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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1/17 01:27:18
Name 된장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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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글래디에이터2 - 이것이 바로 로마다(강 스포일러) (수정됨)


영화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후 16년인 서기 200년, 쌍둥이 황제 게타와 카라칼라가 지배하는 로마제국의 군대가 북아프리카의 국가 누미디아를 침공한다'는 아주 근본없는 설정으로, 이것은 엄밀한 역사영화 아니라고 언급하고 시작합니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80년에 죽었고, 저 두 사람은 연년생에다가 211년에 공동통치를 했으며, 누미디아는 작중 시점에서 200여년도 전에 로마한테 망했습니다.)

누미디아인 코스프레를 하는 우리의 로마인 주인공 '루시우스 베루스 아우렐리우스'(누가 로마인 아니랄까봐 로마인의 신이 아닌 누미디아인의 신에게는 제물도 안 바칩니다.)는 전작에서 삼촌 콤모두스 사후 황위를 노리는 로마의 '늘 있는 WWE'를 피해 도망치다가 결국 '로마는 힘으로 깽판을 치는 나쁜놈이야'라고 결론을 내리고 누미디아인 아내도 만나고 누미디아인 군대에 있다가(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나오는 그 유명한 '로마는 힘으로 이겨놓고는 그거를 평화로 부르네 어쩌네' 그것도 나옵니다) 쓸데없이 멋있으라고 투구도 벗어던지고 선봉장으로 나선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아카시우스에게 누미디아인 아내도 잃고 자기는 노예로 잡혀갑니다. 여기서 그는 아내를 죽인 화살을 꺾은후 자기의 아내를 죽인 로마에 복수를 맹세합니다.

뭐 늘 있는 전쟁씬은 중요한게 아니고 하여간 중요한거는 마르쿠스 아카시우스는 '로마에 4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개선장군으로써 개선식을 한다'는 부분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우구스투스 이래 제정시대 로마에서는 오로지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만 할 수 있는 이런 정식 개선식을 하면서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 인간은 본인이 '로마의 구석'을 받은자라는걸 당당하게 인증하는데요. 당연히 젊은 쌍둥이 공동 카이사르 중(실제로는 연년생) 맛탱이가 간 카라칼라 말고 그나마 제정신인 게타는 칼까지 뽑아 들면서 '느그 마누라는 대체 나한테 왜 협조 안함? 너도 사실상 황제 행세 하면서 니만 인기 독차지 하지 말고 내가 다스리는 로마의 권위와 영광을 빛내는 행사인 콜로세움 검투 경기에 참석하라'라는 식의 엄포를 놓습니다. 마치 동시기에 어느 한나라 황제가 권신한테 칼 들이 밀고 '니가 날 안 섬길거면 차라리 나를 폐위해라'라고 협박하는 대목이 생각나는 부분이었네요.

근데 알고 보니까 그 마누라라는 양반이 전 황제 콤모두스의 누이이자 그 명성 높은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인 루실라네요? 게다가 이 부부 게타 황제가 그렇게 견제하는 이유를 알겠다는 듯이 '나라를 위해 로마가 늘상 즐기는 정복전쟁을 수행할 뿐인 황제'에 대한 충성심은 조금도 없고 언제나 '프린켑스' 견제하기 바쁜 원로원 의원들이랑 짝짜꿍 해서는 쿠데타를 획책하고 있었네요. 하여간 무슨 '쌍둥이 황제가 정복 전쟁만 하고 시민들은 돌보지 않네, 내가 정상화하겠네' 같은 쿠데타 모의자 특유의 '정상화' 발언하면서 반란을 정당화 합니다.(전작에서 '성군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로마의 영웅 막시무스'도 열심히 불쌍한(?) 게르만족 처 죽이면서 힘으로 이민족들을 억눌렀던거 같고 '원래 로마는 그런 무산자들한테 빵과 서커스로 달래던 국가 아니었어?'라고 의심하면 지는 겁니다, 원래 쿠데타 모의자들이 다 지들 '구국의 결단' 이렇게 포장하니 넘어갑시다.) 늘 있는 로마의 흔한 '할 수 있다 나라면!'인 사람이었군요, 역시.

