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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06/26 11:39:02 |
Name |
윤여광 |
Subject |
Fallen Road. Part 1 -1장 8화- [-Main Stream-] |
Fallen Road.
[윤여광 作]
Part 1.
1장 8화.
[-Main Stream-]
#.
“야. 너희 둘. 좀 조용히 좀 걸을 수 없냐. 귓구멍 터지겠다.”
“이 자식이 먼저 건드리잖아!”
“거 참. 별 쓸데없는 말로 흥분하고 그러시네. 벌써부터 화병이라도 걸린 건가?”
“크아악!”
“닥쳐!”
아크가 내 머릴 세차게 쥐어박고 나서야 우리 둘은 그의 소원대로 조용히 따라 걷기 시작했다. 유나의 집을 떠나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켈모리안 이 녀석은 내내 내 옆에서 걸으며 내 비위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신이 받은 고통에 대한 복수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이렇게 엉망인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이 녀석 절대 길동무로 삼고 싶지 않은 타입이다.
“그래서. 다음 목적지가 어디라고 했었죠?”
“다음 목적지는 라임턴Rymton이오. 지금부터 부지런히 걸어서 하루 정도 노숙하고 반나절 더 걷게 되면 도착할 정도의 거리니 그리 멀리 있는 마을은 아니지.”
하루 종일 걷고 노숙까지 한 후에 또 반나절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나와 켈모리안은 혀를 내둘렀다. 여태 걷기도 꽤 많이 걸었는데 이제는 좀 좋게 편한 이동 수단을 강구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온갖 잡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곧 포기해버렸다. 인케이닝의 경비대까지 지나쳐온 마당에 이 허허벌판에서 강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저 아크의 말대로 부지런히 걷는 것뿐이었다.
“거기서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을 타고 이동하는 거야?”"
"아니. 정확히는 메인 스트림으로 바로 이동하는 마차를 타는 거야. 이 가이드북에 의하면 하루에 정기적으로 시간 간격을 두고 출발하는 마차대가 있다더군. 운임만 지불한다면야 올라탈 수 있다고 하니까 그걸 타고 메인 스트림까지 이동할거야. 그렇게 되면 라임턴에서 메인 스트림까진 하루 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어. “
“그 운임이라는 거. 비싸지 않아?”
“당연히 비싸긴 하지만. 메인 스트림에 비하면 야. 그리고 우리 예산에는 편도 마차대금이 포함된 거니까. 메인 스트림을 왕복으로 끊으려면 마차대는 편도로 쓰는 수밖에 없어. 그것 때문에 우리가 별 필요도 없는 여행 자금을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거 아니냐. 좀 아깝긴 하지만 개블리에 당도해야 하는 날짜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어.”
“어라? 당신들 개블리로 간다고?”
“오오냐. 이제 곧 열릴 검투사 대회에 참가도 하고 구경도 할 겸 떠나시는 몸들이시다.”
“보나마나 당신이 구경꾼이겠구먼. 형님 쪽이 참가하시는걸 테고.”
“뭐야?”
우리가 힘들게 지나온 인케이닝이 위치한 북서 지방에서부터 줄기가 시작되어 대륙의 중심을 대각선으로 관통하여 흐르는 라젯Razet강은 연합국의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된 공사 중 하나인 운하 사업이 마무리 되면서 그 이름을 메인 스트림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전체적인 물길을 수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여 대규모 운수 선박과 수도 및 주요 도시를 관광하기 위한 여행객들을 위한 꽤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은 그것은 강제적으로 물살을 조절하여 비교적 정확하고 고정된 시간으로 운송 기간이 정해지게 되었고 기상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강폭의 반을 나누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물살을 고정시키기 위해 꽤나 비싼 마법 장비들이 이웃 나라 코르사크에서 수입이 됐다고 들었다. 그들과의 분쟁은 바로 이 장비들을 수입해오는 규정에서 시작되었고 다행히도 대륙 남쪽에 위치한 중립국 저그Zerg의 중재를 통해 사라지게 됐다. 코르사크와의 수입 규정을 성실히 잘 이행하고 있던 연합국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트집이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발전시켜 선전포고까지 준비하며 대륙 최강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그들을 삼켜버리려고까지 했었으나 코르사크마저 삼켜버린 연합국이 자신들의 나라마저 침공하리라 예상한 저그의 적극적인 중재로 정말 천만 다행히도 연합국의 변방국가에 대한 ‘탄압’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사연 많은 이 메인 스트림은 코르사크와의 분쟁이 정리되고 장비들의 수입이 다시 이뤄지면서 빠른 속도로 완성되었다.
