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경연에서 당연히 창원군의 처벌을 어떻게 해야하나에 대해
주된 논의가 또 이루어집니다.
집의(사헌부 종3품) 이칙이 아뢰기를,
'친족을 친애함은 은혜로 이루어지고, 은혜를 행함은 의리로 이루어지는데,
은혜에만 치우치면 의리를 해치고, 의리에만 치우치면 은혜를 상함으로,
반드시 은혜와 의리를 겸해야 돈목(정이 두텁고 화목함)의 도(道)가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창원군은 지금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임금에 대한 불경죄를 저질렀으니,
신하의 죄로서 무엇이 이보다 크겠습니까.
전하께서 친족을 친애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첩만 거두시면,
다른 날에 더 큰 죄를 범할 경우 그건 우연이라 보기 힘든 것입니다.
모름지기 창원군을 멀리 부처(유배)하소서.' 하고,
사간(임금의 잘못을 논박하는 것이 임무인 종3품 벼슬) 경준이 말하기를,
'자꾸 회남왕의 일을 인용하여 비유하는데, 그건 이와 똑같지 않은 사건입니다.
창원군의 죄가 중하니 법에 의거하여 죄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며 창원군을 유배보내야한다 합니다.
성종이 이에 다른 이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영사 심회, 동지사 서거정 등 역시
창원군의 죄가 가볍지 않으니 외방에 부처하는 게 적당하다 고하지요.
친족이라 보호해주고 싶은 성종의 마음과 별개로 주위 대부분 신하들은
창원군에게 법의 지엄함을 보여야한다는 쪽으로 몰리게 됩니다.
성종은 '내가 다시 헤아려보겠다.' 하곤 경연을 파합니다.
성종이 자꾸 창원군을 보호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자,
월산 대군(성종의 친형) 이정 등이 모든 종친을 데리고 고하기를
'(익녕군이 종의 불알을 까 외방에 부처된 것을 언급하며), 창원군의 죄는 그보다 훨씬 더 중합니다.
모름지기 외방에 부처하시옵소서' 합니다.
이에 성종이 대답하길,
'왕자(王子)의 죄로서 직첩(관직 임명장)만 빼앗아도 족한데, 귀양까지 보내야하겠는가.
익녕군은 세종의 친아우이나 창원군은 나에게 삼촌뻘에 해당하니 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하니 월산 대군 등이 다시 아뢰기를,
'임금과 신하 사이에 존속을 따질 수 있습니까. 부처하시옵소서.'
이날 또한 의정부에서도 사헌부 이계손, 사간원 김자정 등도 유배보내는 것이 맞다며
상소를 올리고 의견을 고합니다.
신하들 뿐 아니라 성종의 친형, 주위 모든 신하들이
창원군에 대해 중벌을 내리도록 압박합니다.
비록 왕이지만, 종친부터 신하까지 모두 저렇게 한 목소리이니 참 버틸 수가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일단 성종은 창원군에 대한 일은 유보하고, 창원군의 노비들에 대한 처벌만 완화합니다.
노비들은 자신이 여인을 죽이려해서 죽인 게 아니라 창원군이 시킨 것을 따른 것일 뿐이니,
처벌을 완화하는 게 맞다고하며, 일단 노비들은 처벌을 감형해줍니다.
이렇게 신하들은 창원군을 유배보내야한다 주장하고
성종은 창원군을 감싸주려고 하는 성종의 입장이 팽팽히 맞섭니다.
하지만 창원군을 깜싸주기엔 그 죄가 너무 중하니 성종으로서도 한계에 직면하지요.
그러자 성종은 사건에 대한 처리 흐름을 조금 비틀고자 합니다.
증거도 증언도 확실해보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찝찝했던 살해당한 고읍지라는 여인의 신상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 창원군도 고읍지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고요.
이에 성종은 사안이 중대하니 사건의 처리함을 확실히 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고읍지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처벌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고
그러니 창원군에 대한 신문을 자신이 직접하는 게 어떠하냐라고 주위에 묻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이 재판을 직접 담당해 이 사건을 밑바닥부터 처리해보겠다는 거지요.
이에 당연히 신하들은 난리가 납니다.
이를 구실로 창원군의 죄를 감해주려는 성종의 속셈을 모를리가 없을테니까요.
이에 월산대군은
'고읍지의 출처를 아는 유일한 인물이 박귀남인데, 박귀남이 이미 사망한 상태라
더이상 물을 곳이 없습니다.' 라며 성종에 의도에 반대합니다.
밀성군 이침 역시 '이는 종묘사직과 관련된 일이 아니기에 임금이 직접 추문하는 건 옳지 않으며,
박귀남 역시 죽었으니 더이상 물을 곳도 없다. 불가합니다.' 합니다.
이외 정찬손, 윤필상, 홍응, 정효상 등 모든 인물이 임금의 직접 추문은 안 된다고 하니
성종은 참으로 답답한 상황... 이에 내일 경연에서 다시 이야기하겠다고 하지요.
다음 날 아침 정사를 보면서 성종이 묻기를
'창원군이 아직 자신의 죄에 대해 승복하지 않고 있고,
그런 상태이니 억지로 죄를 주는 건 맞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내가 친히 물은 후 죄를 정하고자 하니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한명회 등이 한 마디로
'불가합니다.' 라고 딱 잘라 선을 긋습니다.
결국 창원군에 대한 직접 추문은 포기하고 사건에 관련된 사람을 추국하려하니
주위 신하들은 이마저도 반대합니다.
신준, 박숙진은
'신들로 하여금 묻게하면, 이 또한 성상께서 직접 물으시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고 자신들을 시켜 물으라 말하고,
손수효, 손비장도 말하기를
'재판 판결이 잘못되거나 미진한 곳이 있으면 다시 의금부로 회부를 해야하지,
이런식으로 마무리 단계의 사건을 무마하려고 들어선 안 된다'고 반대합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된다 안 된다 기를 쓰고 반대하는 신하들의 의견에
결국 폭발해 버린 성종.
'내가 재판 결과를 의심하는 게 아니다.
다만 창원군이 억울하다고 말하므로 조금이라도 미진함이 있는데,
증거에만 의거해서 죄를 정한다면 불가하거니와
내가 유감이 없게 하면 창원군도 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경들은 어찌하여 고집하기를 이와 같이 하는가?
임금이 조그마한 일에 너무 살펴서는 안 되겠으나,
이 일은 가볍지 않음으로 내가 친히 묻고자 하는 것이다.
만일 경들의 말과 같다면 한 나라의 일은 다 관아에 회부하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맞다는 건가?'
사건의 미진함을 근거로 창원군에 대한 죄를 줄여주고자 하는 성종과
그 의도를 알고 어떤 식으로든 반대하려는 주위 신하들.
이미 이 사건의 흐름은 더이상 살인 사건이 중심이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성종과 신하들의 줄다리기 싸움이 되어가고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