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8/07/23 21:06:37
Name 불같은 강속구
Subject [서양화 읽기] 밀레의 <만종>은 살바도르 달리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 모방과 재해석 그리고 오마주4 -
1. 밀레의 [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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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Francois Millet
The Angelus
1857-59, Oil on canvas, 55.5 x 66 cm
Musee d'Orsay, Paris

해가 뉘엿뉘엿 하는 저녁에 삼종기도를 하는 부부의 모습을 담아낸 밀레의 이 걸작은 서양미술사상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밀레의 또 다른 대표작인 [이삭줍기]와 더불어 시골 이발소에서도 걸려 있을 만큼 수없이 복제가 되었기 때문에 제목이나 작가는 몰라도 이 그림을 못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작년 여름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오르세 미술관전을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었죠.

밀레는 한 미국인 화가의 의뢰로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2년을 훨씬 넘어서야 그림을 완성했는데 의뢰인은 작품을 인수하지 않았고, 돈이 궁했던 밀레는 헐값에 작품을 팔았습니다. 그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프랑스 의회까지 개입된 국제분쟁 끝에 미국미술연맹의 소유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프랑스로 돌아왔고  루브르를 거쳐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죠.

당시 프랑스 화단은 다비드와 그의 제자인 앵그르라는 두 대가를 거쳐 확립된 신고전주의의 보수적 화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카데미가 강요하는 엄격한 형식미와 주제의식에 반발하는 움직임은 19c에 들어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이러한 반대파들의 첫 주자는 외젠 들라크루아였습니다.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을 실어 현란한 붓터치와 색채감각으로 낭만주의 미술을 선보였죠.
그 뒤를 이어 주제와 관련된 인습에 대항한 화가가 “천사를 그리게 하고 싶으면 내 앞에 천사를 데려오라”고 말했다던 사실주의 미술의 대명사 구스타프 쿠르베였습니다.
또한 카미유 코로와 장 프랑소와 밀레등을 포함해 흔히 바르비종파라고 불리우는 일군의 화가들도 서양미술의 전통속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장르가 아니었던 풍경화에 몰두하며 주류화단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섰습니다.
그들중 특히 밀레는 일부 풍속화들을 제외하면 그동안 그림속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농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속에서 표현하였습니다. 밀레는 사실 쿠르베처럼 현실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실천적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저 땅과 호흡하며 땀흘리며 경건한 노동을 하는 농민들의 진솔한 모습을 그려낸 것만으로도 그의 그림은 당시로서는 큰 변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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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Francois Millet
The Gleaners
1857, 83.8x111cm
Musée d'Orsay, Paris.




2. 달리의 '편집증적 비판방법'으로 보는 [만종]과 그 비밀 그리고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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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us.
ca.1932. Oil on wood 16 x 21.7 cm
Private collection.

밀레의 [만종]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사실 고정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그림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고단한 삶 속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 부부의 모습을 통해 노동의 경건함과 삶의 숭고함을 느끼게 마련이죠. 혹은 자발적으로 느끼지 못해도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런 마음이 들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합니다.

그런데 역시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던 달리는 어린 시절 교실 벽에 붙어 있던 [만종]의 복제화를 보았을 때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후일 다시 [만종]을 보고나서는  매우 기분이 나빠지고 비탄감에 빠져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그 원인에 대해 달리는 자신의 저서인 [밀레의 만종의 비극적 신화]를 통해 밝힌바 있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남성은 발기된 성기를 모자로 감추고 있고 기도하는 여성은 교미전의 평온함을 가장한 사마귀(영어로 사마귀는 mantis 이기도 하지만 사마귀의 행동이 기도하는 듯 하다고 해서 'praying' mantis 로 불립니다)같은 자세로 그들 앞에 놓여있는 아이의 시신을 향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남편 옆에 있는 쇠스랑은 남근을 상징하며, 바퀴달린 수레는 여성의 성기를, 수레위의 곡물 푸대는 성적 체위를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달리는 이 경건하고 온화한 그림에서 불온한 성적 긴장감과 죽은 자식을 묻으려하는 비통함과 불안을 보았던 겁니다.

