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게가 육아풍이라서 저도 써봅니다
혼자 31개월 9개월 아이 둘을 끼고 잠자리에 들어요
자기 전 동화책 읽기 시간에 웬일로 큰 아이가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를 가지고 옵니다. 시커먼 늑대 그림이 무섭다고 안 꺼내오는 책인데... 읽어달라더니 두 장 넘겨 늑대가 등장하자마자 "엄마 근데 조금 무서워"라며 제 등 뒤에 숨어서 옷자락을 꼭 붙잡고 듣습니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배 대백과>, <타요와 띠띠뽀의 달리기 경주>까지 다 읽고 난 뒤에야 자리에 누워요. 9개월 둘째가 먼저 잠에 빠져들고 첫째가 훨씬 늦게 잠드는데, 문득 낮에 읽다만 육아서 내용이 생각났어요. 하루에 있었던 좋았던 일 하나, 아쉬웠던 일 하나, 내일 해야할 일 하나를 말해주래요.
"OO아, 오늘 엄마는 네가 <늑대와~> 책을 가져와서 너무 기뻤어. 조금 무서운 이야기인데 용기를 내서 용감하게 읽었구나. 참 잘했어~ 내일도 재미있게 책 읽자"
여기서 애가 헤헤 웃고 끝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엄마 나는 나는, 공원에서 뱅글뱅글 미끄럼틀 내려와서 좋았어요. 엄마는 안 만지고 해서 좋았어. 한번 더 타고 싶어."
세상에나. 대화의 주제나 형식을 가르치지 않았는데 갑자기 치고 들어와서 깜짝 놀랐어요. 놀이터에 720도 회전 미끄럼틀이 있는데 혼자 타기를 어려워해서 데리고 타다가 오늘 처음 아이 혼자 탔거든요. 근데 그걸 이렇게 말하다니 못난 에미가 깜짝 놀랍니다.
"그래 그래. 혼자서 그 커다란 미끄럼틀을 타다니 너무 멋지더라~ 내일 어린이집 끝나고 또 타러 가자"
"엄마 엄마 사랑해요"
에미는 쓸데없이 또 마음이 징~ 해지고
"오늘 어린이집에서 엄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엄마 사진 봤어"
럴수럴수 이럴수가... 어린이집 한쪽 벽에는 아이들의 가족사진이 한장씩 붙어 있습니다. 그게 그 용도이긴 한데 그렇긴 한데...ㅠㅠ
에미 맘에 수도꼭지가 콸콸 틀어지려는 찰나를 틈타 잠자기 싫은
아이의 종알거림이 불빛 한 점 없는 방 안을 가득 채웁니다. 단 오분 십분이라도 빨리 재워보고자 전자시계도 천장의 야광별도 모두 뜯어버려 정말 불빛 한 점 없건만...
"엄마 엄마 나는 나는 그런데 잠이가 안 와"
(자는 척)
(벌떡 일어나 앉으며)"엄마 엄마 잠이가 달아나 버렸어"
(자는 척)
"엄마 엄마 밖이 환해졌다 어두워졌어"
"...OO이 눈 감고 자야지"
"엄마 잠이가 안 와..."
"OO아 눈 감고 몸 움직이지 말고 아무 말 안 해야 잠이 오는 거야"
"엄마 나 버스 운동장 놀이 하고 싶어요..."
"그래 엄마는 자고 있을 테니까 OO이 혼자 거실에서 놀고 와"
"엄마 나 졸려 잘 거야..."
"눈 감고"
"엄마 엄마 엄마 나는 나는"
"..."
"엄마 엄마 물고기는 눈을 뜨고 자니까 나도 뜨고 잘 거야"
(대환장)
그리고 둘째가 애앵 잠깨는 소리
"엄마 O이 깼다 깼어"
- 토닥토닥
"엄마 O이 아까 우유가 맛없었나봐"
"아냐 O이 이빨 나서 아프대"
"엄마 O이 이빨이 나서 아파? 이빨 몇 개 났어??"
"두 개~"
"O이 이빨이 두우개 났어 그래서 아파~"
"OO이도 이제 잘까???"
"엄마 나 기저귀가 빵빵해 기저귀 갈아주세요"
(안 만져봐도 이보다 더 뽀송할 수 없는 기저귀...)
9시에 들어가서 재우고 나오니 11시네요 ^-^
육아라는게 겪어보니 그 쪼그만한 애 하나 키우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오백만가지 걱정을 달고 살아요. 쉽게 크는 아이는 있어도 풍파없이 쉬운 부모 속은 단 하나도 없을 겁니다. 맘 고생 그리 하는 만큼 몸 고생이라도 안하면 몰라...
그러다보니 애 키우기 힘들다 우는 소리는 쉽게 나오는데 어떻게 사랑스럽다고 말하기는 이 안물안궁 시대에 지나치게 구구절절한 거 같이 느껴져 말을 아끼게 됩니다. (어제 재우는데 두시간 걸렸어 vs. 애가 잠자리에서 너무 사랑스럽게 말해)
하지만 좋아요~ 이런 순간순간의 행복을 또 어디서 느낄 수 있겠어요. 세상 누가 또 나를 저렇게 맹목적으로 사랑해줄까요. 세상 누가 또 이렇게 따스한 몸으로 나를 꼬옥 안아줄까요. 이 또한 모두 지나가는 것이니 잊지 않으려 순간순간을 붙잡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잊고 부모만 기억하는 나날들이 쌓여갑니다. 우리도 우리의 부모와 함께 그렇게 자라왔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하며, 이해한 줄 알았으나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세계로 나아갑니다. 이게 바로 애 낳고 사람됐다는 옛 부렁이겠죠
길지 않은(!) 호시절 마음껏 사랑하며 행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10-0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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