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1/11/30 19:10:06
Name 눈시BBver.2
Subject 근대사를 다루지 못 하는 이유 (추가 끝)
아무래도 조선시대 쭉 파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저번에 헌-철종 대를 파면서 근대사 코 앞에서 딱! 멈춰버렸죠. (...)

고대사랑 근대사 다루는 게 어렵다고 얘기한 적 있지만, 특히 근대사의 어려움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해 보렵니다. (고대사는 그래도 여러분이 재밌게 봐 주셔서 ㅠㅠ)
-------------------------------------------------
구한말
이른바 대한제국 시대, 교과서에서는 대원군의 한계를 말 하면서 최대한 개화가 좋은 쪽으로 말 합니다. 헌데 꼭 그런 건 아니죠.

대원군의 위정척사는 프랑스랑 어떻게 해볼려다가 실패해서 한 거였고, 위정척사의 대표주자 최익현 역시 아무 생각 없이 한 건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시스템은 서양과 1:1로 싸우기에는 너무 벅찼고, 일단 문을 닫아서 조선 내의 물자들이 바깥으로 쓸려 나가지 않게 하는 게 우선이었죠. 당장 쌀이 일본으로 쓸려나가고 있었는데요 -_-;

대원군은 그렇게 배외정신으로 무장된 어른일 뿐이었으며, 조선의 기득권 관료들은 그냥 자기 밥상 유지할려고 개화를 거부했다... 이게 교과서의 본래 입장이죠.

그런데 이게 사실은 일제가 "일본은 문을 열어서 발전했고 조선은 문을 닫아서 망했다"를 계승한 것일 뿐이니... 그저 이런 상황에서 "어쨌든 일제는 나쁜 놈!"으로만 바꿨을 뿐이죠.

이 때의 개화파는 후에 모조리 친일파가 되죠. 김옥균은 정한론을 주장했던 후쿠자와 유키치 밑으로 도망쳤고, 박영효는 친일파가 됐으니까요. 이 때의 친일파의 사상적 뿌리는 다 일본이었습니다.

헌데 이건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말이죠. 쑨원부터가 일본에서 쓰던 이름 중산을 호로 썼고,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근대 역사에서 한중이 기본으로 삼았던 건 일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나온 말이, "독립 협회 개화파 그 딴 거 없다"입니다. 어차피 다 친일파가 된 놈들이라는 거죠. 근데 그렇다고 독립 협회의 의의가 아예 없을까요?

양 쪽 다 절대 바꾸지 않는 입장이 있습니다. "인간 그 까이거 절대 변화가 없는 동물이다"는 거죠. 따라서 개화파를 좋게 봐 준다면 뒤의 친일파 얘기는 절대 없고, 친일파로 점 찍으면 앞에서 한 것 역시 친일파로 가는 길일 뿐이라는 거죠.

자, 그렇다면... 이렇게 일본의 힘을 빌리려 한 사람으로 누가 있을까요?


이 할아버지요.

참 좋은 평가를 받는 대원군, 하지만 그는 자기 며느리인 민비를 죽이는 데 일본에 협조를 구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을미사변입니다. 해방 직후까지도 그는 이 일로 비판 받았습니다. 지금은 찾을 수가 없죠. 민비가 죽은 후 일제에서는 대원군의 이름으로 그녀를 죽인 정당성을 발표합니다. 보통 이게 그냥 협박 당해서 그렇다 생각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그리고 이 대원군의 행동을 비판한 지식인 중에 유길준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양반도 결국 친일파가 됩니다. 그 놈이 그 놈을 욕 한 게 되겠죠?

그렇게 그 사실을 감추고 대원군도 잘 했고 민비도 잘 했다 이렇게 말 하는데... 민비 이 여자, 사치를 미친 듯이 부렸습니다. -_-; 중국의 서태후가 쓴 돈과 민비가 쓴 돈이 똑같다면, 어디가 잘못된 걸까요? 제 2의 세도 정치 민씨 세도는 안동 김씨보다 더 심했습니다. 이런 여자를 단지 일본인의 손에 죽었다고 명성황후라고 굳이 높혀 부를 필요가 있을까요? 광개토대왕이 호칭 문제로 싸움이 나는 유일한 왕이라면, 민비는 호칭 문제로 싸움이 나는 유일한 황후입니다. 세종대왕을 이도로 부르는 세상에 이런 거에 싸움이 나야 될까요?

이렇게 해서 나오는 건, 다 그 놈이 그 놈이다, 조선은 희망이 없었다, 이런 식의 허무주의일 뿐입니다. 척사파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 했고, 개화파는 모두 친일파가 되었다 이런 거죠. 네,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시기, 뽑을 게 이것 뿐일까요?

---------------------------------------------------------------------------------------------------

친일파 문제

친일파 = 무조건 악, 독립운동가 = 무조건 선

이런 구도가 참 귀에 쏙쏙 들어오죠. 그리고 여기에 동원되는 게 있습니다.

임시 정부는 많은 혼란을 거칩니다. 그 과를 이승만에게 돌릴 수 있고, 김구에게도 돌릴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일을 잘 끌어간 사람은 없다시피합니다. 외부의 문제도 있겠지만, 임시 정부의 혼란은 그 힘을 크게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령 독립운동의 역사에 좌파의 활약은 모두 무시합니다. 그렇다고 좌파가 잘 했느냐? 자유시 같은 일을 떠올려 봅시다. -_-; 서로 얽히고 얽혀서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친일파들이 그냥 모두 악으로 몰 수 있을까요?



홍사익. 무려 일본 육사 출신, 그것도 조선 왕실 출신이 아닌 평민 출신입니다. 이런 양반이 중장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일제의 지배를 긍정했고, 그러면서도 자기는 조선인이라 여겼습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를 일제와 조선의 관계로 여겼죠. 마지막까지 그는 "일제"의 "조선인"이었습니다.

