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8/14 23:46:50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여말선초의 여진족들, "이성계 어르신 오셨습니까"




어떤 나라가 개국하게 되고, 그 나라의 주인되는 가문이 생긴다면, 실제 지금 즉위한 왕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조상들도 올려서 시호를 받고 황제나 왕처럼 대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조선만 해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이 환조(桓祖)라는 묘호를 받았죠.




만주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종 홍타이지가 황제로 즉위하자 누르하치는 태조가 되었고, 누르하치의 조상들 역시 그런식으로 묘호와 시호를 받았습니다.




누르하치의 6대 조상은 먼터무라는 인물입니다. 여러 기록에서 맹가첩목아(猛哥帖木耳)라는 이름으로 찾아볼 수 있는 이 먼터무는, 청나라가 개국된 이후에 원황제(原皇帝)라는 시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상을 높이는 것과는 별개로, 실제로 태조무황제실록이라던지 만주실록 같은 청나라의 공식적인 사서에서는 이런 조상들의 행적에 대해 그다지 많은 내용이 기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용 자체도 짦고, 쓰여져 있는 기록들도 그나마 진위가 불분명하거나 오류가 있거나 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청나라가 개국되서 이런 기록들을 작성할떄는 이미 조상들의 시대로부터 100년은 지난 일이라서 그럴까요?



http://news.chosun.com/site/data/img_dir/2006/05/30/200605300545_01.jpg



그런데, 뜻밖에도 후손들의 기록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자신들 조상의 기록이 상당히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사서가 있으니,


다름 아닌 조선왕조실록 입니다. (그 외에 용비어천가에서도 부분적으로 언급됨.)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누르하치의 6대조 먼터무(동맹가첩목아)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 나라 후손들이 쓴 청나라의 사서에서는 먼터무의 부모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기록이 아예 없으니까요.







사진자료 : 길공구님 글에서 참조



이 사람이 바로 문제의 그 먼터무(동맹가첩목아). 거의 무너진 가문을 이 먼터무의 대에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해서 청나라 관서등에서 강조되는 나름 이름값 있는 인물.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확인해보면 우리는 이 동맹가첩목아의 아버지 이름이 동휘호(童揮護)이고, 아들 이름은 아고(阿古)이며, 범찰(凡察)이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다는 것 까지 알 수 있습니다. 청나라 황실 가문 조상 이름을 청나라 사람들 본인들보다 조선 사람들이 더 잘 기록해서 남겼다는 좀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조선의 사관들이라고 해서 자기 일 아닌 문제에 크게 관심이 있지는 않았을텐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여진 부족에 대해서 기록을 남겼을까?





바로 이 사람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누르하치 6대조이자 만주실록에서도 '태어나면부터 지략(智略)이 있었다' 라는 평을 받은 저 먼터무는, 이성계를 모시던 부하였습니다.










용비어천가 및 조선왕조실록 1395년 12월14일 기사中
동북면 1도(道)는 원래 왕업(王業)을 처음으로 일으킨 땅으로서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생각한 지 오래 되어, 
야인(野人)의 추장(酋長)이 먼 데서 오고, 이란두만(移闌豆漫)도 모두 와서 태조를 섬기었으되, 
언제나 활과 칼을 차고 잠저(潛邸)에 들어와서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었고, 
동정(東征)·서벌(西伐)할 때에도 따라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여진(女眞)은 
알타리 두만(斡朶里豆漫) 협온 맹가첩목아(夾溫猛哥帖木兒)·
화아아 두만(火兒阿豆漫) 고론 아합출(古論阿哈出)·
탁온 두만(托溫豆漫) 고복아알(高卜兒閼)·
합란도 다루가치(哈闌都達魯花赤) 해탄가랑합(奚灘訶郞哈)·
삼산 맹안(參散猛安) 고론두란첩목아(古論豆闌帖木兒/이지란)
(중략)


용비어천가와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이성계를 모신 여진족 부족과 그 부족의 추장 29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중에서 오도리 부족의 맹가첩목아는 첫번쨰로 기록되어 있고, 2번쨰는 아합출이라는 인물인데 이 사람도 조금 있다 설명하겠지만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섯번째로 언급된 여진족의 이름이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 입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여진족 추장들은 이성계의 잠저 시절, 즉 이성계가 아직 왕이 되지 못했던 시절에도 늘 옆에서 이성계를 근처에서 모셨고, 심지어 이성계가 각종 군사 작전에 나갈때 동쪽이고 서쪽이고 가리지 않고 따라나서 군사적 도움을 제공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누르하치 조상인 먼터무 역시 이성계를 따라서 그 밑에서 군사작전에 나서기도 했구요. 조선왕조실록에도 그런 사실이 언급됩니다.