사실 코르사크의 앙탈(?)은 주된 권력을 쥐고 있는 강경보수 진영의 마법사들이 그들의 역사와 혼이 담긴 재산을 돈 몇 푼에 동맹국이라고는 하나 그 진의를 알 수 없는 시커멓게 속이 보이지 않는 연합국에 팔아넘긴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일어난 내분의 일종이었다. 그들은 연합국의 건국 과정 이후부터 계속해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았고 언제 삼켜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 자물쇠를 더욱 더 견고히 채워갔다. 그러다 일부 개혁 중신들이 한 시대의 흐름을 잡으며 연합국과의 교류를 시도했고 그것의 한 일환이 메인 스트림의 공사에 들어가는 마법 장비들의 수출이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힘을 되찾은 보수파들의 움직임에 막혀버렸고 그들은 연합국에 그 동안 수입했던 모든 장비들의 반환을 요구해왔다. 말도 안 되는 억지 같은 코르사크의 요구에 연합국은 절호의 기회를 잡은 듯이 사냥감으로부터 더욱 더 몸을 숨기는 맹수와 같이 교묘한 움직임으로 그들을 약 올리기 시작했고 결국 코르사크는 연합국의 선전 포고에 대비하여 정규군을 정비하고 출정 준비까지 마치는 상태까지 가게 됐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부터 연합국의 뻔 한 승리를 예상한 중립국 저그의 중재가 시작됐고 두 나라 사이의 극한 대립은 마치 눈이 뜨거운 태양빛 아래 녹아 사라지듯 순식간에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이것에 대해 여러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는데 이 사건에 연루된 세 나라 중 어느 한 곳에서도 이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다. 다만 연합국은 저그의 중재 능력에 대한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코르사크 또한 또 다시 한 번 흐름을 쥐고 넘어온 혁신 개혁파들의-아마도 저그의 힘을 빌려 보수파들의 주요 인물을 암살했을 거라는 설이 지배적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어떤 심증도 물증도 없었다.-연이은 사과문 발표뿐이었다. 메인 스트림의 힘찬 물줄기와 같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피로 물들일 뻔 했던 그 사건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갔고 최근 들어 새로 출간되는 역사서에는 슬슬 그에 대한 언급을 삭제한 채 발매되는 것 또한 적지 않았다. 평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훗샌드린 대륙의 세 나라의 외침을 뒷받침하려는 듯이 말이다.
“켈모리안. 당신은 어디까지 우리와 동행할 생각이오.”
“글쎄올시다. 뭐 다음 마을까지만 동행하기로 하죠 뭐. 얘기를 듣자 하니 검투사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수도로 향하는 거라면 꽤 시간이 촉박 할 텐데 난 좀 여유 있게 이동하고 싶거든. 더욱이 마차대에 몸을 실을 돈도 지금은 없고 말이야.”
“그렇군. 그럼 라임턴까지 동행하는 걸로 알고.”
“그 쪽 형님은 조용조용하니 얘기가 좀 되는 거 같아서 좋군요. 이 쪽 무식한 양반은 그저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 이거 원.”
“형! 이것 봐! 이 자식이 먼저 시비를 건다니까!”