친일파들에게 흔히 말 하는 것, 조선이라는 것을 버렸다, 이게 성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실제 그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친일파들을 공격하기 위해 참 많은 것들이 동원됩니다. 가령 단군을 부정했다는 게 있죠. 그런데 말이죠. 민족운동가였다가 친일파로 변절한 최남선은 단군을 지키려 참 최선을 다 했습니다. 환단고기를 시작할 때 나오는 환국, 삼국유사의 말을 토대로 "환국"을 주장한 건 최남선이 제일 먼저였습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이라는 민족 자체를 없앤 게 아니라, 그 사이를 파고들었습니다. 일제 하에서의 조선 민족이었죠. 최남선, 이광수 등이 지키려 한 조선이라는 건 계속됐습니다. 당연히 이런저런 민족 단체들 뿐만 아니라 민족 종교까지도 침식됩니다. 그 흔적이 환단고기입니다.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에서조차도 일제가 침투한 겁니다. 일본+조선은 중국에 맞서 동아시아를 지배할 정당성이 있었죠. 거기서 일본만 빠진 게 현재 그들이 말 하는 민족주의의 흐름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친일파에는 이런 저런 과장이 더해집니다.

가령 예전에 나왔던 백선엽, 좋게 따져도 "나라를 구한 친일파"입니다. 이 때문에 그의 공을 얘기할 때는 친일파 얘기를 아예 빼고, 친일파인 걸 강조하기 위해서 6.25 때의 공을 다 빼 버립니다.

그런데... 그 친일 행위 자체도 의심이 간다면 어쩔까요?

http://hyukjunseo.egloos.com/3264139

여기에 넘어서, 이 문제는 박정희에게까지 넘어갑니다. -_-; 오죽하면 백선엽이 친일 인명 사전에 들어간 게 박정희 집어넣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박정희가 만주 군관 학교에 들어갔던 시기, 친일파로 욕 할 거면 딱 거기까지면 되는데 천황에 충성 맹세를 했다느니 독립군을 쓸어버렸다느니 별 얘기가 나옵니다. 뭐 그럴 듯 해요. 간도특설대. 근데... 그 시기 독립군이 만주에 남아 있었느냐의 문제가 걸리죠. 쓸고 싶어도 쓸어버릴 수 없는 상황. -_-;

이런 데서 또 문제가 되는 것이 이렇게 자기 꿈을 위해 만주로 간 사람들을 다 친일파로 몰아야 되냐는 것입니다. 괜히 만주 웨스턴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당시 조선인들에 있어 만주는 꿈과 희망의 땅이었어요. 그 중에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게 이 양반들이죠.

현대에 이런 친일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내려졌느냐? 하면 또 아니죠. 그 때문에 수많은 싸움이 벌어집니다. 똑같은 기준 가지고도 인물에 따라 수많은 평이 갈리고, 이 기준에 정확히 따르는지 자체도 의문입니다. 왜곡은 기본으로 들어가죠.

정작 친일인명사전에서는 납북, 월북된 인물들을 뺍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좋은 쪽으로만 얘기하죠. 그 때문에 떠돈 얘기가 북한에서는 친일 청산을 제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친일인명사전에 대비해 친북인명사전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겁니다.

이런 의문점들은 큰 핑계가 되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친일파라도 무슨 상관이냐는 겁니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보면 아예 틀린 건 아니예요. 그래서 더 어려워요.

이런 얘기들이 모두 뭘 주장하면 어디에는 물타기가 되고, 뭘 주장하면 어디에 또 물타기가 됩니다. 조선의 외부적인 상황을 얘기하면 "그러니까 개화파고 위정척사고 잘 못 한 건 없다는 거지?"로 가고, 개개의 친일 행적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 "아 그래 일빠야"가 되고, 친일파를 욕 하면 "그럼 북한은" 이렇게 되죠.

대체 "적극적 친일"과 "소극적 친일"의 기준은 언제 만들어질까요? 아니 그게 가능은 할까요?

예전에 얘기했던 환단고기 얘기로 다시 가 보죠. 여기서 친일파의 거두로 나오는 게 이병도입니다. 친일파라서 식민사관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일제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학자들이 대개 색안경을 쓰고 한국사를 왜곡하고 있으니까 이에 대해 학술적으로 항쟁하자는 것이겠지요"

"정치적으로는 일본놈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지만, 진리 탐구에도 일본놈에게 굽힐 게 뭐 있냐는 생각이 들고 화도 나서 못써주겠다고 했어요"

자기가 일본인 스승의 이론에 반대해서 낸 게 막히자 그것 때문에 진단학회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_-; 그런데 현재, 진단학회는 그저 일제의 하수인으로 나오고 있죠. 그가 분명 친일을 한 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강조한다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더 정치적으로 가면 나오는 문제, 박정희까지는 그렇다 칩시다. 그보다 덜 했는데 어쨌든 친일은 한 인물, 그런데 그걸 김대중과 비교한다면? 근데 따지고보면 김대중이 했던 것과 그리 다를 게 없다면? 양쪽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요? 그 인물의 친일을 포기할까요, 김대중의 친일을 포기할까요, 아니면 둘 다 물타기로 갈까요, 아니면 둘 다 그 놈이 그 놈이니 난 만화책이랑 애니나 볼련다 이런 쪽으로 갈까요?

절대 이런 논쟁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발굴되고 파헤쳐질수록 더 심화될 뿐이죠.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친일파라는 거대 담론 자체를 무효화시키려는 거냐는 물타기 얘기가 나오게 되죠.

----------------------------------------------------------------------------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언제나 묻게 되는 것 하나. 우리에게 있어 서양의 근대는 어떻게 생각될까요? 좋은 거야 많겠지만, 보통 반 제국주의적으로 얘기할 떄는 이렇지 않나요?

"식민지인들과 자국 노동자는 인간적인 삶을 살지 못 했다"

특히 복지를 얘기할 때, 좌파적인 주장으로 나오는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왜 우리의 식민지 근대화론에는 이걸 적용하지 못 할까요?