그런데 루브르박물관에서 x선 검사를 했더니 실제로 두 인물의 발치에 그렸다가 지운 작은 관같은 형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의 그림을 보고 밀레의 친구가 너무 충격적이라며 만류하자 관을 지우고 다시 감자바구니를 그려 넣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기하학적으로 관 같은 형태였을 뿐 밀레가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갖고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저 달리 스스로가 위의 책([밀레의 만종의 비극적 신화] 1963년판 서문)에서 루브르 조사를 통해 그런 흔적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는 언급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상에서는 이것이 죽은 아이의 시신과 관이 있다는 달리의 해석과 결부되어 아무런 구체적 증거제시도 없이 마치 실제로 밀레가 그렇게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진듯 합니다. 일부 국내 저자들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쓴 책에서 저런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각주를 통해서라도 루브르의 발표자료(혹시 그런것이 있다면) 라던가 혹은 여타 미술사가들의 연구자료등을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리 대중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도 일반적인 인식과 큰 차이가 나는 주장을 소개하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도 그냥 ‘~카더라’ 내지 ‘최근 연구에 의하면~’ 정도의 풍문만을 언급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 그럴만한 깜냥도 없습니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아무 상관없지만 저런 주장에 대한 명확한 출처를 (저로서는)알 수가 없다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계속 [만종]의 이미지에 사로잡혀있던 달리는 전매특허인 편집증적 비판방법(앞선 게시물에서 설명드렸던)을 통해 밀레의 작품을 재구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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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itectonic Angelus of Millet.
1933. Oil on canvas. 73 x 61 cm.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Madrid, Spain.
건축학적인 밀레의 만종

사실 달리가 제목을 저렇게 붙이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저 그림에서 밀레의 [만종]을 떠올렸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달리의 의도대로 저 그림이 [만종]에 대한 건축학적 재구성이라면 그림 앞쪽에 보이는 흰색의 커다란 두 형상은 분명히 [만종]에 나오는 두 남녀의 모습일 것입니다. 즉, 왼쪽은 남편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고 오른쪽은 부인을 재구성한 것이겠죠. 그런데 오른쪽 여성 구조물의 모습이 심상치 않습니다. 몸의 일부가 뾰족한 침처럼  뻗어나와 남성 구조물을 위협하고 있는 듯 하고 왠지 남성 구조물은 겁먹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면 달리의 말대로 교미후 수컷을 잡아먹는 암사마귀와 불안에 떨면서도 교미를 원하는 숫사마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 그림에도 달리의 다른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목발이라던가 고향인 카탈로니아의 풍경이 등장합니다. 또 왼쪽 아래 보이는 사람들은 달리의 아버지와 어린 시절의 달리 자신인데 역시 달리의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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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 and the Angelus of Millet Preceding the Imminent Arrival of the Conical Anamorphoses,
1933, oil on panel , 24 x 18.8 cm  
National Gallery of Canada, Ottawa
원뿔형 광학왜상의 갑작스런 도착에 앞서는 갈라와 밀레의 만종(제목 번역하기도 어렵네요;;;)

이 기괴한 그림 속 방 입구위에 붙은 그림이 [만종]이죠. 방의 제일 안쪽에서 하얀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여성은 달리의 부인인 갈라 입니다. 저번 회에서 보았듯이 그의 작품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여인이죠. 앞쪽에 갈라와 마주보고 앉아있는 인물은 레닌이라고 합니다. 방안의 왼쪽 받침대위에 있는 흉상은 초현실주의를 이끌던 앙드레 브루통 이며, 문 뒤에서 가재를 머리에 쓰고 있는 수염달린 괴상한 인물은 막심 고리키라고 하네요.(http://cybermuse.beaux-arts.ca/cybermuse/search/artwork_e.jsp?mkey=1511 )

레닌은 달리의 이전 작품 속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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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cation of the Apparition of Lenin -Partial Hallucination- Six apparitions of Lenin on a Grand Piano,
1931, oil on canvas , 114 x 146 cm  
Centre Georges-Pompidou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Paris
피아노 건반위에 떠오르는 환영이 바로 레닌입니다.

