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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9/04/25 20:07:43 |
Name |
Vesta |
Subject |
[LOL] 2019 LCK 스프링을 돌아보며 - (2) 화젯거리 단상 (수정됨) |
2013년을 기점으로 LOL씬의 헤게모니를 거머쥔 LCK는 작년, 그 리그 경쟁력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충격속에 관계자와 팬들은 다양한 진단과 분석을 내놓았지만, 토론 내지는 논쟁의 여부를 떠나 여전히 그 결과가 가져다 준 충격파는 여진처럼 남아서 사람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긴 것 같습니다. 혼란한 흐름 속에 시즌 9이 시작되었고, 제겐 LCK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번 스프링 스플릿 최대관심사는 LCK가 다시 패권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 혹은 실마리를 찾는 것으로 비춰졌습니다. 한편 이 핵심 담론을 중심으로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화젯거리들, 그리고 본격적으로 LCK도 라이엇 주관 시대가 개막하면서 시스템 및 리그 진행과 관련한 다양한 반응들까지, 최근 몇년만에 다채롭고 풍부한 이슈들로 풍성했던 스프링 시즌이 아니었나 합니다.
대격변! 스토브리그
LCK에겐 상처만 남은 시즌 8을 뒤로 하고, 각 팀들은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영입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시즌 내내 무너진 LCK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롤드컵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표로 마무리 하면서, 선수들은 물론 각 팀 코칭스태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은 가운데, 모두의 공감대는 결국 '전력의 재편'이었습니다. 시즌 내내 경기력이나 대회를 준비하는 방식에 있어 'LCK의 고인물 현상'에 대해서 비판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에, 또 선수들로서도 LCK 우승 = 국제대회 우승 유력이라는 공식이 깨져버린 상황에서 대부분 불만스럽기 그지 없는 성적을 냈기 때문에 2차 엑소더스 흐름까지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죠. 또한 기존 명문구단들에게도 팀의 대대적인 개편을 일찌감치 대비한 팀과 그렇지 못한 팀들 간에 희비교차가 두드러지게 나올 수밖에 없는 국면이었습니다. 그만큼 대격변이라는 말로도 모자라는 역대급 스토브리그였고, 앞서 서두에 말한 것처럼 국제대회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강한 전력을 가진 팀들이 나오길 바라는 팬들의 열망까지 겹쳐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관심과 이목이 쏠렸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입 소문들과 소식들이 근 한달 동안 많은 사람들의 애를 태웠고, 그리고 12월 초에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팀 스쿼드를 두고 관계자들과 팬들은 높은 관심을 표하며 전력평가에 들어가기도 했죠.
그리고 타이밍상 예년과는 달리 프리시즌 대회로서 어느 정도 시즌 초반을 가늠해볼 수 있는, 그리고 새 스쿼드로 시작하는 팀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KeSPA컵이 열렸습니다. 당시에 눈여겨봤던 부분은, 소위 스프링 스플릿에서 나타난 전력의 양극화 현상이 이때도 어느 정도 보였다는 점입니다. 양쪽 브라켓의 경기력은 눈에 띄게 다르게 보였으니까요. 그리핀은 전승 우승으로 한층 진일보한 팀워크와 개인기량을 과시했고, 담원은 드림팀이라는 별명을 얻은 SKT를 8강에서 역전승으로 꺾었으며, 아마추어팀들도 기존 프로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아프리카는 패기어린 경기력으로 그리핀과 접전을 벌이며 스프링에 대한 기대를 높였죠. 다만 SKT와 킹존은 각각 팀워크와 개인기량면에서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남기며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는 스프링 스플릿 초반 분위기와 이어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담론을 낳게 되죠.
