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불멸의 게이머
00 프롤로그 - <미러 이미지>를 격파하라. (1)
악마 리플렉션은 생각했다.
이번 대회 우승은 최고의 미남이며 최강의 스킬을 가진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에겐 나름대로 긴 인고의 세월도 있었다.
이번 스킬을 익히기 위해서 악마라는 자신의 본분에 망각한 체 꾸준한 노력을 했고
그 때문에 악마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력의 가치’라든지 ‘고진감래의 미덕’ 같은 건전한 사상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기다림은 끝이다. 승리를 쓸어 담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이거 완전 사기 아냐?”
악마의 입에서 이렇게 인간적인 멘트가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방금 리플렉션과 경기한 악마 구아바의 입에서 바로 그 흔치 않은 말이 나왔다.
구아바는 억울했다.
유닛의 겉모습을 바꿔치기 하는 자신의 화려한 스킬을 시전하기도 전에 게임에서 져버렸다.
“설득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 패자들은 항상 변명을 하지”
승자인 리플렉션은 자신의 말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방금은 표정관리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멘트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구아바는 더 화가 올랐다. 어떻게 해서든지 리플렉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구아바는 다시 냉정을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진 게 아니었다.
겨우 3전 2선승제의 첫 번째 경기를 상대에게 내줬을 뿐이고 아직도 두 번째 경기와 세 번째 경기가 남아 있었다.
구아바는 이렇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두 번째 경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자신에겐 세 번째 경기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두 번째판, 구아바는 자신의 기술인
<비쥬얼체인지>를 유감없이 사용했지만
속절없이 리플렉션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미러이미지>
헬게이트 시티의 2048강 스타크래프트 대회 예선전,
악마 리플렉션은 <미러이미지>란 강력한 스킬을 통해서 무패로 64강을 돌파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그의 예선 세 번째 대회였고 이전의 그 어떤 대회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리플렉션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번 대회의 우승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자신이 약간은 오버한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속마음이었고 그걸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대로 신비롭고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로 단번에 우승까지 갈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구아바는 그런 리플렉션의 빈틈없는 (겉으로 보기에)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싫었다.
그래서 적당히 난동을 부리고자 마음먹었다.
구아바는 자신의 이름에 탈락의 낙인이 찍힌 예선 대진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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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지옥 중에서 가장 선진적인 유흥문화가 발달한 헬게이트 시티,
인간의 게임으로 알려진 스타크래프트가 바로 이곳에서는 최근 인기 있는 놀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큰 영향력을 가진 악마들이 먼저 이게임에 주목했고 그들이 먼저 자신들의 소일꺼리로 이것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소수의 놀이였던 이 게임은 때마침 불어오기 시작한 헬네트워크의 바람을 타고 거센 산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지옥에 있는 악마들과 그곳에 흘러들어온 인간들에게까지 말이다.
검은 슈트를 입은 하급 악마
아마트라,
그는 예선전의 상황을 조망하면서 자신의 커뮤니티에 소속된 선수들의 진행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진행될수록 계속해서 다양한 능력을 지닌 악마들이 등장했고
그것으로 인해서 대회 운영진은 사기스킬의 존재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물론 지옥의 역사상 악마들 사이의 대결에는 ‘인과율’이라는 기본적인 룰의 한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이전 시대에는 게임 자체의 단순함으로 인해서 ‘인과율’이 무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한 기술을 가진 악마들이 너무 쉽게 승리를 가져가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카드 게임의 경우, 수많은 카드의 순서를 모두 기억하거나 상대의 패를 훔쳐보는 능력은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속했다.
마음을 컨트롤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악마는 상대를 순간적으로 바보로 만들어서 엉뚱한 패를 내게 했었고,
시간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악마는 시간을 과거로 돌려서 패를 바꿔버리는 황당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전의 게임에는 너무나 변수가 적었기 때문에 이런 스킬이 발동하면 그냥 거기서 게임이 끝나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달랐다. 변수가 많았다.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능력이라도 사용할 수 있고 그것은 매우 유효하다.