한편 로마의 유력자 '마크리누스'는 이 콜로세움에서 행해지는 정복 축하 행사를 벌이는데 루시우스를 눈여겨 보고 루시우스 잡아다가 복수를 하게 해준다고 해놓고선 검투사로 삼아서 로마에 대려갑니다. 거기서 막 이런 저런 검투사로서의 훈련도 받고 게타와 카라칼라 앞에서 검투 경기로 펼치며 눈도장을 찍습니다. 여기서 루시우스가 베르길리우스의 '저승 문턱에 가면 사람이 타락하네' 어쩌네(죄송합니다. 제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납니다.) 하는 시를 인용하는 발언을 하며 게타 황제를 벙찌게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게타 황제는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실존 인물도 좀 불쌍하긴 했지만요). 앞서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게타와 카라칼라 형제는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전 황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과 결혼한, 높은 군사적 영웅으로써 인기를 자랑하면서도 자기들한테 불만이 많은 '권신' 아카시우스를 견제하지 않을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 형제가 억지로 계속 정복전쟁을 펼치는 것도 로마 황제의 본질이 '로마의 최고 존엄(아우구스투스)'이자 '임페라토르(최고 사령관 동지)'이기 때문에 정복전쟁을 통한 군사적 권위만이 아직 불확실하기 그지없는 자신들의 권위를 확립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군사적 권위를 확보하려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심각해 뭔 짓을 할지 모르는 형 로마에 놔두고 자기가 원정을 뛸 수도 없어서 뛰어난 장군인 아카시우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으니까, 아카시우스를 견제하면서도 쳐낼수는 없는데, 그러다 보니 아카시우스의 군사적 권위가 정복전쟁을 하면서 임페라토르 급으로 높아지는 심각한 딜레마에 처한 상황인거죠. 즉 자기도 지금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거 알고, 자기의 폭주가 저승으로 가는 목줄 죄고 있는거 아는데 그걸 정면으로 루시우스가 찌르고 있으니까 벙찐거에요. 나중에 게타가 다시 루시우스를 회상하면서 괜히 다시 베르길리우스의 이 대목 언급한게 아닙니다. 이 청년은 사실 심적으로 엄청나게 몰려있는 상황인거죠.

하여간 이런저런 검투 경기가 벌어지고 황제 찬탈을 노리는 마크리누스와 로마에 대한 복수를 노리는 루시우스가 어쩌고 하는 사이 결국 아카시우스의 반란은 그놈의 루시우스 살리겠다고 마누라 말 잘못 들었다가 실패로 돌아가고 게타는 '내가 진짜 그 인간이 이럴줄 알았다'는 식으로 나오며 반란을 진압한 마크리누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그를 권력의 중추에 들입니다. 그러나 아카시우스의 권위를 실추시키라고 공개 처형을 권한 마크리누스의 간언을 듣다가 되려 자신의 권위마저 박살이 나고 결국 마크리누스의 사주를 받은 형의 손에 죽고 마는데 이때의 반응 보면 내가 형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해줬는데라고 진짜 억울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위에서 말했듯이 항상 군주로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던 이 청년의 진심일 겁니다. 이 청년은 역사상에서도 상당히 흔한, 자기의 부족한 권위를 세우려고 발악하는 젊은 군주들이 억지로 권위를 내세우려다 폭군으로 몰락하는 전형이에요.

한편 동생을 살해한 카라칼라의 반응도 재미있는데 이미 매독(로마시대에는 없었던거 같지만 대충 넘어갑시다)에 걸려 제 정신이 아닌 상황에서도 이 사람은 자신이 맛이 간 틈을 타 실세는 동생인 게타가 다 잡고 있는게 내심 불만이었습니다. 당연히 기억에도 없을 게타가 태중부터 탯줄로 목을 감았느니 어쩌느니 하는 발언도 여기서 나온거죠. 그럼에도 정작 동생인 게타를 죽이는건 주저하는데 마크리누스가 자신의 애완동물인 원숭이를 죽일거라는 식의 말을 하자 그제서야 게타를 죽이는 행동에 나섭니다. 중간에 보면 게타가 그놈의 원숭이한테 화를 내면서 원숭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카라칼라는 게타가 보는 자신이 그 애완 원숭이랑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는겁니다(실제로 게타가 미처버린 형을 보며 생각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랬을거고요) 그래서 애완 원숭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게타가 언제 처낼지 모른다고 생각이 미치자 게타를 살해한거죠. 보면 카라칼라가 게타를 죽이기 전에 게타의 손가락을 칼로 쳐서 자르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실제로 게타가 오로지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신적인 권위으로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던 그 손가락을 자름으로서 게타의 황제로서의 신성함을 거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그 자체가 신성화된 존재로, 로마의 최고 제사장이기도 했으므로, 신성화된 로마황제로서의 권력을 박탈한다는 상징적인 행위인거죠.