전력의 양극화 : 서고동저
1라운드의 초반부터 KeSPA컵 전승 우승으로 기세가 오를대로 오른 그리핀, 그 그리핀과 함께 작년 롤드컵 동안 해외팀들의 '스크림도르'를 수상한 담원, 그리고 그 담원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저평가를 무색하게 만든 샌드박스까지 젊은 피들의 질주가 무서운 한편으로, 작년 롤드컵 대표팀이었던 젠지, 아프리카, kt는 총체적 난국을 겪으며 연패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초반에는 무기력했지만 빠르게 다잡고 중위권으로 회복한 킹존과 빛-할의 각성으로 관심을 받았던 한화의 6위 본능까지 리그 순위표는 극명하게 양쪽으로 나뉘었고, 주최측이 보여준 순위표의 노답 디자인이 그런 양상을 의외로 절묘하게 반영하면서 리그 전반의 흐름을 꿰뚫은 서부리그-동부리그라는 밈이 탄생해버렸죠. 관계자들은 물론 선수들까지 공공연히 인터뷰에서 서부리그에 가고 싶다, 동부리그를 탈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으니... 이와중에 작년에 부진했던 SKT만이 기존 명문팀중에 상위권에 안정적으로 안착했지만, 신/구 대비라는 프레임이 극단적으로 갈린 성적과 맞아떨어지는지라 기대치 대비 부진하다는 기준으로 저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작년 시즌 끝난 시점에서의 선수 면면에 대한 평가를 생각한다면 되게 모순된 평가였죠.
이렇게 극단적으로 전력의 양극화가 초래된 원인을 특정한 한가지 사유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실 작년 서머가 특이할 정도로 팀간 전력의 간극이 좁았던 편이었는데, 이번 스프링은 정반대죠. 의외로 팀 성적과 스토브리그 사이의 어떤 공통점을 찾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몇몇 팀들의 성적부진에는 선수 영입, 전력 보강의 측면에서 미진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젠지, KT의 경우에는 분명 스쿼드 문제가 굉장히 컸죠. 아프리카의 경우에도 기인-유칼만 믿은 경향이 강한데 결국 한 축인 유칼이 완전히 무너지자 기인 원맨팀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화 역시 트할의 영입은 나름 성공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극적인 전력 상승의 효과를 기대할 순 없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진에어 팬이 진에어를 두고 이야기한 어중간한 다이소팀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스쿼드와 실제 경기력이 모두 예상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딱 중위권 전력... 진에어는 신예들의 기량에 의존하기에는 역시 프로씬에서의 경험부족과 기존 선수들의 치명적인 부진을 감당하지 못했죠.
반면 SKT는 한발 빠르게 시즌 준비를 시작함으로써, 팀을 전격적으로 쇄신하고 스쿼드를 대개편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우승까지 달성했습니다. 킹존 역시 적극적인 틈새영입을 통해 탄탄한 전력을 갖추며 스토브리그 초반-후반의 대비되는 흐름처럼 스프링 시즌도 초반의 부진을 떨쳐내고 최종 3위라는 호성적을 거두는데 성공했죠. 그리핀은 비록 선점효과라는 면에 기댄 측면이 있지만 기존 팀의 전력을 더욱 끌어올려 2연속 결승진출을 이뤘고, 담원과 샌드박스는 영입과 인게임 플랜 양면에서 완벽하진 못했지만 첫 시즌치고는 매우 성공적인 편이었습니다.
보통 팀간 전력의 배분이 촘촘하고 간극이 좁으면 리그의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시각이 있는 듯 하지만, 예전부터 저는 생각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전력 보존의 법칙같은게 있진 않지만, 전력의 밀집이라는 현상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차라리 상위 5개팀 정도에 쏠리는게 오히려 국제대회 경쟁력은 더 올라간다고 보는 편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나오면, 서서히 또 전력의 재분배가 이뤄집니다. 다른 팀들이 상위팀들을 보면서 보고 배우고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니까요. 만약 고인물이 계속 해먹는 것처럼 고정된 최상위가 존재하는 LMS와 같은 형태라면, 리그 경쟁력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LCK처럼 패권을 차지하는 팀들이 변화하고 새로운 피가 수혈되고 기존 팀들의 경쟁력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리그라면 이야기가 다른거죠.
