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류가 병조좌랑이던 때 임진왜란이 터졌다.
당시 이경류의 둘째 형은 나라를 위해 붓을 내던지고 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조방장 변기가 전쟁에 나서면서 이경류의 둘째형을 종사관으로 삼기 위해 임금님에게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하필 이름을 잘못 써서 이경류의 이름이 올라가고 말았다.
둘째 형이 이경류에게 말했다.
[내가 전쟁에 나서야 하는데, 이름이 네 이름으로 잘못 올라갔구나. 하지만 당연히 내가 전쟁에 나가야 옳을 것이다.]
그러자 이경류가 말했다.
[이미 제 이름을 보고 임금님이 허가를 하셨으니 제가 가야합니다.]
이경류는 무구를 챙겨 어머님께 인사를 올리고 전장으로 나섰다.
하지만 변기가 영남에서 크게 패하고 죽어버려서, 장군을 잃은 진중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이경류는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 있다는 말을 듣고 혼자 말을 타고 그 곳으로 가서 윤섬, 박호와 함께 이일의 밑에서 머물렀다.
이일의 군대가 전투를 치렀으나 형세가 불리하여 진이 함락되고 윤섬과 박호도 크게 다쳤다.
이경류가 진 밖으로 나가니 시종이 말을 끌고 이경류를 기다리고 있다 흐느끼며 아뢰었다.
[주인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서둘러서 이 말을 타고 서울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경류가 웃으며 말했다.
[나라가 이렇게 위기에 처했는데 어찌 내가 죽지 않고 욕되게 살라고 하느냐?]
그리고 지필묵을 꺼내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써서 도포자락 속에 감춘 뒤, 시종에게 그것을 전하라고 시켰다.
이경류가 말을 타고 적진 가운데로 향하려고 하자, 시종은 그를 껴안고 울면서 놓아주지를 않았다.
이경류가 말했다.
[너의 정성이 갸륵하구나. 내가 네 말을 따라 서울로 돌아가겠다. 그런데 내가 지금 몹시 배가 고프니 밥을 좀 구해왔으면 좋겠구나.]
시종이 그 말을 믿고 주변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차려 돌아와보니 이경류는 이미 적진으로 향한 뒤였다.
시종은 적진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이경류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경류는 적진에서 맨손으로 왜구를 쳐 죽이다 결국 상주 북문 밖 평야에서 죽었으니, 그 때 24살이었다.
시종이 말을 끌고 서울로 돌아가니, 집안 사람들이 그제야 이경류의 죽음을 알았다.
편지를 쓴 날을 기일로 삼고 장례를 치뤘다.
시종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말 또한 먹이를 먹지 않더니 굶어 죽었다.
가족들은 이경류가 남긴 물건들을 거두어 관에 넣어 경기도 광주에 장사 지내고, 그 옆에 시종과 말의 무덤도 만들어주었다.
상주의 선비들은 제단을 지어서 이경류의 제사를 지내 주었고, 조정에서는 도승지를 추서했다.
을묘년에는 정조 임금께서 친히 충신의사단이라는 글을 써서 북평에 사당을 세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경류는 죽은 후 매일 밤 집에 왔는데, 그 목소리와 웃는 모습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았다.
부인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제나 음식을 마련하여 올리면 먹고 마시는 것이 살아 있을 때와 같았는데, 나중에 보면 음식은 그대로 있었다.
이경류는 매일 날이 저물면 왔다가 닭이 울면 문을 나섰다.
부인이 이경류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의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알 수 있다면 고향으로 모셔와 제대로 장례를 치루겠습니다.]
이경류가 슬피 울며 말했다.
[그 수많은 백골이 쌓여 있는 곳에서 어떻게 내 몸만 찾을 수 있겠소? 그냥 두는 게 더 좋을 것이오. 게다가 내 몸이 묻힌 곳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곳이오.]
죽은지 1년이 지나자 이경류는 이틀에 한 번씩 오기 시작했다.
죽은지 2년이 지나자 이경류는 말했다.
[나는 이제 오지 않을 것이오.]
그 때 이경류의 아들 제는 나이가 겨우 4살이었다.
이경류는 제를 어루만지며 탄식했다.
[이 아이는 과거에 급제하겠으나, 그 후 불행해질 것이오. 그 때가 오면 내가 다시 오겠소.]
그 말을 남긴 뒤 이경류는 사라졌는데, 그 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윽고 20여년이 흘러 광해군 때에 제가 과거에 급제하여 사당에 알현할 때, 공중에서 신참의 신고식을 하라고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이경류의 늙은 어머니가 병에 걸렸는데, 그 때가 5월 즈음이었다.
노모가 목이 말라 시종에게 말했다.
[어떻게 귤 하나만 구할 수 없을꼬? 그걸 먹으면 갈증이 싹 가실 것 같은데...]
며칠 뒤 하늘에게 이경류가 형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이 뜰에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 속에서 이경류가 귤 3개를 던지며 말했다.
[어머님께서 귤 생각을 하시기에 제가 동정호에서 귤을 얻어왔습니다. 이것을 드리면 어머님의 병이 곧 나을 것입니다.]
도암 이재가 신도비에
[공중에서 귤을 던지니 정신이 황홀하구나.] 라고 쓴 것이 바로 이 광경을 뜻하는 것이다.
이경류의 제삿날이 되면 언제나 병풍 뒤에서 밥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종가에서 제사를 지낼 때 계집종이 실수를 해서 머리카락이 들어간 적이 있었다.
제사가 끝난 뒤 바깥채에서 시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자세히 들었더니 그 소리는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시종이 사랑방에 들어가자 이경류의 목소리가 떡을 만든 계집종을 잡아오게 하고 분부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머리카락을 꺼린다. 너희는 어째서 머리카락이 있는지 잘 살피지 않았느냐? 그 죄는 매를 맞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계집종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릴 것을 명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는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감히 후손들이 이경류의 제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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