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게도 곧 닫히는 겸,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에 대한 인식에 관한 한없이 가벼운 글을 써보려 합니다.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자랑스러운 우리 헌법 제1조입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문장이라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지요. 식상하기까지 한 문장이지만 그 함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한반도에 민주주의란 제도가 도입된지 길게 잡아도 80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제도를 도입한다 한들 수천년동안 천천히 우리 사회에, 문화에, 마음에 각인된 군주제의 향기가 완벽하게 제거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지요. 심지어 중간에 군사독재까지 겪으며 군주제 MK.2를 겪기도 했으니 더더욱.


헌법 제1조에서 보듯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선거로 대통령, 국회의원 등을 뽑는데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잘 안착되었지요. 주권을 가진 국민이 자신의 뜻을 대리할 하인을 뽑아 국정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의 마음 속에서 민주주의, 선거는 뭐랄까 대충 '(임기 있는) 선거군주제' 정도의 인식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대리자가 아니라 '군주', 다르게 말하면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뽑는 과정인 것입니다.


가끔 냉소적이기만 하면 무조건 똑똑한 줄 아는 멍청이들이 '대통령 그거 현대식으로 치장한 사실상의 왕 아님?' 같은 멍청한 소리를 하곤 하는데, 둘은 전혀 다릅니다. 왕이 그 자체의 의지로 움직이는 존재라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본질적으로 꼭두각시라는 점에서요.

물론 정치인들도 나름대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를 뽑아준 국민에게 빅엿을 날리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등의 행동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은 '민의'라는 인력에 갇힌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결국 조종하는 주인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움직일 수 있을 뿐이고, 가끔(사실 생각보다 자주) 버그 걸린 인형은 유통기한 지나면 가차없이 폐기될 뿐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싶냐고요?

정치인, 특히 대통령이 나서서 모든 문제를 다루고 해결해줄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틀려먹었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국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대통령이고 국회의원은 그저 바쁜 주인을 대신해 국가를 운영하는 하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 하인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국가를 이끌어나가기를 원합니다. 내가 명령을 안 내려도 알아서 척척 기획안을 내고, 반대하는 주인을 때로는 거스르면서 올바르게 운영해 내가라는 거지요. 어... 우리 일부 중소기업 사장들이 '요즘 청년들은 주인의식이 없다!'같은 소리 할 때 기함을 토하던 사람들 맞죠?

생각 자체가 틀려 먹었습니다. 국가의 일은 국민이 신경 쓰고 오더를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멍청한 정치인들이 투박하게나마 명령에 따르죠. '알잘딱깔센'을 원하며 어려운 의제를 꺼내고, 설득하고, 가끔은 밀어붙이는 정치인을 원한다고요? 우리 여태까지 (이유야 어찌됐든) 주인을 거스른 AI에 분노하여 폐기처분해왔지 않나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심각한 문제들, 이를테면 저출산, 고령화, 연금개혁, 지방 소멸 등의 문제는 정작 우리 국민들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관심이 있는 '척'만 할 뿐입니다. 뉴스에서 보고, 놀라고, 그러고 잊어버립니다. 아, 물론 해결해줬으면 하죠. [나한테 단 하나의 피해도 없으면서도 공정해야 하고 결과는 최상으로 나오는 방향으로요.] 이건 우리 모두, 혹은 '나'의 일이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선 나도 희생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아니라 '정치인'의 일이니까. 이게 해결이 안되는 건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무능한 정치인이 자기 할 일을 못하는 거니까.

정작 우리들은 변화하고 양보, 타협할 생각이 없으면서도 하늘에서 '백마 탄 초인(= 대통령)이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해주기를 원합니다. 애초에 말이 안되는 거죠. 그런 영웅이 나타나봐야 주인을 공격한 죄로 모가지를 비틀어버릴테니까요.


뭐, 사회란 원래 천천히 바뀌는 법이니 세대교체와 함께 이런 분위기도 천천히 바뀌어 나가겠지요. 특히 실제로 왕정을 겪고, 왕정에 가깝던 군부독재 시절을 겪은 분들이 세대교체 되면서요. 그러니까 나라가 급진적으로 바뀌지 않음에 절망하지 말고, 우리 사회의 인식을 인정하고 천천히 변화를 추구해 나갑시다. 물론 그 사이에 골든 타임을 놓친 지방이 망하는 등의 문제들이 터져나오겠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원래 모든 걸 완벽하게 최적화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망상입니다. 놓을 건 놓고, 망할 건 망해야 오히려 깔끔하게 빈 공간에서 새로운 싹이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후손님들 화이팅! 이전, 기성세대들도 너희 못지않게 나름의 문제를 겪으며 나아갔단다. 욕해봐야 과거는 안바뀜 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