조선왕조실록 1405년 5월16일 기사中
맹가첩목아 등은 처음에 올적합의 침략으로 인하여 자리를 피해 
본국(本國) 동북면(東北面)의 경원(慶源)·경성(鏡城) 땅에 이르러 거주(居住)하였는데, 
차역(差役)을 당하여 왜적(倭賊)을 방어한 공(功)이 있으므로
경성 등처(鏡城等處) 만호(萬戶)의 직(職)을 맡겨 지금 몇 해가 지났습니다. 



아예 그 당사자인 먼터무 본인이 "나 젊었을때 이성계 어르신 섬겼다" 라고 말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1423년 6월24일 맹가첩목아의 서신中
내가 직업이 없어서 젊었을 때에 태조(太祖)의 부르심을 받아 농우(農牛)·농기(農器)·양료(糧料)·의복(衣服)을 주며,
 ‘아목하(阿木河)에서 거주하라.’ 하였으므로



이 기록에 따르면 한참 어렵던 시절의 먼터무는 이성계에게 후원을 받아 생필품과 거주지까지 제공받아 자기 부족들의 살림을 돌봤던것으로 보입니다. 나중 일이지만 먼터무는 한양에 한번 들리기도 합니다.




음...앞서 말했다시피 아무래도 청나라로서는 여진 '부락' 시절이던 이 시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드문드문 이어지는 구전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을테고, 조선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었던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알 수도 없었겠지만, 설사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냥 모른 체 했을 것 같습니다. 굳이 나중에 알게 된다고 해도 자기 조상들 위신 세우는데 별로 폼이 안났을테고...




지금까지 언급한 사람은 바로 누르하치 조상인 먼터무라는 사람 뿐이지만, 당연하게도 당대에 이성계의 영향력 아래 있던 여진족 추장이 저 먼터무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바로 위에서도 29명의 추장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었구요. 실록에 언급된 부족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 위의 보는것만으로도 눈이 어지러워 지는 해괴한 고유명사들은 전부 여진족 부족과, 그 부족의 추장들의 이름입니다. 저 추장들은 이성계가 잠저시절 부터 그를 보필했고, 이성계가 왕으로 즉위한 후에는 따로 그 쪽 사정에 밝은 이지란을 시켜 그들을 다독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로 설명해도 아무래도 덜 와닿는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저 기록에 언급되는, 즉 이성계의 영향력이 미치는 부족들의 위치를 지도상에 알기 쉽게 찍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앨런비님 자료 참조











저 어마어마한 판도가 전부 '이성계' 개인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라는, 깜짝 놀랄만한 수준 입니다. 단, 저 가장 북쪽에 있는 3성의 여진족들 같은 경우엔 부족 이름을 토대로 찍기 때문에 저렇게 되었지만, 본래 살기는 그곳에 있긴 했지만 실제로 이성계의 영향력 아래 들어올 무렵에는 자기들 부족을 이끌고 두만강 근처로 내려왔기 때문에, 실제로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파란색 선 안에 미치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래도 목단강 부근까지는 이성계의 영향력이 미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대충 저 그어진 목단강 근처까지




저 정도 영향력을 아직 왕이 되지도 않고 그저 동북면의 유력한 세력에 불과하던 잠저 시절부터 보유하고, 심지어 그들로부터 '군사동원' 까지 받는 정도라면 영향력이 엄청났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성계가 왕이 되고 나서 동북면에 잠깐 들리기만 해도, 사방에서 이성계를 만나러 여진 유력자들이 먼길을 마다해서 와서 만나는 행렬이 끊이질 않고, 그 이후에도 지역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술이라도 한잔 마시다가 취하게 되면 "그 분 있을적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하여간 요즘것들이 문제다" 이런게 많았다고 합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개국 초기의 조선이 행정적 조치로 저들을 관리하거나 할 상황은 전혀 못 되었고, 순전히 이성계 개인이 여진족들 사이에서 가지고 있는 신망, 그리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유지한 것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이성계가 물러나고, 조사의의 난이 실패로 끝난 이후부터는 (그리고 여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영락제가 명나라가 여진족들 끌어들이려 시도하고) 저렇게 우호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는건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성계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또다른 부분으로, 저 이성계를 모시던 먼터무도 당장 태종 시절부터는 상당한 골칫덩어리가 되서 분쟁이 일어나고, 세종이 즉위했을때는 세종이 최윤덕을 시켜 먼터무를 암살 하라고 지령을 내리는등 여러모로 험악한 분위기가 됩니다. 