작년 서머 시즌은 제게는 당시 경기를 보면서도 그랬고, 지금도 반추해봐도 최근 몇년간 LCK 수준 중에 최고의 위크에라(Weak Era)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때도 서머시즌을 보면서 수준 높다는 소리는 별로 안나왔었고, 비원딜 메타라는 역대급 메타까지 겹쳐 각 팀들의 대응이 천차만별로 갈리면서 제대로 된 인게임 플랜을 갖추지 못한 팀들도 많았죠. 이러다보니 변수에 변수가 난무하며 상위 4팀의 성적이 13승 5패로 같았고 당시 7위따리였던 SKT마저도 8승이나 했을 정도니... 저 개인적으로 LCK 수준에 대한 의문을 표한게 그때가 처음인데, 결승전을 보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걸로 될까? 하고... 결국 롤드컵 가서 처참할 정도로 주류챔프 숙련도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려가 현실이 되어버렸죠. 개인기량이고 운영의 고인물이고 뭐고를 떠나서 당시 메타에서 주류챔프들을 6개 이상 다 못다룬다는 건 황당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것이죠. 예전 오존이 코르키, 그라가스 못다뤄서 조별 광탈한 것과 비교한다면, 이러고도 8강에 2팀이나 올려보낸게 오히려 역설적으로 LCK의 강함을 증명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인기량이라는 것을 비교하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주류 챔프 숙련도가 갖춰져야 비교가 되는건데, 당시 롤드컵 대표 3팀 중에 이렐, 아칼리는 둘째치고 르블랑, 아트록스, 오른, 사이온, 우르곳까지 제대로 다루는 팀이 없었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이야기로 번질 수도 있지만, 결국 저는 작년에 G2마저도 분쇄한 그 RNG의 원패턴에 속수무책으로 쓸렸던 것은 기존의 해법에 업데이트 없이 고수한 LCK팀들의 문제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코칭스탭의 문제도 엄청났다고 보구요. 그런 상황에서 리그 경쟁력이 떨어지다보니 이제 막 올라온 그리핀이 리그 최상위에 자리하고, 결승까지 올라갔는데 이건 지금 생각하면 참 황당하죠. 이번 시즌 그리핀과 비교해도 그때의 그리핀은 구멍이 숭숭 뚫린 팀이었는데. 정작 리그의 수준을 선도해주면서 이끌어주는 팀이 없다보니 그 역할을 그리핀이 했어야 했는데 당시 그리핀은 역량 부족이었고, 그래서 젠지, 킹존, kt, 아프리카 등이 애매하게 리그의 흐름을 나눠먹다가 다 한꺼번에 쓸려나간 것 같습니다. 그리핀이 작년 롤드컵에 나갔으면 달랐을까? 조금 달랐을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바뀌는 건 없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분산되어있던 전력의 밀집화가 이루어진 스토브리그를 거쳐, 팀워크를 맞추며 개인기량을 끌어올린 SKT, 킹존 그리고 신진 세대들인 그리핀, 담원, 샌드박스는 말 그대로 예전 LCK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모든 면에서 두루 능한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운영의 강함이라는 것도 결국 기본기, 챔프폭, 라인전, 한타가 다 갖춰진 상태에서 의미가 있는거죠. 힘이 없는 테크닉이란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편중된 게임플랜을 고수하고 전력 보강에 소홀했던 기존 강팀들의 부진은 KeSPA컵에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거였고, 이 격차를 따라잡으려면 서머 시즌을 대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경쟁이 심화되며 LCK의 수준도 더 올라갈테니까요.
새로운 물결
작년 서머에 입성한 뒤로 호성적을 연이어 거두고 있는 그리핀과 이번 시즌에 새로 입성한 담원, 샌드박스에는 소위 기존 프로씬에서 네임밸류가 갖춰진 선수들이 없습니다. 연령이나 프로 경력만 보자면 신세대라 말하기 애매한 선수들도 있지만, 결국 성적을 기점으로 강한 선수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미 그대로 LCK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주역들이죠. 발전과 변화가 아닌 안주와 안정화에 집착하던 작년의 강팀들보다도 더 예전 LCK를 연상시키는 경기 양상들을 보여주는 것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했습니다.
