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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8/06 22:58:24 |
Name |
zeros |
Subject |
Mr.Waiting - 14 |
“음. 나 좀 길게 생각해 보았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에게 했던 이제 만나지 말잔 이야기. 후회해. 난 그냥 너 만났으면 좋겠어. 우리가 친구이더라도 난 네게 줄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아서. 또 내가 꿈꾸는 연인의 모습 역시 그냥 평생지기 같은, 친구 같은 모습이기도 했고. 너는 내가 감정을 추스르는 걸 원하는 거 알지만, 나 그러지 못했어. 아니 그러지 않았어. 내 감정 굳이 이성으로 그만두고 싶지 않았어. 이성이 감정을 절제할 순 있겠지만 맺고 끊을 순 없다고 또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 나는.”
잠시 후 그녀가 대답했다.
“네가 그 날 나에게 준 편지에 적혀있던 네가 원하던 우리의 모습. 그러니까 손잡고,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거 하는 그런 거. 그런 거 나 그냥 너 정도 친한 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들 같아. 나 예전 우리 만났을 때부터 그런 게 싫었어. 뭔가 선을 그으려고 하는 것들 말이야. 아. 나도 잘 모르겠다. 너도 그럼 일단 불편하진 않은거네?”
“응. 지금 역시. 너도 나를 불편해 하지 않고 나 역시 그렇다면 우리 서로 그런 식으로 안보거나 할 필욘 없는 것 아닐까? 어차피 나는 네가 있건 없건 변하기 힘들거야. 내가 널 그 동안 친구로 보면서 아팠던 건 결국 자유의 부재가 아닐까 싶어.”
“무슨 자유?”
“너에게 할 수 있는 말, 행동, 또 내가 요구하고 싶은 그 어떤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의 부재에서 오는 아픔과 너를 잃음으로써 오는 아픔 둘 중에 어떤 게 큰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그 때 말했잖아. 이런 식으로 너란 사람을 잃는 거는 나에게도 큰 아픔이라고.”
“응. 그 땐 내가 잘 몰랐나보다.”
“나 사실은 오늘 너한테 만나지 말자고 하려 했거든. 근데 너 만나니까 또 모르겠어. 너랑은 결론이 잘 안 나는 거 같아. 이상해. 나도 너한테 차마 할 수 없는 말. 어려운 말들이 있거든.”
“그렇구나. 난 사실 그런 것들까지도 전부 다 말해주길 바라지만, 어렵겠지?”
“응.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일단 우리 한 번 좀 생각해봐. 얘기는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그래.”
사실 나에게는 생각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이미 모든 결론은 내 안에 있고, 그 결론에 그녀가 동화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으니까.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까마득했고, 보이지 않았던 나의 군 생활도 이제 막바지였다. 그녀와 일상적인 연락을 하며 지내다 보니 결국 제대 날은 다가왔고 기대했던 것보다 덜한 감흥을 안고 제대를 했다. 제대하는 순간보다는 그 순간을 기다리던 순간이 더 즐거운 듯 했다. 이미 제대를 했던 친구들이 말했던 것처럼 돌아온 내 자리엔 내가 풀어야 할 숙제들이 쌓여 있었다. 그 많은 선택들을 거의 스스로의 생각으로 또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것은 꽤나 부담이었다. 많은 조언들과 반대, 질책과 위로를 받으며 소위 말하는 ‘칼복학’ 이란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대신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주 6회, 하루 10시간 씩 일하는 나의 생활 중 휴식의 대부분은 역시 지은이었다. 거의 모든 쉬는 날마다 그녀를 만났다. 기타를 가르쳐준다는 것은 그녀를 자주 보기에 아주 좋은 핑계거리였다. 또한 그녀의 손가락을 잡는데 아주 좋은 핑계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꽤나 오랜만에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당시 약간 고급스런 술집에서 일을 하던 친구는 언젠가 그녀를 데리고 놀러올 것을 이야기 했었고, 나는 그녀가 내 앞에서 운지를 하느라 쩔쩔맬 때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아 정말? 너는 가봤어?”
“어어. 한 세 번 가봤나.”
“그래? 어때? 좋아?”
“응. 거기 막걸리 맛있고, 안주도 맛있어. 주방에도 친구 하나 있어.”
“아 정말? 야 좋다. 가자 거기.”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출근을 하는 나로서는 약속을 잡는 것조차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몇 주후, 근무시간을 어렵사리 빼고 그녀와 약속을 잡았다. 한 겨울의 칼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추워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골목들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했다. 친구는 이미 우리가 이용할 방을 맡아준 상태였다. 술이 들어가서인지 그 동안 만나지 못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녀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맛있는 음식들을 배불리 먹었다. 우린 둘 다 꽤나 취한 상태로 가게 문을 나섰다. 오른손에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이 따뜻했다. 버스는 적당히 붐볐고 우리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문득 그녀가 나에게 일본 연수를 말했던 그 날의 버스가 떠올랐다. 그 날과 달리 그녀의 손에는 나의 손이 있었지만 너무 빨랐던 버스의 빠르기는 변하지 않은 듯 했다. 다가오는 헤어짐의 시간에 혼자 아쉬워하느라 그녀가 기대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살짝 움찔하는 나를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더욱 빨라지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했다. 스스로는 아직 그 무엇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 누가 물어오는 경우에도 부정했지만 그 누가 보더라도 우린 애틋한 연인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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