뻔히 보이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아크가 켈모리안에게 덤벼들지 못하는 이유는 유나의 집에서 부린 행패덕분이었다. 다행히 기분 좋게 넘어간 듯 한 가혹 행위에 대한 켈모리안의 언급이 아직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 동행하게 되는 그 길까지 그 이야기가 튀어나지오지 않게 하기 위해선 그의 기분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린 듯 했다. 아크는 보기와는 다르게 가끔 이렇게 소심하게 군다.
“그건 그렇고. 왜 유나씨는 경비대에게 자기 얘길 하지 말아달라고 했을까.”
“흐음. 뭐 사정이 있겠지.”
“아니 뭐 지명수배되서 쫒기는 입장이 아니고서야 굳이 경비대에 존재가 드러나는걸 경계했을 리가 없잖아. 조금은 부자연스러운걸.”
“됐다 됐어. 이미 지나쳐온 지 오랜데 뭘 아직도 그런걸 생각하고 있냐.”
"꽤 피곤한 성격이로구만. “
“미안하다. 피곤한 놈이라서.”
켈모리안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유나의 집에서 떠나오면서 우리는 그녀에게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산을 내려가 경비 초소를 지나치게 되면서 혹시나 모를 경비대의 마을 내 거주자에 대한 물음에 모른다는 말로 대답해주길 부탁해왔다. 이런 저런 사정이 있으나 법에 위반되는 일은 아니라며 묘한 미소를 보이던 그녀는 곧 자신도 마을을 떠나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계획을 이제는 실행해야 할 시간이라며 없는 사람을 있다고 보고받게 되면 난감한 상황이 생길수도 있으니 모른 척 해달라는 말이었다. 분명 무언가 숨기는 일이 노골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말과 모습에서 그것에 대해 겸손한 자세로 자세히 알고 싶었던 나는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하던 아크와 굳이 알아서 뭐에 쓰려고 하냐고 묻는 켈모리안 덕분에 그대로 그녀의 집에서 빠져나와야했다. 결국 마녀에 대해 알아낸 사실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일개 경비대원이라고는 하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밖으로 퍼지기 않길 원했던 본인의 요청 때문에 나는 수고하라는 말 외엔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마녀…….라.”
어차피 돌아오는 길에도 다시 지나야 하는 인케이닝의 희미해지는 봉우리를 잠시 쳐다보다 꼭 한 번 조사해봐야지 하는 탐구 정신을 되새기며 등을 돌렸다. 뭐. 그것도 돌아오는 길에 체력적인 여유가 허락됐을 때의 이야기다. 아직 여정의 반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훗날의 일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생각하는 일은 조금이라도 더 걸어야 하는 우리 일행들에겐 사치와 다를 바 없었다.
#
“자식. 잘도 자네.”
“그러게.”
우리가 노숙을 하기 위해 자리 잡은 곳은 라임튼으로 향하는 북서로의 끝부분이었다. 나와 켈모리안의 끊임없는 투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귓구멍을 틀어막은 채 묵묵히 걷기를 계속하다가 라임튼까지의 대략적인 거리를 나타내는 표지판을 지나고 안전한 노숙을 보장한다는 북서로 순찰대의 사인을 보고 나서야 그 마저도 조금 더 걸어 들어간 이름 모를 숲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탁 트인 곳에서의 노숙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나. 기척을 쉽게 느낄 수 있고 한 방향이라도 막힌 곳에서 쉬는 것이 혹시나 모를 몬스터나 강도들의 공격으로부터 수비가 용이하다는 굳은 신념 덕분이었다. 자리를 잡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켈모리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렇게 불편한 자리에선 잠자기 힘들다며 투정부릴 땐 언제고 참 잘도 잔다.
“형.”
“응?”
“정말 개블리로 가면. 아저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글쎄다.”
