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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3/11 10:14:04
Name 김연우
Subject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얼마 전 결승전에서 한명의 프로토스가 패배했다. 현란한 컨트롤과 기동은 역대 최고임에 분명했으며 몇 번씩 우승에 손을 뻗기도 했으나, 결국 움켜쥐지 못해 상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자 어떤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프로게이머는 승리를 쫓는다. 그 무엇보다 승리가 우선이다. 하지만 오로지 승리만 바라보기에는 인간은 너무도 나약하다. 또 그들은 아직 젊고 어리다. 승리는 내가 할 만큼 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싸우는 상대도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할 테니까. 모든 힘을 다한 상대와 극한의 승부 끝에 종이 한 장 차이로 앞서 거두는 것이 승리이다.

  칼날 위에 서 펼쳐지는 살 떨리는 승부 속에서 가장 강했던 프로토스. 승리라는 두 글자를 위해, 모든 것을 걸줄 알았던 남자. 그가 박용욱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게 했던 결승전이 하나 또 있었다. 마재윤과 박정석의 UZOO배 결승전, 특히 루나 3경기다. 루나의 모든 미네랄과 가스가 사라지고, 3시 미네랄 멀티 하나를 둘러싼 외줄타기 승부. 서로 외줄 속에 매달려 상대를 떨어트려야만 승리할 수 있는 긴박한 순간, 박정석은 패했고 그 전투의 여파는 그대로 4경기까지 이어졌다.

  경기 스코어 3:1 마재윤 우승.

  이 글자가 TV에 나타날 때, 나는 생각했다. 박용욱이라면 저 긴장감을 견뎌내었을텐데.



  같은 전장, 루나에서 박용욱은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적이 있었다.
  MSL100 Rank 5위, 당신은 골프왕배 패자조 박용욱vs변은종.
  변은종의 노련한 하이브 운영에 본진까지 완벽히 밀려버린 박용욱은 다크아콘을 승부수로 꺼내들었다. 1시간 남짓한 장기전, 길고도 피로한 승부를 견뎌내고 그는 한기 한기 다크아콘을 모았다. 특히 악랄하게도 그는 다수 캐리어가 갖춰지는 순간까지, 루나의 모든 자원이 다 떨어질때까지 꾹꾹 병력을 모으고 모았다. 승리가 완벽해지는 순간까지 참아 거한 한방 병력을 갖추고, 변은종의 진영을 침착하게 파괴해나갔다. 그리고 결국 승리를 '빼앗았다.'



  길이 보이지 않아 앞이 깜깜할 때가 있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보이질 않을 때가 있다. 과연 해결책이 있기는 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으려 헛된 시간만 소비하는 것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마이큐브배 박용욱vs박경락 4강은 정말 극적인 승리이다.
  현재 빛바랜 기억 속에 박경락은 테란 킬러다. 하지만 실제 그의 강함은 테란전이 아닌 토스전에 있다. 연습하면서 상대의 마우스를 수회 던지게 했다던 그의 드랍은 어디든 사용할 수 있는 디텍터인 스캔도 대공/대지 만능 유닛 마린도 없는 프로토스에게 더 치명적이었으니까.

  특히 같은 편이었었던 박용욱은 그런 박경락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도 안돼서 예선전에서 테란을 골라 해보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겼단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너무나도 강한 상대를 만난 그때, 박용욱은 한가지 해답을 미친듯이 파고들었다. 다른 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질럿만을 믿고 질럿만에 의한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두번 연속 세트를 따냈다. 마지막 세트, 패러독스에서 테란을 선택했고, 그래도 굉장히 자신 있어 했던 박경락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한손을 키보드에서 뗀 그의 모습은 한 장면으로도 이 승부가 어떠했던 것임을 알게 해준다.

  3:0. 박용욱 결승 진출.
  그리고 박용욱은 우승했고, 박경락은 영영 결승 무대에 도달하지 못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절망 속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이의 외침이다.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내놓아서라도 쟁취하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욕망, 절규, 탐욕.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프로토스 박용욱, 힘차게 날아갔던 부메랑은 반대로 그에게 위협이 되었다.