가재도 가끔 달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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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bster Telephone, 1936  
telephone with painted plaster lobster, 15 x 30 x 17 cm  
Tate Gallery,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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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st of a Retrospective Woman,
1933, 54 x 135 cm
private collection
회상적인 여성의 흉상

달리의 오브제입니다. 머리에 쓴 빵 위에 [만종]의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피카소가 개를 데리고 전시장에 왔다가 개가 빵을 먹어버려 나중에 다시 빵을 올리고 [만종]의 이미지를 놓았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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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vism at Twilight.
1933-34. Oil on wood. 13.8 x 17.9 cm.
Kunstmuseum, Berne, Switzerland
황혼의 격세유전

2000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가네시로 가츠키의 소설[GO]를 보셨나요. 주인공 스기하라와 여자친구인 사쿠라이는 첫 데이트를 하면서 미술관에 갑니다. 그때 미술관에서 사쿠라이가 멋지다고 감탄했던 그 그림입니다.
위에서 보았던 [건축학적 밀레의 만종]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자는 가슴에 구멍이 나있고 여자의 특징인 긴 창과 같은 신체변형도 그대로입니다. 다만 [건축...]과는 창의 방향이 반대로 나있습니다. [건축...]을 몰랐다면 아마 여자의 몸에서 창이 돌출된 것이 아니라 꽂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소설[GO]에서 스기하라는 이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그 유명한 밀레의 <만종>을 재구성한 그림이다. 재구성이라고 해봐야 내 눈에는 악취미의 패러디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안 그렇겠는가, 황혼녘 기도를 올리고 있는 남녀 중 남자의 얼굴은 해골로 변해 있고, 여자 쪽의 몸에는 창 같은 것이 꽂혀 있으니. 그리고 전원 풍경은 황량한 바위 벌판으로 변해 있으니."

하지만 우리는 [만종]에 대한 달리의 생각을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골로 변한 남자의 얼굴에서는 (성행위 후)죽음의 이미지가 보이고 , 뒤로 긴 창이 나있는 여성에게서는 감추고 있는 공격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긴 창같은 형태도 그것이 몸에 꽂혀 있는 것인지(수동), 앞으로의 공격을 위해 스스로 돌출한 것인지(능동)에 따라 전해지는 느낌이 달라지니까요.
[건축...]에서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던 수레와 푸대가 하늘로 향하는 모습에서 달리가 생각하는 죽은 아이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그런데 제목의 격세유전이라는 말은 왜 붙였는지 잘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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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vistic Vestiges After the Rain,
1934, oil on canvas , 65 x 54 cm  
private collection
비온 뒤 격세유전의 흔적

이 작품도 그 구성이나 제목을 보면 명백히 [건축...][황혼...]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에서 보던 거대한 구조물은 많이 축소되었고 남성구조물이 없어진 대신 여성구조물에게는 없던(남성구조물에 있던)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공격적 성행위이후 후대에 나타난 격세유전의 흔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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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ation on the Harp,
circa 1934, oil on canvas, 67 x 47 cm  
Morse Charitable Trust on loan to the Salvador Dalí Museum, St. Petersburg, Florida
하프위에서의 명상, 하프를 켠 명상

역시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 중세 종교재판관들은 하프를 백파이프와 함께 악마의 도구로 여겼다고 합니다.
남자의 이미지는 환영처럼 보이는데 달리가 [만종]을 보고 느낀 생각대로라면 발기한 성기를 모자로 가리고 있는 것이고, 여인은 역시나 성적에너지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습니다.
가운데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형체는 역시 달리의 생각에 비추어 본다면 죽은 아이를 형상화 한 것 일겁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무척 괴상합니다. 이에 대해 저 검은 형체를 작가 자신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 당시 달리가 프로이트의 이론에 심취해있었고 저 형체의 발이 엄청나게 크고 괴상한 것으로 보아 오이디푸스로 보는 것이(http://www.fantasyarts.net/dalipaintings.html )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잠시 볼까요.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는 자기의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게 된다는 신탁을 받은 뒤 아들을 낳게 되자 아기의 발뒤꿈치 힘살을 금실에 꿰어 산속 나무에 묶어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양치기가 아이를 구해 자식이 없던 코린토스의 왕에게 데리고 갔고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금실에 꿰어져 부어 있는 발을 보고 ‘퉁퉁 부은 발’ 이라는 뜻의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후에 벌어지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다들 아실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저 그림 속 검은 형체의 발을 보고 오이디푸스라고 해석하는 것이 상당히 설득력 있습니다. 더구나 팔에는 남근의 상징으로 보이는 것이 돌출되어 있고(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남자(아버지)에게 뭔가 따지는 듯한 제스쳐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인은 자신들의 성적 행위를 감추려는 듯 혹은 아이를 만류하려는 듯 아이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이 그림은 명백히 프로이트가 개념화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달리적인 표현입니다. [만종]을 보고 느꼈던 불편한 감정에 프로이트와 오이디푸스가 뒤섞인 달리의 꿈이라고나 할까요.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근원적 욕구를 사회문화적 규칙을 통해 억압할 때 무의식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달리는 자신이 이름 붙인  '편집증적 비판방법' 을 통해 신경발작적 환상 속에서 무의식의 흐름으로 사물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로 [만종]의 인물들을 동원해 그 무의식속에 억압되어 감추어진 본능을 끄집어 낸 것이 아닐까요.

