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전주역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포함해서 5명이 탔는데, 모두가 여행이 목적인 것 같다.
버스의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전주의 모습을 구경했다.
꼭 한번 오고 싶었다.
실제로 혼자 와서 보니 기분이 묘하다.
오지 못했다면 이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나는 옛것을 좋아한다.
외가에 가면 옛 장롱과 옛 부엌이 있으며, 외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도시에서는 흔히 이용할 수 없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한다.
옛것이 다른 사람들은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생각만큼 불편하지는 않다.
새우깡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5살, 밭에서 호미를 들고 흙을 고르던 모습이 어머니께서는 가장 귀여웠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나름 귀티 나는 외모로 많은 여성에게 인기가 많았으니 뭘 하든 안 귀여웠겠는가.
미안.
지금 나는 그 흔했던 초가집, 기와집에서 살았던 5살 기억 하나로 전주 한옥마을을 간다.
전동성당 정류장에 내려 걷는다.
전주에 오기 전 아이폰으로 지도를 봤고, 전주역에서 안내직원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전동성당.
군에 입대하여 훈련소에 있던 시절 기독교인 나는 종교 활동에 성당을 많이 갔었다.
교회에서는 초코파이 하나를 줬는데 성당에서는 롯데리아 불고기버거를 줘서 그런 것 같다.
내 맘속에 신앙심만 있으면 된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갔었던 나를 반성하게 한다.
성당을 보니 훈련소 있을 때 갔던 성당에서 먹었던 햄버거가 생각이 난다.
그 맛을 누가 알까?
군대 가보면 알게 될 거고 먹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억지로 가는 사람은 없겠지만, 면제인데도 불구하고 그 맛을 알기 위해 굳이 일부로 가진 않았으면 한다.
후회한다 싶을 땐 이미 늦은 후다.
‘들어갈 땐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이 말이 생각난다.
성당을 둘러본 후 가까이 있는 경기전에 들어갔다.
경기전에는 안내를 해주는 분이 있는데,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것 같아 음료수를 하나 사드렸다.
별거 아닌데 좋아해 주니 마음이 좋다.
날이 너무 덥다.
경기전으로 들어서 안내자 일행과는 반대로 걸었다.
그냥 저만치에서 보는 게 더 편하다.
경기전의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주니 살 것 같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경기전 한쪽에서는 할아버님들이 장기를 두신다.
내기 장기인 듯 고성이 오간다.
한옥마을을 한눈에 보려면 오목대로 가야 한대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의 운치가 걸음이 힘들지 않게 한다.
뜨겁게만 느껴지던 햇빛도 온화하게 느껴진다.
그렇지.
이게 여행의 참 맛이지.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면 자연과 조화로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편리한 세상에 적응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컴퓨터를 하며 인스턴트식품을 먹는 생활에 습관이 되어 있다.
'소아비만이나 운동부족 때문인 성인병에 관계된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편리한 세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 먼저 반성하게 된다.
이제 햄버거, 치킨, 피자 조금만 먹어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아니다.
결혼하면 여자 친구가 채식으로 바꿔준다고 했으니 결혼 전까지 많이 먹어둬야겠다.
정자에 앉아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옆에는 아저씨가 눈을 감고 주무신다.
‘에라 모르겠다. ‘
나도 잠이나 자자.
배낭을 베고 10분 정도 잤을까?
옆에서 주무시던 아저씨가 계시지 않는다.
정자 근처를 관광하던 외국인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민망하다.
주섬주섬 배낭을 메고 내려왔다.
휴.
하늘은 더욱더 맑기만 하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많이 걸어서 아침에 먹었던 밥이 소화될 만도 한데, 배가 고프지 않다.
전주에 와서 전주비빔밥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배에서 신호가 오지 않는다.
여행 하면 삼시세끼를 다 챙기지 않고 보통 아침-간식-저녁 이렇게 먹는 경우가 많다.
간혹 무리하게 많이 먹으면 몸이 게을러지고, 몸이 게을러지면 생각도 게을러지기 되기 때문에 조절하며 먹는 편이다.
그래도 전주까지 왔는데 비빔밥은 아니더라도 간식은 먹어야 하지 않겠어?
날은 여전히 덥지만, 간식 생각에 힘을 내 다시 걸어본다.
