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한글로 된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요?
1863년, 남북전쟁 시기 미국 버몬트, 독실한 청교도 가문에서 태어난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와 문학에 큰 관심을 가졌고,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을 다니는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극동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교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조선은, 서양에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미지의 은둔 국가였습니다. 질색하며 거부하는 형과 달리 그는, 뉴욕 유니언 신학대를 당장 그만두고 조선이라는 낯선 나라에 대해 손 가는 대로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1884년 12월, 조선에서 급진 개화파 세력에 의한 쿠데타가 벌어져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이되자, 조선행은 무기한 연기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조선에 대한 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다시 조선에서 학교설립 계획을 재개한 뒤, 1886년 7월 5일, 조선 제물포에 처음 발을 딛게 됩니다.
헐버트는 조선에 처음으로 세워진 근대식 교육기관,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조선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게되었습니다. 본래 수학을 가르치기로 되어있었지만, 뛰어난 언어적 재능 덕분에 1년 만에 상당한 수준의 조선어를 구사했고, 많은 조선인 친구들을 사귀게됩니다.
그러나 헐버트는 조선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될수록, 구한말의 부패한 정치행태 또한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수구적인 대신들은 사사건건 육영공원에 개입하려 들었고, 수업을 훼방놓았습니다.
헐버트는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을 지배하고 있는 모든 정치원리는 국가를 빈곤으로 몰아넣고, 체제는 약자의 몫을 강탈하고 있다"며, 자신이 만일 조금이라도 개혁에 힘이 될 수 있다면 조선에 온 보람이 있을 것이라 말하는 등, 근대 교육인으로서의 정치적인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조선 사람들로 하여금 '미몽'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가장 급선무인 것은 바로 세계지리에 대한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결실이 바로 사민필지(士民必知)였으며, 그 뜻은 ‘선비와 백성이 필히 알아야할 지식’이었습니다.
그럼 120년 전의 지리교과서엔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바로 읽어 보겠습니다.
유로바
동에는 산이 별로 없고 큰 들이 많으며 또 큰 강들이 많고 서에는 크고 높은 산이 매우 많으니 대개 다 동서로 건너지르고 또 강도 많으며 또 서남북 삼면에 큰 섬과 바다와 포구가 많다.
일기를 의론컨대 북편에는 매우 춥고 남편에는 심히 고르며
사람의 수효를 의론컨대 대개 삼백이십팔백만 명이오 종족은 고개션이오 또 북편에 몽고도 좀 있다.
모든 나라를 의론컨데 모두 십구 국이니 아라사국과 노웨국과 쉬덴국과 덴막국과 덕국과 네데란스국과 벨지암국과 옝길리국과 블난시국과 이스바니아국과, 포츄갈국과, 쉿슬란드국과, 이달리아국과, 오스드리아 헝거리국과, 루마니아국과, 셰비야국과, 만트늬그로국과, 터키국과, 그리스국이 있다.
나라가 강하고 군사가 정하며, 재물이 많고, 재주가 좋으며, 학업이 정밀하고, 도학(종교)에 전일하며, 정사는 모두 백성의 뜻을 따른다. 소경과 귀머거리와 벙어리와 앉은뱅이라도 다 학업을 가르치는 학당이 많고, 의지할 데 없는 늙은이와 어림쟁이(고아)와 악한 창질(피부병자)과 미친 병(정신병)이를 거두어 공궤하며 치료하는 병원이 많아 도무지 버리는 사람이 없다.
높은 관리라도 낮은데서 일하는 백성을 업신여기거나 침탈하는 일은 엄금하여 크게 벌하고 노복과 창기와 여러 첩 두는 것을 엄금하여 사람을 매매하는 폐단을 용납지 못하게 한다. 도무지 백성을 위하고 그윽히 돌봄으로 모든 정사의 주장을 삼는 고로 나라마다 백성들이 제 나라에서 즐긴다. 그러므로 온 천하의 각국중에 유로바와 아메리까 나라가 제일 높다고 한다.
또 온 천하에 나라와 사람을 네 계층으로 분별하니, 덕국, 블란시국, 오스드리아국, 옝길리국, 노웨쉬덴국, 덴막국, 레데란스국, 벨지암국, 쉿슬란드국, 이다리아국, 합중국이 제1층이고, 아라사국, 루마니아국, 셰비아국, 그리스국, 이스바니아국, 포추갈국, 멕스고국, 남아메리까 모든 나라와 일본국이 제2층이고, 터키국, 모라고와 알지리아와 트레볼리와 이즙국, 만트늬그로국, 아시아 모든 나라가 제3층이고, 아프리카 속 모든 나라와 태평양 섬 속 모든 나라와 그릿난 속 모든 땅과 오스드렐랴 속 모든 땅은 제4층이라 한다.
