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희망에 부풀었던 한 해였습니다. "제 2의 선동렬" 이라고 불린 김진우가 입단했으며 이강철, 이종범등 해태타이거즈의 마지막 불꽃을 이끌었던 선수들이 다시 돌아왔고 김종국, 장성호등의 중견선수들과 홍세완등의 신진선수들이 함께 어우러져 강한 전력을 뽐냈습니다.
실제로 2002년의 기아는 강한 팀이었습니다.
김종국이 전경기에 출장하면서 선수생활의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 타율 0.287, 151안타, 95득점, 50도루 - 정수근의 5연속 도루왕타이틀 수상을 저지했습니다.
이종범도 타율 0.293을 찍으며 홈런 18개, 도루 35개, 93득점을 기록합니다. "스나이퍼" 장성호는 타율 0.342를 기록하며 수위타자에 올랐고 홈런 19개, 95타점을 기록하며 중심타선에서 활약합니다. 내야수 정성훈은 주전 3루수로 나서면서 타율 0.312를 기록, 기아의 중거리포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합니다.
선발투수용병 키퍼는 202.1이닝을 던지며 평균 자책점 3.34로 버텼고 19승을 올리며 용병출신으로 첫 다승왕에 오릅니다. 또다른 투수용병은 리오스. 리오스는 선발, 계투,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출격, 157.2이닝을 던지며 14승을 올립니다. 신인 김진우도 188이닝을 던지면서 12승을 거두며 마운드를 높이 올려놓습니다. 하지만, 김진우는 그 해에 데뷔한 현대유니콘스의 전설적인 마무리투수 "조라이더" 조용준에게 밀리며 아쉽게도 신인왕타이틀은 차지하지 못합니다.
최상덕은 작년에 비해서 약간 주춤했지만 그래도 133이닝을 던지며 8승을 올렸고 돌아온 타이거즈의 대들보 이강철은 불펜투수로 보직을 변경, 66경기에 등판하며 105이닝을 던지면서 5승 8홀드 17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불펜도 강화시킵니다. 또다른 잠수함투수이자 이강철의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삼성에서 건너온 이적생 박충식도 5승 12홀드 8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불펜에서 활약합니다.
이 해에 또다른 재밌는 일이 있다면 바로 "Ace of Ace" 이대진의 타자전향. 이대진은 9타석만에 첫 안타를 기록하는데 그 안타는 vs LG전에서 LG의 특급 마무리 "야생마" 이상훈을 상대로 뽑아낸 역전 3루타였습니다. 하지만, 타자로 전향했어도 썩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기아는 78승을 거두며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에 직행합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팀은 LG트윈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보았을때, 기아의 전력이 우세에 있었지만 플레이오프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혈투였습니다.
시즌 후반기까지 현대유니콘스, 삼성라이온즈등과 함께 한국시리즈 직행티켓을 놓고 경쟁을 벌이던 기아는 78승을 올리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합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는 이승엽 - 마해영 - 양준혁이 이끌던 삼성의 살인타선을 상대로 2 : 0으로 완승을 거두고 올라온 돌풍의 팀 SK와이번스.
그리고 기아도 삼성과 마찬가지로 SK의 돌풍앞에 0 : 3으로 패배하며 작년에 이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2004년, 두산에서 심재학을 영입하고 삼성에서 FA선언을 한 마해영을 영입하며 이러한 거포들의 영입으로 기아는 타선의 한방을 강화하려고 시도합니다.
심재학은 2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다시금 재기에 성공했으나 마해영은 홈런이 11개로 주춤하며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장성호는 계속해서 3할을 치며 19개의 홈런을 때려내 꾸준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었습니다. 홍세완도 타율 0.295를 기록했고 홈런도 15개를 때려냅니다.
하지만, 박재홍이 추락했으며 이종범도 타율이 0.260으로 떨어지며 - 그래도 홈런은 17개, 도루도 42개 - 노쇠화의 기미를 조금 보여주는듯 싶었습니다.
마운드에서는 리오스가 222.2이닝을 던지며 17승을 기록, 삼성의 배영수, 두산의 레스와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오르는등 대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리오스를 제외하면 아무도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계투진을 살펴본다면 이강철이 79경기에 등판, 85.1이닝을 던지며 6승 7홀드 7세이브를 기록했으며 선동렬의 탈삼진 1698개를 뛰어넘는 신기록을 세웁니다. - 곧 한화의 송진우가 그 기록을 추월했습니다. 2004년까지 통산 탈삼진 기록을 살펴보면 1위가 송진우로 1758개, 2위가 이강철로 1734개입니다. -
유동훈도 68경기에 등판, 무려 120.2이닝을 던지면서 7승 7홀드 5세이브를 기록합니다.
이 해에 기아에는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하나 존재합니다. 바로 김성한감독이 김지영선수를 구타한 사건입니다. 결국, 이 구타사건과 성적부진등으로 인해 김성한감독은 감독에서 하차했고 유남호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해태가 기아로 바뀌면서 바로 암흑기로 들어갔다는 오해입니다.
2002년 2003년 두 해는 정말로 기아가 정규시즌 1위를 아깝게 놓친 해입니다. 한번은 삼성에게 한번은 현대에게..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해태에서 바로 기아로 바뀌어도 팀 전력이 크게 향상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기아에게는
돌아온 이종범, 잘 뽑은 용병투수, 최고 신인 김진우, 마지막 불꽃 최상덕, 최전성기 장성호, 최전성기(?) 김종국 등이 있었고,
젊은 김성한 감독 체계의 특유의 집중력 있고, 특유의 감의 야구가 잘 먹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게 곧 성적으로 나타났구요.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떨어지면서 기아 구단 수뇌부에 착각이 시작되었죠. 8, 90 년대의 야구에서 , 2000년 대의 야구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데이터, 두터운 선수층과 백업 등의 김성근, 조범현 식...) 기아의 구단은 그 흐름을 깨치지 못하고 단순히
이정도의 선수층에서 좋은 성적을 내니, 유명한 선수 몇몇 더 사오면 바로 우승이겠구나 라는 착각을 시작하게 되고, 성장세의
선수 보다는 당장의 이름값이 있는 선수들을 사오게 됩니다. 심재학, 박재홍, 진필중, 마해영 등등 이죠. 그러나, 이러한 선수단
주축 구성의 변화가 바로, 2000년 대 중반 기아 암흑기의 발단이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암튼 2000년대 초반의 기아 야구는 80,90년대식 야구의 마지막 발악이자 그의 한계를 보여주는 전환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2000년 초반의 기아 야구의 강함을 모르는 일반 야구 팬들이, 롯데 하고 같이 기아를 엮는 면에서는 약간 불만이 있습니다.
물론, 롯데와 기아의 팬심과 그들의 한을 잘알고, 팬간의 교류의 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2000년 대 야구사를 볼때, 기아는 결코 롯데와 비교할 정도의 성적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롯데 팬들을 자극하려는 것은 아니니
절대 오해하시지는 말아주세요.)
잘봤습니다.
2003년이 기억에 남는군요. 정성훈 선수 트레이드는 정말 아쉽다고 느꼈는데..
저때 아마 타선에서 장성호 이종범 선수와 함께 홍세완선수도 좋은 활약을 했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유격수로 뛰며 100타점 넘긴게 저때였던걸로 기억나네요.
그리고 이제 김성한 감독이후 어두운.. 유남호 감독 서정환 감독시절이 나올 차례군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