하지만 그 한 가지 능력만으로 바로 게임이 끝나버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발로 필승을 보장하는 스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의 전략을 알고 있다고 해도 기본기에서 차이가 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고 기본기가 강력하다고 해서 전략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중요하지만 공간도 중요하고 시간과 공간을 엮어내는 전략이라는 요소도 중요했다.
서로 다른 각양각색의 기술을 가진 많은 악마들은 그래서 이 게임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트라는 방금 전의 게임에서 이번 대회 매우 독특한 능력을 가진 악마가 예선전에 출전했음을 깨달았다.
아마트라가 살펴본 것은 바로 리플렉션이었다.
‘미러이미지, 독특한 능력인데 과연 파해가 가능할까?’
아마트라는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현재는 자신 동료라고 부르는 존재에 대한 걱정이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2048강부터 고생고생해서 모든 경기를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해야만 했던 참가자.
사실은 지금까지 탈락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기적적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위험이 닥치고 있었다. 아마트라는 방금 게임을 마친 자신의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
건호, 이번에도 꽤나 고생했군.”
그의 동료는 인간이고 소년이었다.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아마트라와 만난 건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빛에서는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좀 걸렸지 하지만 이제 우리 C조에는 위험한 녀석은 없으니... 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봐.
참 F조에 있었던 마르두크는 어떻게 됐어?”
아마트라는 예선전 대진표 상황판을 보면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확실한 스킬이 있고 게임능력치가 높은 만큼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
무패로 2048강 1024강 512강 256강을 뚫었다. 하지만 128강에서 탈락했어.”
“뭐?”
건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건호가 아는 한 마르두크는 강력한 우승후보였기 때문이다.
마르두크는 기본적인 게임 능력도 있었고 공격 유닛을 순간 이동시키는 <순간이동>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건호는 의아했다.
“대회 공식룰에 의해서 스킬이 제한된 것 때문에 불리했나?”
“아니”
“아니면 상대도 비슷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아니”
아마트라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마르두크가 만난 건 리플렉션이라고 하는 녀석이었어.
원래 게임 쪽에 어울리는 않는 계열의 스킬을 가진 녀석인데... 이 녀석에게 128강에서 0대2로 패배해서 돌아갔다.”
“......”
건호의 마음은 미묘했다.
건호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지옥에 왔고 거기서 ‘귀생’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다.
그런 건호는 마르두크가 자신과 같은 조에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심 안심을 했었다.
그 정도로 마르두크는 강력한 플레이어였다.
대부분의 악마들은 그들의 특수 스킬을 제외하면 공방초보만도 못한 게임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수급으로 활동했던 건호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마르두크는 아니었다.
그는 중수급 이상의 게임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확실히 강력한 스킬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예선에서 떨어진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다.
그러나 그렇게 강하다고 생각한 마르두크가 패배한 상대라면 더 강할 것이 분명했다.
건호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건호는 아마트라에게 그것에 대해서 물어보려 했는데 이미 설명은 시작되고 있었다.
“리플렉션의 스킬은 <미러이미지>라고 하는 유니크 스킬이야.
논리계열 스킬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미러이미지>는 상대의 빌드오더를 똑같이 복사한다.”
“빌드오더를 똑같이 복사한다고?”
“그래, 우선 상대와 같은 종족을 골라,
사실은 상대가 랜덤을 하건 종족을 바꾸건 자동으로 같은 종족이 골라지도록 되어 있어,
아무튼 같은 종족이 선택되는 것으로 그 스킬은 시작되는 거야.
그 다음엔 <미러이미지>가 상대의 빌드오더를 똑같이 복사하는 거지
자원채취와 건물건설이 정확히 마법에 의해서 컨트롤되기 때문에 시차가 거의 없다.”
“정찰이 안 된 상태에서 빌드를 구사한다고 해도 그렇단 말이야?”
