예 군장을 미리 다 싸매놓고 살았다. 챙겨야 하는 물자와 배치는 최대한 꼼수를 쓰고, 관물대에는 애초부터 개인물품을 두지 않았다.
욕을 할 선임도 전역하고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최고참 병장의 시기. 훈련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서 실수 하나 없이 준비태세를 해나가는 시점에서도 그렇게 걱정을 하고 예민하게 구니, 같은 병장 라인에 올라선 후임들은 나를 보고 웃었다.
"아이고 준비태세 혼자 다 받으시겠네."
한편 나를 놀린 내 맞 후임 군번들은 부대에서 전설적인 듀오였다. 우리 소대에 배치된 첫 날, 두 사람이 나란히 내무실에서 낮잠을 자다가 걸린 것으로 자대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이었다. 선임에게 혼이 나도, 힘든 훈련이 코 앞에 있다고 겁을 줘도 좀체 꿈쩍하는 법이 없는 뻔뻔한 녀석들. 상, 병장 때나 쓰는 훈련 꼼수를 이등병 때부터 쓰다가 간부에게 적발되고도 일병 때 그 짓을 다시 시작한 또라이들.
행정반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훈련일정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다가도, 두 녀석을 보면 내 걱정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뻔뻔하면서 서글서글한 그 성격 덕분에 몇 번이나 선임들에게 찍히고도 군생활을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걱정만 가득했던 내 군 생활에도 소소한 낙이 없지는 않았다. 고된 훈련을 마친 뒤 허락된 오침을 취하고 나른하게 일어나는 주말의 기분. 적막한 강원도 산꼭대기에서 경계 근무를 서며 바라보는 별빛들. 추운 새벽에 근무를 마치고 끓여먹었던 뽀글이 라면. 후임들과 함께 했던 외출 외박. 제법 좋은 선임이었던 사람들과 병사들을 세심하게 챙기던 소수의 간부님들.
하나 같이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지만, 딱 하나의 추억을 남기자면 그것은 이등병 때 처음으로 보았던 야간 투시경 속의 별빛일 것이다. 군 부대가 위치한 강원도 산골짜기의 하늘에는 충분히 많은 별빛이 있었지만, 광증폭식 야간 투시경으로 바라보면 숨어 있던 별들이 플라네타리움처럼 빛났다.
소대장님의 배려로 마치 전입 기념식처럼 처음 야간 투시경을 건네 받았을 때 보았던 그 광경들은 앞으로 평생 다시 볼 수 없는 귀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야간 투시경으로 하늘을 바라본 적 없는 사람들은 까만 하늘에 별빛이 그토록 많이 숨어 있으리라 상상치 못할 것이다.
전역을 할 때는 군 생활만큼 힘든 시기가 삶에서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세상을 살면서 다시 보기 힘든 아간 투시경의 별빛 만큼이나.
요즘은 다 철 모르는 소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는 군대보다, 혹은 군대만큼 힘들다. 군 생활은 확실한 끝이 있지만 사회 생활은 명확한 출구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괴롭다.
그 때문인지 세간에서는 어두운 소리가 온통 메아리 친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는 끝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지구는 환경 오염으로 기후가 망가져 간다. 국민 연금과 건강보험금의 고갈로 사회보장제도가 위협 받고, 치열해져가는 각종 갈등과 혐오가 서로를 갉아먹는다.
공무원은 나태하고 정치인은 썩었고 기업가들은 부패했으며, 배달부들은 폭주족이, 교인들은 광신도가 되어 사회를 테러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는 왕따와 학교 폭력이 만연하고 직장에는 꼰대들이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있으며, 막다른 길에 내몰려 자살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신문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다보면 대한민국은 마치 인세의 지옥이 된 듯 하다.
언제 울릴 지 모르는 준비태세의 사이렌처럼 나는 곧 터질 전쟁의 울림을 기다리며 어딘가로 탈출할 군장을 항시 준비해놓아야만 할 것 같다. 훈련 준비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날들처럼 막연한 불안감과 쓸데없는 잡생각으로 밤을 보내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새벽이 밝아오면 어렴풋이 빛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비친다. 나의 나약한 두려움을 대신 물리쳐 주듯 하루하루를 힘껏 살아가는 이웃들이 있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의 힘찬 웃음이 메아리치고 길에는 행복한 모습을 한 가족들과 연인들이 넘친다. 무서운 추위에도 바깥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일꾼들, 매사에 친절하려는 직원들, 장애나 병을 딛고 꿋꿋하게 앞으로 길을 나서는 사람들.
인상을 쓰고 침을 뱉고 욕을 할 지언정 세상에 패배하려 하지 않는 험상 궃은 이들까지도.
자대에 배치 받자마자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그 녀석들처럼, 비록 나는 사회의 뒤쳐진 이등병일지라도 앞 뒤 없는 커다란 배포를 지니고 싶다.
그리고 밤이 되면 울리지 않는 사이렌 소리를 겁내며 덧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껴주는 누군가와 함께 별을 보러 가야할 것이다.
찬찬히 어두운 하늘을 살피다보면 반드시 작은 별빛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평범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수 많은 별이 숨어 있진 않을까?
모두의 손 안에 작은 야간 투시경이 있기를 바래본다.
* 배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8-27 01:50)
* 관리사유 : 야간 투시경이란 단어가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다니...
밥과글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