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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08 01:40
유대교가 국교였던 우크라이나의 하자르 왕국(650–1048)을 예상하고 클릭했는데 이스라엘 내에서의 마지막 왕조 이야기였군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15/12/08 14:28
맨아래 가계도 보시면 나오지만 유태인에게는 헤롯대왕입니다.
크리스찬들에게는 영아살해자고요.. 예수의 탄생에 모세설화를 차용했는데 그것으로 인한 피해자죠. 다만 정통성이 없는 왕들의 특징인 잔인함을 가졌던 것은 맞습니다. 친족들을 많이 죽였죠. 옥타비아누스가 헤롯의 자식이 되느니 헤롯의 돼지가 되는게 낫다고 했다죠.
15/12/08 15:09
영아 살해는.... 없었던 일로 알고있는데, 뭐 그 영역은 종교가 다루는 부분이니까 넘어가는 걸로.... 아래 다른 분들 댓글을 종합해보면 좋은 사람이라고 보기는 조금 힘들긴 하네요.
15/12/08 15:20
영아 살해가 없어도 잔인한 사람이긴 했습니다 하하하. 특히 자신의 왕권에 해를 가할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애든 어른이든 다 죽이고, 죽기 바로 직전까지 아들의 처형 명령을 내렸던 보기 드문 인물이죠. 하하; 아마 그래서 더 영아살해의 이야기가 잘 먹혀들지 않았을까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니 가능했을 것이라 사람들이 받아들인 거죠.
본인의 행정적, 외교적, 예술적 능력이 매우 탁월한 싸이코패스라고 보통 보던 것 같습니다. 환경적으로 잔인해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들들도 보면 성격이 유순하고 관대한 사람이 적었다고 하니.. 그냥 집안 내력 같기도 하구요. (...)
15/12/08 02:50
다윗양반이 했다는 것처럼 신규계승자의 경우 여유있게 몇대 해먹으면서 정통성을 '만드는'일이 필요하지요.
성공하면 정통성도 얻는것이고, 실패하면 다음 신규계승자가 재시도를...
15/12/08 02:31
와우 이른바 신구약 중간사를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내다니 재미있네여 흐흐 저도 어설프지만 몇가지를 같이 풀어볼게요
안티오코스 4세가 첨부터 팔레스타인지역을 강제 헬라화 시키려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할아버지 안티오코스 3세는 처음에는 관용정책을 펼쳤지요. 근데 그가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패권을 두고 싸웠던 시리아 전쟁에서 이길 무렵 지중해에서도 중요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포에니 전쟁이죠. 지중해의 결과는 중동까지 영향을 끼치기에 안티오코스 3세는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서 한나라를 선택하여 지지하게 됩니다. 근데 그 나라는 바로 카르타고 흑흑. 포에니 전쟁의 승패는 다들 아시다시피 로마의 승리로 돌아가고 로마는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무려 만달란트라는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합니다. 실상 이돈은 갚을 수 없는 돈으로 셀레우코스 왕조를 전쟁 배상금을 이유로 좌지우지하려는 속셈이였던 거죠. 이 전쟁으로 위에나오는 안티오코스4세는 로마의 볼모로 잡혀가기도 합니다. 어쨋든 이러한 상황에서 안티오코스 4세는 왕이 되는데요, 위에서 말씀하신데로 당시 유대의 제사장 그룹은 사독가문이 잡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중심의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제사장은 아주 중요한 자리였죠. 근데 그 당시 레위 자손중 야손이라는 자가 안티오코스 4세를 찾아가 더 많은 돈을 제안하며 제사장직을 돈으로 사게 됩니다(!) 야손이라는 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개화파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헬라문화를 유대안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안에 체육관도 짓고 올림픽 처럼 체육대회도 하죠. 여기서 재밌는게 하나 있는데 그 당시 헬라인들은 나체로 체육대회를 했거든요, 그래서 유대 안에 체육대회도 그 방식대로 나체로 하게 되는데 유대인들의 특징인 할례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니깐 그것을 창피하게 여겼던 몇몇 유대인들은 할례를 복구하는 수술도 했다고 하네요 크크 오늘날로 보면 포경을 다시 푸는... 아무튼 이 야손이라는 자는 꽤 유능한 사람이였습니다. 뭐랄까요 그 당시 유대인들의 야훼를 유대인들의 신이 아닌 세계적인 신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보수적인 유대인들이 보기엔 이러한 시도는 아주 불경한 태도였던 것죠. 이 야손이라는 자 밑에는 메랄라우스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메랄라우스라는 자도 야손과 똑같은 짓을 합니다. 즉 안티오코스4세에게 더 큰 돈을 약속하여 제사장직을 차지합니다. 근데 요놈은 야손이라는 자와 달리 야심만 있지 능력은 안따라와서 돈을 계속 바쳐야 하는데 잘 진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안티오코스4세는 계속해서 이집트와 싸우면서 이집트를 거의 점령하게 되는데 로마가 전쟁배상금을 빌미로 그것을 못하게 막습니다. 빡친 안티오코스 4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가지 소식을 듣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이 자신이 세운 무능력한 메랄라우스는 쫓아냈다는 소식인거죠. 빡친 안티오코스 4세는 그대로 예루살렘으로 진격, 성전을 약탈해버립니다. 