아라사
아라사국은 유로바 모든 나라중에 제일 큰 나라이다. (유로바 땅 반이 다 아라사국이다.) 북은 북빙양이오 동은 아시아와 개스비안이란 못(수천 리 되는 못이라)이오, 남도 아시아이며 또 블랙이란 못(수천 리 되는 못이라)과 루마니아국, 오스드리아국이오, 서는 덕국과 볼듹이란 바다와 쉬덴국이다.
평원이 광야하고 동남에만 산이 둘넛이니 동에는 유랄이란 산이있고, 남에는 개스비안과 블랙이란 두 못 사이에 고개셔스란 산이 있고 또 큰 강이 있으니 볼가란 강은 개스비안 못으로 통하는 포구이고, 오데사라는 포구는 블랙 못으로 통하고 또 늬버란 강도 블랙 못으로 통하고 돠이나란 강은 화잇이란 바다로 탕한 포구이고, 서쪽 볼듹 바다에 릐나와 크런스닷이란 두 포구가 있다.
북쪽은 매우 춥고 여름이면 밤이 대단히 짧고 낮이 대단히 길며 남쪽은 좀 덥다.
철석은 금, 은, 동, 철과 석탄과 석유(석유가 미국 다음 제일 많으니라)며, 국체를 의론컨데 임금이 계셔 대대로 다스리되 모든 정사를 임금이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돕는 대신은 네 유형이 있어 모든 법체를 맡은 이와 죄를 다스리는 이와 나라의 종교를 맡은이와 군사와 외교와 재정을 맡은 이오 또 온나라를 오십 고을로 나누어 고을마다 한 감사가 있고, 형벌하는 법은 역적만 죽이되 연좌는 전혀 없고 다른 죄들은 경중대로 귀향 보내 괴로운 역사를 시키며 옥에 평생 가두기도 한다.
사람 수는 구십백만명(9,000만명)이오 종족은 고개션인데, 간혹 몽고도 있다. 언어는 나랏말이 있으나 사투리가 여러개며 수도의 이름은 피더스뻐그니 서쪽 볼듹 바다 근처다. 나라 한가운 데 머스고란 큰 촌이 있는데(옛날 서울이다) 서쪽에 워셔란 큰 촌이 있고 남쪽에 오뎃사란 큰 포촌이 있는데 여러 나라와 상통하는 큰 포구다. 동쪽에 아스드라간이란 큰 촌이 있고, 또 나브고랏이란 큰 촌이 있으니 큰 시장이 열린다.
백성의 생업은 농사와 길쌈과 가죽 다루기, 쇠파기, 짐승 치기, 덫으로 짐승 잡기다.
사람의 계급은 양반과 선비와 장사와 농사와 쟝색(노동자)이다.
양반은 몇백 년 전에 조상이 어떤 큰 공이 있음으로 나라의 많은 땅을 받아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니 그런고로 양반이면 대개 다 가난치 아니하다. 서양 양반은 다 이와 같으니라. 또 양반과 백성의 분별이 있으나 언어와 풍습과 벼슬하기는 별로 분별이 없느니라. 어느 나라라도 서양은 다 이러하니라.
국세는 온 천하에서 제일 강하여 천하 각국이 꺼린다.
재정을 의론컨대 별로 부유하진 못하고 세금을 돈으로 받으니 일년에 오백백만원이다. (서양 각국이 다 돈으로 세금을 받느니라)
옝길리국
동편 큰 섬을 셋에 갈라 이름하니 남편은 옝길란드라 하고 동편은 스컷란드라 하고 서편은 웰스라 하며 서편 적은 섬은 아열란드이오 이 두 섬 사이 바다는 아열란드 바다라 이르니 옝길란드 지형은 큰 산이 없고 적은 산이 많으며 뎀스란 강이 북해로 통하였으니 이 강이 서울로 꿰뚤어 큰 포구요, 또 동편에 드렌트란 강이 북해로 통하니 이름이 험버 포구요, 서편에 새번이란 강이 대서양에로 통하니 이름이 쁘릐스털 포구요, 또 머세란 강이 아열란드 바다로 통하니 이름이 머세 포구요, 남편에 와잇이란 섬이 있고 스컷란드 지형은 큰 산이 많아 극히 험하고 동편에 뒤드와 띄란 강이 북해로 들어가고 또 테이란 강이 북해로 통하니 이름이 테이 포구요, 또 폿과 모레란 포구가 있고 작은 못이 많으며 서편에 클라잇이란 강이 대서양에로 통하니 이름이 클라잇 포구다.