벌써 10년 전의 이야기다. 국경의 촌동네인 오즈에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나타나 나와 아크에게 검술을 전수한다는 핑계로 떠돌이라고 소개했던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7년이나 우리 곁에 머무르다 찾아왔던 그 날과 같이 떠나는 날마저 갑작스러웠던 그. 사실 우리가 개블리로 향하는 이유는 아크의 검투사 대회 참가도 있지만 그를 만나기 위한 명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어. 그냥 무작정 수도의 개블리로 오라니. 기한을 정해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게 말이다. 그 양반도 참 생각해보면 대책 없지. 최소한 훗날을 기약하려면 몇 년 후 정도는 얘기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이렇게 무작정 찾아가는 우리도 대책 없기는 만만치 않지.”
“후후. 그런가.”
언젠가 나를 만나고 싶은 날이 오거든 수도의 개블리로 찾아와라. 오기만 한다면 내가 먼저 너희들을 찾을 것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나며 남긴 유일한 말 한 마디. 잘 가라는 인사 한 마디 못한 채 우리는 검술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그는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재회의 약속을 남긴 채 아침 공기가 참 차가웠던 어느 아침 그렇게 모습을 감췄다. 그나마 나는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형보다는 적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크 한 명만을 동행인으로 삼아 3달 정도 유량을 떠났었다.
“형.”
“왜 또.”
“그 때. 오즈를 잠시 떠났을 때 말이야. 어땠어?”
“어땠냐…….라니?”
“음. 그러니까 어딜 다녀오고 무슨 일이 있었고. 생각해보니까 나 형이랑 아저씨한테 그 때 일을 물어본 적이 없네.”
사실 그 땐 얘기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데리고 갈 것이면 나도 함께 데리고 갈 것이지 나는 아직 미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아크 한 명만을 데리고 잠시 바람 좀 쐬고 돌아오겠다며 집을 나간 게 3개월이나 걸렸다. 걱정은 걱정 나름대로 되고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에 우울하기도 했으며 데려가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잔뜩 심통이 나 있었다. 잘 있었냐며 집으로 돌아온 그 둘에게 나는 어떤 일이 있었냐고 묻기보단 그들이 나와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애썼다.
“흠. 잘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작은 용병대에 합류했었지.”
“용병대?”
“응. 무슨 마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블린 무리 때문에 꽤나 고생하던 마을이었는데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모아서 용병단을 고용했었던 모양이야. 실전 경험도 쌓고 돈도 벌자는 식으로 억지로 날 그 무리에 끼어 넣더니 막상 자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더라고. 그 땐 좀 화가 많이 났지. 이 자식이 날 죽이려고 작정을 했나 싶어서 말이야.”
“어때? 실전이라는 건?”
“무서워.”
“무서워?”
“응. 그렇게 밖에 말을 못하겠네. 비록 상대가 사람이 아닌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내 칼부림 한 번에 온 몸 가득 튀기는 피의 느낌은…….어우 소름 돋는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아크가 나를 압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런 것 때문이었다. 사람을 향해 휘두르는 검은 아니었으나 그는 명백히 목숨을 건 실전의 현장에서 호흡했던 경험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나와 비교하자면 월등한 침착함을 갖고 있었다. 부러웠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 하나가 부러워 당장 집을 뛰쳐나가 깊은 산 속 어딘가를 헤매는 고블린 한 마리를 다짜고짜 사냥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이번 검투사 대회는. 내 한계를 보고 싶어서 가는 거야.”
“한계?”
“응. 너도 그렇지만. 우린 아직 타인에게 검을 들이대본 적이 없잖아.”
“응. 그렇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걸.”
“나한테 검이라는 건 그렇더라. 잡으면 잡을수록.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강해지고 싶다. 내가 강해지는걸 확인해보고 싶다. 뭐.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만. 대륙의 나오라하는 강자들이 모두 모이는 대회잖아.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않겠어?”
