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4/11/13 23:22:15
Name sylent
Subject OSL 관전일기 - 타이밍의 연금술사
OSL 관전일기 - EVER 스타리그 4강 2주차(2004년 11월 12일)


타이밍의 연금술사

음악을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은 작곡자가 곡을 만들 때 떠오른 영감에 동참하고, 연주자들이 최선을 다해 연주한다고 믿으며 듣는 것이다. 경기를 가장 잘 관전하는 방법은? 선수들이 전략과 빌드를 만들 때 떠오른 영감에 동참하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있다고 믿으며 경기를 즐기는 것이다. 이번 '임진록'에는 결승을 향한 '황제' 임요환 선수의 절박한 현실이 모두 들어있었다. 소수의 마린과 SCV에 녹아 있는 땀, 정렬, 그리고 노력의 시간들. 이것만으로 이번 '임진록'을 통해 임요환 선수는 충분히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고 할 수 있다.

복수 번의 가위-바위-보를 할 때 의식적으로 가위와 바위와 보의 회수를 맞추려고 노력하듯이,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는 언제나 '균형'을 기반으로 하기 마련이다. 임요환 선수와 한 시대를 이끌어왔던 '폭풍' 홍진호 선수가 임요환 선수의 치즈 러시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1경기의 치즈러시 이후 2경기는, 3경기는 치즈 러시가 아닐 것이라는 홍진호 선수의 기대와 믿음의 틈새를 임요환 선수의 예리함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단지, 홍진호 선수가 전략의 보따리를 풀어내기도 전에 임요환 선수의 비수가 홍진호 선수의 심장을 관통했을 뿐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EVER 스타리그]에 쓰인 전장의 밸런스가 상대적으로 테란에게 우호적임에도 불구하고 임요환 선수가 필살의 카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 상대를 예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임요환 선수가 홍진호 선수를 최고의 라이벌로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고 믿는다.

경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그리고 팬들에게 흥미로운 경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프로'로써의 사명이 상충될 이유는 없다. 임요환 선수 역시, 어느 날의 경기는 박진감 넘치게 패배했을 것이고, 다른 어느 날의 경기는 싱겁게 승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임진록'은 임요환 선수가 피나는 노력 끝에 손쉽게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세 번의 경기일 뿐이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이 전설적인 대결을 펼치는 대신 진심 어린 미소로 악수를 교환했다면 권투 역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임요환 선수가 [EVER 스타리그]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룬다면, 오늘의 세 경기는 스타 리그 역사에 의미 있는 한 페이지로 남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임진록', 그 이후

홍진호 선수는 힘겨워 보이긴 했지만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지친 듯 했지만 좌절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 때가 성숙하지 않았다고 여기고 다음 기회를 또 기다린다면, '폭풍'의 거셈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나면 반드시 그 결단을 후회하게 된다. 그 후회를 얼마나 잘 견뎌 내느냐가 결단의 성패를 좌우한다. 임요환 선수 역시 팬들의 뜨거운 반응에 조금은 후회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후회를 마음에 담고 있을 필요는 없다. 언제나 임요환 선수의 앞에는 길이 없었고, 그가 걸어 간 곳으로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후회를 마음에 담고 있을 여유도 없다. [EVER 스타리그]의 마지막 관문을 지키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괴물', 최연성 선수이기 때문이다.


- sy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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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코
04/11/13 23:26
수정 아이콘
언제나 참 멋있는 글입니다.
-rookie-
04/11/13 23:27
수정 아이콘
오랜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SummerSnow
04/11/13 23:36
수정 아이콘
아.. 오랜만에 sylent 님 관전일기가..
sylent 님 좋은 글 잘봤습니다.
SonOfDarkNess
04/11/13 23:37
수정 아이콘
sylent 님 휴가 이신가요??
04/11/13 23:39
수정 아이콘
외박입니다. -_-
SonOfDarkNess
04/11/13 23:41
수정 아이콘
혹시 임진록을 위해...(퍼벅!)
04/11/13 23:43
수정 아이콘
글 정말 좋군요. sylent 님의 후기는 봐도 봐도 놀랍습니다.
04/11/14 00:01
수정 아이콘
글을 참 맛깔나게 쓰십니다. 훌륭하시네요.
04/11/14 00:08
수정 아이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 상대를 예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최고네요..!!
Temuchin
04/11/14 01:06
수정 아이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 상대를 예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것도 맞는 말이지만 상대도 최선의 플레이가 나올 '여지'는 남겨두었으면 하는 맘이 가시질 않네요...이거 참 기묘한 느낌이네요...
사일런트님 예전에도 하수스21인가 거기서도 잠깐 뵌거 같은데 ...
외박 잘 놀다 가세요^^
04/11/14 01:24
수정 아이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EVER 스타리그]에 쓰인 전장의 밸런스가 상대적으로 테란에게 우호적임에도 불구하고 임요환 선수가 필살의 카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 상대를 예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필자는 임요환 선수는 홍진호 선수를 최고의 라이벌로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고 믿는다.