작년 한해 LCgay라는 멸칭으로까지 불리던 그 회피하는 운영은 사실 LCK 운영도 아닙니다. 한타든, 챔프폭이든 그 어떤 부분에서건 실력이 안되니까 나온 변종일 뿐이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고 과거 진에어의 게임 스타일에 대해서 항상 비판적이었던 이유도 결국 자력으로 원하는 타이밍에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는데, 작년 LCK가 다 유사진에어 스타일처럼 게임을 하고 있으니 황당할 뿐이었죠(킹존은 좀 예외였습니다. 이 팀은 그냥 MSI에서 폼이 떡락해버린게 컸음). 올해 스프링에는 그 진에어마저도 후반기에는 매우 적극적인 교전을 시도한다는 점이 긍정적이더군요. 짜여진 공식처럼 비춰지고는 있지만, 사실 LCK의 운영의 근본에는 막강한 한타력과 개인기량이 존재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포커스를 다시 되찾고 경쟁력을 올리는데 있어서 그리핀, 담원, 샌드박스가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보여서 고맙더군요. 고여있는 부분을 새로운 물결이 걷어낸 인상입니다. 그리고 그런 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발전한 대표적인 팀이 킹존이죠. 이런 유연한 대응에는 다년간 LPL에서 활약하면서 정상을 찍어본 폰-데프트의 역량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SKT의 경우에는 원래부터가 그런 LCK 스타일의 극한을 만든 원조와 같은 팀이니 그 열화판 아류에 휩쓸릴 이유도 없구요. 극단적인 주장에 따르면 LCK 스타일이라는 것도 SKT와 구 삼화가 거의 대부분의 틀을 다 만든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틀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업데이트 한 것은 LCK를 거쳐간 수많은 강팀들의 기여가 컸는데, 작년 서머에서는 그런게 없었죠. 정체는 곧 퇴보와 동의어입니다.
변화에의 갈망이 낳은 롤2 도래설과 세대교체 담론
작년 LCK에 대한 불만, 그리고 새로운 흐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러한 시각이 비단 저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닐겁니다. 아니, 많은 LCK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분들에겐 일종의 공통분모였겠죠.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차이도 존재할테고, 해석과 나아갈 진로에 대한 견해도 다를테지만. 그런데 적어도 그러한 감정이 격화되어있고, 또 절실했다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일리그의 정규시즌 1라운드가 채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시즌 전체를 조망하고, 섣부르게 예단하는 담론이 나왔다는게 설명이 안되거든요. 아무리 롤판이 재평가의 단위시간이 갈 수록 짧아지는 추세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앞서갔다는 말밖에 안되는거니까요.
무엇보다 세대 교체라는 담론에는 필연적으로 기존 세력의 몰락이 수반됩니다. 그래서 기존 명문팀과 네임드 선수들을 응원하는 쪽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진 않습니다. 다만 타이밍이 너무 일렀다는게 재밌죠. 지나가는 말이 아닌, 진지한 담론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이 그저 희한하게 느껴졌을 뿐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들에 자극을 받은 선수들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니, 킹리적 갓심으로 충분히 그럴법하지 않을까요? 크크크
사람은 위기에 빠지면 본래 극적인 변혁을 몰고오는 메시아를 갈망한다고 하는데, 마치 그런 것처럼 느껴진게 소위 '롤2 시대의 도래'라는 테마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MDC인 아칼리가 있었죠. 작년 롤드컵의 연장 선상 + 기존 팀에서 아칼리를 잘 안씀 + 반면 신진 세대의 선봉인 그리핀의 쵸비가 매우 잘씀 = 롤2... 저에겐 이런 구조로 보였죠.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그냥 하나도 공감이 안갔습니다. 선수들에게 있어서 매우 다루기 까다로운 챔프들은 존재합니다. 그게 메카닉을 많이 요하는 챔프건, 로지컬적인 부분이 중요한 챔프건... 하지만 블라디나 리산드라, 혹은 예전에 수많은 파일럿차이를 보이고 편중된 선호도를 보인 픽들에 대해서는 이런 말을 안나왔다는걸 생각하면, 작년의 그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뭔가 특별한 상황에서 극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가 발현된게 아닌가 싶더군요. 한 팀의 팬이라고는 해도 리그 수준을 가늠할 때는, 그냥 무덤덤하게 관조하면서 보는 저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순간이기도 했구요.