그럼에도 카라칼라는 본인이 게타를 완전히 살해하지 못하고 마크리누스의 도움을 받아서야 살해할수 있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애완 원숭이(이자 카라칼라 자기자신을 상징하는 존재)와 마크리누스를 공동집정관에 올리는 행위를 보면, 결국 카라칼라는 동생을 죽임으로써 자신이 꼭두각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를 결정하는 꼭두각시의 주인이 동생에서 마크리누스로 바뀐거 뿐입니다. 마크리누스가 루실라를 죽이면서 카라칼라를 제물로 바치려는걸 보면 그래도 형 생각은 해줬던 동생을 죽임으로서 스스로 파멸에 길에 들어서는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결국 꼭두각시로서 죽을거'라는 자기 실현적 예언의 비극이라도고 할 수 있을지도요.

그리고 이 공동 집정관 임명 대목에서 마크리누스가 힘으로 '어흥' 좀 하니까 원로원 의원들이 바로 마크리누스 거수기로 변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서 이런 놈들에게 원로원 위주 정치를 돌려주겠다 운운했던 전작 말년의 아우렐리우스가 노망이 났다는 사실도 확실히 알려줍니다. 애초에 아카시우스랑 루실라한테는 충실한 의원인거 마냥 굴었으면서 마크리누스한테 빚지니까 있는거 없는거 다 불어버린 의원님만 봐도 크크크...사실 따지고 보면 로마 역사에서 원로원이 그렇게 고귀한 인물들만 있는것도 아니고 식민지에서 사채 폭리 놓고 빚 때문에 반란 일으키던 인간들 있던거 생각하면 이게 딱 로마 다운 모습이긴 하죠.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루시우스는 아마도 친부 막시무스의 파트리아-클레엔테스 꽌시 관계였을 아카시우스의 죽음과 엄마가 사실 너 안 버렸다 너는 사실 자랑스러운 내 아들 이런 이벤트를 거친 후 '바로 로마에 대항하는 스타르타쿠스 놀이' 때려치우고 로마 귀족 '루시우스 베루스 아우렐리우스'로 돌아옵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 '얼마전까지는 로마에 대한 복수! 운운하던 놈이 왜 갑자기 로마의 영웅 행세냐? 우디르가 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까놓고 말하면 얘는 처음부터 '무슨 로마인도 아닌 놈이 로마 시인의 시는 왜 그렇게 줄줄 외고 다니는거임?'이라고 누가 대놓고 물어볼 정도로, 걍 처음부터 로마인이지 야만인 같은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로마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도련님답게 '나 버림받았어 으앙'이라고 징징거리다 그거 아니라니까 이제와서 '자랑스러운 로마인'으로서 옛날 로마 황제였던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로마인의 명예 긍지 뭐 이딴거 막 생각나는거죠. 그러니까 나중엔 죽은 누미디아인 마누라 죽인 화살도 시원하게 내려놓고 '그 동안 엔조이 즐거웠다'이러는거구요. 그러니까 폴 메스칼은 이런 배역에 아주 딱 맞는 캐스팅이라고 봅니다. 얘는 막시무스랑 달리 '우락부락하고 듬직한 로마 군단장'이 아니라 '버림받은 로마 노블리스 도련님'이 본질인 녀석이라, 로마에 들어설때 로마의 화려함에 취하지 말라 어쩌고 했던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지가 로마에 미련이 있으니까 로마인으로서의 뽕에 취하지 말자는 자기 암시 같은거죠.

