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칼럼은 2011년 5월 10일에 스타크래프트 2 협의회 홈페이지 및 디스이즈게임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디스이즈게임에 단독 게재되는 칼럼은 PGR 연재 대상이 아닙니다.)
- 안고 갈 것. 떨쳐 낼 것(상)에서 계속됩니다.
안고 갈 것: 부족한 방송 접근성
대한민국에서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 리그는 GSL뿐만 아니라 국외 리그도 대부분 곰TV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의 용이성 및 접근성에서 기존의 게임 채널에 비해 여러 제약이 있지요. 관중과 팬이 없는 프로 스포츠는 생명력을 잃기 쉽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 리그의 부족한 접근성은 대단히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해결할 수 있다면 빠르게 해결해야 하죠. 따라서 " 하루 빨리 떨쳐 내야지 왜 안고 가느냐?"라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금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는 두 가지 현실적 이슈에 직면해 있습니다. 블리자드는 두 게임방송사와 <스타크래프트>의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진행 중이고, 그래텍은 케이블 채널에 진출하면서 대원미디어와 1년간의 독점계약을 맺었지요. 따라서 최소한 1년간은 지금의 접근성 문제가 개선되기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대격변'수준의 엄청난 변화가 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보장도 없지요. 그래서 아쉽지만, 접근성 문제는 '떨쳐 내야' 하나 적어도 당분간은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이 최선이다'라는 생각은 해서도 안 되고 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블리자드와 그래텍이 GSL을 세계 최고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허언이 아니라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대회에 대해 투자와 관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계속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접근성이 용이해도 지속 의지가 모호하고 팬들을 등한시하는 리그보다는 접근성이 다소 부족하다 해도 개선 의지와 지속 의지가 있고 팬들을 배려하는 리그가 e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얻게 되고, 더 오래 살아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떨쳐 낼 것: 가독성 문제, 경기의 재미 문제
가독성과 경기의 재미,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뭉쳐 다루고 있는 것은 두 가지 공통점 때문입니다. e스포츠의 '보는 재미'와 관련되어 있는 공통점이 있고, 이 의견들이 절대적인 비판이라기보다 <스타크래프트> 종목과의 비교에서 파생된 상대적 비판이라는 공통점도 있지요.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 초기에 e스포츠 팬들은 <스타크래프트> 종목과 비교하여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 비해 화면에 표시되는 유닛 크기가 작고 색깔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가 진행되고 나서는 경기의 재미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작보다 명확한 유닛간의 상성관계 때문에 유닛이 한 순간에 녹아 버린다고 하여 속칭 '순삭전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투가 재미없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지요.
개인적으로 가독성 문제는 초기부터 TV로 방송을 볼 수 있었다면 덜 문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매우 아쉽습니다만, 약 8개월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가독성을 높이는 부분에 대해 많은 개선이 있었습니다. 업데이트를 통해 인터페이스가 바뀌며 e스포츠 게임 연출을 위한 여러 가지 시스템이 구현되었습니다. 손실 유닛이나 APM 등의 각종 데이터를 더 손쉽게 제공하고 있으며, 게임 인터페이스를 사라지게 하고 전투 화면만 크게 볼 수 있는 기능도 탑재되어 훨씬 시원한 화면을 볼 수도 있지요. 이제 남은 것은 게임연출 스킬을 보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략적 측면에서는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들은 <스타크래프트 2>의 특성을 살려 경기에서 승리하는 모습들을 점점 더 자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년 오픈 시즌 64강, 32강 정도 수준의 게임은 요즘 코드 A에서조차 잘 나오지 않지요. 5월 5일에 벌어진 임재덕 선수가 이정환 선수를 맞이한 8강전에서 보여준 가시촉수 전략 및 초반 타이밍 러쉬는 <스타크래프트 2>만의 점막 확산 시스템이나 애벌레 펌핑 등을 이용한 전략이고, GSL May. 32강전에서 이윤열 선수가 이정훈 선수를 상대로 역전한 경기는 지게로봇 등의 시스템을 이용하여 인구수 차이를 따라잡고 상성을 이용해 중앙 전투에서 팽팽한 싸움을 이끌어 냈기에 가능했습니다.