일제 때 조선의 경제가 발전했다, 박정희 때 경제가 발전했다, 이런 말에 반박으로 나오는 게 조선인들은 그걸 분배받지 못 했다, 박정희 때의 경제 개발도 다 재벌들의 것 뿐이었다 이런 거죠.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원래 근대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게 다 윗놈들의 것일 뿐이잖아요? 근대화 과정에서의 복지 발전은 노동자, 농민 등의 행동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위에서 내려주는 복지는 없다시피 하죠. 그런데 왜 우리 나라의 근대화에서만 이걸 기준으로 삼을까요?

일제가 한 건 다 일제와 친일파들 배만 불러줬다, 박정희의 경제 발전은 다 재벌들 배만 불러 줬다.

이런 건 근대화 과정에서 당연히 나오는 거잖아요. 이럴 거면 식민지 근대화를 부정할 필요가 있나요?

일제 때도, 박정희 때도 그런 분배의 불평등에 대한 운동은 계속됐어요. 위에서는 경제 발전의 이익을 독식하고 아래에서는 그런 분배를 요구하는 것, 이건 근대화 과정에서 당연히 나오는 현상이죠.

예. 당연히 이건 식민지 수혜론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거죠.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 시켜 "줬다"에 대해서요. 그런데 그걸 깨뜨리려면 아예 깨뜨려야지 왜 "시켜 주지 않았다"가 될까요?

애초에 이런 "식민지 수혜론"이랑 "식민지 근대화론 반대" 쪽이랑 이런 거에 다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 설을 대표하는 이영훈 교수가 뉴라이트에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죠. (...) 학문을 넘어 정치적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잡은 겁니다.

이게 더 문제가 되는 게 뭐냐면요. 식민지 근대화론은 기존의 담론인 한국 vs 일본의 민족을 넘어서 일제와 조선 기득권 vs 조선 피지배층이라는 계급 문제를 강조한 이론이라는 겁니다. 문제가 됐던 위안부 문제의 결론도 결국 그거였어요. 경제학에서 나온 것 답게 꽤나 좌파적인 이론입니다. 그런데?

그걸 우파 쪽에서 이용하고 좌파 쪽에서는 반대하고 있죠.

이렇게 기울어버린 현재의 상황에서 이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_-;

-----------------------------------------------------------------------

과장과 왜곡

뭐 결국 다 같은 말입니다.

6.25 때의 북한 학살 vs 한국 미군 학살
베트남전 우와 한국군의 영광 vs 베트남전 한국군 용병 학살대마왕
4.3 사건 빨갱이들 난동 vs 그냥 제주도민 학살한 것일 뿐

언제나 진실은 이 가운데 있습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정말 그냥 착한 군대였다는 건 말도 안 되죠. 하지만 지금 베트남이나 국내에서 주장하는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에 대해서는 대체 신빙성이 없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_-; 한국군이 있었을리 없는 곳, 검증되지 않은 곳, 그런데 그런 사례들을 보면 한국군은 있지도 않은 헬기를 몰고 다니고 수백명을 죽였답니다. 정작 미군이 수백명을 죽인 것도 바로 그 미국인에게 들통나서 바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한국군이 그걸 생존자 몇 명을 제외하고 수십년 동안이나 비밀로 둘 수 있었다?

4.3 사건 같은 해방 후에 있었던 좌익 관련 일들에서 정말 북한의 영향력이 아예 없었다? 이런 것도 말이 안 되구요.

이런 것의 문제는 간단하죠. 사이에 있는 어떤 것들을 말 하면, 양 쪽 모두에 욕 먹습니다. 6.25 때 한국군의 실책을 말 하면 한 쪽에서 욕 먹을 것이고, 한국군 그래도 잘 한 거 말 하면 다른 쪽에서 욕 먹겠죠. 양 쪽에서 내놓은 주장들은 다 이렇게 편향된 것이고, 그 사이에서 진실을 찾기는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당장 지금 제글만 봐도 주로 좌파 쪽에 대한 반론으로 이루어졌죠? 이건 저 역시 기존의 역사를 듣다 좌파 쪽의 반론에 빠졌다 다시 그에 대한 반론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입니다. 헌데 이걸 우파 쪽에서 보면 (우파 쪽의 주장 역시 그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 한 반대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럼 그렇지"가 되겠고, 좌파 쪽에서는 "저런 죽일놈"이 되는 거죠.

한 쪽은 맞다, 한 쪽은 절대 아니다라는 것에 "아니긴 아닌데 이 정도는 아니다", "맞긴 한데 그 정도로 옳지는 않다"고 하면 어떻게 되냐는 것, 근대사의 모든 논쟁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실제 이 양 극단이 서로 싸우는 경우는 없다시피합니다.

식근론을 주장한 이영훈 교수가 그랬죠. 자기는 식민지를 절대 좋게 말 하는 게 아니라고. 아니 애초에 식민 통치를 한 것 자체가 나쁜 거라구요. 그런데 거기에 나쁜 걸 덧씌우기 위해 이런 저런 왜곡을 했고, 일단 그걸 부정하기에 식민지를 좋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라구요. 자, 이게 물타기일까요 아닐까요?

이승만은 얼마나 옳았고 얼마나 글렀으며, 김구는 무조건 옳은 인물이었을까? 여운형 같은 인물은 어땠으며 그 이후 좌우를 막론하고 이름을 올린 이들은 어땠을까? 어떤 결론을 내리든 논란이 안 될 게 어디 있을까요?

