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어체로 작성된 글입니다.



애인은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하던 게임이라고는
가끔 하는 애니팡, 동생이랑 같이 가끔 하는 모바일 배그 정도.
여자인 걸 감안해도 그 흔한 스타조차 제대로 해 본적 없는 그야말로 겜알못!

그런 사람이 블빠인 나를 만나 블리자드 게임을 차례차례 접하며 게임의 참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스타를, 그다음엔 오버워치를, 그다음엔 히오스를, 그다음엔 하스스톤을......
데이트할 때마다 피씨방을 가다가 나중엔 아예 커플 PC가 있는 방을 잡고 거기서 게임을 하는 게 데이트가 되어버렸다.
애인은 가끔 블리자드에서 언니에게 상 줘야 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하곤 했다.

스타는 주종이 저그인 나를 상대로 주종 테란을 골라 200판쯤 지고 5판을 이겼다.
옵치는 힐러가 주캐인 나를 옆에 붙여놓고 킬딸하고 팟지 먹는 재미로 한단다.
히오스는... 열심히 꼬셔봤는데 재미가 없단다........... 따흐흑....
그리고 우린 요즘 하스에 미쳐있다.
자기 전에 누워서 전화 통화하며 하스 하는 재미로 산다.
거의 동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비슷한 조건으로 시작했고, 현질도 똑같은 금액만 했다.

처음에는 애인이 연전연패하면서 매일 삐지고, 짜증을 냈더랬다.
게임 지고 삐지는 게 너무 귀여워서 놀리기도 하고, 짜증 나서 하스 접는다고 했을 땐 어르고 달래가며 같이 계속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겨우겨우 나를 이기기도 하고, 한두 번씩은 처참히 나를 발라버리기도 해서 나를 놀래키키도 했더랬다.
애인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서로 재미도 붙고 경쟁심도 붙어서 새벽 늦게까지 게임 하고 잔 날도 많았다.
주로 애인이 계속 지면, 열 받아서 이길 때까지 하느라 한 판 더! 한 판 더! 하다가 새벽 두 시를 넘기는 식으로.
그러다가 내가 전 재산인 가루를 탈탈 털어 위즈뱅을 제작한 뒤로는 애인이 너무 매번 져서.........
게임을 하다 싸운 적도 많다. 애인이 너무 지니까 짜증을 내고, 난 처음엔 귀엽다고 하다가 애인 짜증이 심해지면 적당히 하라고 하다가 싸우고.
이 나이 먹고 게임 하다가 싸웠다는 말은 창피해서 어디다 하지도 못했다.
하도 지니까 애인이 진짜 하스 지워버린다고 몇 번이고 투정 부려서 접지 말라고 별짓을 다 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애인이 주캐인 굴단을 빼고 다른 직업 카드를 모두 팔았다. 기본 카드만 남기고.
모은 가루로 이것저것 카드를 제작하더니 승률이 꽤 많이 올랐다.
전설 카드가 줄줄이 나오는데, 제작 없이 카드팩 까서 나온 것만으로 승부 보는 나로서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았다.
애인은 승리를 좀 맛보더니 재미가 들렸는지 어느새 중립 카드도 일반 카드는 거의 다 팔아버렸다.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다 팔아 모은 가루로 사기 카드를 왕창 제작해서 덱을 채워 넣었다.
그때부터 나는 애인을 상대하는 게 슬슬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주캐인 도적으로 상대하는 데 한계가 있어 위즈뱅으로 붙어봐도 승률 6할이 버거웠다.
그래도 이기고 지는 재미가 있었는데, 애인이 중립 카드조차 거의 다 팔아 전설 카드를 모으기 시작하자 한계가 왔다.
내 승률이 4할 아래로 떨어졌다.

당신 카드 진짜 사기야!!!
라고 외쳐봤지만, 소용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이라곤
언니도 주캐 말고 카드 다 팔아요 크크크크 그럼 언니가 나보다 더 좋은 카드 많이 맞출 수 있잖아요!
하지만......
수집에 약간 강박이 있는 나로서는 안 쓰는 카드일지라도 보유 수량이 3개 이상인 카드 외에는 팔 수가 없었다.
언제 어떻게 쓸지 모르고 내가 언제 다시 주캐를 바꿀지도 모르는데 이걸 팔아?
하는 생각에 도저히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가끔 대전도 하는데, 애인은 거의 나랑만 게임을 하다 보니 레벨이 낮아서 야생 덱으로 붙을 수도 없고
반대로 애인은 위즈뱅을 쓰지 못하니 내가 위즈뱅 쓸 때마다 내게 사기라고 하고.
아... 물론 지금은 위즈뱅으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애인 덱이 좋다.
답답해서 현질 좀만 더하자고 하면,
애인은 내가 코볼트 6팩을 더 받고 시작한 걸 가지고 언니는 금수저고 자긴 흙수저라면서 현질 할 거면 자기만 하겠다고 난리다.
난 억울해....
코볼트 6팩 그거 언제 받은 건지도 모른다... 다른 블쟈겜 하다가 받았나 보다.
하스 처음 시작할 때 보니까 내 계정에 있더라....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안 먹힌다. 난 금수저고 자긴 흙수저란다....
아니 당신이 쪼렙이라 그 6팩은 당신이랑 할 때 쓰지도 못해... 라고 얘길 해도 자긴 억울하단다.........
누가 누구보고 억울하대 지금......

