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3/06 17:11:06
Name 글곰
Subject [일반] (삼국지) 엄백호, 끝내 복수에 성공하다? (수정됨)
  엄백호. 이름의 뜻은 글자 그대로 흰 호랑이(白虎)입니다. 꽤나 거창한 이름이지요. 그래서 이게 본명이 아닌 별호 같은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애당초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었던 한미한 출신이라는 의견입니다. 오서 주치전을 보면 산적(山賊)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도 그런 추론에 신빙성을 더해 주지요. 후한시대에 먹고 살기 힘들어진 농민들이 모여서 산적떼를 결성한 경우가 워낙 많았으니까요.

  반면 그가 지역의 호족 출신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주치가 오군태수 허공을 공격하여 패주시키자 허공이 도망쳐서 엄백호에게 의탁했는데, 태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의지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인물이었을 거란 주장이죠.

  또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오서 여범전을 보면 엄백호를 가리켜 강족(彊族)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엄백호가 ‘강인한 족속’, 즉 이민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엄백호의 근거지인 오군 일대가 산월족 등 이민족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했고요.

  자. 이렇게 엄백호는 출신성분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손책이 한창 강동을 점령하고 있을 때 엄백호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바로 위에 언급한 것처럼, 주치에게 패해 쫓겨 온 허공을 받아들여 준 거죠. 자치통감에 따르면 195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때 오군 일대는 온갖 세력자들이 난립하여 꽤나 어지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엄백호를 비롯하여 추타, 전동, 왕성 등이 제각기 많게는 만여 명에서 적게는 수천 명 가량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요.

  손책은 군사들을 이끌고 가 이들을 죄다 때려잡습니다. 이때 엄백호는 동생 엄여를 보내 화친을 구했지만, 손책은 엄여를 비웃으면서 직접 찔러 죽인 후 진격하여 엄백호를 격파합니다. 엄백호는 달아나서 허소라는 인물에게 의탁하지요.(인물평으로 유명했던 허소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평소 허소를 좋게 보았던 손책은 굳이 그를 뒤쫓지 않았습니다.

  198년에 엄백호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때 한나라 조정(=조조)은 손책을 회계태수로 임명한 후 여포, 진우 두 사람과 힘을 합쳐 원술을 토벌하라고 명합니다. 진우라는 인물은 하비 출신이며 서주의 호족 진등의 당숙뻘 되는 사람입니다. 당시 오군태수를 자칭하고 있었는데 꽤나 세력이 있었던지 조정에서는 그를 오군태수로 인정해 주고 또 안동장군으로 임명하여 회유했지요.

  그런데 진우는 내심 손책을 견제하였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무슨 계기로 손책과 사이가 틀어졌을 수도 있지요. 그는 동맹인 손책을 공격하기 위해 엄백호를 비롯하여 초기, 조랑 등 지역의 유력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입니다. 엄백호로서는 손책에게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요.

  그러나 손책은 이미 진우의 움직임을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역습을 가해 진우를 대파합니다. 오서 여범전에 따르면 이때 손책은 여범과 서일에게 진우 공격을 맡기고 자신은 직접 엄백호를 토벌하였다고 하네요. 그런 사실로 미루어보아 당시 엄백호의 세력은 상당했던 걸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손책이 직접 공격에 나설 필요가 없었겠죠.

  정사나 배송지주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때 손책이 엄백호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후로도 엄백호의 이름이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바로 200년, 손책이 죽은 해입니다.

  오서 손책전에 주석으로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손책이 서쪽을 정벌했을 때 진등이 그 후방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당숙이었던 진우의 복수를 하려 든 거죠. 이때 진등이 끌어들인 자들이 바로 엄백호의 잔당들입니다. 그러니 엄백호가 죽은 후에도 그 세력은 비록 약화되었을지언정 어느 정도는 남아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손책은 회군하여 진등과 맞섭니다. 하지만 그러던 도중에 과거 자신이 죽였던 허공의 빈객들에게 공격받아 크게 다칩니다. 결국 손책은 상처가 덧나 죽고 말았지요.