벤치에 앉아서 신문을 보시는 아저씨가 계신다.
“아저씨 죄송한데 말씀 좀 물을 수 있어요?”
“여행 중이여? 물어봐”
“혹시 전주에 전주비빔밥 빼고 먹을 거 뭐가 유명해요?”
“막걸리 좋아해?”
“네?”
“전주는 막걸리 먹는 데가 많어.”
“저 막걸리는 못 마시는데요?”
“남자가 막걸리도 못 마시믄 쓰나! 한번 먹어봐”
“네 고맙습니다.”
퉁명스러운 말투로 답변을 해주셨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대낮에 막걸리를 먹으라니…….
웃으며 길을 걷는다.
뭐든 보는 게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며 ‘그저 걸어보자. ‘했는데 다리가 아프다.
다리가 아파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데 ‘전북대‘가 보였다.
문득 중학교 때 친했었던 놈이 생각났다.
21살 재수를 해서 전북대에 가게 되었다고 자랑했는데 아직도 다니고 있으려나?
연락이 끊어진 게 사소한 다툼이었다.
“전북대가 더 좋아” vs "전남대가 더 낫지“
이거였다.
매우 사소한 거였구나.
미안하다 친구야. 7년 지났네.
미안하다.
난 고작 사립 C 대학인데…….
아무튼 그놈 생각이 나서 전북대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절대 여자대학생을 보기 위해 간 것은 아니다.
그래 조금은 그런 마음이 있다.
인정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물(?)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진실을 말하자면 친구가 사진 좀 담아오라고 했다.
자기는 자유가 없어서 나보고 대신 자유를 담아오라고 부탁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친구에게 11월 6일 출산예정의 속도위반을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버스에 내려 걷는다.
여자 분들이 많다.
천국인 것 같다.
사막 위의 오아시스가 여기라고 생각했다.
지상낙원이 바로 전북대다.
처음 출발할 때 편지를 하나 챙겼다.
대학 다닐 때 전공교수님이셨던, 지금은 평생지도 교수님이신 그분께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졸업 후에도 전화로 안부를 물으시고, 인생을 살면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신 교수님께 면목이 없다.
백수니까 떳떳하지 못한 걸까?
마음이 편하지 않다.
2월에 적었던 편지를 이제야 전북대 캠퍼스 안 우체국에서 보낸다.
전북대.
여기서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졸업생 주제에 몰래 도서관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거 말고, 학사편입으로 공부하고 싶어졌다.
전북대 캠퍼스 안을 누비며, “입학관리처가 어디에요?” 많은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하얀 건물 보이시죠? 거기 건너편이에요.”
“4-3 건물 찾아가시면 돼요.”
“직진하셔서 왼쪽으로 가시면 돼요.”
참 착하다.
대학생분들 정말 착했다.
전북대가 최고인 거 같다.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겐 전북대가 최고다.
여행 오길 참 잘했단 말이야.
웃으며 캠퍼스를 걷는다.
걷는 게 좋다.
다리 아파도 걷는 게 좋다.
언제 아파 보면서 여기를 걸어보겠느냐.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입학관리처에 들려서 학사편입에 대해 묻고 건물 앞 벤치에 앉아서 나의 대학생활에 대해 생각했다.
철부지였고, 벼락치기 시험공부에 급급한 한심한 대학생.
어느 샌가부터 정신을 차려 학점에 신경을 쓰고,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하면서 자신감을 가졌던 모습.
전공 F를 맞아서 교수님께 많이 불려 가고, 졸업 학점이 모자라 4학년2학기 동계 계절학기까지 들어야 했던 모습들이 지금에 와서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다.
‘아 왜 이렇게 배가 안 고프지?’
‘아침에 너무 많이 먹었나?’
‘많이 걸었는데…….’
간식 먹을 입맛도 없다.
돈도 있고 여유도 있는데 입맛이 없다니.
내가 지금 제정신인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 것 같다.
원래 전주에서 한 밤 자려고 했지만, 너무 더워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했다.
혼자 여행을 하면 의외로 할 게 없다.
경치 구경하고, 거리 구경하고, 길을 걷거나, 걷다가 쉬거나.
배고프면 밥 먹고, 간식 먹고, 힘들면 쉬고, 다른 곳 가려면 기다리고 움직이고, 이거다.
근데 이게 좋다.