사실 웃긴 거예요. 빨갱이가 절대악이라면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빨갱이 짓 한 것 그 자체로만 몰면 되요. 친일파가 그렇게 나쁜 거면 친일행위 그 자체로만 욕 해도 되요. 하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요? 어떤 학살 사건에 있어서, 어디서 몇 명 죽였고 어디서 몇 명이 죽었다 이런 식의 구체적이고 자세한 주장이 인기 있을까요? 저기서 만 명 죽였고 이만 명 죽였고 남자는 다 겁탈했고 여자는 다 죽였다 이런 식의 자극적인 게 재밌을까요? 진짜 이런 것 보면 그런 사건의 문제와 사람이 죽었다는 참혹함보다 누가 누가 더 많이 죽였나 이런 거에 집중한다는 게 정말 짜증나고 무섭습니다.

양 쪽 모두 수십년간 이런 왜곡과 과장을 해 왔고, 그 사이를 파고들기가 정말 힘든 겁니다.

무엇보다, 정작 이런 걸 말 하면서 제가 말한 것 자체가 과장이 아닌지, 왜곡이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저도 배움이 너무 짧아요. 아직 한참 멀었어요. 인터넷 공간이니까 이렇게 자신 있는 척 말 할 뿐이죠. 그렇다고 본문에 말한 것처럼 아무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저도 근대사 보면 피가 끓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거기다 정말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이라도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어쩔 수 없구요. 정치적 성향을 확실히 잡지 않은 저로서는 이런 거에 대한 평가를 하기도 정말 힘든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거에 머리를 너무 감싸안으면 행동파에게는 백면서생이라는 식의 욕을 먹죠.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인데 왜 그렇게 적에게 유리한 것만 생각하느냐구요. 그리고 왜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웃기만 하고 있냐구요. 원주율을 소수점 백자리 넘게 맞추려는 사람에게 "어쨌든 저기 원을 부정하는 놈들을 쓸어버려야 되는 것 아니냐 이 수정주의자야"라고 하는 식입니다. 이것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 일단 역사를 움직이는 건 행동이니까요. 하지만, 이게 또 아무런 의미가 없냐? 그건 또 아니죠.

또 추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차별 담론도 마찬가집니다. 전라도 쪽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그런 지역 담론이 아니라 차별받는/받았던 계층에 대한 얘기가 돼야 되거든요. 조선시대에 남인들은 경상도에 몰려서 아주 강하게 나갔어요. 경상도 내의 서인들은 때리고 몰아냈고, 정조 이후 심심하면 만 명이 넘는 연명 상소를 올렸죠. 어느 지역이 문제다가 아니라 차별받으면 이런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그 때 기득권인 서인의 잘못만큼이나, 남인도 무조건 잘 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또 하면 경상/전라의 지역감정 구도로 갈 뿐이겠죠. =_= 영호남 부모님을 둔 청년은 웁니다.

---------------------------------------------------------------------------------

그냥 한 번 심정 토로해 봤습니다. '-')a 이런 점에서 근대사를 다루는 건 하더라도 정말 한참 후일 것 같네요.

양 쪽에서 서로의 공과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면서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최소한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을 때까지 근대사 얘기는 없을 겁니다. 기껏해야 경술국치 직전, 대원군과 민비와 고종 얘기 정도까지는 가능하겠죠. 이것도 최소 내년 초반까지는 힘들 겁니다.

결론은... 어려워요. 너무 어려워요. -_-; 세 줄 요약하자면.

1. 제 자신이 이런 거 얘기할 정도로 공부가 안 됐고,
2. 너무 어려워서 그 정도로 쏟을 시간이 없으며,
3. 그에 대한 반응이 솔직히 무섭습니다.

_-)a

다음 얘기는 아마 신라-백제에 대한 글이 되거나 고려시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광개토대왕 때처럼 한 5편 정도로 짧게 짧게요.

조선시대 얘기는 이제 그냥 단편 정도로 살짝 살짝 쓸 거 같네요.

아무튼.......... 그냥 역사보단 스포츠나 여자 같은 것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제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요? ㅠ_ㅠ)

모르는 게 약인 것 같긴 해요. 그냥 그게 맞다고 믿으면 그걸로 끝나는 문제일 텐데요.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내가 모르는 게 대체 얼마나 더 있는 건가, 내가 말 하는 게 정말 맞긴 한 건가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

마지막으로, 수업 중에 들은 에피소드 하나만.

장제스를 건국 내내 죽일놈이라 밀어붙였던 중국은 최근에는 그를 영웅으로 떠받든다고 합니다. 실제 장제스와 그 군벌은 막장이었지만 (...) 이런 막장을 이겼다 해봐야 딱히 마오쩌뚱이 잘나지지 않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일제에 대한 서술이 그런 이유를 한국인이 아직 자부심이 적어서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한국이 일제 때의 상처를 다 씻고 자부심과 자존심을 다시 되찾으면 일제에 대한 서술도 많이 달라질 거라구요.

뭐 -_-a 교수님도 뭐가 걸렸는지 딱 그 정도만 얘기하셨지만... 참 역사 얘기를 역사를 알아갈수록 힘들어지는 건 다 마찬가지인 것같습니다.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2-06 09:30)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아야여오요우유으
11/11/30 19:18
수정 아이콘
역사지식이 깊은 건 아나지만 써 주신 글에 공감이 많이 됩니다. 역시 역사공부를 하신 분이다 하는 느낌..? 이쪽이나 저쪽이나 진영논리에 빠져서 자기 유리한 대로 갖다붙이기식 주장을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무얼 두려워하셔서 근대사 관련해서 글쓰기를 주저하시는지 충분히 알겠네요. 그래도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간단하게나마 예전부터 제가 답답해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써 주셔서 약간 속시원한 느낌마저 드네요 크
11/11/30 19:23
수정 아이콘
본문중에 진짜 양쪽 모두에게 욕 먹는 일이라는데 미친듯이 공감하구요.

학교다닐때 저역시 전과하기전 인문학부생으로 필수인 사학과 교양과목을 들었는데
몇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에 대해서 선배나 조교, 교수님과의 술자리에서
몇번 대화를 나눠보면 결국엔 답이 없다가 결론이더군요.

