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처리함이 쉽지가 않은게,
아이를 본 사람도, 데려간 사람도 많지만 말이 다 조금씩 다르고
신뢰할만한 증언은 오직 6살 여자아이 옥가이의 것 뿐이라는 겁니다.
생모라 자칭하는 중덕은 아이를 '지난해 9월에 잃어버렸다' 했습니다.
그런데 한덕은 '이달 초 10일(1월 10일)께 얻었다가, 주인의 꾸지름으로 다음날에 버렸다.' 하였습니다.
그 사이의 기간이 5개월이나 됩니다.
중종은 먼저 생모가 버린 기간과 한덕이 데려갔던 5개월의 공백에
가장 먼저 의구심이 생겨 아이에게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보라 전교합니다.
또한, 이 사건의 포인트는 언제 발이 잘렸는가..로 생각하고,
아이를 데려갔던 사람이 한 명이 아니니
데려갔을 때 만약 발이 잘렸다면 발이 잘린 걸 모를리가 없을테니 그 시점을 아는 게 사건의 핵심이라 판단하지요.
그렇기에 한덕이 아이를 버리고 뒤이어 데려갔던 귀덕을 추문하게 합니다.
'만약 아이의 발이 잘려있었다면 이 아이를 어디에 쓰려고 데리고 갔는가.'
그리고 귀덕을 아이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사람이 네 발을 자른 게 아니냐. 이 사람이 정말 너를 데리고 갔었느냐.'
라고 묻게 명합니다.
자.. 이제 지의금부사 유보와 동의금부사 심언경의 보고가 올라옵니다.
그 내용을 대충 정리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재구성해보겠습니다.
한덕을 데리고 아이에게 가서 '누가 네 발을 잘랐는가.' 하니
아이는 '한덕이다' 하였습니다.
한덕과 중덕을 앉혀놓고 다시 '어느 사람이 네 발을 잘랐는가.' 하고 물으니
아이는 한덕을 가리켰습니다.
무엇으로 잘랐는가. 하고 물으니 '칼이다.' 하였고
어디에서 잘랐는가. 하니 '방안에서 잘랐다. 하며,
언제 잘랐는가 물으니 '낮에 잘랐다. 두 손을 묶고 솜으로 입을 막았다.'
하였습니다.
아이의 증언으로 봤을 땐 한덕이 한 짓이 틀림없어서,
한덕을 추문할 준비를 다 마치고 임금에게 추문할 승인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덕의 진술에 의하면
'지난 정월 초 10일(1월 10일) 길에 버려진 아이를 보고
주인집으로 데리고 왔더니 주인은 꾸짖었으므로 곧 버렸다.
그런데 대궐에서 쫓겨나 이웃에 사는 수은이란 사람이 데리고 갔고,
그 뒤에는 손금이 데리고 갔다.' 하였습니다.
문제는 수은의 진술서에서 노비 영대가 여자아이를 업고 왔는데,
두 발이 동상에 걸렸고 형체도 더러워 곧 버리라고 하였고,
손금의 진술서에서는 '지난 정월에 여자 아이가 두 발이 동상에 걸려
검게 부어오른 채 울고 있으므로 주인집에 데리고 왔다.
그러나 주인이 꾸짖으므로 곧 버렸는데, 그 뒤 무녀 귀덕이 데리고 갔다.'
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이 증언에 따르면 한덕이 버리고 수은과 손금이 데리고 갔다가 다시 버렸었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동상이 심하게 걸리긴 했지만 아이에게 분명 두 발이 있었던 겁니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에 아이를 데려갔던 귀덕의 증언입니다.
무녀(巫女) 귀덕의 진술서에 의하면
'정월 27일(1월 27일) 어린아이가 두 발이 동상에 걸려 있으므로 데리고 집으로 왔는데,
이달 초5일(2월 5일)에 발 하나가 동상으로 빠졌고 초 8일(2월 8일)에는 또 다른 발이 동상에 빠졌다.