임재덕 선수의 전략은 <스타크래프트 2>이기에 가능한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가독성이나 전투의 재미 요소 등에서 <스타크래프트> 종목 경기보다 <스타크래프트 2> 종목 경기가 무조건 떨어진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스타크래프트 2> 종목의 새로운 재미와 독창적 전략 등의 훌륭한 모습들을 인정하지 않고 전략적 요소가 부족하다고 단정지어 버리는 일방적 주장은 '익숙함'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루한 사고방식이라 생각하며, 심지어 게임 자체의 전략적 요소까지 들먹이는 것은 게임성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판단하는 의견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런 발전 요소를 알리려는 노력과 수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임요환 선수의 ‘은폐 밴시’를 능가하는 전략전술은 여럿 나왔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곰TV를 켜면 모든 경기를 검색해서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GSL 경기를 찾아보려고 해도 선수 이름이 목록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찾아보려는' 사람도 어려워한다면 '찾아가는 서비스'를 원하는 이들을 만족시키기는 곤란하겠지요.
VOD 목록에 선수 이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구슬은 꿰어야 보배가 되는 법입니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VOD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GSL 생방송이 없는 날에도 <스타크래프트 2>와 관련된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및 등을 고정 편성하는 방법으로 재미있는 경기들, 훌륭한 전략이 나온 경기들을 더욱 많이 노출시키는 방안을 계속 강구해야 합니다. 과거에 형성된 고정관념을 빠르게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 발목 잡힌다면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는 그만큼 더 고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고 갈 것: <스타크래프트 2>에 대한 무관심
접근성 문제가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떨쳐 내야' 하나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듯, <스타크래프트 2>에 대한 무관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이라도 떨쳐 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문제는 단시간 내에 해결하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중요한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스타크래프트 2>에 대한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것은 게임의 흥행뿐만 아니라 e스포츠의 흥행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스타크래프트 2>에 대해 무관심한 이들에 대해 지속적인 홍보와 이슈 제공 등으로 관심을 가지게 해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만, 일부에서 일방적으로 퍼뜨리는 말처럼 <스타크래프트 2>의 흥행이 실패했기 때문에 무관심을 타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곤란합니다. 더불어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e스포츠로 게임을 흥행시킬 수 있다'라고 보는 것도 위험천만합니다. 지금까지 e스포츠화되었다가 사라진 수많은 게임의 예를 보아도 e스포츠가 게임의 흥행에 미치는 역할은 게임의 인지도를 향상시키는 순기능 정도가 명확할 뿐이고, 오히려 e스포츠에서 부실한 모습을 보이면 게임의 흥행에는 악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스타크래프트 2>는 세계적으로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도 흥행하는 게임들 중 하나입니다. 예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스타크래프트 2>는 PC방 순위와 같은 제한된 지표만으로도 흥행 실패라고 보기 어려울뿐더러 PC방 순위와 개인사용자 순위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집계되는 게임노트 차트에서는 오히려 <스타크래프트 2>가 <워크래프트 3>과 <스타크래프트>를 능가하고 있지요. 따라서 <스타크래프트 2>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성공하고 있는 상태인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무관심 계층을 끌어안아 '관심'으로 바꾸는 노력입니다.
<스타크래프트 2>는 대한민국에서도 흥행하는 중입니다. (자료출처:게임노트)
<스타크래프트 2>에 대한 무관심을 깨뜨릴 의무는 1차적으로 블리자드에게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스타크래프트 2>는 게이머들에게 다가오는 과정에서 초반에 판매 관련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것이 게이머들의(특히 상당 수 마니아들의) 무관심의 원인이 되었지요. 블리자드 20주년을 기념한 <스타크래프트 2> 패키지 할인판매가 호평을 받은 것과는 달리 소셜커머스를 통한 스타크래프트 30일 이용권 판매가 준비수량의 1/3도 판매하지 못한 것은 게이머들이 게임에 대해 가진 생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읽었느냐, 아니냐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경쟁이 치열한 대한민국 게임 시장에서 <스타크래프트 2>에 대한 무관심의 벽을 깨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2>를 즐기는 게이머들은 e스포츠 팬들이 되기도 하고, 미래의 선수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가진 '무관심'을 깨는 데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더불어 앞으로 공개 예정인 '군단의 심장'이나 '공허의 유산'과 같은 추가 확장팩은 분명히 큰 이슈이자 관심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블리자드 측에서 <스타크래프트 2>의 확장팩에 <스타크래프트>의 '브루드 워'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가지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1998년이 아닙니다.
자. 이제 마지막 생각인 "리그 진행이 단조롭고 관심 가질 만한 스토리가 없다."에 대한 저의 생각이 남았군요. 이 건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상당히 많기에, 특별히 독립된 칼럼 한 회분을 할애하려 합니다. 지금 준비 중인 다음 칼럼, '넥스트 브랜드'(가제)에서 언급하겠습니다.
-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 자문위원 The x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