뭐 하여간 루실라고 원로원 의원이고 다 처형되려는 마당에 마크리누스는 루실라를 접견해 공화주의의 이상 어쩌고를 설파하는 루실라에게 자기가 아우렐리우스의 노예 출신임을 고백하면서 '옛 주인 아씨, 도당체 로마가 언제부터 그딴거였습니까요? 로마는 원래 누구나 힘있는 자들이 권력을 두고 알아서 죽고 죽이는 싸움 끝에 쟁취하며 자유와 권력을 얻는 투기장이고 그래서 좋은거였는뎁쇼?'라고 반박합니다. 전작에서 공화주의와 로마의 꿈 운운하던 성군 아우렐리우스도 결국 자기같은 노예를 힘으로 부리던 '로마인다운 로마인'이었던 거고 나는 그런 옛 주인님식 위선 안 떨면서 그가 말하는 허상에 반하는 인물이 되겠다는 선포로, 전작에서 '시민들이 주축인 공화정 로마의 꿈' 같은 개소리는 위선적인 헛소리라는 식으로 지적합니다. 마크리누스는 결국 카라칼라건 루실라고 다 죽여버리고 정당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후계자인 루시우스도 죽여서 자기가 황제가 되려고 하지요.

영화의 압권은 바로 이 클라이막스 부분입니다. 결국 마크리누스와 루시우스는 1:1로 붙어 로마의 프라이토리아니와 레기온이 정면으로 맞 붙으려는 찰나, 신이 각자 자신의 편에 있다고 외치고 드잡이질을 합니다. 마크리누스는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실력으로 루시우스를 압도해 루시우스를 죽기 전까지 몰아붙입니다만 루시우스의 더러운 막시무스 갑옷 템빨을 이기지 못하고 루시우스에게 캐발리고 죽습니다. 결국 루시우스가 말한 '마크리누스를 죽이기 위해 신이 선택한 남자가 나'라는 외침을 증명한 셈이죠. 여기서 뭐 이제 루시우스는 주인공답게 "명예로운 시민들의 로마를 살리자! '메이크 어게인 그레이트 로마!'에 로마군 여러분들도 동참을 하자!" 어쩌네 하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면서 로마군을 선동하고 결국 그들의 지지를 받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이 부분이 마치 무슨 공화정, 민주주의 옹호처럼 사용되어서 '감동적인 민주주의 크악' 하는 부분같지만 사실 이게 굉장히 웃기는 지점입니다.

'루시우스 베루스 아우렐리우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손자이자 군사 영웅 막시무스의 아들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또 다른 군사 영웅 아카시우스의 이름으로 로마군을 동원'했고 '이탈리아 반도에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군사력'인 프라이토리아니와 '권신 아카시우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로마군'을 장악했으며 사실 무슨 불쌍한 로마 시민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거에는 처음부터 애초에 관심도 별로 없습니다.

루시우스는 그냥 힘으로서 경쟁자를 제거하고 대충 선대 황제와 자신과 연관이 있는 군사 권력자들의 권위를 빌어 로마의 황제가 되는데 가장 선결 조건인 로마군을 장악함으로써 '로마군의 통수권자이자, 최고존엄이자 이런 길을 처음으로 제시한 독재자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루시우스 베루스 아우렐리우스'가 되었을 뿐입니다. 전 이 영화가 루시우스를 로마군이 방패 위에 올리는 장면을 안 보여준게 이 영화 최후의 눈속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크크크 결국 신의 이름으로 경쟁자를 처냄으로서 신의 선택을 받은 '최고 제사장'은 나라는 것도 보여줬고 말이죠? 이 영화에서 로마 황제를 두고 언급되는 '신'이라는 것은 결국 '로마 황제라는 그 직위 자체의 신성함과 로마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위의 상징'이고 이 권위 쟁탈자의 최종승자는 루시우스라는 게 이 영화의 결론입니다. 즉 이 영화는 공화주의 찬양이 아니라 '사실 느그들의 로마는 원래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로마의 역사라는게 마크리누스가 지적했듯이, 언제부터 '공화정 로마의 꿈' 같은게 잘 돌아가는 국가의 역사였나요? 원로원이 멋대로 법적 근거도 없는 원로원 최종권고를 선포하고 힘으로 반대자들을 때려죽이고, 마리우스와 술라같은 군사령관들이 군벌이 되어 로마를 장악해 멋대로 로마시민들을 제대로 된 법적 근거도 없이 죽이고, 민중파 운운하면서 민중을 위한다던 민중파 영수 카이사르는 내전을 통해 원로원을 힘으로 때려잡고 종신 독재를 선언했습니다. 이른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역시 힘으로 내전을 제압한 이후 영화 속 아우렐리우스 마냥 공화정을 복구하겠다고 떠든 다음에, 실질적으로는 황제 노릇을 하면서도 평생을 공화국의 제1인자라는 직함으로 기만질을 시전했고요. 공화정부터 제정시기까지 로마는 항상 군대와 힘의 논리로 권력의 향배가 정해지는 국가였고 각지의 사령관들은 기회만 되면 군대의 추대를 받아서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결국 로마의 본질은 내부적으로나 외적으로 2200년간의 역사에서 오로지 '할 수 있다 나라면!'이라고 군대와 실질적인 힘을 장악한 권력자가 강권으로 국세를 확장하고 최고존엄이 결정되는 국가였던 겁니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고 로마인들의 조상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짐승인 늑대의 젖을 먹었기 때문에, 로마인들 역시 오로지 힘으로 모든걸 결정하는 짐승의 피를 이은 자들라는 폭로인 것 입니다.