열받는 거 반, 아마 전쟁배상금을 메꾸기 위한 것 반 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이루어진 예루살렘 강제 헬라화는 유대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였습니다. 후에 신약 시대에 바울이 유대관습을 철폐하려는 것 때문에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것을 보면 아마 이 사건이 민족적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입니다. 암튼 강제 헬라화는 이 이후에 유대 곳곳에서 일어나는데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어떤 제사장이 헬라화를 강제화하는 관리를 빡쳐서 죽여버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제사장이 바로 위에서 말한 맛다디아 인거죠 흐흐
15/12/08 02:50
정통성을 얻기 위해 유대인과 결혼했지만, 헤롯은 결국 다수의 유대인들에게 왕가의 정통성을 회복하진 못했던 걸로 추정됩니다. 위에도 나왔는데 다윗의 혈통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죠. 적어도 유대인의 피가 조금이나마 섞였으면 모르겠는데, 유대인들 눈엔 그냥 이방인일 뿐이라서, 결혼한다고 국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잘 허용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약에 보면, 아마도 하스모니안 왕조 즈음에 편집되었다고 여겨지는 에스라에서 결혼해서 이미 애도 낳고 같이 살고 있던 이방인들을 그냥 추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편집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봤을 때, 헤롯 역시도 결혼은 했더라도 부모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결국 니가 뭔짓을 해도 이방인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마리암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리스토불루스와 알렉산더는 하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름부터가 헤롯의 이두매식 이름이 아니라 유대 하스모니안 왕가의 이름이라고 하네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더 쓰실지 몰라서 여기 나온 이야기에 조금만 덧붙이자면 정통성을 얻기 위해 마리암네랑 결혼을 하는데, 마리암네는 헤롯의 두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정통성을 얻기 위해 원래 자신의 처인 도리스를 버렸습니다 (...) 그리고 헤롯의 삶은...... 선조 저리 가라하는 질투심의 막장 오브 막장 (.......)
15/12/08 02:59
그리고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왕위에 오른 헤롯에게 신약시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엄청난 시련이 다가오는데... 안토니우스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꼬마에게........
안토니우스와 친구였던 헤롯을 그 꼬마가 소환 (...) 정말 열심히, 그저 살기 위해서, 아부와 아첨을 엄청 했다 합니다.
15/12/08 02:59
잠이 안와서 헤롯대왕 이야기도 쫌 쓰자면 오늘 나온 헤롯은 헤롯대왕으로서 성경에서는 유아살인으로 유명한 왕이죠. 성경에는 여러명의 헤롯왕이라는 동명이인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 이양반의 후손입니다. 헤롯은 정통성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유대민족에게는 원수나 다름없었는데 아까 하스몬 왕조의 후계싸움에서 밀려난 아리스토블루스 2세는 아라비아로 도망가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로마와 싸우며 유대의 독립을 이루어 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끝까지 막아낸 가문이 바로 안티파트로스와 그의 후손들인거죠. 그 안티파트로스의 후손인 헤롯은 유대민족에겐 국가의 독립을 막은 철천지 원수나 다른 없었습니다. 게다가 유대민족의 왕이 이방인이라니!! 말도 안되는 거였죠. 어쨋든 이 헤롯은 처세술이 무척 뛰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도 보이지만 줄을 막 왔다갔다 잘 서자나요? 이게 보통 쉬운일이 아니죠. 그렇게 생존하며 유대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독립운동을 다 막아내며 로마의 정권이 안정되도록 돕습니다. 그 댓가로 왕이 되구요. 이렇게 왕이 된 헤롯이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가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두가지를 하는데요, 첫번째로 위에서 말한것처럼 하스몬 왕조의 딸과 결혼하는 것였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알고 보면 보통 싸이코가 아니였습니다. 본인은 아마 유대혼혈이라는 자신의 피에 대한 심각한 콜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자신의 독립을 막은 이방인 왕 헤롯을 좋아하기보단 그의 아내인 미리암네를 훨씬 좋아했어요. 헤롯은 그것에 대해 무척 불안해 했죠. 시기심이 강한 헤롯은 결국 공주와 낳은 자식들을 다 죽이고 아내와 장모 까지도 죽입니다. 잔인한 사람이죠. 나중에 자기가 죽을 때도 자신을 위해 아무도 안울어줄까봐 곳곳에 귀족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완전 사이코죠.