대부분의 거품을 지우고 나면, 한가지 분명한 진리는 남습니다. 주류 메타에 유행하는 챔프는 90% 이상 다룰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어떤 메타에서 3-5개 정도의 챔프가 핫한 픽으로 유행한다면 그중에서 1개, 최대 2개 정도는 팀 차원에서 밴을 투자해서 커버할 순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냥 싹 다 거르고 우리식 조합만 골몰한다면 쫄딱 망하는거죠. 상대팀이 바보도 아니고, 밴픽에서부터 엄청나게 지고 들어가는거니까요. 프로씬의 메카닉이라는 건 결국 상황변수에 크게 좌우된다고 보는데, 주류챔을 못하니 대응하는 방법도 모를 수밖에 없는거고 그러니 상대의 쇼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면서 피지컬 차이, 개인기량 차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일테구요. 물론 특정 스타일의 챔프를 못다루는 선수들은 그게 실력이라고 볼 순 있는거지만, 지금이 무슨 5-6년전 로망의 기운이 남아있던 시대도 아니고 지금 같은 시대에 대부분 정상을 노리는 선수들 중에서 챔프를 가린다? 그건 그냥 말이 안되는거죠. 크라운처럼 학창시절 빡빡이 연습장에 연습을 해서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도와 최소한 그 챔프에 대한 대응법을 익힌다면 망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롤2 담론은 중요한 시점에 아칼리 사일러스 신나게 쓰면서 우승한 SKT와 다채로운 밴픽 대응으로 그리핀을 앞지른 킹존, 그리고 그 롤2 이야기의 선두에 있었던 그리핀이 2라운드 들어서 겪은 부침으로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경각심과 경계심을 가질법한 작년부터 이어진 일련의 흐름이지만, 가끔 너무 겁낸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더군요. 도태된다는 걱정이 너무 앞선달까. 언제나 리그는 변화하고, 발전합니다. LCK의 인풋이 예전에 비해 구리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당장 챌코기준 역대급 팀들이 올라왔으니-그 아웃풋에 대해서도 지나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편입니다. 어떤 변화와 발전의 흐름상이 특정 부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구요.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신진 세대들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바람을 제대로 소화한 팀들이 나왔기 때문에, 그로 인해 LCK가 더 강해지는 인상을 받은 입장인데, 이에 그치지 않고 스프링 시즌에 부진했던 다른 팀들도 더욱 자극받아 분전해줬으면 합니다. 롤은 메타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격변하기 때문에 항상 고착화되어있는 것을 경계해야 되고, 세대 교체는 시즌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물결이 유입되는 현상이지 어느 기점을 토대로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경험과 성장
시즌 초에 이러한 세대교체 담론, 메카닉 요구치가 높아지는 챔프들의 대두로 인한 소위 롤2 이야기와 신-구 세대의 극명한 성적 양극화로 흡사 혁명을 바라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했다면, 시즌 후반으로 갈 수록 그러한 시각에 대해서 역습이라도 하듯이 기존 세대의 전설적인 선수들을 필두로한 경험과 로지컬의 중요성이 화제의 중심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주제에서 포문을 연 역할을 한 것은, 의외로 샌드박스의 약점으로 꼽히던 91년생 아재(?) 서포터 조커였습니다. 나이가 많으니 반응 속도와 메카닉에 대한 의문점이 따라붙고 여기다 더해 챔프폭까지 의문부호를 달고 살았죠. 하지만 시즌 전체를 볼 때, 결국 이 선수가 도드라지게 메카닉이나 챔프폭에 문제를 나타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쓰레쉬 숙련도와 LCK 운영의 묘를 보여주는 것 같은 샌드박스의 매크로 플레이를 진두지휘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죠. 이는 시즌 후반부 SKT, 킹존의 베테랑 선수들의 비상과 그러한 경험치를 가졌다 평가받는 선수들의 부재 혹은 부진으로 팀의 기전 자체가 안돌아가는 상황에 놓은 하위권 팀들의 모습으로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올해 20세인 선수와 26세인 선수간에는 그 6년만큼의 메카닉 격차가 얼마나 존재할까요? 저는 어떤 중요한 건강변수가 없는한은 거의 없다고 보는 편입니다. 애초에 20-30대 이 구간에서 LOL 게임 속 수많은 변수에 유의미할 정도로 일관되게 관여할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까요? 어떤 연구결과에 따르면 분명 반응속도는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서 내려간다고는 하는데, 이는 사실 생물학적인 면으로 봐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과연 얼마나 그게 유의미할 정도의 차이일까요? 나이가 어린 선수들도 로지컬적 부분의 미스와 경험 부족, 자기 과신으로 인해서 cc에 걸려 허무하게 짤리는게 다반사인 이 게임에서 말이죠. 차라리 체력과 집중력의 차이가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는 자기 관리로 충분히 커버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구요. 예를 들어 프레이가 작년에 한타 포지셔닝이 엉망이었던 것은 나이로 인한 것이 아니라 멘탈, 집중력, 그리고 킹존의 인게임 플랜의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이번 시즌 바이퍼만 봐도 정말 엄청난 반응속도로 시즌 중에도 감탄을 이끌어낸 선수인데, 시즌 후반기에는 프레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으면서 그 메카닉은 커녕 존재감조차도 없고 딜을 넣기도 전에 허무하게 삭제되는 그림도 잦았죠.