“물론, 정찰 유무는 상관없다. 어떤 상황이라도 똑같이 복사한다.
상대가 초보면 초보의 빌드를 똑같이 복사하고 상대가 고수라면 고수의 빌드를 똑같이 복사하지.
그러면 상대에 대한 정찰도 가능하고 또한 빌드오더나 테크로 인해서 상대에게 질 일도 전혀 발생하지 않지.
특히 지금 사용되는 공식맵은 라데온이 마법을 걸어서
모든 스타팅의 자원 유불리를 완벽하게 맞춘 것이라서 특히 이런 게 가능한 것이지.”
건호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지옥에서 만난 악마들의 스킬은 무엇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미러이미지> 또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건호는 악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니크 스킬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악마의 어떤 능력이라도 모두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스킬 <미러이미지>가 상대의 빌드오더를 복사하는 건 놀랍지만 결코 그것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프전이나 저저전 테테전 같은 종족전에서 빌드오더가 같은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알다시피 승부는 다양하게 흐른다.
“하지만 빌드오더가 같다고 전부가 아니잖아. 변수가 많잖아.
빌드오더가 같다면 전투에서 이기는 자가 이기는 거잖아?”
“그래 맞아. 하지만 리플렉션은 결코 전투에서 지질 않아”
“설마 게임 능력치가 매우 높은 건가?”
“아니야. 래더 700점 정도의 수준이다”
“그럼 왜?”
“<미러이미지>는 초반에 나오는 전투 유닛이 항상 2배수다”
“뭐?”
“너와 리플렉션이 동족전을 하면 당연히 어느 시점에서 첫 공격유닛이 나오겠지.
예를 들어 네가 드라군이 1마리가 생산되는 순간 리플렉션은 동시에 2마리가 생산된다.
네가 2마리라면 리플렉션은 동시에 4마리...그런식이다.”
“......!”
리플렉션의 <미러이미지> 백미는 초반 유닛생산에 있었다.
자원량을 무시하고 분명히 같은 빌드오더인데 초반 공격유닛이 동시에 2배가 생산된다는 것이다.
아마트라는 가상적인 수열 공식을 통해서 전투유닛이 얼마나 많이 생산되는지 설명해주려고 했다.
갑자기 건호는 현기증을 느꼈다. 인간이었던 시절 자퇴생이었던 건호는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아마트라는 그런 건호를 인지하고 수열 수식을 치우고 설명했다.
“아마도 초반 한 부대 미만에선 2배, 이후부터는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서 인구수 맥스치인 200이 되면 아마도 같아질 거라고 추측된다.
하지만 한부대 이상 가는 일은 별로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겠지?”
“아아....아. 똑같은 빌드오더인데 이쪽은 초반 공격유닛이 동시 2배라면 오래가지 않고 초반에 끝나겠군.”
“잘 알고 있네.”
과연 리플렉션의 <미러 이미지>는 놀라운 기술이었다.
유니크 스킬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인간 건호라서가 아니라 같은 대회의 참가자로서 그 스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건호는 본선에서 만날 상대 중에서 신경써야할 사람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전혀 모르겠어. 어쨌든 본선까진 시간이 충분히 있잖아. 나중에 생각해야지.”
“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 이번 본선이 아니라 다음 본선이 될 거야.”
“무슨 소리?”
“64강이 끝난 후에 예선대진표 조를 다시 추첨한 결과로 변동이 좀 있었다.”
“뭐?!....”
사실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64강에서 리플렉션과 경기했던 구아바는 리플렉션과 경기에서 패배한 후 그 분풀이를 대진표에 했던 것이다.
구아바는 자신의 스킬 <비쥬얼 체인지>를 통해서 대진표를 뒤죽박죽 섞어 버렸다.
뭐가 진짜 대진표 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서 짜증이 난 대회운영진은 결국 64강이 적당히 끝나자
종료 후 대진표를 다시 추첨해버렸던 것이다.