마크리누스는 이 영화에서 개인으로는 패배했을지는 몰라도 '로마의 본질은 사실 이런것이다'라는 것 보여줌으로서 허상에 불과했던 루실라의 논리를 꺾고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자신에게 승리함으로써 독재자가 되는 길을 열여주기도 하면서 위선적이나마 공화정 복권을 원하던 아우렐리우스의 손자를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서 승자가 되기도 한 것이고요. 이 영화에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인용하면서 '적에서 이기는거는 그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루시우스는 마크리누스를 개인으로서는 이겼으나 군대를 장악하고 로마의 최고존엄이 됨으로서 '마크리누스와 같은 존재가 되어' 결국 자신의 할아버지 말대로 궁극적으로는 패했습니다.

그러니까 엔딩부분 텅 빈 콜로세움에서 루시우스가 망연자실한 채 '엄마 이제 나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중얼거리는 거는 게타에게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말하며 게타의 상황을 조롱하던게 이제 자신에게 되돌아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루시우스는 자신을 추대한 로마군과 원로원을 존중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원수정 시기 황제들 마냥, 군사적 권위를 세우기 위해 자기가 조롱하던 게타 황제마냥 호전적인 군사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고, 시민들의 늘 있는 불만을 제어하기 위해 텅 빈 콜로세움을 검투사와 관중으로 다시 가득 채워야 할 겁니다. 설령 할아버지 말대로 공화정을 되살린다 운운해도 본작에서 묘사된 바처럼 무기력하게 거수기에 불과해진 원로원을 상대로 아우구스투스마냥 생쇼도 해야 할 겁니다. 그게 로마의 본질이라는거 모르는 놈도 아니니 안 할 수가 없겠죠. 성공한다면 아우구스투스처럼 '평생 연극을 잘한 배우'로서 남을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게타와 같이 '로마의 고귀한 노빌레스 도련님'인 루시우스가 얼마나 잘해 낼 수 있을지? 죽은자들은 이미 말이 없고 남은건 산자들의 몫입니다. 아마도 리들리 스콧 감독도 그게 궁금해서 글래디에이터3 각본을 쓰는게 아닐까 생각해 보는 밤이로군요.

그렇기 때문에 전 이게 1편보다 내용도 주마간산으로 흐르고 개연성도 어딘가 이상하지만 1편보다도 오히려 더 '로마다운' 영화가 아닐까 최종적인 평을 내려봅니다.

P.S. 처음에 배경 설정 자체가 참 근본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 원 역사에서 누미디아를 사실상 멸망시킨건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버지 카이사르입니다. 마치 루시우스의 양아버지뻘 되는 아카시우스가 본작에서 누미디아를 멸망시킨것처럼 말이죠. 이것까지 노렸을지는 모르겠는데, 노렸다고 한다면 작정하고 쓴 각본이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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