아무튼 좋다 이거야.
게임이란 게 원래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고 한 거니까 다 좋다 이거지.
물론 요즘 내가 너무 많이 져서 좀 시무룩하고 자존심 상할 때도 있지만 그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원래 게임은 그런 거니까!!

근데.......
애인이 게임을 너무 얍삽하게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좋은 카드를 내길 기다렸다가 얼굴 없는 배후자 카드를 써서 내 카드를 베껴간다.
여기까진 좋아... 얄미워도 그럴 수 있지.
그러고 나서 주문 파괴자 카드를 내서 내 카드를 침묵시키거나, 아니면 굴단 직업 카드를 써서 베껴간 내 카드를 처치한다.
와..... 개 열 받네???
이게 한두 번이 아니고 계속 이러니까 내가 진짜 열 받고 짜증 나서 게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제도 게임을 하는데 매 판마다 내 카드를 베껴가고 나서 침묵시키거나 처치를 하니 짜증 나서 게임 할 의욕을 잃어버렸다.
아니 베껴가는 거? 좋아! 해도 돼. 침묵시키고 처치하는 거? 좋아! 해도 돼!!!
그치만 두 개를 한꺼번에 하는 그런 얍삽한 짓은 하면 안 되잖아!!!!!
울분을 토하면서 둘 중 하나만 해라... 해도 애인은..... 하.......
게임 이기고 웃는데 진짜 너무너무너무 얄미워서 옆에 있으면 꿀밤 한 대 때리고 싶었다가 나중엔 그럴 맘도 사라졌다.
게임을 왜 이렇게 얍삽하게 하냐고, 둘 중 하나만 하라고 하다가 결국은 싸워버렸다.

언니도 게임 지니까 약 오르죠? 짜증 나죠? 하는데
아니 게임에 져서 짜증 나는 게 아니고 플레이가 얍삽해서 짜증 나는 거라구!!!!
얍삽하다 뭐라 하니, 언니도 매번 얌생이처럼 카드 가져가면서 왜 뭐라고 하냔다.
아니, 그건 당신 카드를 가져가는 게 아니고 도적 직업 카드 중에 다른 직업 카드를 가져오는 게 있는거라구....
당신 카드를 뺏는 게 아니라니까?
근데 당신은 직접적으로 내 카드를 베껴간 다음에 내 카드를 없애거나 무력화시키잖아!!!
똑같은 게 아니라는 데도 자꾸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를 하니 빡이 안 칠 수가 있나....
애인은
언니도 카드 복사하잖아요! 열 장씩!!
하고 응수하는데 아니 그건 내가 내 카드 복사하는 거지 당신 카드 복사한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토그왜글의 계략은 재수 없으면 10장이 아니라 한 장밖에 복사 못 한다고.....
다른 거라고 얘길 해도 소용이 없다.

어제는 내가 전설 카드 가져오기를 해서 가져온 이세라 카드를 복사해서 가져간 뒤에
내 이세라 카드를 침묵시켜버린 애인에게 맛탱이가 가버렸다....
김구라 빙의될 뻔....
애인이 복사해간 이세라를 죽이질 못해서 4 턴이나 살려두는 바람에 져버렸으니.
하........ 다시 생각해도 빡치네......

애인은 이게 다 전략이고 전략 카드 게임에서 전략 쓰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하고,
나는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을 좀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너무 얍삽한 거 아니냐고 하고.
하.... 삼연벙에 당하고서 전략 운운하는 임요환을 보는 홍진호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싶더라.
그래서 싸우다 말고
이 임대갈 같은 인간아!!! 내가 왜 홍진호를 좋아했는데!!! 승리도 승리지만 정정당당 멋있는 게임을 보여줘서 홍진호 팬이었던 거라구!!!!
하여간 테란 놈들은 다 얍삽해!!!!!!!
하고 성질을 내다가 냉전 상태로 전화를 끊고 말았다.

이 나이에 게임 하다가 이렇게 싸웠다고 하면 다들 나잇값 못한다고 욕하겠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울화통이 터져서 피쟐에라도 좀 한탄을 하고 싶었어요.
전략이고 뭐고 게임에 승리 외에도 다른 가치가 충분히 있는 건데
얼굴 없는 배후자에 주문 파괴자 혹은 처치 콤보는 너무 얍삽한 거 아닙니까???
저만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