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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2/22 00:58:47
Name Daviforever
Subject 이은주, 그녀가 저곳으로 번지점프를 한지 어느덧 1년.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그 어떤 여배우 못지않게 많았고
자신의 연기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항상 변화하고 싶었던,
항상 아름다웠던 배우 이은주가 세상을 버린지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버렸을 때 저는 무언가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그때 마음 속으로 이 시간, 그때로부터 1년 후, 무언가 남기기로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마음 속으로였지만 팬으로서, 가장 좋아했던 여배우에 대한,
아주 약간의 예의를 지키는 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이은주를 처음 보았던 건 드라마 '카이스트'였습니다.
예쁘고, 약간은 여려 보였지만, 차갑고 도도한 말투에 호감이 갔습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에 애착을 갖기 꺼려하는 꽉 막힌 성격 탓에
그냥 호감이었을 뿐이지, "와 나 저 배우의 팬이 되었어"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 뒤 그녀를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 수정'과 '번지점프를 하다', '하얀 방', '연애소설'...
이 중 '연애소설'은 제가 극장에서 본 아주 드문 영화 중 하나였죠.
(워낙에 귀찮은 건 질색인 괴상한 성격이라서
제가 극장에서 본 영화는 살면서 열 편도 안됩니다.)
예쁘고 연기 잘하는 이은주와 (당시에는) 너무나 청순했던 손예진이 나온 영화라
영화평이 어땠건 간에 닥치고 보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다만 남자주인공을 맡은 영화배우 차...씨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배우라
영화를 보다가 속좁게도 배알이 뒤틀리고 질투가 났던 기억도 나네요.)

전 '안녕! UFO'를 정말 좋아합니다.
주인공으로 나와서 마지막에 불행해지지 않은, 행복했던 영화였거든요.
(죽지도 않았고...)
그녀가 고인이 된 후 모 영화채널에서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녀가 사랑을 이루고, 눈을 뜨던 엔딩에서
저도 모르게, 창피하게도, 울 뻔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 수정도 죽지는 않았지만 그리 착한 스토리는 아닌지라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냥 그렇게 웃는게 좋았습니다. 별로 많이 웃을 것 같지도 않아 보여서...

'태극기 휘날리며'는, 물론 그녀가 나온 영화 중 가장 대박을 친 영화지만, 제가 가장 싫어하는 영화입니다.
모든 영화의 포커스는 멋진 두 주인공이 내 핑계를 대느니 안 대느니
무공훈장을 받느니 안 받느니에 맞춰져 있었고,
이 진지하고 내성적인 여배우는 그저 비참하게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별다른 비중도 의미도 없이...절대 이렇게 묻힐 배역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다른건 다 그렇다쳐도 한 연예정보프로에서 공형진 씨 인터뷰까지 그대로 틀어주고
이은주 씨는 그저 배경으로 처리했을 때는, 온갖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태극기'는 개인적으로 정말 맘에 안 들었던 영화였습니다.
(이건 물론 제 억지스런 영화해석일 수도 있고, 팬 욕심이 앞선 것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불새'가 좋은 드라마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군에 있으면서 그녀를 매주 볼 수 있는게 그저 좋았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시청률도 잘 나오는 것 같아 좋았고,
다만 에릭은 그 드라마를 계기로 상당히 싫어졌습니다.
(솔직히 남자 입장에서는 김치가 그리워지는 연기력이었습니다.)

'주홍글씨'는 그녀의 유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죽습니다. (왜 이리 많이도 죽었는지...)
'번지점프를 하다', '연애소설', '하늘정원',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랬듯이...


제가 본, 소위 예쁜 배우 중 그녀는 연기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습니다.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노출도, 털털함도 마다하지 않았던 배우. 그래서 더 예뻤던 배우.
그녀는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게 제 마음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가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긴 꺼려하지만, 한번 좋아하면 푹 빠지는 저였기에, 좋아할수록 더 좋아졌습니다.