일상생활에서는 짜진 시간에 움직이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쉬어야 한다.
각박한 생활 속에서 여유를 찾기는 어렵다.
전주역으로 갈까? 고속버스터미널로 갈까? 고민하면서 길을 걸었다.
표지판이 없어서 그냥 무작정 걷는다.
날씨가 더워 실성했는지도 모른다.
건널목에서 빨간불이면 앉아 있다가 녹색불로 바뀌면 일어서 또 걷는다.
‘이거 행복한 거야‘
내 주문이다.
여행하면서 힘들어도 이 주문 하나로 다 이겨낼 수 있다.
고속버스터미널 표지판이 보인다.
좌회전 하면 전주역이긴 하지만, 직진하고 싶다.
1시간 정도 걸어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승차권을 끊으려고 했다.
창구 여직원에게 “남해요“했는데 없다고 한다.
“여기 말고 다른 버스터미널 있어요?”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한다.
엄청 귀찮다는 듯한 대답.
줄 서 있는 손님도 없는데 “다음이요“ 하는 직원.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싹수없게 대답하는 직원은 처음이다.
금호고속 직원인 거 같은데, 서비스업에서 이렇게 싹수없게 대답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주변 행인에게 물어 시외버스터미널을 알 수 있었다.
10분 정도 걸어 도착했다.
창구 앞 의자에 앉아서 배낭을 보니 옆구리에 전주 지도가 있다.
‘아 XX. 지도가 있었지.’
‘아나 진짜 멍청하네. 아까도 한참 돌아왔네.’
뒤늦게 지도가 있었단 걸 망각했다.
멍청했다.
분명히 아침에 지도를 득템했는데, 지도를 안 보고 멍청하게 걷다니 이게 다 날씨 탓이다.
다시금 정신 차리고 남해 가는 버스가 있는지 살폈다.
왜 굳이 남해를 가고 싶었느냐면, 자장면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상실이 먹었던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
아쉽게도 전주에서는 남해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김해로 행선지를 바꾸기로 했지만 10분 전에 버스가 떠났다.
김해행 다음 버스는 18:20분이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여행 첫날부터 살려고 했던 전국 지도를 전주 시외터미널 안 매점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어디든 눈에 보이면 바로 가줄게. ‘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지도를 펼쳤다.
지리산이 보인다.
‘그래 산 한번 올라가 보는 거지. ‘
‘천왕봉 한번 정복해보자.’
여행을 왔으면 산 정도는 올라가 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쓴 지금은 조금 후회하고 있다.
남원 가는 버스는 많았다.
남원행 승차권을 구매하고 무작정 버스에 오른 후 버스에서 잠을 잤다.
반나절밖에 걸지 않았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진짜 피곤했다.
순식간에 남원에 도착했다.
광한루와 유적지를 보려 했지만, 몸이 쉬자고 말하는 것 같다.
17,500원짜리 배낭이 왜 싼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싼 게 비지떡이다.
어깨가 너무 아프다.
이거는 여행을 오랜만에 해서 아픈 게 아니라, 싼 게 비지떡이 맞다.
그래도 소중한 배낭이라고 생각하며 아파도 걷는다.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날도 덥고.
엄마가 보고 싶다.
더위 먹어서 정신이 나간 것 같다.
찜질방을 물어 물어서 찾았다.
이제 살 것만 같았다.
몸이 피곤한 것도 잊은 채 목욕탕 찬물에서 수영했다.
목욕하는 사람이 4명인데, 3명의 등에서 동양화를 볼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봤다.
신기했지만 조용히 2층 찜질방으로 올라갔다.
배고프다.
아까는 그렇게 배에서 신호가 없더니, 미친 듯이 배고프다고 한다.
“꼬르륵”
이건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배에서 나는 소리다.
찜질방은 나 혼자다.
식당은 있지만, 사람은 없다.
배고픔도 잊은 채 한쪽 모퉁이에서 잠을 잔다.
아침밥 4,500원
160번 버스비 1,000원
광주->전주 기차비 7,500원
키위주스 3,000원
바나나우유 1,000원
음료수 1,000원(안내원선물)
전주한옥행 버스비 1,000원
전북대행 버스비 1,000원
우표 340원
지도 4,000원
남원행 6,400원
찜질방 10,000원
포카리스웨트 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