  

  여기까지가 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엄백호의 많지 않은 기록 전부입니다. 연의에서 동오의 덕왕(德王)이라는 인상 깊은 칭호와 함께 등장하는 바람에 꽤나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엄백호입니다만, 사실 덕왕이라고 자칭한 적은 없지요. 또 왕랑과 원 플러스 원 세트메뉴처럼 간주되는 경항이 있지만 그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엄백호는 그저 당대의 흔하디흔한 세력가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손책에게 살해당한 걸로 추정됩니다. 결코 역사의 주인공은 아니었고, 조연조차도 아니었으며, 노골적으로 말해 그저 주인공에게 당하는 역할을 맡는 흔해빠진 단역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백호는 끝내 자신의 원한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자, 생각해 볼까요. 엄백호는 과거 손책에게 패한 허공을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손책에게 목숨을 잃었지요. 하지만 엄백호의 잔당들이 손책의 발을 붙들었고, 또 허공의 빈객들이 주인의 원한을 갚고자 노력한 끝에 결국 손책은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엄백호가 허공에게 베풀었던 친절이 결국 돌고 돌아 보답 받은 격 아니겠습니까. 엄백호의 혼령이 있다면 무척 기뻐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도덕경의 한 구절쯤을 읊조렸을지도 모릅니다. 하늘의 그물은 성근 것 같아도 놓치는 게 없다고(天網恢恢 疏而不失) 말이지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티모대위
20/03/06 17:16
수정 아이콘
진등이 공격할 당시에 함께했던 이들도 엄백호의 잔당들이고, 이들과 맞서다 손책이 죽었으니
정말로 엄백호의 그림자가 손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군요
20/03/06 17:42
수정 아이콘
심지어 손책의 뺨을 화살로 맞힌 암살자가 바로 엄백호가 의탁했던 허소라는 기록도 있긴 합니다. 신빙성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패트와매트
20/03/06 17:24
수정 아이콘
손책이 아버지닮아 양아치였다고 하죠. 손제리 손제리 까이지만 그래도 손권이 손씨3부자 중에서는 가장 나은 인물이었던게 아닐지
20/03/06 17:37
수정 아이콘
손견이랑 손책을 동일취급하면 손견이 너무 억울한 거 아닐까요. 그래도 배송지가 무려 충렬(忠烈)이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까지 하며 인품을 극찬했던 사람인데요.
인간atm
20/03/06 17:48
수정 아이콘
왕예나 장자 죽은거 보면 손견도.. 뭐..
20/03/06 23:54
수정 아이콘
손권의 말년만 생각하면 ㅜㅜ 그전까진 손씨 부자중에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대..
도라지
20/03/06 17:25
수정 아이콘
근데 손책은 워낙 성격이 안좋아서 언제 요절해도 이상하지는 않았을거 같아요.
20/03/06 17:32
수정 아이콘
협상차 온 엄여에게 다짜고짜 칼부터 휘두르고, "야 너 겁쟁이구나 낄낄"하면서 창으로 찔러죽이는 모습이 참...... 솔직히 사람 같지가 않습니다.
20/03/06 23:55
수정 아이콘
너 겁쟁이구나 낄낄 이러고 나서 죽이는게 인간성이 ;;
20/03/06 17:39
수정 아이콘
손책이 소패왕이라고 포장받아서 그렇지 하는 행동들 따져보면 동네양아치가 따로 읎음...
20/03/06 17:40
수정 아이콘
오리지날 패왕도 원래 그랬습니다......
20/03/06 17:41
수정 아이콘
사실 소패왕도 까는 별명 아닐까요?
됍늅이
20/03/06 18:41
수정 아이콘
패왕은 양아치 소패왕은 동네양아치...
자작나무
20/03/06 17:41
수정 아이콘
엄백호와 허공의 부하들이 자신들의 주인에 대한 원한을 갚았네요!

평소에 부하들에게 잘 대해주었나 봅니다. 죽어서도 충성 받은것을 보면...
이른취침
20/03/06 17:52
수정 아이콘
아마 이런 연유로 동오의 덕왕이란 네이밍이 붙지 않았을까 싶네요.
자작나무
20/03/06 17:53
수정 아이콘
앗...아아...