또 하나. 조선초기 북방 여진족 문제를 살펴보면 이만주(李滿住)라는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태종 시절부터 세종, 단종, 심지어 세조 무렵까지 계속해서 조선과 분쟁이 일어나고 세조가 남이를 파견해서 없애려고 하는등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인물이었는데, 그 이만주의 할아버지가 아합출이라는 사람입니다. 아합출이 누구냐구요? 앞에서 지나가듯이 살짝 언급한 적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만주의 할아버지되는 아합출도, 왕년에는 이성계의 부하였던 사람입니다. 그것도 이름이 2번째로 언급될 정도로. 말하자면, 조선 초중반기 무렵에 이름을 떨친 여진족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어떻게든 본래 이성계의 부하였던 사람들 이라는 식으로 뿌리가 나옵니다. 거의 여진족계의 대부 수준...










그러한 사정들로 인해 발생한 웃지 못할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때는 바햐으로 1450년대. 당대의 조선 왕은 13살의 단종이고, 이성계가 죽은 지 50년 가까이 된 상황.


마침 여진족들 몇명이 한양에 들린 상황에서 어린 단종이 사냥하러 나가며 삼엄한 태세를 보이자, 그곳에 있던 여진족들은 긴 세월 앞서 즉위했던 세종과 태종 등을 다 거르고


"설마 지금 그 이성계 어르신이 돌아오신건가? 뭐가 어떻게 된거지?" 하면서 불안해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북두의 권 권왕 수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마프리프
16/08/14 23:55
수정 아이콘
수틀리면 고려버리고 독립했어도 떵떵거렸겠내요
16/08/14 23:58
수정 아이콘
크.. 역시 패왕색 패기는 창업 군주의 필수 덕목이죠..
합궁러쉬
16/08/14 23:59
수정 아이콘
당시 왕도 아닌 일개 개인의 영향력이 조금 쪼그러든 발해 수준이라니....
강정호
16/08/15 00:02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항상 흥미로운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성계 위엄 덜덜해..
뻐꾸기둘
16/08/15 00:02
수정 아이콘
이성계는 왕이 되서 무장으로서의 영향력이나 능력 평가가 묻힌 것 같네요.
또니 소프라노
16/08/15 00:15
수정 아이콘
올타임 넘버원급이죠 그정도 되니까 나라를 세운게 아닐까 싶긴합니다.
카루오스
16/08/15 00:02
수정 아이콘
패왕색패기가...
구들장군
16/08/15 00:03
수정 아이콘
잘 배우고 갑니다.
Jon Snow
16/08/15 00:06
수정 아이콘
크..조선의 패왕니뮤
공고리
16/08/15 00:13
수정 아이콘
정도전 볼 때 동북면이 그냥 지방(크게 봐서 도정도)수준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세력이 크네요.
피아니시모
16/08/15 00:13
수정 아이콘
진짜 저런 건 타고나는건가봅니다
피아니시모
16/08/15 00:14
수정 아이콘
만일 저때 이성계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조선이 지속적으로 저들을 회유했다면 영향력을 ..아 조사의의 난이나 명나라떄문에 확실히 쉽지 않긴 하겠네요'
설사 영향력을 행사했다해도 얼마나 잘 대우해줄지는 모를 일이고 (시간이 지났으니..-_-aa)
southpaw
16/08/15 00:30
수정 아이콘
아~ 재미나네요~! 잘읽었습니다!
candymove
16/08/15 00:38
수정 아이콘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꾹!