커다란 발의 끝부분에는 줄같은 것이 이어져 있습니다. 제가 원작을 가까이서 직접 본 것이 아니라서 확실히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아마도 개미떼라고 보입니다. 개미떼도 달리의 그림에서 수시로 등장하는데(레닌의 환영 그림에서도 건반위에 있는 악보에 개미떼가 지나가고 있고, 여성의 흉상 오브제에서도 개미떼가 보입니다) 부식과 부패, 그리고 죽음의 상징입니다.  
밀레의 [만종]에서 숨막히도록 불안한 성적 긴장감과 죽음을 읽어낸 달리는 편집증을 가장한 무의식의 흐름 속에서 저런 작품을 그려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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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gelus of Gala,
1935, oil on panel, 32 x 26 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아내인 갈라를 모델로 하여 그림 앞쪽에는 마주앉은 클론 같은 한 쌍의 갈라를 , 뒷벽에는 [만종]속 부부의 자세를 약간 바꾼 한 쌍의 남녀를 그린 그림을 배치하였습니다. 결국 두 갈라 간의  대치와 그림 속 그림에 있는 부부의 대치라는 두 개의 대치구도가 서로 직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만종]에서 감추어진 성적억압을 보았던 달리는 벽에 걸린 그림 속 기도하는 여성의 모습을 숫컷을 잡아먹는 암사마귀('praying' mantis)의 형상으로 반영했습니다. 디테일을 고려하지 않고 실루엣만으로 보면 정말 사마귀 같은 모습입니다.
앞쪽의 갈라는 굳게 다문 입술과 딱딱한 표정으로 마치 무엇인가 결심한 것처럼 단호하며 상기된 듯 보입니다.
원래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는 얼굴이 보이는 갈라와 뒤에 있는 그림은, 등이 보이는 갈라 쪽에서 바라 본 거울 속 이미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갈라는 서로 다른 물건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니겠죠.
앉아 있는 물건의 형태를 고려해서(바퀴와 육면체) 그림 속 그림과 비교해 보죠. 얼굴이 보이는 갈라는 그림 속 남성에, 등이 보이는 갈라는 여성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등이 보이는 갈라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가 퍽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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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aeological Reminiscence of Millet's Angelus,
1935, oil on panel, 32 x 39 cm  
Morse Charitable Trust on loan to the Salvador Dalí Museum, St. Petersburg, Florida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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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그림, 부분 확대

밀레의 원작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온갖 풍상에 시달려 허물어져 가는 거대한 건축물로 변형되었습니다.  밑에는 역시 달리와 그 아버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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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My Dead Brother,
1963, gouache on canvas, 175 x 175 cm  
private collection
나의 죽은 형의 초상

원래 '살바도르' 라는 달리의 first name은 그가 태어나기 1년 전에 두 살로 죽은 그의 형의 이름이었습니다. 달리는 죽은 형과 많이 닮았고 그의 아버지는 죽은 아이가 환생했다며 형의 이름을 그대로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붙여주었다고 합니다. 죽은 형을 자주 언급하는 부모,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명... 이렇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형의 이미지는 신경이 예민했던 달리에게 계속 자기정체성에 대한 불안을 가져다 주었고 달리는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죽은 사람과의 강요된 동일성은 자신의 진짜 모습이 부패하고 썩어가고 벌레가 들끓는 시체라는 느낌을 주었다고 달리는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달리의 독특한 정신세계의 원인을 그 형에게서 찾는 사람도 많습니다.  
달리는 이 작품을 통해 유일하게 형을 그려냈는데 어려서 죽은 형이 아닌 훨씬 성장한 모습입니다.
점의 집합으로 얼굴의 형태를 묘사함으로써 유령이나 환영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머리 쪽에는 죽음의 이미지를 풍기는 까마귀가 있습니다.  아래 왼쪽에는 [만종]에 나오는 부부가 (아마도) 죽은 아이를 담은 것으로 보이는 자루를 옮기고 있습니다.
달리는 59세에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직도 형의 망령을 떨쳐내지 못한 달리의 진혼곡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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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ailway Station at Perpignan,
1965, oil on canvas, 295 x 406 cm  
Museum Ludwig, Cologne  
페르피낭의 기차역