2005년 2월 22일.
강원도, 강원도였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참 눈이 많이도 왔습니다. 군 생활 하면서 가장 많은 눈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군 복무 중이었고, 그때는 마침 분대장 교육 중이라 TV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TV도 볼 수 없는 그곳에서, 신기하게도 뉴스가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야 이은주 죽었대" "자살했대"

좋아하던 마음이 변할 수는 있습니다. 싫어하게 될 수도 있구요.
하지만 그것이 추억이 되었을 때 다시금 그 대상에 대한 안부를 묻곤 할 수 있습니다.
20년 조금 넘는 삶에서, 처음으로 좋아하던 대상의 '완전한 상실'을 실감했습니다.
슬프다기보다는, 뭔가가 허무했고, 폐가 두 배는 커진 것 같이 공허했습니다.
제가 인터뷰 전문으로 활동하던 소규모 웹진 동아리에서,
제대하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배우, 가장 좋아했던 배우,
없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살면서 그렇게 공허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슬프진 않았습니다.

배우 이은주에게 좋은 작품들 외에 또 하나 고마운 게 있다면,
좋아하던 대상의 '완전한 상실'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알려준 것입니다.
저는 그 이후로 더욱 더, 제가 좋아하던 것들을 바라보는 시간을 늘렸습니다.
잠시라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사이 사라져 버릴지 모르니까 말이죠...

왜 떠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쨌든 힘들었으니까, 죽을 만큼 힘들었으니까 떠난 거겠죠.
다만 주위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 때문이라 자책할 겁니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가치를 상실시키는 일, 절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쁜 배우, 연기 잘하는 배우, 항상 고민하던 배우, 여리면서도 도도했던 첫인상의 배우,
내가 지금도 가장 좋아하고 있는 그 배우,
1주기를 맞는 어설픈 추억들로 가득한 글로 팬의 예의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켜보려 합니다.

그곳에서 1년 전 그 순간을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항상 미안해 하시고,
그래도 그 이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꼭,
잊지 않겠습니다. 이 글로 약속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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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기억
06/02/22 01:09
수정 아이콘
카이스트, 저도 재밌게 봤죠. 과기대학생도 저렇구나 하구요.-_-;;
사고뭉치
06/02/22 01:14
수정 아이콘
카이스트가 한창 방영될 적에 강남역주변의 한 카폐에서 차를 마시다가 알바를 하고 있는 칭구를 만나러온 이은주씨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싸인도 받았었구요. +_+

실제로 본 기억이 있어서인지, 아직도 이은주씨를 떠올리면 그날의 해맑게 웃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주변 의식하지 않고, 여느 여자아이처럼 꺄르르하며 칭구와 웃었었죠.

그 모습이 참 그립습니다.
오름 엠바르
06/02/22 01:17
수정 아이콘
여자 입장에서도 김치가 그리워지는 연기예요...-_-;;;

여튼... 번지점프나 다시 데크에 넣어봐야겠군요.
AntiqueStyle
06/02/22 01:34
수정 아이콘
이은주씨. 저도 굉장한 팬이었는데...
벌써 일년이 지났지만 그녀 모습을 다신 볼수 없다는게 믿기지가 않네요.

불새초반 철부지 재벌가 딸일때의 그 환한 웃음소리가 그립습니다.
제발 저 하늘 위에서는 모든게 그녀의 뜻대로이길...

*영화 "연애소설" 가벼운 로맨틱 코메디로 생각하시고 안보신 분들 의외로 많으시던데 꼭 보세요. 전혀 그렇지 않은데...
가슴아프고 찡한 "우정"과 사랑 얘기거든요...
케케케나다
06/02/22 01:42
수정 아이콘
H 모 싸이트와 같은글... ^^;;;
Daviforever
06/02/22 01:50
수정 아이콘
케케케나다님//조금이라도 많은 분들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다른 곳에도 올렸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Juliett November
06/02/22 02:07
수정 아이콘
... 어쩌면 이 계절의 하늘은 이토록 무연히 맑을까. 그리고 그 시절의 아픔은 어쩌면 이리도 생생할까. 아픔은 늙을 줄을 모른다. 아픔을 치유해 줄 무언가에 대한 기구가 그만큼 생생하고 질기기 때문일까. 이번 겨울에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 비어 있는 들판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볼까. 며칠 전에 지구를 뜬 그녀의 별에 전파가 닿게끔 머리에 긴 가지로 안테나도 꽂고...... 그러나 사람이 죽은 다음에 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