물론 본문에 다루어진 같은 질문(민비냐 명성황후냐, 백선엽은 왜?)을 한
제가 썩어빠진놈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말이죠.
Alan_Baxter
11/11/30 19:24
수정 아이콘
논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글 같지만, 저는 정말 잘 읽었네요.. 처음 읽었는데 필력이 진짜 대단하십니다. 내용에 대한 긍정, 부정 여부는 놓더라도, 어떤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대해서 정말 즐겁게 읽은 것 같습니다. 감사드려요.
11/11/30 19:26
수정 아이콘
확실히 식민지 근대화론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특히나 비이성적이 되더군요.
근대화의 주체가 누구였든지, 그리고 근대화의 결과가 누구에게 주로 돌아갔는지가, 근대화가 되었다 안되었다를 판가름하지는 않는데 말이죠.
선데이그후
11/11/30 19:32
수정 아이콘
사진에 있는 만주군중장이 아마도 사형당했죠.. 조선최고의 엘리트산실인 만주교육기관들..
쓰시는 글들 정말 잘 읽고있습니다. 필력 정말 대단하십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11/11/30 19:35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이성적이라는 피지알에서조차 친일에 대한 담론은 이성을 잃기 쉬운 문제인데, 솔직담백한 글에 공감이 가는군요.
친일의 낙인이라는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이를 위한 수단은 그들이 비난하는 대상과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이더군요.
박정희 대통령 논란도 그중 하나구요.
전준우
11/11/30 19:38
수정 아이콘
스포츠와 여자에,
지금부터 관심을 가지시면 됩니다.

야구에는 이미 관심 많으시잖아요? 크크

이제 야구와 연애에 관련된 글도 올리시길 바라며+_+
구밀복검
11/11/30 19:44
수정 아이콘
근데 이영훈 교수가 순수하게 식민지 시절의 경제사적인 상황만 짚어보고자 했다면 이 정도로까지 까이진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저런 식의 회피 스킬을 시전하기엔 좀 뻘소리를 많이 했다고 봐서...자업자득인 듯.
11/11/30 19:47
수정 아이콘
이런 자세가 되신 분일 수록 근대사에 대해서 언급을 자제하게 되고,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분일 수록 발언을 많이 하는 곳이 인터넷이다보니... 정보 취합이라는 것도 참 어려워요.
승리의기쁨이
11/11/30 19:47
수정 아이콘
이때의 평가는 정말 먼 미래에 눈시비비님같은 분이 조선시대글 쓰신것 처럼 개화시대라는 것으로 쓸거 같네요
그나저나 민비가 사치가 저렇게 심했다는것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조슈아 폰 아르
11/11/30 19:48
수정 아이콘
사실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는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에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제가 그쪽 계열의 대가인 교수님께 수업을 들었을때 그 논리는 간단히 말해 '근대화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죠.(물론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론 자체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개항이라는 것이 무조건 역사적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니라 근대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또 식민지근대화론을 깰 논리는결국 근대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 밖에 없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현재 주류 사학계의 의견은 글쓴님 께서 쓰신 지배-피지배계층을 나눠서 보는 프레임, 딱 신특강의 견해입니다)어쩌면 그게 진실일지도 모르죠. 근대화를 비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덧을 부정하는 것일지도요. 하지만 그 논리자체도 아직 다듬어 지지 않아서 학문적으로 주류가 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요

서양 19세기사를 보다가 그런 얘기가 있더군요. 프랑스혁명사는 프랑스혁명이 닐어난지 거의 100년이 지나거야 학문적우로 정리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학문적인 탐구가 이루어지려면 심리적으로 어느정도의 객관적인 거리가 유지되어야 함에도 그 혼란스러웠던 프랑스 19세기사에서는 그것이 되지않아 그제서야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질수 있게되었다구요. 어쩌몀 우리나라 근현대사, 특히 일제시대사 이후로는 우리도 그와 같은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객관성을 논하기에는 그와 연결된 우리 앞의 현실이 너무 큰 거겠죠...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단시간 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도 있는 것 같네요. [m]
11/11/30 19:50
수정 아이콘
와, 최고네요. 추천 드립니다.
다음 글에 연재하실 신라 - 백제, 조선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신라-고구려 역사관 대립사이에 묻혀진 백제문화(재)에 대한 의견과
조선시대 서예 및 한자 문화에 대해 생각하신것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1/11/30 19:57
수정 아이콘
글의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끄덕이면서 읽었습니다. 특히 많은 conflict들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부분도 많네요.
이 사이트의 운명이 다할때쯤엔 한국의 근대사가 어느 정도 정립이 될 수 있을까요..?
11/11/30 20:02
수정 아이콘
아, 평소에 제가 자주했던 생각인데 눈시bb님이 너무나 잘 설명해주셨네요.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민비는.. 도대체 왜 이렇게 미화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당대 백성들은 대부분 대원군을 찬양하고 민비를 비판했는데 어째서 현대에 와서는 평가가 뒤집혀졌는지 -_-; 불꽃처럼 나비처럼인가... 영화보고 품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댓글로도 남긴 적이 있었는데) 친일파 청산이란 것, 말씀해 주신대로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소극적 친일과 적극적 친일의 구분을 넘어 적극적 친일도 그 내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거든요.
이 글을 보니 윤치호가 생각나서 잠깐 덧붙입니다.

홍사익 뿐만이 아니라 윤치호 역시 친일행각을 펼쳤으면서도 누구보다 조선을 걱정했던 사람입니다.
'제국주의의 잔혹함과 냉정함에 몸부림쳐지지만 제국주의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 민족에게는 약함보다 더 큰 범죄가 없다. 적자생존의 원리는 민족과 민족 사이에서 진리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 같이 약하고 무지한 민족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불쌍한 민중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결국 우리와 같은 동양인 일본을 앞장 세워 서양의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함께 힘을 키우는 것밖에 답이 없지 않은가...'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런 생각은 사회진화론을 배웠던 당대 조선 엘리트들에게 뿌리 깊게 박혔던 것이구요.