뭔가 설득력이 있어!
캬옹쉬바나
20/03/06 17:47
수정 아이콘
역시 동오의 덕왕...
최초의인간
20/03/06 17:51
수정 아이콘
(수정됨) 恢恢.. 回回.. 돌고돌아 1어시
독수리가아니라닭
20/03/06 18:44
수정 아이콘
군자의 복수를 한 걸 보니 역시 동오의 덕왕이라는 게 허명이 아니었네요
코우사카 호노카
20/03/06 19:58
수정 아이콘
조조전온라인 엄백호전 하러갑니다...
그저 메뚜기 산월족 좀 못잡았을뿐인데 흑흑..
jakunoba
20/03/06 20:04
수정 아이콘
3월 20일에 덕왕 화이트 타이거님으로 망나니 손책 때러잡으러 갑니다.
치열하게
20/03/06 20:50
수정 아이콘
강백호와 이름이 비슷해서(이름은 엄백호가 먼저지만) 더 유명해 진게 아닌지.,..
여수낮바다
20/03/07 09:25
수정 아이콘
삼국지에서 엄백호로 시작하면 늘 어려웠지만 잼있었죠
오랜만에 땡기네요 흐흐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4931 [일반] 코로나19 대처용품으로 홍보하는 유사 의약외품에 대한 걱정 [14] soritiger7304 20/03/08 7304 0
84930 [일반] [자작] R.I.P Romance [4] 태양연어6728 20/03/08 6728 3
84929 [일반] [스연] 개인적으로 최고의 랩 [12] 치열하게7500 20/03/08 7500 0
84928 [일반] [코로나]와 마스크, 그리고... [82] Demanon11548 20/03/07 11548 0
84924 [일반] [코로나]내가 없으면 세상이 안돌아가 [11] 어느새아재8839 20/03/07 8839 29
84923 [일반] [스연] 2014년 KBS주말드라마 가족끼리왜이래 [19] TAEYEON9501 20/03/07 9501 0
84922 [일반] [스연][핸섬타이거즈] 어제 고려대 이진규 선수 플레이.gfy [61] 낭천13269 20/03/07 13269 3
84921 [일반] 아침에 공적마스크를 샀습니다. [70] 콩사탕14141 20/03/07 14141 11
84920 [일반] [보건] 코로나19의 유럽확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226] aurelius27346 20/03/07 27346 11
84919 [일반] 어떻게 노동계급 생활이 미국인들을 죽이고 있는지.. [42] 아난12804 20/03/07 12804 11
84918 [일반] 신천지 120억 기부 거절당했네요 [22] 밀리어12231 20/03/07 12231 2
84917 [일반] [스연] 유종의 미를 거둔 슈가맨 [20] Croove10854 20/03/07 10854 0
84916 [일반] 싱귤레어(montelukast) FDA 블랙박스 경고 관련 [24] Timeless10848 20/03/07 10848 9
84915 [일반] [스연] NBA 잡설 [51] 그10번8550 20/03/07 8550 3
84913 [일반] [스연] 가온 디지털 차트, 연도별 차트에 들어오는 곡수와 잡담 [5] 아마추어샌님4791 20/03/06 4791 0
84912 [일반] [스연] 심은경,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 수상! [29] 빨간당근11778 20/03/06 11778 6
84910 [일반] [코로나] 관련업무로 성주군 공무원 과로사 [40] 츠라빈스카야10082 20/03/06 10082 3
84909 [일반] [스연]미스터 트롯 방송 후기(3월 5일, 스포있어요) [45] 모나크모나크7759 20/03/06 7759 0
84908 [일반] (삼국지) 엄백호, 끝내 복수에 성공하다? [23] 글곰8905 20/03/06 8905 10
84907 [일반] [코로나] 일본인 대상 무료검진은 어떨까요? [60] 홍준표10527 20/03/06 10527 0
84906 [일반] [코로나] 미국사는 누나 통해서 들은 이야기 [90] 퀘이샤21961 20/03/06 21961 6
84905 [일반] [코로나]일본이 한국+중국에 대해서 사실상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391] kien26636 20/03/06 26636 0
84904 [일반] [스연] 지애언니가 넘나 좋은 쥬리 [10] 어강됴리9538 20/03/06 953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