이 단락 최고네요...정말 동감합니다...글 잘쓰시네요..부럽
★가츠처럼★
04/11/14 01:31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oxership
04/11/14 03:42
수정 아이콘
언제나 임요환 선수의 앞에는 길이 없었고, 그가 걸어 간 곳으로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구문도 감동적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couple]-bada
04/11/14 04:57
수정 아이콘
마지막을 지키고 있는것은 스스로 만들어 낸 괴물 최연성.... 드디어 붙는군요. 그것도 결승 무대에서.
Zihard_4Leaf
04/11/14 09:02
수정 아이콘
임진록 논쟁의 최고의 답인 글이군요 ^^ // 최연성 vs 임요환 .. 프리미어리그 조도 달라서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EVER배에서 시작되는군요 !
천재여우
04/11/14 09:22
수정 아이콘
오오..역시 좋은 글이시군요...
최선을 다한 임요환선수와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최연성선수...기대가 됩니다....
나야돌돌이
04/11/14 09:26
수정 아이콘
헛, 간결하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군요
정말 이번 임진록 논쟁의 정답을 보는 듯 합니다...건필하십시오
04/11/14 09:32
수정 아이콘
자게의 수많은 글을 보고 기분 나빴던 게
sylent님의 글을 보고 다 풀렸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군생활 열심히 하십시오.
04/11/14 11:00
수정 아이콘
3글자 감상~
추/게/로

그리고......

곽/동/훈
04/11/14 11:17
수정 아이콘
언제나 감탄을 하지만.. 최고네요..
빨리 제대하시길..~~~!!
군생활 잘 하세요..~~~
lovehannah
04/11/14 11:35
수정 아이콘
짧지만...뼈가 있는 글...추게로 Go.
나중에 스타관련 컬럼리스트로 직업을 고려하심이...
박다현
04/11/14 11:55
수정 아이콘
"이번 '임진록'은 임요환 선수가 피나는 노력 끝에 손쉽게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세 번의 경기일 뿐이다."

"언제나 임요환 선수의 앞에는 길이 없었고, 그가 걸어 간 곳으로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후회를 마음에 담고 있을 여유도 없다. [EVER 스타리그]의 마지막 관문을 지키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괴물', 최연성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최고네요.. 잔말말고 추게로 go
always_with_you
04/11/14 12:02
수정 아이콘
정말 눈에 쏙 들어오도록, 가슴에 콕 박히도록 핵심을 잘 담아주셨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기분 좋게 다녀갑니다. 고맙습니다. ^^
그리운 아키텍
04/11/14 12:11
수정 아이콘
인신공격으로까지 흐르는 험악한 분위기에 맘 상하는데, 담담하게 상황정리를 해주시네요.

단한마디, 추게로~ 추게로~ gogogo.
묵향지기
04/11/14 13:16
수정 아이콘
추게로 -_-)b
청보랏빛 영혼
04/11/14 14:51
수정 아이콘
'마지막 관문을 지키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괴물...'
오...... 임요환선수......몬스터를 만들어낸 마스터란 이야긴가요 -_-;;
너무 멋집니다.
요환선수가 간 곳이 길이된다면 팬들은 그저 그 길을 묵묵히 따르겠습니다. 아자아자!
추게로~!! 추게로~~~!!
안전제일
04/11/14 15:58
수정 아이콘
깔끔하게 정리해주셨군요.
문제의 시간들동안 집에서 편안하게 게임보고 혼자 놀다왔더니만..여기저기가 하도 흉흉해서 겁먹고 있었는데...
덕분에 좋은 선수들의 경기를 좋게 마무리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_^(이게 뭔말이더나.--;;;)
하늘 한번 보기
04/11/14 23:27
수정 아이콘
역시 sylent님의 글 멋집니다.
언제 제대하실려나.....??
적 울린 네마리
04/11/14 23:39
수정 아이콘
흠... 같은 사이트인데 자게판인지 난장판인지 모르는 곳에 쏟아지는
쓰레기 글들에 오염된 제 자신이 sylent님 글 보면서 많이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04/11/14 23:50
수정 아이콘
아. 보는 순간 이것이 답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추게로 가죠!
아이엠포유
04/11/15 00:26
수정 아이콘
저 필력....................... 감동입니다. ^^b
거기에 비하면 난........................OTL
저녁하늘의종
04/11/16 18:02
수정 아이콘
아, 역시 모든분들의 의견대로..
추게로-_-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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