그가 인기를 끌기위해 또 했던 한가지는 바로 이스라엘 포로기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해 지었던 볼품없는 제 2성전 대신 새로운 성전을 지어주는 것이였습니다. 헤롯은 괴팍하고 싸이코에다 잔인한 사람이였지만 예술가로서, 특히 건축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그가 거의 60년을 걸려 만든 헤롯성전은 고대근동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전이였습니다. 솔로몬 성전보다 더 컷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근동 근처에 아름답고 유명한 건축물들은 거의 헤롯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다시 성전이 세워질거라고 믿었던 유대인들 입장에서 피로 가득한 이방인 폭력가가 만든 아름다운 성전은 참 아이러니한 느낌 아니였을까요? 아무튼 헤롯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15/12/08 05:13
본문의 핵심에서 벗어납니다만 조금 추가하자면,
사사시대의 사사는 제정일치의 군주와는 좀 다릅니다. 모세 이후 '제사장'은 존재했으니까요. 사사는 행정적인 지도자이고, 열두지파가 각자 살다가(요즘으로 말하자면 지방자치라고 해야겠죠?) 외부의 공격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열두지파가 힘을 합치는데, 이 때의 구심점이 사사입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행정적인 지도자보다는 종교적인 색체를 띕니다만, 이스라엘은 왕들도 종교적인 색체를 갖기에 별 차이가 없죠.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왕이 탄생한건 제정분리의 의미보다, 임시적으로 두던 12지파 연합체의 지도자를 상시적으로 두는 의미라 봐야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제사장이자 사사인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마어마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사무엘을 기준으로 제정일치에서 제정분리로 변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이 제사장이자 사사여서 그런 거지, 그 전의 사사들은 종교지도자하고는 좀 거리가 있었어요. 어차피 유대인들은 유다지파가 아닌 왕조를 인정하기 어려워서... 헤롯왕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하스모니안 왕조도 정통으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북이스라엘 왕조도 인정이 안되는데요. 우리로 치면 남한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김씨왕조같은 거죠.
15/12/08 14:19
사무엘이 어마어마한 사람이어서 사사면서 제사장이었다기 보다는
엘리(사무엘의 스승)-사무엘-요엘&아비야(사무엘의 아들들)로 이어지는 사사 라인이 모두 그랬다고 봐야죠. 사사를 제정일치, 왕정을 제정분리로 보는 것은 뭐 그런 시각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를 세습했음에도 왕정이 도입된거니깐요.
15/12/08 14:29
호칭에 따르면 그럴 수 있긴하겠네요. 신학적으로는 그들 중 사무엘만 사사로 인정받기 때문에 잠시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와 사무엘, 사무엘의 아들들의 시기는 몇십년 밖에 안되고, 사시시대는 사무엘의 시기를 제외해도 300년입니다. 말씀하신대로라면 300년동안 제정분리사회였다가 몇십년정도 제정일치가 된 후에 다시 왕이 나와서 제정분리가 된 걸로 표현한건데, 이 걸로는 왕이 제정분리를 상징한다고 하기 어렵죠. 사무엘이 제정일치를 상징할 수는 있어도요. 본문은 왕정의 시장을 제정분리의 시작으로 보시기에 그건 아니라고 말씀드린겁니다. 물론 사사가 어느정도 종교적인 색채가 있습니다만, 말씀드렸듯이 그건 왕도 갖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왕이 사사보다 종교적인 색채가 더 강해요.
15/12/08 14:46
뭐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사무엘-사무엘의 아들들로 이어진 상시적,그리고 세습적인 사사라인과 왕정의 차이를 단지 일시적인 지도자와 상시적인 지도자의 차이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왕정전환을 상시적 지도자로 보는 시각과 제정분리 지도자로 보는 두가지 시각 모두 있더군요. 뭐 그정도로만 말씀 드리고 싶네요.
15/12/08 14:57
음 신학 학파에 따라 다르겠지만, 구약의 "왕"과 포로기 이후의 "왕"의 의미가 변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무난할 거 같습니다.
신학적으로 왕이 사사보다 종교적 색체를 강하게 가지게 된 것은 포로기 이후에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다윗의 혈통과 연결되면서 라고 해석을 하는 편이구요. 당시 사울의 등장이나 다윗 이후의 왕들은 다소 전형적인 제정분리의 시작 정도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당시 사사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과 직접적으로 소통 및 관계를 하는가, 대변자가 필요한가의 여부였습니다. 사무엘의 시대 전까지만 해도 제사장이 아니라고 해도 신이 지도자와 대화 또는 힘의 부여 등의 일이 일어나는 반면에, 사울 이후 왕들은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보다 전면에 등장해서 왕과 신 사이를 중재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성경 전체로 보면 왕의 위치가 신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맞지만, 구약의 사사와 왕국 시대를 살펴본다면 제정분리의 시기로 보는 시각이 좀 더 우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5/12/08 05:58
신약시대에서 여러종파가 등장하게 되는 계기인 하스몬 왕가 이야기로군요...