이성계를 모시는 사람과 누르하치의 6대조가 이름만 같은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거죠? 청나라에 시기에 언급하기에는 뭔가 좀 그랬겠네요...
16/08/15 01:09
수정 아이콘
역사 하나도 모르는데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드라마 정도전을 봐서 그런가...
근데 이지란도 그럼 여진족인건가요?
16/08/15 01:21
수정 아이콘
원래 이름은 퉁두란이고...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는 과정이 굉장히 무협지스럽습니다... 야사에 의하면
이성계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감 가지고 시비가 붙어서
서로 활을 쏴 제꼈는데 퉁두란은 겨우 피했지만 이성계가 무려 손으로 화살을 잡아채는걸 보고 형님 모셨다고...
Sviatoslav
16/08/15 01:55
수정 아이콘
누군가 나무위키에 이 글을 링크해뒀군요. 빠르기도 하네요.
16/08/15 11:53
수정 아이콘
본인이 직접 올리시는거 같던데요.
신불해
16/08/15 14:33
수정 아이콘
예전엔 위키를 좀 만지거나 했지만 지금은 거의 안해서 이 댓글보고 알았습니다.
blackroc
16/08/15 08:29
수정 아이콘
이성계가 진짜 여진족이었으면 아구타나 누르하치 같은 위치에 갈 수도 있었겠군요.
minyuhee
16/08/15 08:59
수정 아이콘
후원자였다고 봅니다.
그 관계는 서로의 이권을 과다하게 침범하거나 더욱 강력한 후원자가 나타나면 갈아타는 거죠.
검은별
16/08/15 09:59
수정 아이콘
대단하네요. 새로운 것을 알고 갑니다.
뽐뽀미
16/08/15 10:2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개평3냥
16/08/15 11:13
수정 아이콘
이성계의 영향력이 당시 여진족들에게 상당한 수준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그당시의 고려-조선의 역량은 그여진족들을 포용할수도 동화시키기에도
턱없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이성계자신도 왕이 된후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질 않았죠 뭐 이것도 그가처한 현실 특히
이미 그가 늙어 노쇠해가고 있었다가 가장 큰건데 이후로도 조선왕실은
그들의 발원지일지 모르는 여진족과의 관계를 단절해가는 걸로 길을
잡아버렸고 뭐 현실이 그게 가장 최선책이었으니 그렇게 간거라 봐야겠죠
노름꾼
16/08/15 12:26
수정 아이콘
주변인이 죄다 여진족이니 이성계 여진족설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합니다.
달토끼
16/08/15 13:03
수정 아이콘
이성계 개인의 영향력이 장난 아니었네요. 역대 건국 군주 중에서 최고인 것 같은데요?
지나가던선비
16/08/15 14:31
수정 아이콘
이거 환단고기인줄 크크킄 잘읽었습니다
홍승식
16/08/15 18:50
수정 아이콘
곡창지대였던 전주의 호족이 동북면으로 가서 150년이 지났으니 그 세력이 대단했겠지요.
물론 격동의 시대에 이리저리 통수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6993 [일반] 티파니가 욱일기가 들어간 로고를 sns에 올렸네요. [627] 릴리스36215 16/08/15 36215 1
66992 [일반] 페라리와 프란체스코 바라카 [4] 모모스20137062 16/08/15 7062 3
66991 [일반] 초등학교 시절, 참 쓰레기 같은 선생들 많았는데. 지금은 달라졌겠죠? [89] 비타100013316 16/08/15 13316 2
66990 [일반] 현재 웹갤에서 떨어진 정의당 관련 초특급 정치폭탄 내용입니다 [79] 공원소년22443 16/08/15 22443 24
66989 [일반] 아이를 키운다는 것.. [10] 잉크부스4916 16/08/15 4916 17
66988 [일반] [야구] 2016프로야구 20주차 감상 [23] 이홍기4735 16/08/15 4735 1
66987 [일반] IOI의 손에 손잡고를 들어봤습니다. [29] 비타에듀6740 16/08/15 6740 0
66985 [일반] 학교에서는 '투쟁'만이 문제해결의 방식일까? [32] 삭제됨4096 16/08/15 4096 5
66984 [일반] 여말선초의 여진족들, "이성계 어르신 오셨습니까" [28] 신불해38787 16/08/14 38787 27
66983 [일반] 가온모바일차트 월간 탑텐급 음원들 얘기 [1] 좋아요4315 16/08/14 4315 1
66982 [일반] 한의학에 대한 기억과 미신 [36] 겜돌이6217 16/08/14 6217 0
66981 [일반] 학교가 차별을 조장한다는 티타늄님의 글을 읽고. [24] 삭제됨6031 16/08/14 6031 4
66980 [일반] 내 차가 찌그러 졌다. [4] 면역결핍4610 16/08/14 4610 1
66979 [일반] 2차대전 이탈리아 전투차량은 전부 병맛? [10] 모모스20139996 16/08/14 9996 0
66978 [일반] 자유주의의 소멸에 대한 불쾌한 우화 - 미셸 우엘벡 <복종> [6] 상여선인4472 16/08/14 4472 1
66977 [일반] 그 유명한 나폴레옹이.....조루? [114] 신불해12879 16/08/14 12879 3
66976 [일반] [바둑]응씨배 결승전 관전후기 (박정환 vs 탕웨이싱) [9] Dow6173 16/08/14 6173 1
66975 [일반] [잡담] 다시 꺼내보는 몇곡의 SMAP 노래들 [28] classic6093 16/08/14 6093 1
66974 [일반] 살해된 아들이 보낸 문자 [22] swear9229 16/08/14 9229 0
66973 [일반] 최강의 갑옷 - 판금갑옷 - [32] wlsak15433 16/08/14 15433 7
66972 [일반] 내 낡은 서랍속의 추억 [3] 감모여재3174 16/08/14 3174 1
66971 [일반] 내 생에 최고의 한 곡 [9] 켈로그김4565 16/08/14 4565 1
66970 [일반] "세계 평화 바라면 트럼프 찍어야…러시아와의 긴장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66] 군디츠마라8841 16/08/14 8841 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