기차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그렸다는 이 그림에서도 [만종]의 두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화면의 양끝으로 [만종]의 두 남녀를 카피해 넣었고 남자 쪽으로는 바로 위에서 본 [나의 죽은 형의 초상]속에 나오는 그 장면을, 오른쪽에는 후배위의 성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물들을 배치시켰습니다.




아래의 그림들은 제목으로 보아 입체감을 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그린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구성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 여기서도 [만종]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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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reoscopic Composition, Based on Millet's "Angelus" (unfinished),
circa 1978, oil on photographic paper, 51 x 62 cm ,  
Figueras, Fundación Gala-Salvador Dal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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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ye of the Angelus (stereoscopic work, left component; unfinished),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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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ye of the Angelus (stereoscopic work, right component; unfinished),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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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Noon, Sunset and Dusk.
1979. Oil on canvas. 122 x 246 cm.
Gala-Salvador Dali Foundation, Figueras, Spain


밀레의 [만종]은 달리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몰두했던 테마였고 창작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보통사람의 상식을 뒤엎는, 때로는 불편하기도한 기묘한 발상으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이면을 들여다 보는 달리의 시선이 우리같이 경직된 사회에서 가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회에 걸쳐서 달리가 다양하게 변주한 베르메르와 밀레의 [만종]을 보았습니다. 달리는 만년에 미켈란젤로나 벨라스케스를 모방한 작품도 많이 남겼는데 창작력이 많이 떨어진 탓인지 그다지 독창적인 해석은 없습니다.  

다음에는 피카소를 보도록 하죠.


Written by 불같은 강속구
* 라벤더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9-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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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남자친구
08/07/23 21:11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
스타벨
08/07/23 21:33
수정 아이콘
대단한 정성을 들여서 쓴 글입니다.
덕분에 유익한 정보와 대작을 보는군요
추천 한방 보냅니다 ^^
08/07/23 22:06
수정 아이콘
잘 보았습니다.^^
반대칭어장관
08/07/23 22:08
수정 아이콘
우와~ 추게 에게로~ 기다리고 있던 글인데 올려주셔서 감사감사
달리는 역시 정신세계가 4차원이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08/07/23 22:12
수정 아이콘
우왕 재밌었어요.
08/07/23 22:37
수정 아이콘
우와 이런글(??) 집중해서 읽어 본건 정말 처음이였어요 ...
해석도 넘 쉽고 이해 하기 쉬워서 더 좋았던 거 같애요

담편이 넘 기대 되네요.
남자라면스윙
08/07/23 23:08
수정 아이콘
미술이라면 완전 문외한인 제가 입을 헤 벌리고 감탄하면서 또 집중하면서 다 봤네요. 앞으로 불같은 강속구님의 글은 늘 기대하며 기다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너무 좋은 글 잘 봤습니다.
To_heart
08/07/23 23:16
수정 아이콘
첫 부분에 언급해주신 대로, 단지 어떠한 정보 없이 그냥 일상에서 많이 보던, 봐 왔던, 그리 큰 의미가 없던 그림 한 점을
이런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관심 없던 분야에 조금이나마 호기심이 생기게 해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재미라기 보다 흥미로운 글이었네요. 다음 편 기대하겠습니다.
Minkypapa
08/07/23 23:16
수정 아이콘
돌아오셨군요! 이번 역시 잘 읽었습니다.
종합백과
08/07/24 01:1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0_0 !!!
sometimes
08/07/24 08:13
수정 아이콘
너무 잘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08/07/24 09:59
수정 아이콘
추게로~!!!
도시의미학
08/07/24 14:06
수정 아이콘
정말 잘 봤습니다! 저는 피카소의 오마주를 봤던거 같은데 밀레는 처음이네요. 섬뜩하기도 하고,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습니다!
또 부탁드려도 될지^^;
08/09/25 00:45
수정 아이콘
블로그로 담아가도 될지 모르겠네요
08/09/26 21:32
수정 아이콘
달리의 그림이나 본문글이나 엄청난 포스가 느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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