자질금과 을비 등이 이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동상에 의해 발이 빠진 목격자로 지목된 자질금은,
'무녀 귀덕이 정말 아이를 데리고 와 살렸는데, 그 때는 두 발이 완전하였지만,
두 발이 빠졌을 때는 보지 못했다. 고 하였고
을비는, '정월 26~27(1월 26일)께 귀덕이 두 발이 동상에 걸린 아이를 살리려는 것을 보았지만,
발이 빠졌을 때는 보지 못했다' 고 귀덕이 아이를 살린 건 맞는데 동상으로 발이 빠진 것 자체는 보지 못했다고
귀덕의 증언을 동의하면서도 발이 빠진 걸 보지는 못했다고 증언합니다.
지금까지 증언에 의하면, 귀덕이 처음에는 아이의 발이 빠졌을 때 자질금과 을비 등이 보았다 진술했지만
두 목격자 다 귀덕이 아이를 살린 걸 보았지만, 발이 빠졌을 때는 보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단서가 서로 어긋난 것을 보아 귀덕이 강력한 용의자고 오히려 한덕은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 풀어줘야하는데,
문제는 아이는 분명 한덕이 잘랐다 하니 그럴 수도 없는 아주 어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모든 정황 증거는 귀덕이 자른 게 가장 유력해보이는데,
가장 확실한 증언자이자 피해자인 6살 아이는 한덕을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용의자 중 하나인 귀덕을 아이에게 데려가 질문합니다.
네가 이 사람을 아는가? 물으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발을 자른 자가 이 사람인가? 물으니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너를 살렸는가?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고,
이 사람이 너를 데리고 갔을 때 네 발이 잘린 채였는가? 하니 '아니다' 하였습니다.
그럼 그 전에 아이를 버린 한덕이 발을 자르지 않은 게 정황상 분명합니다.
또 다른 손금, 자질금, 수은, 을비 등의 증언을 보아도 한덕은 혐의가 없는 게 맞습니다.
다만, 피해자인 여자아이가 분명 한덕이 발을 잘랐다한다는 게 문제이지요.
아이의 증언을 보아선 한덕을 추문하는 게 당연하지만, 4~5세의 미욱한 아이의 말만 믿고,
한덕을 고문하여 신문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에 의금부사는 율법에도 '80세 이후와 10세 이전 사람의 말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였고, 귀덕이 아이의 발이 잘리지 않았을 때 데리고 간 것은 명백하니,
아이의 증언이 있다 하더라도 한덕이 발을 자르지 않은 건 이로써 분별할 수 있다 합니다.
사건이 이렇게 모호하니 한덕과 귀덕 중 대체 누구를 추문해야하며,
자신들은 도저히 이 사건을 참작하여 조처하지 못하겠다고 임금에게 의견을 전합니다.
보고를 받은 중종은 사건의 핵심은 여전히 아이의 증언에 있다 판단합니다.
80세 이후와 10세 이전의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못된다 한 말은 옳지만,
다른 사람을 아이에게 보이며 '이 사람이 네 발을 잘랐는가?' 하면 모두 '아니다'하는데,
오직 한덕을 보이면 한덕이 자신의 발을 잘랐다 하니,
아이가 무슨 귀덕과 한덕에게 애증(愛憎)이 있어서 그런 말을 했겠느냐고 합니다.
단지 그 얼굴을 보고서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니 법률이 10세 이하의 아이의 증언을
무조건 신뢰하지 말라 하더라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하지요.
그리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발이 아이의 증언처럼 칼에 의해 잘린 것인지,
귀덕의 증언처럼 동상에 의해 저절로 빠진 것인지 아는 것이기에 거기에 대해 자세히 살피고 조사하게 명합니다.
다음날 2월 21일 중종은
'발을 자르는 것은 잔혹한 것으로 세상에 드문 일이다. 백성을 구휼하는 정사 중에서 가장 먼저할 일로
이같은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다. 해조에게 적절히 마련하여 음식물을 제급하게 하라.
그리고 아이의 일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에 김귀성의 집에서 잘 보호하게 하였는데,
지금은 중덕이 어미인 것이 밝혀졌으니 그 아이를 어미에게 돌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발이 동상으로 빠진 것인지,
칼로 자른 것인지를 자세히 살피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의술에 능통한 의원과 한성부 낭관에게
다시 살피고 검사하게 할 것을 금부에 이르라' 고 전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