이광수였던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유명한 친일파 중 한명도 사실은 '조선은 이제 희망이 없다. 차라리 동양의 강자인 일본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은가, 일본 밑에서 힘을 키우면서 조선인이 일본의 정치인이 되고, 선생이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일본을 주무를 수 있게 되면 그것이 결국 조선인이 사는 길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지요.

결국 그 친일도 나라를 위해서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저 두 사람은 친일파지만 21c의 청년들 보다 훨씬 나라를 걱정했고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방식은 결과론적으로는 틀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만 가지고 그를 매국노라며 처단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된 수업을 들을 때 민족주의자이신 교수님 한 분이 "윤치호의 일기를 봐라. 정말 구구절절 옳은 소리 밖에 없다. 어떻게 그토록 저주받는 친일파의 일기에 이렇게 옳은 소리만 있을까.. 다만 그의 실수는 조선 민중이 자립할 수 있다는 믿음, 희망을 애초에 포기했다는 것이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민중에 대한 믿음의 부재가 (엄청난 실수였지만)'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시로 돌아가면 윤치호 같은 생각을 가질지, 한용운처럼 그래도 님은 다시 돌아올 것을 믿는다.라고 말할지 확신하기 어렵네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11/11/30 20:03
수정 아이콘
근데 일제 경술국치 이후의 나라에 해를 끼친 친일파와 개화기의 일본에 근본을 둔 개화파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1890년대 말에는 서양 또는 일본에 기대어 개화를 시도하는 여러 세력있었고 당시의 친일쪽 사람들을 친일파라 부르면 이는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 구분이 힘들어질 듯하네요
실제로 유길준만 하더라도 일제 강점에 반대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글링아빠
11/11/30 20:24
수정 아이콘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변화는 너무나 급작스러웠던 혼란한 시기였죠.
시대정신이라 부를 만한 가치관이 정립되기는 커녕 뭘 생각해보기도 전에 엄청난 대격변이 왔다가 지나가는,
그렇기에 임기응변에 힘쓰는 사람과 그 임기응변이 잘못되었다고 고함치는 사람들 사이에 휩쓸려 지나가는,
그런 100년이었기에 그럴 겁니다.

거기에 지금의 우리가 그 때의 조선에 결국은 잇닿아 있으니,
정확한 평가란 건 사실 불가능한 건지도 모릅니다.
꼭 이게 아니라도 역사에서 정확한 평가란 결국 닿을 수 없는 파랑새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인데,
그 혼란의 도가니탕이 가깝기까지 하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이건 여담인데, 한 2-300년 후의 사람들은 저 시대부터 지금까지를 하나로 묶어
비슷한 근현대화 혼돈의 세계라고 평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1/11/30 20:32
수정 아이콘
대부분 동감하는데 마지막 비교는 좀 안 맞는것 같습니다.중국이 장제스를 보는것과 한국인이 일제를 보는건 경우가 좀 다르지 않을지.유태인이 과거의 상처를 씻고 자부심을 되찾으면 과연 독일에 대한 서술이 많이 달라질까요?
보라도리
11/11/30 20:41
수정 아이콘
저는 비루한 사학도학부생 수준인데 글재밌게 읽고있습 니 다만 이번 부분은 pgr이 중립구장 이라 다행인것같네요 떡밥들 하나
하나 스케일이.. 엄청나네요 잘보고배웁니다
몽키.D.루피
11/11/30 20:50
수정 아이콘
결과적으로 나라를 빼앗긴 건 빼앗긴 거죠. 을사조약 문서에 사인하기전에 내 의도는 이게 아니었다고 백날 외쳐봐야 뭐가 중요합니까. 친일파의 진심이 애국이었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잘못 판단한 것이고 그 잘못된 판단의 책임은 반드시 져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애국적 친일과 기회주의적 친일은 따로 구분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모든 진영에는 순수한 진영 이념을 가진 자가 아닌 철저한 기회주의자들이 섞이게 마련입니다. 그 사람들을 따로 분리해낼 수 있다면 애국적 친일파들의 판단 미스와 기회주의자들의 사사로운 이익추구가 맞물려 어떻게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어 가는지 잘 구분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구밀복검
11/11/30 21:19
수정 아이콘
위에 나온 이야기들에 덧붙이자면, 확실히 당시 지식인들의 지배적 정서를 고려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서세동점에 대한 경계 -> 일본 중심의 아시아 단결론 -> 일본과 조선은 하나 -> 위아 더 월드
라는 견지에서 보면, 친일은 매국이 아니라 애국이었으니까요.
막말로 뭐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만 해도...딱히 일본의 대동아 공영론과 양립 불가능하진 않지요.
11/11/30 21:24
수정 아이콘
대학생이 되서 역사를 폭넓게 접하면서 저도 고민했었던 이야기들이라 반갑네요.

개항-일제 강점기-해방전후-한국전쟁 과정에서 여러 인물 군상들이 보여준 아주 입체적(??)인 모습은 굉장히 혼란스럽죠...

결국 역사를 깊게 공부하면서 하나씩 알아 가는 수밖에 없는데 요즘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로는 아마 안되겠죠. 쩝.
다만 근현대사의 복잡성과 입체성에 따른 혼란이 최근들어 친일에 대한 면죄부 혹은 독제에 대한 정당화로 이용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게 안타깝네요.
도달자
11/11/30 21:29
수정 아이콘
남자는 다 겁탈했고... 막사주고 그랬을까요..

워낙 혼란스러운 시대라 뭐가 옳고 뭐가틀린지 아니 어디서부터 옳고그른지 판단할수없군요.
그래도 그 판단을 해야하는 현대는 근현대사와 간접적으로 연결되있다보니 감정적이 되기도하고 셈익을 따져야하기도하고.. 복잡하네요.