고생고생해서 장기전 끝에 방금 64강 경기를 끝낸 건호는 그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넌 지금 H조에 배정됐고 네 32강 다음 상대가 바로 리플렉션이야. 무슨 말인지 알았나?”
“다음 시즌까지 충분히 시간이 있다는 말은……. 내가 여기서 탈락할거라는?”
“잘 알고 있네.”
건호는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야 건호. 너 큰일 났어. 네 상대가 리플렉션이라고 하는 녀석인데...”
짧은 원피스 미니스커트와 긴생머리의 젊은 여자가 상당히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건호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이름은
아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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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렉션은 자신의 다음 상대에 대해서 잠깐 조사할 수 있었다. 이름은 임건호.
악마의 세례 따위는 한 번도 받지 않은 퓨어휴먼, 알려진 유니크 스킬 없음.
알려진 패시브 스킬 없음. 패시브 아이템을 하나 소지하고 있다고 하나 효력 불명.
유일한 장점은 상당히 높은 게임 능력치.
‘좋아’
리플렉션은 승리를 확신했다.
리플렉션에게 중요한 것은 게임 능력치가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이나 인과 논리적인 것에 영향을 주는 스킬이다.
게임 능력치가 아무리 높아도 그것을 복사하는 능력을 지닌 자신은 두렵지 않다.
128강에서 만났던 마르두크 역시 높은 게임 능력치와 그것을 강화시켜주는 스킬이 있었지만 아무런 위기 없이 승리할 수 있었다.
승리가 정해져 있으니 이제는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리플렉션은 건호 일행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리플렉션이 찾아간 상대의 자리엔 검은 양복을 남자와 원피스 미니스커트의 여자가 소년과 한자리에 있었고
그들은 전략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를 하고 있었다.
“지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다시 대진표를 뒤집어엎는 거야. 그러면 또다시 추첨하게 될 수도 있어.”
이건 여성악마 아나이스가 한 얘기였다. 놀랍도록 탁월한 전략이었다.
리플렉션이 슬쩍 살펴보니 그녀는 악마의 세례를 약간 받은 쿼터데빌 쯤 되는 존재였다.
“그 일을 저지른 구아바라는 녀석은 지금 사지가 절단되어 고대지옥으로 떨어졌어.
아나이스 네가 하라고. 단 먼저 우리와 인연을 끊고.”
검은 양복의 남자는 아마트라였다. 차갑고 이성적인 대답이었다.
리플렉션이 살펴보니 퓨어데빌이긴 하지만 능력치 자체가 낮아 하급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리플렉션은 아무튼 자신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그런 잔소리 가운데에서도 소년은 차분히 게임을 준비하고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알았어. 지금 작전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좀 조용히 해주라”
그러나 전략을 구상하는 과정이 결코 순조롭지 않다는 것은 명백했다.
리플렉션은 건호를 그윽한 목소리로 호명했다.
“소년”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던 건호 일행은 리플렉션을 올려다보았다.
리플렉션은 빈틈없는 표정과 차분한 목소리로 준비된 멘트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인간이 거울을 보고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이유를 아나?”
리플렉션은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건호 일행은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기위해서 대화를 멈추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머리를 굴리길 가장 빨리 포기한 아나이스는 질문으로 되물었다.
“그게 이 대결과 무슨 상관이지?”
좋다. 리플렉션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뭔가 의미를 찾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 리플렉션은 또다시 준비된 멘트를 던졌다.
“그 의미를 모른다면,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
리플렉션은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나서 돌아섰다. 훌륭했다.
자신도 자신이 던진 질문의 답 따위는 알지 못한다.
<미러이미지>란 기술엔 뭔가 비밀이 있으면 멋지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든 질문이다.
사실 스킬에 대한 기술명은 그 기술을 소환하기 위한 명칭일 뿐 그 기술의 본래적 특징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리플렉션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러 이미지>에 그럴듯한 비밀 따윈 없다.