LOL이 1 대 1 게임이라면 이런 미묘한 반응속도의 차이가 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LOL은 팀게임이고, 이는 농구와 같은 긴박한 구기종목에서조차 나이 많은 선수가 젊고 파릇파릇한 선수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하죠. 내재된 힘으로 극복하는 것을 요령으로 대체하게 되고, 이것이 최적화가 되는 선수일 수록 롱런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정수준의 피지컬이라면 얼마나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인게임에서는 매우 놀라운 피지컬로 승화될 수도 있다는거죠. 그걸 2015년 마린, 2016년 벵기, 2017년 앰비션과 같은 선수들이 보여준 것이구요. 그래서 저는 20대 후반이 아닌 이상 연령의 고저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편입니다. 물론 그 간극을 경험에서 배운 노하우와 테크닉으로 대체하지 못한 선수들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또 다르겠죠. 하지만 꾸준히 상위권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에게서는, 이는 별 의미가 없는 논제라고 봅니다. 지금도 각 리그별로 IMF 전에 탄생한 고인물들이 최정상권에 있다는 것만 봐도 굳이 더 강조할 필요도 없을 듯 하구요.
다른 면에서 보자면, 젊은 선수들은 결국 이 경험치를 어떻게 자신의 레벨업 에너지로 써먹을 것인가가 선수의 성장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롤에서처럼 정해진 퀘스트만 수행하면 자동으로 레벨이 오르는 시스템이 아니니까요.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성장의 자양분으로 것인가? 그 차이가 향후 선수의 클래스를 가를 것이고, 다음 시즌, 그리고 멀리 보자면 LCK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가 되겠죠.
LCK 3.0 시대의 서막
아직은 LCK가 대회 포맷을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를 고수하며 세계의 정점으로 치닫던 시즌2-4를 LCK 1.0으로, 1차 엑소더스와 리그 개편, 팀 통합의 내홍을 이겨내고 공고한 위상을 갖춘 시즌 5-8을 LCK 2.0으로 본다면, LCK가 다년간 독점한 패권을 잃어버린 후 라이엇 주관 시대, 새로운 시스템을 맞이한 현재를 LCK 3.0의 시작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세대 교체를 논하는 이야기의 결이 그다지 공감가지 않았다는 논지로 견해를 밝혔습니다만, 세대 교체는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말하는 그 극적인 세대 교체의 타이밍을 잡지 않아도, 리그에 보이는 선수들의 면면이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그렇기에 시대의 주역이었던 선수들도 새로운 시대가 가져다주는 변화의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 치열한 노력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원래 쓰나미는 영화처럼 극적인 임팩트를 보여주진 않아도, 어느 순간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니까요.
아마도, 그리핀과 담원 그리고 좀더 포용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샌드박스에서도 그 새로운 물결의 주역들로서 성장할 선수들이 여럿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LCK의 입장에서는 호재라고 볼 수 있는 인재들의 등장이죠. 그리고 그들에게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아니 오히려 그들이 보여주는 새로움을 받아들여 더욱 성장하기 위해 기존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도 더욱 절차탁마할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시너지를 일으켜 최고의 리그가 되는 것. 바로 그게 제가 지켜봐온 진짜 LCK입니다.
라이엇이 주관하는 대회 진행에 대한 설왕설래도 많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몇몇 인게임 부분의 단점을 제외하면 민감하게 보는 편은 아닌지라 생략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그런 저에게도 많은 분들이 아쉬움을 표하는 UI 문제라든가 인터뷰에 대한 지적들, 그리고 대회 진행 전반에 걸친 미숙함에 대한 비판은 공감이 가더군요. 그래도 피드백은 이뤄지는 것 같아서 서머 시즌에는 좀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3편은 SKT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 생각이라, 비교적 보편적인 담론은 여기까지입니다. PGR 유저분들 다들 스프링 스플릿 보신다고 고생하셨고, 선수, 관계자 이하 고생하신 많은 분들에게 응원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LCK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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