그래도 사람은 똑똑하니까요. 계속 관심을 갖고 밝혀내고자 한다면 제대로 평가할수있겠죠.
아키아빠윌셔
11/11/30 21:37
수정 아이콘
역사를 보는 '관점'이 정말 중요하죠. 관점 때문에 한 사건, 인물의 평가가 극을 달릴 수 있으니까요.
전공은 아니지만 제일 많이 들었던 4.3만 해도...
할아버지가 말하는 4.3은 아무것도 몰랐는데 갑자기 핏바람에 휩쓸린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가 메인이고,
아버지가 공부한 4.3은 어쩔 수 없이 산사람이 된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죄인 타이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포함됐고...
그래도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4.3, 백조일손을 결론짓는건 동일합니다. 이승만 XXX.
옹정^^
11/11/30 21:43
수정 아이콘
엄청난 글이네요. 진심으로 탄복하면서 읽었습니다. 눈시비비님의 역사글은 빠짐없이 읽고 있습니다만, 정말 이번 글은 읽다가 소리를 내고 말았습니다. 실로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라서 추천을 안 할수가 없군요(웃음).

사실,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특히나 근대사쪽으로) 기존의 민족사관에 대해서 회의가 듭니다.(일단 저 같은 경우는 말이죠.)
민족사관이 대두된 배경과 해방조국에서의 민족사관의 필연성을 감안하더라도 그것이 전부를 설명해 주지 못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근대사의 문제는 그것이 역사의 문제냐, 정치의 문제냐로 이어지기에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사안이 달라지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눈시비비님이 근대사를 다루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백분 공감가는 바입니다.)

글을 읽으면서도 아쉬운 것이 있다면, 역사에 대한 일반 대중의 몰이해입니다.
역사란 것은 수학이 아닙니다. 절대적 명제가 도출 가능한 학문이 아니란 겁니다.
수학 공식처럼 읊어되는 역사적 사실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형편에 따라 침소봉대되기도 하고, 폐기되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실의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 거대담론과 같은 토론으로 이어져야 할 '역사'란 학문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는 따분하기만한 단순암기 과목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눈시비비님이 본문에서도 언급하신 <친일파 = 무조건 악, 독립운동가 = 무조건 선>이란 역사관이나 역사를 대하는 환경이
오늘날의 모든 정치사회적 현상을 선악개념으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관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의 토론은 의미가 없는 논쟁이 되기 쉬우며(논쟁을 보고 납득 하는게 아니라, 입장을 정하고 논리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식의 토론이 횡행) 자신만이 '선'이고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는 타도할 '악'이 되어 끝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 같습니다.
Amy Sojuhouse
11/11/30 22:17
수정 아이콘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을 하면 제 아무리 더럽고 치명적인 것이라도 아름다워보이는 부분은 있기 마련이죠. 평가는 현미경도 필요하지만 망원경도 필요한것이지요. 지나치게 현미경을 들이대면 객관성과 형평성이 부족해집니다. [m]
11/11/30 22:19
수정 아이콘
영호남 부모님을 둔 청년은 웁니다.(2)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건 둘째치고, 부모님이 싸웁니다. ㅠㅠ
루크레티아
11/11/30 23:12
수정 아이콘
과도기 시절, 즉 구한말의 정세는 친일, 친청, 친러가 각축을 벌였으니 친일을 따질 이유는 없지만, 강점기 이후까지도 지속적으로 친일을 한 인물이라면 친일파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옥균을 '친일파' 보다는 '개혁가'로 생각하고, 이완용을 '친러파' 보다는 '친일파'로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애초에 구한말의 친일파와 사람들이 지금 대부분 이야기 하는 친일파는 개념 자체가 다르죠.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반민특위 해산이 너무 컸습니다. 반민특위가 제대로만 되었다면 일정한 선은 그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선을 두고 갑론을박을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친일 이야기만 나오면 발작적으로 반응을 하면서 뻑하면 명예훼손 드립이나 치는 사태는 사라졌겠지요.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본문에 언급하신 홍사익, 최남선, 이광수 등은 모두 친일파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마찬가지고요. 저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친일파의 기준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정부, 친일 단체의 후원을 받고 그 요직이나 단체의 간부를 지내며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 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는 창씨개명 건이지요. 하지만 창씨개명은 자의든 타의든 당시 식민지 조선의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이고,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시절에 자신을 가르쳤던 은사에게 자신의 창씨 개명 이름을 말한 것은 분명 실책이지만 그것으로 친일이라고 말하기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는 정쟁에 이용되기가 쉬워도 반드시 학문적으로는 연구가 되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손대기 힘들고 어려운 분야임은 맞습니다만, 이렇게 시간이 흘러갈 수록 우리는 진실과 더욱 멀어지게 되겠지요. 반민특위 이후로 우리는 지극히 늦었는데 여기서 더 늦어진다면 후세의 역사를 배우는 이들에겐 비극이 될 겁니다.

왠지 본문의 뉘앙스가 '포기하면 편해'로 보여서 좀 안타깝네요.
Mithinza
11/11/30 23:22
수정 아이콘
현재의 기득권, 현재의 정치담론과 그리 멀리 떨어진 공간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렇지 않나 합니다.

미시사 배우면서, 노인분들 일제시대 인터뷰하고 다닐때부터 친일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모호한지 생각하게 되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이득을 토대로 무언가를 챙긴 사회기득권측이 있다면 그건 일반 대중의 경우와는 다른 얘기라는 생각을 견지했었죠. 그런데 또 모범적인 과거사 청산 사례로 꼽히는 유럽 등지의 사례를 보고 나니 이건 또 아니더라 싶더군요. 어느 쪽에 공과 과를 부여해야 하는지도...