“으응…….”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크는 나에게 함께 출전할 것을 권유했다.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닌 순수한 검술 겨루기 대회인 만큼 겁먹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달랐다. 아직까지 검을 맞대본 상대라고는 아크와 푼수 같은 스승 단 두 사람뿐이었기에. 다른 사람과 검을 겨룬다는 사실은 자칫 내가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혹은 내가 죽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마음의 결단을 내릴 수 없게 가로막았다. 내개 유일하게 마음 놓고 검을 맞대는 아크에게선 그런 두려움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최소한 그와의 단순한 대련으로 죽거나 다칠 일은 없을 테니까.
“너도 도착해서 마음이 바뀐다면야 참가 신청 하도록 해. 혹시나 해서 네 참가비용까진 여유 만들어놨으니까.”
“됐어. 그 돈으로 수도 도착하면 좋은 방이나 좀 얻자. 아이고, 허리야.”
“싱겁긴.”
“근데 진짜 만날 수 있으려나. 그 인간.”
“인간이 뭐냐 인간이…….”
“그럼 뭐라고 불러. 이제 와서 애정이라도 담아서 스승님 이렇게 부를까.”
그게 다 장난이고 반가운 마음의 표시인 것을 아마 그는 알 것이다. 그가 나에게 똑같이 한다고 해도 나 역시 그 의도를 대강은 알고 있다. 가끔 아크가 혼자 잘 이해하지 못해서 탈이긴 하지만.
“형 만약에 입상권에 올라가게 되면. 그 땐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다니?”
“수도 경비대로 들어갈거냐구.”
“흐음. 글쎄.”
태어나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시골마을 오즈. 수도 경비대에 지원한다는 말은 그 정든 땅을 떠난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나야 그 마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기억이 이어져 있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그 곳에서 살아왔으니 별 반 다른 사정은 아니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일상 그리고 익숙한 사람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긴 하나 그것마저도 참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망설여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모든 것들에 갑작스레 이별을 고하는 것은 참 괴롭고 힘든 일이 될 것이 뻔 하기 때문에.
“설마 내가 입상권까지 가겠냐. 욕심 낼 실력이나 되려나 모르겠다.”
“어라. 왜 그러셔. 벌써부터 자신감 상실이신가?”
"그렇다기보단. 갑자기 생각해보려니까 감이 안 잡히네. “
“뒷일은 아무 것도 생각 안하고 그냥 형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만 테스트 해보려고 생각한 거야?”
“그렇지 뭐.”
“테스트치곤 참 비싼 테스트네.”
“뭐. 그럴지도. 하하.”
“속좋게 웃지만 말고 한 번 생각 좀 해봐.”
어떤 결과를 선물 받게 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아크의 편안한 웃음을 보며 나 역시 그와 함께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뭐라고 더 강요할 문제가 아닌 듯싶었다. 본인이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강요할 성질의 문제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나로서도 입상 따위 아무 관계없는 남들 얘기가 되는 것이 편했다. 정말 혹시라도 아크가 수도에 남게 될 때에는. 오즈로 돌아가게 될 나는 혼자가 될 테니까.
“아 참. 유나씨가 너한테 한 말 말인데.”
“응? 아아. 그거? 내 주변에 마나 흐름이 어쩌고저쩌고?”
“응. 난 그게 좀 신경 쓰이는데.”
흘러들은 얕은 지식으로 생각해보자면 마나는 절대 순수한 물리적인 힘으로는 움직여지거나 구현되지 않는다. 마나의 구성을 이해하고 룬어를 읽어낼 수 있는 과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가 떠나기 전, 유나는 나에게 묘한 말을 남겼다.