리플렉션은 뭔가 있어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만족감에 자신의 경기석으로 이동했고
건호 일행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다가
마치 구르던 돌이 호수로 빠져든 것처럼 깊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풍덩’
때문에 건호는 이제야 게임에 대해서 열심히 고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깊은 생각 속에서 뭔가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곧이어 진행요원의 요청에 따라 게임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임이 시작되자 아나이스와 아마트라는 물러났고 첫 번째 게임에 조인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HST 토너먼트에선 규정을 통해서 일꾼 온리 러시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장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대 미러이미지 파해 전략인 온리 일꾼러시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리플렉션 역시 그것을 염두해 두고 스킬은 연마한 것이다.
그래서 건호는 또다시 고민했다.
‘대체 어떻게 이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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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2선승의 첫 번째 맵은 파이썬,
임건호 12시 테란, 리플렉션 8시 테란.
랜덤 유저인 건호는 일단 테란을 선택해서 플레이했다.
건호는 우선 리플렉션의 <미러이미지>에 대한 구체적인 파해법을 생각하진 못했다.
왜냐하면 <미러이미지>에 대해선 너무나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미러이미지>라는 스킬의 핵심은 무엇인가? 빌드오더 복사를 통해서 변수를 없애고
상대보다 2배의 물량으로 게임을 압도하는 점이다.
원래 빌드오더가 같으면 같은 숫자의 유닛이 나와야 하는데 <미러이미지>는 그것을 무시하고 2배수 유닛을 가진다.
일단 자원량을 무시한다. 그리고 더불어 인구수도 무시하게 된다. 바로 중요한 것은 이 2배수 유닛에 있다.
사실 <미러이미지>에서 빌드오더 복사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내 빌드오더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나 역시 상대의 빌드오더를 정찰해보지도 않고 알 수 있다.
따라서 상대가 뭘 할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며 상태의 타이밍이나 테크 모든 부분에 있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것은 상대에게 뿐 아니라 나에게도 유불리가 작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단지 2배수 유닛은 중요하다. 무조건 당하는 쪽에게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모든 전략적 변수를 없앤 가운데 2배수 유닛은 승리에 직결된다.
그러므로 <미러이미지>를 파해하려면 2배수 유닛생산에 대한 약점이나 제한 조건을 찾아야 한다.
게임 시작 전 아마트라는 <미러이미지>의 2배수 유닛 생산이 인구수 증가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고 얘기했다.
아마도 바로 이 부분이 ‘인과율’의 제한을 받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따라서 이점이 승부를 해볼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점에 대해서 너무나 알려진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건호는 리스크를 안고 실험을 해야 했다.
건호는 노배럭 트리플 커맨드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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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관전하는 아나이스는 놀라움을 느꼈다.
건호가 뻘 짓을 시작했고 리플렉션이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나이스가 물었다.
“뭐하는 거지?”
아마트라도 적당한 답을 찾을 수 없어서 가만히 건호의 경기를 관전용 옵저버룸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다시 보니 건호는 노배럭 쿼터루프 커맨드를 시도한 것이다.
즉 커맨드 센터 4개를 지어버린 것이다. 중요한 건 리플렉션도 아무런 공격유닛 없이 똑같이 건호의 빌드를 따라하고 있었다.
건호가 앞마당 그리고 미네랄에 커맨드 센터를 짓고 타스타팅인 8시 앞마당에 커맨드를 짓자.
리플렉션도 앞마당 그리고 미네랄 그리고 6시 앞마당에 커맨드 센터를 지었다.
“집짓기 경쟁하는 건가?”
건호와 리플렉션은 한동안 일꾼만 무섭게 뽑아내더니 드디어 배럭을 올렸다.
하지만 역시 공격유닛의 생산은 없었다. 그대로 팩토리 그리고 스타포트까지 올라갔다.
그래도 공격유닛의 생산은 없었다.
아모리를 지어서 업그레이드를 돌리더니 이때부터 스타포트를 계속해서 건설하고 있었다.