- 최 윤 <회색 눈사람> 중 -
06/02/22 02:20
수정 아이콘
저도 카이스트에 출연했던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는 단 한 편도 제대로 보지 않았네요.
souLflower
06/02/22 03:03
수정 아이콘
저도 안녕 ufo..이 영화 굉장히 좋아합니다...이 영화가 개봉할 시기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하는 바람에 묻혀버렸죠...개인적으로 태극기도 좋은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안녕 ufo가 저에게는 더 가슴뭉클한 영화로 남아있습니다...그리고 연애소설이 개봉할 당시에는 가문의영광때문에 묻힌감이 있었는데 저는 가문의 영광 안보고 굳이 고집부려서 연애소설을 봤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때 영화개봉관에 굉장히 사람이 적었었던 기억도...가문의 영광안보고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 영화 역시 느낌이 좋은 영화였습니다...비디오로 소장까지 하고있을정도로...;그 두영화에서 이은주씨의 매력이 저를 그녀의 팬으로 만들었던거 같습니다...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습니다만^^ 지금도 그녀가 그립습니다...개인적으로 한국 영화계의 소중한 보석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했거든요 하늘나라에서는 꼭 행복했음 좋겠습니다 저도 잊지않을꺼같네요^^
그러려니
06/02/22 08:09
수정 아이콘
피지알에서 이은주씨에 관한 글을 몇번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꽤 있는듯 한데도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이 글에 뭔가 적어야겠다 마음 먹어도 머리 속에서만 빙글빙글 돌고 표현해 버리기가 쉽지가 않군요.
절친한 친구였던 바다씨가 고인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요.
그래도 아쉬워서.. 별로 시덥지도 않은 소리 몇자 적고 갑니다.
이뿌니사과
06/02/22 09:09
수정 아이콘
저도 작품 하나 하나 찍을때마다 달라지는 이은주씨를 보면서 머잖아 보석같은 배우가 되겠구나 했었는데.. 생각하니 또 눈물이 도네요.
자꾸 이렇게 이승에서 잡으면 안된다는데...
StaR-SeeKeR
06/02/22 09:24
수정 아이콘
최고의 여<배우>였는데...
안타깝습니다....
날씨도 흐리고....
06/02/22 09:33
수정 아이콘
이은주란 배우... 저는 드라마 <스타트> 때부터 기억합니다. 그때 당시 모 그룹의 객원싱어 활동도 했었던 것도 기억 나네요. <가요 톱 텐>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그려집니다.
<카이스트>의 구지원이란 캐릭터를 매우 사랑했고,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란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불새>는 그녀도 생기 발랄하고 철부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런 모습이 잘 어울리는 것도 좋았습니다.
2002년 2월의 첫 토요일. 성균관대600주년 기념관에서 이은주라는 사람을 직접 대면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배우 이은주를 좋아했다면, 그날은 좀더 인간 이은주에 대한 것을 좀 엿볼 수가 있었죠.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여성스럽고 똑 부러지던 모습... 모 케이블 방송에서 요청한 인터뷰에 자신 생각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제가 다 흐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구나, 자신의 일을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차가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정이 많은 사람이구나...
그런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전 아직도 수많은 물음표를 그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김주혁 씨가 모 잡지에서 "(이은주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보고, 전 사실 그녀가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토록 그녀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혼자만 행복하다는 건 좀 심한 것 같아서...
드라마나 영화로 인해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잠시잠깐 들여다본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은 더욱더 그녀를 좋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녀이기에 아직까지 안타깝고 서글프네요.
그래도 그녀의 작품이 남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 그녀를 기억하고 추억합니다. 아마 그녀도 알고 있겠죠. 그런 사람들의 사랑에 많이 미안해할 테지만, 그만큼 또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남은 사람들은 계속 그리울 테지만...
Den_Zang
06/02/22 12:24
수정 아이콘
안타까운 생각 뿐..
유리의 연금술
06/02/22 12:57
수정 아이콘
전.. 카이스트에서 이은주가 칵테일바 바텐더 하는 걸 보고 칵테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다시 보고 싶습니다..
狂的 Rach 사랑
06/02/22 13:13
수정 아이콘
정말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여배우였는데......예쁜 역만 맡으려 하지 않고 다양한 모습에 도전하는 그녀가 좋았습니다. 특히 저한테 가장 잊지 못할 역은 역시 카이스트 구지원... 얼음같이 차가우면서도 속은 너무나 여렸던 그녀. 꼭 이은주씨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지만 아무말도 않고 떠난 그녀가 너무 보고 싶네요. 제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기를...
Love.of.Tears.
06/02/22 22:52
수정 아이콘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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