“요르씨는…….혹시. 마나에 대해서 배워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불쑥 찾아와서는 막무가내로 우리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떠난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아크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나는 평생 조용히 책이나 뒤져보며 사는 조용하고 심심한 인간으로 살았을 것이다. 마나를 접하고 배울 기회 따위 그 조용하고 조용한 촌구석 오즈에서는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로는 아크와 내가 대련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와중에 내 주변의 마나들이 심하게 흐트러져 있는 것을 느꼈단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는 않으나 분명 균형 잡힌 마나의 배열이 내 주변은 유독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말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나와 아크는 대강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으로 그 때의 대화를 마무리 짓긴 했으나 아크의 말을 듣고 이제와 생각해보니 조금은 신경 쓰이는 듯 했다.
“유나씨의 말대로라면 그건 너한테 마법사의 소질이 있다는 말 아니냐?”
“에이. 설마. 내가 그런 고등적인 학문에 소질이 있을 리가 없어. 책 읽는 거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쪽으로 소질이 생길 거라면 연합국이 왜 마법사 부족으로 허덕이겠어.”
“수도에 가서 한 번 감정을 받아보는게 어때.”
본인이 마법사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혹은 전문적으로 마법사를 육성해내는 학원의 입학 필요 문서로 삼기 위해 연합국에서는 대상인에 대한 능력을 감별해 내는 일종의 감별단을 구성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행사를 열었다. 애초에 마법사라는 분류의 인재가 크게 부족한 연합국에서 감별단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큰 인사 차출이었기 때문에 대륙의 3/4를 차지하는 국토의 곳곳에 파견할 정도로는 구성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힘든 여정을 거쳐 수도까지 와서는 마나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아 그 자리에서 좌절해버리는 사람들도 많다던 기록이 기억나 본래 목적이야 아니었지만 혹시나 받게 됐을 때 부적격자라는 판정을 받고 나서 찾아올 실망감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불필요한 여정에서 스스로 자초한 그런 감정 따위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됐어. 됐어. 난 아직 검술도 한참 멀었고. 마법 같은 건 흥미 생기지도 않아. 형도 알잖아. 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해서 매달리는 거. 검술과 마법을 동시에 배울 생각 따위 없어. 검술을 그만두고 마법을 배우는 일 따윈 더더욱 관심 없고.”
“하하.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무엇보다. 아직 형한테 한 번도 못 이겼잖아. 다른 일을 생각해보는 건. 형한테서 이기고 난 뒤에 찾아봐도 늦지 않아.”
“되겠어? 나한테 이기는 게?”
“얼마 안 걸려. 긴장하고 있으라고!”
내가 기세 좋게 주먹에 힘을 주며 말하자 아크는 피식 웃으면서도 기분 좋다는 듯 뒤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아크. 검술을 배우고 같이 수련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단 한 번도 형에게서 이겨본 적이 없다. 기본적인 신체조건 혹은 검술에 대한 이해. 어떤 조건을 생각해봐도 그 만큼 많은 날을 대련해왔다면 한 번쯤은 이겨보는 날도 있었을 텐데. 참 한심하게도 나에겐 아직 그런 역사적인 날이 찾아오질 않고 있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1차적인 목표를 대련에서 아크를 이기는 것이었고 그것이 내 검술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어느새 내 작은 목표가 되어버린 형을 생각하며 별 도움 안 되는 이미지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강해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아크는 어느새 내게 꼭 이겨보고 싶은, 이미 강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부끄러워 할 일말의 빈틈도 없었기 때문에 아크의 검술에 대한 내 동경은 진심이었다. 같은 수련. 같은 시간. 그리고 하루에 몇 번이고 맞붙는 대련. 이길 수 있다. 이길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중얼거리면서 등 뒤 높게 자란 나무에 등을 기댔다. 그대로 땅바닥에 누운 아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하게 코를 골며 잠들어버렸고 나 역시 지루한 이미지 트레이닝 따위 그만둔 채 이 지대는 안전을 보장한다는 북서로 순찰대의 안내표지판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조금은 밤공기가 차갑긴 했지만 잠을 재촉하는 적당한 한기에 오히려 더 편히 눈이 감기는 기분 좋은 밤이었다.
* 박진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8-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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