  테란과의 지상군 힘싸움을 신경질적으로 회피하던 그의 모습은 정확히는 2003년 한빛소프트배 이후 긴 공백을 뚫고 복귀한 올림푸스배에서 이미 보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선택한 캐리어가 적절히 받쳐주면서 테란잡이 박용욱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캐리어에 대한 믿음은 맹신으로 바뀌어갔다. 극단은 더더욱 극단으로 치달았다. 패배하면 패배할수록 승률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캐리어에 대한 의존도는 더더욱 높아만 갔다. 테란의 지상군에게 다급히 쫓기는 그의 모습은 테란 공포증에 가까웠다.

  화려했던 테란킬러의 모습은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다크아콘/캐리어등 후반 유닛에만 집중한 그의 극단적인 저그전도 힘을 잃어갔다. 그가 승리를 위해 택했던 공식들은 빛을 잃었다. 그가 승리를 위해 버렸던 공식들은 화려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모두 더블넥서스를 선택할 때 그는 하드코어 질럿을 고집했다. 결국 마지못해 더블넥을 선택하자, 마치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듯 허무하게 패했다.



  악마에게 모든 것을 바친 후였지만, 승리에 대한 근성만큼은 빼앗기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빼앗아도 남을 만큼 승리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영웅의 심장을 빼앗으며 화려하게 피어오른 그의 불꽃은 프링글스배 시즌1에서 다시금 4강에 오르며 그가 가진 열망의 크기를 증명하였다.
  그러나 결국 게임을 플레이할 육체가 무너지자, 그는 은퇴를 결심하였다.



  승리의 글씨가 흐려져 안개 속에 갇힌 듯 보이지 않을 때, 결국 사람들은 긴장의 끊을 놓는다. 시퍼런 이를 드러낸 야수가 눈앞에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달려들 때 질끈 눈을 감고 만다.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 정신이 현실을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절망 속에서도 눈을 부릅뜬 사내가 있었다. 손바닥이 부르트고 피에 범벅이 되더라도 승부의 끈에 온몸을 던져 매달리는 이가 있었다.

  이후에도, 그의 이름은 여러 곳에 오르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뿜어내는 승리에 대한 집념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난 그를 추억하고자 하며, 그에 대한 기억을 꺼내며 글을 접는다.



- 추천경기

한빛소프트배 박용욱vs정대희 <레거시 오브 차>
당신은골프왕배 박용욱vs변은종 <루나>
프링글스s1 16강 박용욱vs박정석 <8.15>
프리미어리그2차 박용욱vs김환중 <애리조나>
듀얼토너먼트 박용욱vs이운재 <기요틴>
우주배 박용욱vs박태민 <레이드 어썰트2>
당신은골프왕배 박용욱vs이윤열 <루나>
투싼배 팀리그 박용욱vs이재훈 <루나>
SPRIS배 박용욱vs김정민 <인투더다크니스>
SKY2004 박용욱vs박경락 <네오 포비든 존>
듀얼토너먼트 박용욱vs나도현 <8.15>
프링글스S1 박용욱vs심소명 <아카디아>
마이큐브배 결승전 박용욱vs강민 <신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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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
08/03/11 10:20
수정 아이콘
vs 이운재 기요틴... 정말 말도 안되는 경기
Parkgatoss
08/03/11 10:24
수정 아이콘
예전에, 박용욱의 위에서도 언급한 한 경기(vs 변은종)때문에 주종족을 바꾸었습니다.
08/03/11 10:36
수정 아이콘
마찬가지로 투싼배 vs 서지훈선수와의 아리조나경기도 추천합니다~
자리잡고있는 탱크사이로 드라군 드라이빙... 말그대로 쩔었습니다-_-
김태석
08/03/11 10:50
수정 아이콘
박용욱 선수도 정말 스타일이 멋지다고 생각한 선수였는데...
머랄까, 지더라도 무언가를 보여주는 느낌?
가끔 짜고 경기하는 WWE처럼 프로로서 관객들에개 보여주는 경기가 무엇인지
잘 보여줬다고 생각이 드네요...
히로하루
08/03/11 11:06
수정 아이콘
위에서 언급한 애리조나에서의 김환중 선수와 경기.

김환중 선수의 패스트 다크 템플러에 자기 본진 넥서스가 날아가버리고
자원도 400이 없었죠.
가까스로 나온 옵저버로 본진에 있던 다크를 제거는 했지만,
당연히 자원 캐지도 못하는데 왜 GG 안치지 -_-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꾼과 질럿 드라군 + 1기의 옵저버를 가지고
김환중 선수의 본진으로 완전 올인 러쉬를 갑니다.
그러고는 입구에 배치된 캐논과 드라군과의 목숨을 건 전투.