“설마...시작하자마자 200을 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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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호는 아마트라가 말했던 <미러이미지> 스킬의 생산량 변화에 주목했다.
사실 그것 외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쨌든 아마트라는 게임이 진행되면서 <미러이미지>가 인구수의 영향을 받아 2배 생산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구수 증가’에 영향을 받는다는 부분은 순전히 추측이다.
계속해서 병력을 생산해가는 과정에서 2배수 유닛 생산에서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관찰한 것뿐이다.
사실 그 변화의 조건이 ‘인구수’인지 혹은 ‘시간’인지 혹은 보너스 유닛이 생산되는 ‘한계치’가 따로 설정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건호는 그것 모두를 테스트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인구수’, ‘시간’, ‘한계치’ 혹은 기타 등등...
일꾼 숫자는 68개로 고정시켰다. 자원은 무려 6개.
건호는 22개까지 스타포트를 지어두고 33업과 야마토업 에너지업 등이 모두 끝나자.
배틀크루져 22기를 동시에 생산명령을 내렸다. 인구수는 한방에 200!
‘통해야 한다.’
뭔가 2배수 유닛생산에 제한이 있다면 이 전략은 통할 것이다.
시간도 충분히 활용했으며, 인구수는 맥스로 올렸고 한계생산량이 정해져 있다면 이 200안에 다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설령 이쪽보다 많은 유닛이 생산될지라도
그것은 결코 2배수에는 한참 못 미치는 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과율이 있다면 통해라!’
건호의 22기의 배틀크루져가 생산직전에 있었다.
아마 상대도 동시에 생산을 눌렀다면 건호와 똑같은 시간에 생산될 것이었다.
건호는 주저 없이 상대의 본진 스타포트 지역을 스캔했다.
‘찌리리리링’
그리고 건호는 보았다. 동시에 스타포트 1개에서 2대씩 동시 생산되는 상대의 배틀 크루져를!
‘찌리리리링’
건호는 자신이 가진 최대의 스캔을 사용하여 상대가 배틀크루져를 뭉치기전에 그 숫자를 세 보았다.
‘33.....38.....41....43....44.....’
건호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47.....50....53....55....60!!’
오히려 생산된 배틀크루져의 숫자는 2배수가 넘어갔다.
‘뭐...뭐야 이건 오히려....!!!’
상대의 배틀크루져는 그야말로 화면을 다 뒤덮을 정도였다.
숫자를 전부 셀 순 없었다.
셀 필요가 없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숫자였다.
건호는 어쨌든 에너지가 차오르는 대로 일제히 야마토포를 발사했다.
그리고 일꾼을 죽이고 싸이언스 베슬도 생산하면서 EMP로 항전했다.
그러나 역부족이라는 표현으로 간단히 설명될 정도로 건호는 압도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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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처참한데’
관전하는 아마트라와 아나이스는 동시에 생각했다.
오히려 뭔가 머리를 써봤지만 그게 완전히 틀어진 것.
아마 이런 것이 승부사로서는 가장 치욕적인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건호는 그런 치욕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건물을 모두 띄워서 여기저기로 보내기 시작했다.
‘화풀이성 발악인가?’
아마트라는 생각했다.
놀라운 것은 <미러이미지> 스킬에 의해 리플렉션의 건물도 동시에 떠올라서 맵을 어지럽게 했다는 것이다.
리플렉션의 스타포트 등의 건물도 모두 떠올라 생산을 멈췄다.
그리고는 건호가 건물을 날리는 방향에 정확하게 대응되는 방향으로 건물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옳지, 상대의 추가 생산을 저지했구나’
맵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양편의 건물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일부는 여기저기에 앉으면 화면을 어지럽게 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끝내기엔 충분한 병력이다.’
이리저리 건물이 날아다녔지만 그 안에서 건호의 건물이 깨끗하게 엘리된 것은
상상력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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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5-08 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