이영훈교수의 저 말을 믿고 싶고, 이쪽 연구의 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다만 지금의 상황은 아직 반대급부를 타파하려는 의도에서인지 성급한 답안을 내놓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반대의견도 올라오고 있는 와중에 한쪽의 답안을 성급히 수용할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친일이네 뭐네 하는 매도급 표현은 문제가 있겠죠. 일본에게 유리한 답안이고 그게 설령 틀렸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친일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학술적 영역에서 이러한 매도급 표현을 쓰는 사람은 대화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저번에 게시판에서 김구 까면서... 친일파 드립 나오는 거 아닌가 싶어서 벌벌 떨었던 기억이 -_-; 아직도 대학 초년생 시절인가, 강준만 책에서 김구가 송진우 자금을 받고 왈가왈부가 오갔던 그 얘기 들었을 때의 충격이 남아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하게 단순화할 수 있는 인물도, 사건도, 역사도 존재하지 않겠죠.

몇년 전만 해도 과거사청산에 대해 나름 편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숙청했으면 될 일인데 안해서 그래!!), 유럽에서의 폭력적인 청산 과정을 보면 어느 쪽도 긍정을 못 하겠더군요. 사실 대중을 다스리려면 사회정의 확립이 더 중요하고 그래서 어느 정도의 숙청... 이 필요했을 것 같긴 하지만, 이 역시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는 생각도 들고,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요는, 역사라는 것이 단지 서술의 대상이 아니라 결국 평가의 도구로 쓰인다는 점에서 늘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구밀복검
11/11/30 23:32
수정 아이콘
음...그리고 이건 좀 도발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국가는 전적으로 시민의 클라이언트라고 생각하고, 클라이언트에 대한 <의리>는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클라이언트가 파산했다면야...
물론 클라이언트 변경이 선택이 아니었고, 변경된 클라이언트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았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시민과 국가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전제 자체에는 영향이 없겠지요.
11/12/01 00:40
수정 아이콘
어디까지가 친일이냐?, 친일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사실 이런건 해방 직후에 논의가 있었어야 했죠. 이제와서 다시 논의하기엔 너무 오랜 옛날의 일이라 자료도 남은 것이 없고, 이후의 한국전쟁과 독제체제, 냉전을 거치면서 왜곡되고 희석된 문제가 되어 버렸거든요.

다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친일로 지칭되는 행위들의 불가피성을 논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당위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온갖 고난 속에서 독립 운동을 위해 가문과 개인의 모든 것을 포기하신 분들에 대한 모독이죠.

누가 친일파인지 색출해내면서 소비적인 정치적 싸움 하기 전에 독립 유공자 후손들이나 좀 잘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네요.
차사마
11/12/01 01:18
수정 아이콘
그 당시 자료들은 다 일제에 의한 근대화를 말해주고 있지만, 역사 교육은 철저히 일본에 의해서 유린당하고, 탄압 당한 쪽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연하죠. 그야말로 병합국이었기에, 갑에 있던 일본이 을들을 무시하는 일들은 부지기수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의한 악감정이 사실까지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 한국 역사 교육의 현실이죠.
이 전에 인조이재팬의 번역게시판을 통해 깨닳은 바가 많았습니다.
눈시BBver.2
11/12/01 02:21
수정 아이콘
그 동안 답글이 (...);;
언제 한 번 다시 생각 정리해 봐야겟네요 '-'
카서스
11/12/01 02:46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예전 식민지근대화에 대해 논문을 쓸때가 기억납니다.
알면 알수록 맞는말인데 심정으로는 동의가 안되는 (....) 그랬었죠.
어쨋든, 이때까지 글중 가장 좋은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논란등을 염려하지 마시고 소소하게나마 글을 써주셨으면 하네요.
중년의 럴커
11/12/01 09:44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686 신라의 삼국통일은 거짓일까? [35] 눈시BBver.28013 12/01/02 8013
1685 [복습해 봅시다] 세종대왕, 훈민정음 [5] 눈시BBver.26178 11/12/30 6178
1684 [복습해 봅시다] 忠武公 이순신 [16] 눈시BBver.25859 11/12/29 5859
1683 헌법재판관들은 어떤 단계를 거쳐 위헌여부를 판단하는가 - 간통죄를 예로 들어. [10] 슬라이더5241 11/12/28 5241
1682 농구와 LOL [16] 바보소년6292 11/12/30 6292
1681 중국 경제에 대한 잡다한 지식 모음. [42] OrBef7330 11/12/28 7330
1680 삼가 조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23] 삭제됨9572 11/12/28 9572
1679 민사와 형사 구별하기 [46] 슬라이더7054 11/12/24 7054
1678 [예능] 1vs5vs5 대결의 승자 1, <무한도전> 통계 겸한 나름 정리 [46] 슬러거9181 11/12/23 9181
1677 감히 게임을 하다. [145] 삭제됨12738 11/12/20 12738
1676 김치찌개 만들기 [37] 삭제됨8331 11/12/19 8331
1675 [홍보글] 아마추어 스타크래프트 리그! 후로리그입니다 [31] rOaDin5890 11/12/17 5890
1674 아버지께서 시인이 되셨습니다 [62] 야크모7450 11/12/17 7450
1673 화해에 관한 추상적인 힌트 [48] 삭제됨9574 11/12/16 9574
1672 뜨거운 커피는 식는다. [16] 영혼6126 11/12/16 6126
1671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2-1) [7] epic5008 11/12/15 5008
1670 언니의 결혼 날짜가 잡혔습니다. [50] 리실7579 11/12/15 7579
1669 수제비는 역시 고추장 수제비 [28] 삭제됨8063 11/12/14 8063
1668 백제 vs 신라 - (4) 한성 백제의 멸망 [15] 눈시BBver.25348 11/12/14 5348
1667 손님 맞이 [32] 삭제됨7609 11/12/13 7609
1666 [Text 인데도 혐오] 과학적으로 보는 좀비 아웃 브레이크. [69] OrBef7787 11/12/13 7787
1664 sk플래닛배 프로리그 2주차(12/06~12/07) 간략 리뷰 및 맵별 전적 정리 [4] 전준우3950 11/12/07 3950
1663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가장. 그리고 아내의 조련술. [86] Hook간다8837 11/12/12 883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