사두개인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독의 후손들이라고 자처하는 제사장 무리들입니다. 성전 중심으로 생활을 했구요. 모든 제사를 관장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사법권도 있었기 때문에 기득권 오브 기득권이었죠...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 자기들 기득권 지키는 일이라면 그리스든 로마든 오케이입니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파괴해버리자 이들도 자연히 사라졌습니다. 놀던 멍석이 없어졌으니 별 다른 도리가.... 바리새인은 당시 회당 중심으로 율법을 가르치면서 사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주로 회당장 혹은 서기관 등등으로 율법에 빠삭한 사람들이었죠. 이들은 사두개인과 달리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죠. 예수가 와서 이들을 실날하게 깝니다. 겉과 속이 다르거든요... 십일조를 철저하게 지킨다면서 밀알을 일일이 세서 십일조 낸다고 생쇼는 하는데, 자기들 부모는 공양하기 싫다면서 부모님의 생활비로 드릴 돈을 고르반이라고 즉 하나님께 바치는 돈이라고 선언해버리는게 일상이었죠. 그러면 하나님께는 바쳤냐?? 또 그건 아니라는게..... 그냥 고르반이라고 선언해놓고 자기가 까먹어도 당시에 전혀 문제가 안됐던게 큽니다. 이 외에도 또 많죠... 열심당은 바리새인과 비슷한 부류의 경건주의자 그룹입니다. 이들은 외세의 압제를 벗어나기 위해선 실질적으로 행동을 보여야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인 암살등 테러를 위주로 활동했죠. 로마의 예루살렘 함락전 때 마지막까지 싸운 무리들입죠. 영어로는 Zealot입니다.. 네 하드코어 질럿 러시에 그 질럿 맞습니다. 에세네파도 경건주의자 그룹입니다. 이들은 경건 오브 경건을 지키기위해 세속과 떨어진 광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모여서 경전을 연구하는 일 등을 했죠.. 가끔 갑툭튀해서 백성들이나 위정자들을 꾸짖는 건 덤. (모두까기는 기본 스킬..) 세례요한이 에세네파라는 설이 있기는 한데 성경에는 콕 찝어서 그렇다라고 나오진 않고(에세네라는 말 자체가 성경에 안나옴.) 세례요한의 생활 양식을 볼 때 에세네파가 아닌가하고 강하게 추정할 뿐입니다. 유대인의 대다수가 헤롯을 반대했다고 해도 헤롯 편이 아예 없었던건 아니었죠. 헤롯당도 몇몇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회주의자 그룹이라 누구에게도 지지는 못 받았죠. 헤롯은 좋아했으려나?? 종파는 아닌데 생계형 매국은 그 시대에도 존재했죠. 바로 세리라는 무리들이죠...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는 무리들인데 로마에게 바칠 세금만 걷어서 송금하면 미션 클리어입니다. 그렇지만 월급은 로마에서 안줍니다.... 그래서 세금 + 알파를 걷어서 그 알파를 자기가 챙기죠. 그 알파가 엄청 커서 문제지..... 그렇다고 세리한테 개기면 로마 군대가 출동하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얘네들 횡포에 놀아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당한 부자들인데 백성들한테는 손가락질 받는 포지션입죠.
15/12/08 07:58
하스모니안 왕조라든지 마카비전쟁에 대해서는 성경의 제2경전에 나오는데, 제2경전은 개신교 성경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가톨릭, 정교회, 동방정교회 쪽 성경에 포함), 특히 개신교인들은 (예수님 오시기 직전의 유대민족 역사이긴 하지만) 아무리 성경을 달달 외워도 잘 모르는 부분이죠. 추천 눌렀습니다~
15/12/08 12:22
[다시 힐카누스의 시대로 오겠습니다. 남아 있던 하시딤들은 마카비 가문이 유태인의 왕이 되는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일단 사독가문이 대제사장이 된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왕이 대제사장을 겸임하겠다니요.] 이 부문 문맥 상 틀린것 같은데..맞나요? 역사 잘모릅니다.
15/12/08 18:39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기독교 역사 관련된 얘기는 늘 흥미진진하네요.일전에 교파 관련된 얘기도 재미나게 해주시고..감사합니다.
관련된 부분에 지식이 많으신것 같은데 혹시라도 시간 되시고 여유 되시고 정말 할게 없어 심심해서 죽을것 같을때 쿰란동굴에 사해문서 관련된 글도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찾아봐도 어디까지 밝혀진 사실인지가 가늠도 잘 안되고 대부분 저작자 입장에서 쓴것 같아 치우친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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