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에겐 거인 앙그르보다에게서 얻은 세 자식이 있었다. 첫째는 펜리르, 어렸을 때는 뭔가 강아지 같기도 해서 신들이 귀엽게 여겼지만, 커 가면서 완연한 늑대의 형상으로 변했다. 하는 짓도 난폭해져가던 그, 신들은 그를 꺼림찍하게 여겼고, 오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신들을 짓누를 무렵, 오딘은 한 가지 결정을 하게 된다.
평화롭던 아스가르드의 어느 날, 그들은 펜리르에게 거대한 쇠사슬을 보여주었다.
"펜리르, 이건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강력한 사슬이다. 아무리 네가 강하다 하더라도 이건 끊지 못 할 걸?"
그렇게 신들이 그를 살살 약올리자 펜리르는 으르렁대며 그걸 자기 몸에 묶으라고 했다. 신들은 마음 속으로 웃음지었으리라.
하지만 왠걸, 펜리르는 정말 그걸 엿가락 끊듯이 끊어버렸다. 시시하드는 듯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자기 힘을 과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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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후, 신들은 더 굵은 사슬을 가지고 왔다.
"아니 그냥 거인들 처리하는데 쓸려구. 이건 너라도 못 끊을 만한 단단한 거거든?"
펜리르는 이번에도 자기 몸에 묶으라고 했고, 역시 쉽게 끊어버렸다. 신들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저번 거라면 몰라도 이번 건 정말 맘 먹고 만든 거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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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후, 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정말 들고 있기도 버거워 보일 정도로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사슬이었다. 펜리르도 이번에는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신들은 그걸 보고 신났다는 듯이 놀려댔다.
"그럼, 그럼. 아무리 너라도 이건 못 끊어. 이번엔 룬 문자까지 새겨넣었단 말이지~"
하지만 남자는 존심 -_-; 펜리르는 그 말을 듣고 자기 몸에 묶으라고 했고 신들은 쾌재를 부르며 묶었다. 한 번은 막혔다. 하지만... 펜리르의 울음소리와 함께 듣기 싫은 기이한 소리가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사슬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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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거 한 번 시작한 이상 그만둘 수도 없고, 펜리르도 슬슬 눈치를 채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 그냥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될까 하는 당연한 물음은 나오지도 않았다.
마침내 오딘의 결단이 내려졌다. 신들의 만능 무보수 하인, 드워프에게 일을 맡긴다는 거였다.
몇 일 후, 펜리르는 참으로 기이한 물건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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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펜리르. 이 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지? 봐봐. 뚝뚝 끊어지잖아. 그런데 어떤 바보들은 이것도 못 끊는다더라? 어때, 너도 한 번 해 보지 않을래?"
저것들이 뭐 하는 거냐 ㅡㅡ 는 표정으로 보던 펜리르, 하지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신들이 자기와 동생들을 싫어하는 건 쉽게 알 수 있었고, 아버지 로키조차도 자기를 거부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새 장가들면서 어머니를 아예 잊어버렸던 게 로키였다.
아무리 짐승의 형상이라지만 볼 거 충분히 보고 들을 거 충분히 들었던 그, 저 물건이 보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거부했다. 하지만 그를 놓아줄 신들이 아니었다.
"아, 이거 진짜 쉬운 거라니까? 프레이야도 하겠다. 이것도 못 하면 아스가르드에 있을 자격이나 있을까?"
그런 말들이 그의 자존심을 찔렀고, 불안감과 자존심 사이에 그는 타협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뭐? 아니 꼭 그럴 필요까지야 있나. 형 못 믿어? 형이야~"
그제야 제대로 직감한 펜리르. 그는 자신의 조건을 계속 밀어붙였다. 그걸 들어주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 그의 조건은, 자기가 그것을 묶는 대신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손을 넣고 있는다는 거였다. 아무도 그걸 못 하겠다면 분명 뭔가 있는 것이리라. 한편 신들도 난감했다. 펜리르의 무는 힘은 다들 알고 있었고, 손을 요구한다는 건 잃을 각오를 해야 되는 거였다. 양 쪽 다 더 이상 빼기는 힘들었던 상황.
이 때 나선 것이 티르, 전쟁의 신이었다. 애초에 펜리르와 가장 친했던 그였고, 이번에도 자기 말을 믿으라면서 오른손을 그의 입에 넣었다. 그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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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은 드워프들이 온 힘을 다 해 만든 마법의 물건이었다. 이 세상에는 없는 여섯 가지 재료, 고양이의 발자국 소리, 여인의 턱수염, 바위의 뿌리, 곰의 힘줄, 물고기의 원기, 새의 침으로 만든, 가늘었지만 절대 끊을 수 없는 실. 물론 아까 끊은 건 훼이크였다.
대강 대강 묶은 것 같은데도 실은 도저히 끊을 수 없었고, 펜리르는 발버둥쳤다. 신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즐겼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신이 아니라 악마로 봐도 무리가 없으리라. 펜리르는 울부짖으며 자기 입에 들어온 티르의 손을 물어뜯었다. 이렇게 티르는 오른손을 잃게 되었다.
대체 펜리르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그건 아무도 몰랐다. 오딘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따라 웃으며 그의 입에 거대한 창을 찔러넣었을 뿐이었다. 펜리르는 이렇게 입도 다물지 못 한 상태에서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어딘가에 가두어졌다.
그 이후, 아직 어린 요르문간드는 바다에 던져졌고, 헬은 스스로 저승으로 떠나 그 곳의 주인이 되었다. 신들은 그저 웃었다. 그들을 두렵게 하던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안도감이었을까? 하지만, 그건 아주 오랜 후, 공포가 되어서 그들에게 돌아올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끼어들면서 이번 일에는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던 한 사나이, 그들의 아버지 로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신들의 멸망은 이 때부터 예약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