이 전투에서 말도 안되게 입구를 뚫어버리고
남은건 약 3~4기의 드라군.

그런데 그 드라군을 정말 악마같은 컨트롤로
일꾼 잡고
게이트에서 나오는 질럿, 다크, 드라군을 잡고

결국 일꾼 한마리 한마리 모두 잡아서
게이트 유닛 생산이 멈추게 되면서...

박용욱 선수가 본진 넥서스 날라가고도 이기는 희대의 경기가 나오게 되었죠.

아...-_- 정말 소름끼쳤다는;;;

근데 이운재 선수와의 기요틴 경기는 어떤건가요 대충?
기억이 잘;;
08/03/11 11:08
수정 아이콘
용욱선수도 참 좋아했는데...
글 잘 읽었습니다. 멋지네요.
08/03/11 11:10
수정 아이콘
이운재 선수와의 경기가 그 악마의 프로브가 나왔던 경기 맞지요?
08/03/11 11:22
수정 아이콘
네~ 그경기가 프로브 한개로 바락으로 입구 막을려고 하니 파일럿 짓고 가스러쉬인가 하고 팩토리 지으니까 애드온자리에 파일런 짓고
팩토리 뛰우니 내릴 장소에 프로브 같다 놓고 하면서 드라군 오면서 끝낸 경기가 맞습니다 ~
김연우
08/03/11 11:28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08/03/11 11:35
수정 아이콘
우연히 마이큐브배 결승을 친구네에서 보게된 나는 강민이 인지도가 더 높았고 강민이 더좋았다.
하지만 상대인 박용욱을 경기를 보면서 대단하구나라고 느낄수 밖에없었던.. 간지 결승이었는데..
제3의타이밍
08/03/11 11:53
수정 아이콘
이운재 선수와의 경기는 정말
이운재 선수가 마우스 던지고 나갔어도 할 말이 없는 경기...
선수가 성인군자라고 느껴졌습니다
마음의손잡이
08/03/11 12:03
수정 아이콘
낭만은 낭만이어서 아름답습니다.
08/03/11 12:44
수정 아이콘
이렇게 글로 읽어보고나니

과연.....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나도현전 815 경기 참 감동적으로 봤었는데 말이죠
새로운별
08/03/11 13:13
수정 아이콘
졌지만 마이큐브배 결승 vs 강민 2경기 기요틴...

사실 그 결승자체를 추천!
박용욱에 악마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기요틴에선 사실 리버 2번까지만하고
지상병력뽑았으면 질수가없었지만 과도한 악마정신으로 ;; 한번더가서 죽으면서 쏜 스캐럽까지
프로브를타격하던... 정말 인상깊엇던..
밀가리
08/03/11 13:50
수정 아이콘
박용욱의 제자가 된
김택용,도재욱 선수의 악마화를 꿈꿉니다.

김택용선수 예전 프로리그 토토전 백마고지에서 파일론러쉬+투게이트러쉬했는데 소질은 있다고 봅니다.
이제 계약만 남았군요.
컴퍼터
08/03/11 14:46
수정 아이콘
한빛소프트배때의 어린 박용욱의 모습에서 부터 현재 T1의 코치인 모습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도재욱 선수의 물량과 악마의 영혼이 잘 어울렸으면 하네요..
에반스
08/03/11 21:05
수정 아이콘
시간은 흘러도 명경기는 남는다는게 이런느낌일까요.

많은 프로토스들이 그의 마인드에 힘입어 다시한번 무너진 토스공국을 일으킬 날이 어서오길..
설탕가루인형
08/03/12 13:36
수정 아이콘
정대희 선수와의 레거시오브차는 정말 추천합니다.
지금이야 다들 사용하는 스플래쉬 토스지만 당시에는 정말 경악이었기 때문이죠.

변은종 선수와의 경기는 뭐...............
군대있을 때 봤는데 스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모두 TV앞에 앉아서
청소도 안하고 있다가 혼났던 기억이...

좋은 글 잘 봤습니다. :D
08/03/13 11:17
수정 아이콘
짧지만.
정말정말 오랜만에 살짝 전율을 느낀 글이네요.
08/03/13 14:36
수정 아이콘
이렇게까지 표현을 하시다니 정말 소름이 돋네요 . .

하나씩 다시 찾아봐야겠습니다. .

용욱동으로 글 복사했습니다.

양해부탁드려요 . .워낙 좋은글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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