일기를 의론컨대 매우 고로르고 항상 구름이 많아 해를 자주 가리우고 적은 비가 잦으며 여름에 장마는 아예 없다.
사람의 수효를 의론컨대 사십백만명이며 종족은 고개션이오, 언어는 각각 지방의 말이 크게 서로 같지 아니하지만 또 옝길리 본말이 있어 서로 통한다. (이십년 전부터 영국말이 천하 각국에 통하는 말이 되었느니라)
국체를 의론컨대 임금이 계시고 대대로 계승하되 만일 태자가 없으시면 공주가 이어 즉위하시고
정사는 백성들이 모두 주장하고 정사를 돕는 대신도 백성들이 뽑는다.
형벌하는 법은 살인죄만 교하여 죽이고 다른 죄는 경중대로 혹 속(벌금)받으며 혹 옥에 가두되 죽을때까지도 가둔다. (죽이는 형벌에 피흐르는 것이 옳치 아니하고 참혹하다 하여 교하여 죽이느니라. 유로바 나라들은 다 그러하니라.)
도성을 의론컨대 이름이 런던이니 뎀스 강 가에있다. (천하에 제일 큰 서울이니 팔십 리에 인가가 이어져있다.) 또 옝길란드 남편에 폿스멋과 프릐멋과 쁘리스털이란 세 큰 촌이 있고 또 한가운데는 뻐밍함이란 큰 촌이 있고 북편에 맨체스터와 쁘륏펀과 릣스와 역과 쉐필드와 헐과 리버플과 누캐슬이란 여덟 큰 촌이 있다.
사람의 계급은 양반과 선비와 백성이오 백성의 사업은 장사와 쇠파기와 장색과 농사이다. (또 아무 재주를 의론치 말고 가르치는 선생이 매우 많으니라)
장사 사무를 의론컨대 온 천하 각국에 비하여 제일 간절히 힘쓰는 것인 고로 어느 나라나 어느 지방을 의론치 말고 또 사람 아니 사는 빈 땅이라도 두루 다니며 찾아 장사 사무에 관한 일이나 물건을 살피며 구하여 얻으면 곧 그곳에서 장사일을 시작하니 그런고로 온 천하에 옝길리국 사람 없는 곳이 없다.
국세를 의론컨대 매우 강하고 더욱 해상에 다니기와 전쟁하기는 천하에 도무지 당할 이가 없다.
국재를 의론컨대 매우 부유하여 아메리까국 다음 제일이오 일년에 부세받는 돈이 사백육십백만원이오, 각 속방에서 받는 것이 일 년에 이천백만 원이니 국재를 도합하면 육십천백만원이다.
또 온갖 병자와 악한 창질과 의지할 데 없는 늙은이를 거두어 공궤하고 치료하는 병원이 매우 많으니라.
종교를 의론컨대 야소교를 준행하고 예배당이 사만 오천이오 또 아무나 아무 교를 아무렇게나 믿는다.
나라 소무를 의론컨대 각국에 나가 사는 장사와 전교사를 힘써 보호하고 아무 무례한 지방 풍속을 가르쳐 문명하게 하고 또 새로이 다른 땅 얻기를 힘쓰며 전혀 다른 나라 일이라도 상관하기를 매우 좋아한다.
얻은 땅을 의론컨대 장사 사무에 관한 일이나 물건이 있고 그 지방 풍속이나 어떤 불편한 일이 있으면 그 지방 ‘풍속 고치기’를 힘쓰고 달래어 그 지방이 만일 고집하여 풍속을 고치지 않으면 무력으로 잡거나 빼앗으니 아시아 남편 인도 온 땅과 범아 한 쪽과 오스드렐랴 온 땅과 아프리가 해변 여러 곳과 아메리까 남북과 태평양 여러 섬과 대서양 여러 섬과 인도양 몇 섬과 지중해 몇 섬을 다 차지하였느니라. 본 땅은 작으나 각 처에 얻은 땅이 많은 고로 천하에 지방이 제일로 너르니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