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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06/11 17:30:33 |
Name |
kikira |
Subject |
[소설] 7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비극과 희극 |
※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따라서 순환론과 관련된 인명, 서적, 논문, 학파 등에 관련된
모든 내용은 허구이며, 혹 그 관련이 의심된다면 그것은 순전한 우연임을 알려드립니다.
일곱 번째 이야기 - 비극과 희극
「시간을 달리는 소녀」2086호는 후기 종결론계 완성본의 대표작이며 우리 집 책장에 유일하게 꽂혀있던「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이다. 발표 당시 2086호가 큰 주목을 받고 베스트셀러 완성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에는 ‘금기 위반’이란 진부하지만 강력한 전략의 힘이 컸다. 물론 2086호 이전의 모든 저자들도 자신의 해석에 따라 본래의 텍스트를 변형했고 재창조했다. 그리고 그것 역시 당시에는 엄청난 금기 위반이었고 파격이었다. 이는 미네르바 학회에서 발표한 1호가 불러온 엄청난 논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허나 그들은 모두 원 텍스트의 불필요한 훼손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금기를 또한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훼손과 변형의 차이가 발효와 부패의 구분마냥 부질없어 보였지만, 어쨌든 이때까지의 학자들에겐 원전의 아우라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불경스럽게도, 장난기어린 2086호의 저자는 본래의 텍스트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다. 2086호에는 아예 타임 리프나 텔레포테이션 따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저 가즈오, 가츠코가 보여주는 우정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따라서 2086호에선「시간을 달리는 소녀」, 본래의 내용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그저 그런 하이틴 소설이 되어버렸다. 허나 그 때문에 2086호에는 순환론 따위가 도저히 들어설 틈이 없었고 그러함으로 2086호는 종결론을 위한 궁극의 완성본이 되었다.
* * * * *
가츠코가 등장하지 않는「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 2260호. 가즈오가 정신병자로 등장하는「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 2455호. 3760년의 지구를 배경으로하는「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 2540호. 가츠코의 어머니가 타임리프를 하는「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 2634호. 이렇게 온갖 시점이 뒤바뀌고 스토리가 뒤집히며 인물들이 변형된「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들이 계속됐다.「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 2805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페이지는 본래의 텍스트와 동일했으며 그 점의 개수는 본래의 텍스트 글자 수와 동일했다.
물론 이후에도 창작은 멈추지 않았다.
허나 2086호 이후의 완성본들의 경향을 더 이상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오직 차이를!” 어디에선가 읽었으나 그 출전을 까먹은 이 캐치프레이즈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허나 그러한 차이가 가속될수록 관객들은 ‘창조론 극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2086호는 비평가와 관객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이어받은 이후의 완성본들은 적어도 관객들에겐 버림을 받았다. 다르지만 반복되는 차이. 관객들의 외면의 이유는, 이 지루한 완성본들이 결국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제 더 이상 ‘베스트셀러 완성본’는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히 독자들이 더 이상「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을 사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많은 창조론자들이 존재했기에 완성본들은 꾸준히 발표되었고 그 비평행위도 활발했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그러한 완성본들을 사보지 않아도 되었고, 따라서 결국 완성본을 '사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눈치 챈 출판업자들 또한 창조론을 떠나기 시작했고「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들은 다시 학회지를 중심으로 발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창조론의 ‘차이’는 이제 가츠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한테도 지루한 주제가 되었다. 가츠코월드에서도 역사는 이렇게 두 번 반복됐다.
2001년,「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 3000호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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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하루를 사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사는 시대의 역사는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역사라는 것은 곧 평가의 문제이고 일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객관화, 곧 거리 두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거리’가 시간과 관련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때문인지 내가 읽은 순환론에 관한 책들 중에서는 아예 창조론이 언급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 이유가 책이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님은 또한 말할 필요도 없다. 거기에 내가 가츠코월드에서 지낸 시간은 채 반년이 되지 않았다. 이래저래 변명만 늘어놓는 셈이지만, 요컨대 난 21세기의 순환론은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읽은 몇 권의 책 부록에 실려 있는 순환론 연대표에서, 2000년 이후는 하나같이 텅 비어있었다. 나는 2002년인가 하는 즈음에 창조론자들 중 하나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사실을 기억해냈다. 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노트를 뒤졌으나, 유감스럽게도 이 이상의 내용은 찾아낼 수 없었다. 어쨌든 이를 감안하더라도 21C 초는 그 어느 때 그랬던 것처럼, 순환론 논의의 휴식기였다.
보다 분명한 것은 순환론, 특히 창조론의 열기가 2008년에는 이미 차갑게 식었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순환론에 관련된 논의는 여전히 가츠코월드에 왕성했으나 그것은 풍문으로서만 그러했고, 과거처럼의 광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한 그 논의의 대부분은 과거에 대한 반성, 비판에 지나지 않았고 그러한 대부분의 대부분은 역시, 창조론을 향하고 있었다. 허나 그 비판이 아무리 온당할지라도, 비판하는 것의 극복 없는 비판은 여전히 공허하다. 21세기의 순환론 연대표에 아직까지 쓸 내용이 없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 * * * *
『순환론의 기원』(2007)은 순환론 논의와 관련해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읽고, 또한 가장 열심히 읽은 책이다. 같은 저자의『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는 내가 가츠코월드에서 순환론과 관련해 구입한 유일한 책이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우리 세계로 돌아오기 한 달 전쯤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 것은 겨우 일주일 전쯤인 듯싶었다.
따라서 이 두 권의 책은 내가 가장 생생하고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순환론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들 중, 극히 일부분만이 내 노트에 옮겨졌다. 그리고 이제, 그 나머지는 이미 망각의 강을 흐르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의 저자는 '마지막 베스트셀러 완성본’인『시간을 달리는 소녀』완성본 제 2148호(1998)를 쓴 율리스였다. 난 2148호를 직접 읽어보진 않았다. 허나 2008년에도 그의 이름은 꽤 유명했고, 아마 난 그 이름값 때문에 그의 근작,『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를 구입했을 것이다. 또한 다른 책,『순환론의 기원』의 대부분은 지난 순환론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내 노트와 부분적으론 일치했으나 부분적으론 그렇지 않았다. 나는 3권의 노트를 작성할 때 이러한 불일치 때문에 조금 불편해했다. 그러나 그동안 내 노트와 완전히 일치하는 책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외려 안심했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이, 지금 망각의 강을 헤엄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러나 그 나머지, 내가 주목하고 기록한 부분은 책의 마지막 장(chapter)이었다. 훗날, 이 책이 순환론 연대표에 기록될런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나는 그 장을 읽고 내 노트의 마지막을 이 내용으로 채워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은 율리스가 2007년에 쓴『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읽고 나서 더욱 굳어졌다.
굳이 말하자면, 또 다른 완성본에 속하는 이 책을 나는 퍽 재미있게 읽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과 단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고, 그것에 한 글자도 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8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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