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2/07/30 22:32:54
Name 진동면도기
Subject [현대사] 풍운아 '박헌영' 2
박헌영 월북하다

여운형 팀을 제거 하면 남은 좌익 모두 흡수해서 남한 좌익은 다 내 꺼 라고 박헌영이 진짜 생각했는 지는 모르겠으나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미군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좌익들을 잡아들이고 반공 이승만 정권을 밀어주고 중심점 중 하나였던 여운형을 잃자 좌익세력은 좌초하게 되었죠. 조봉암 선생 같은 공산주의자들도 박헌영의 폭력 노선을 따를 수 없다며 우익으로 전향을 하는 판이었습니다. 남로당의 입지는 계속 약화되어 갑니다.

계속 남과 북을 오가던 박헌영은 1946년 10월 남으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북한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김일성의 계속된 읍소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형식이었지만(여운형도 암살 당하기 바로 전까지도 북에 머물러 달라는 김일성의 요청을 받아왔음) 남한에서의 활동에 스스로 한계를 느낀 것이 분명했습니다.

김일성의 입장에서는 박헌영이 혹여 체포라도 되면 북로당 남로당의 연결고리가 날아가며 그간 모스크바와 평양에서 서로 회의했던 고급정보들이 미군정의 손에 넘어가니 똥줄이 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여운형과 박헌영이 더 이상 충돌하지 않게 하려면 멀리 떨어트려 놔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박헌영이 안 내려간다고 했을 때 김일성이 얼마나 기뻐했을 지 상상이 안 가네요.

박헌영이 북에 오자 김일성은 당연히 엄청 환대를 하여 고급저택을 주고 자금을 마련할 사업소들과 남한에 보낼 선전물을 만들 인쇄소까지 준비해 줍니다. 박헌영은 바로 남한에 남아 있는 김삼룡, 이승엽 등과의 연락거점을 만드는데 주력하는 등 바쁘게 지냅니다. 그 후로는 인쇄소에서 선전물 찍어내서 연락거점을 통해 보내고 남로당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김일성이 준 사업체들 관리하고 남로당 간부 양성을 위한 강동정치학원을 세웁니다. 그 와중에 북로당 행사며 남로당 간부들도 만나고 다녀야 했으니... 그 당시 제일 바쁜 정치인이었다는군요 ㅡㅡ;


본격적인 통일 사업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파(갑산파)는 원래부터 무력통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소련에서 무기를 받아서 군대를 무장시키며 훈련을 계속 하고 있었죠. 하지만 박헌영은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바로 20만 남로당원이 일어나면 남한은 바로 망테크를 탈테니 북로당의 도움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박헌영이 해서는 안 될 말을 드디어 하고 말았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전까지 꽤나 오랫동안 논쟁을 한 모양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한반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결정되는 토론이었으니까요. 근데 박헌영의 눈에는 북로당이 통일 후 주도권을 쥐나 남로당이 쥐나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절대 북한의 군대가 남한을 다 점령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남로당이 주도해서 통일을 해야 그와 남로당의 미래는 반석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뭐 근거지에 있는 김일성과 빌붙어 있는 박헌영의 입장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마오쩌둥의 장제스 섬으로 밀어내기에 고무된 김일성은 남한이야 밀어버리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미국의 슈퍼하이테크 군대가 개입하는 것은 어지간히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박헌영의 의견을 받아 들여서 워낙 남로당원 20만명이면 정규군은 필요도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기에 1949년 8~9월 남로당 정치대공세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을 구경하기로 합니다.

일단 약속은 했지만 김일성은 내심 불안했는 지 조금~ 아주 조금만 도와줄게요~ 라며 남로당 봉기와 동시에 웅진 반도와 삼척 반도로 정규군을 보내서 국지전을 벌이겠다고 박헌영을 설득합니다. 내부와 외부에서 치면 이승만 정권도 더 쉽게 무너질꺼란 의견이었습니다. 박헌영도 도와주겠다는 다는데 거절할 명분도 없고 그 정도면 주도권은 남로당에게 있기 때문에 동의합니다.

근데 이렇게 힘들게 합의 했는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나옵니다. 소련이 국지전 전술을 반대하고 나온 겁니다. 그런 식으로 통일은 불가능하다. 다른 방법을 써달라고 합니다. 소련에게 엄청난 지원을 받던 북한은 이 요청을 거부할 수가 없었죠.


남로당 대공세의 실패

결국 정규군의 도움 없이 남로당의 8~9월 대공세가 시작됩니다. 사방에서 남로당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파업하고 했지만 남한의 대응도 신속해서 오히려 수면에 드러난 남로당 조직들이 차례로 와해되고 있다는 긴급한 소식만 날아듭니다. 심지어 1950년 3월에 김삼룡과 이주하가 체포되며 사실상 남로당 지도부가 무너져 버립니다.

다급해진 박헌영은 아끼고 아끼던 800명으로 이루어진 남로당 정예부대를 지리산 부대를 돕기 위해 급파하지만 이마저 국군에 의해 도중에 토벌 당하거나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다시 북으로 돌아옵니다. 마지막 도박수 마저 실해한 것이었죠.

박헌영이 저지른 최대의 실수는 때를 기다렸어야 했는데 자신의 존재감을 북로당에 과시하기 위해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나 총파업 같은 일들을 자주 벌였기 때문에 정작 들고 일어서야 했을 때는 일어설 남로당원들이 남아 있질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이쯤되자 북로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죠. 그 호언장담하던 20만 남로당 당원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하고 북로당 간부가 비꼬자 그걸 박헌영은 아직도 전남 경상남북 지역에는 20만 남로당원이 남아 있다고 변명합니다. 아이구 이 아저씨야... 10만이라고 줄이지 ㅜㅜ 그 놈의 자존심은...


전쟁의 시작

이제 힘의 축은 완전히 갑산파의 무력통일 쪽으로 넘어가고 박헌영은 의견조차 내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김일성은 최종 허락을 받기 위해서 모스크바와 베이징으로 날아갑니다. 여기에서도 같이 간 박헌영은 20만 남로당원 설을 주장합니다. 스탈린과 마오를 설득하는데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나중에 중국과 자신이 유학했던 소련에서도 박헌영이 버림 받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계기가 되죠.

중국은 김일성이 요청한 6개 조선인 사단에 더 붙여서 9개 사단을 보내기로 하는 등 적극적이었고 소련은 몇 번의 거절 끝에 전쟁허락을 내립니다. 이제 시기가 문제였는데 군대가 이동하기 힘든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했기에 6월 28일~7월 1일 사이를 D-Day로 하자고 거의 정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깁니다. 훈련을 하던 부대의 하사관 몇 명이 이런 결정이 내려진 뒤 갑자기 증발했던 겁니다.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고 각기 서부 중부 동부 등 멀리 떨어진 부대들이었는데 말이죠. 아무리 찾아도 북한에서는 보이질 않으니 남한으로 내려갔다고 볼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미국 정보기관이 심어논 정보원일 확률이 거의 확실했습니다. 전쟁준비가 시작된 것을 보고 보고하기 위해 남한으로 튄 것이죠. 그러자 김일성은 정보가 전해지기 전에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마음 먹게 되었고 마침 국군이 휴가를 가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자 전쟁 명령을 내립니다. 그 날이 1950년 6월 25일이었죠.

붙잡혀 있던 남로당의 김삼술과 이주하는 전쟁 당일날 남산에서 바로 총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에서 잡혔던 이관술은 국군이 부산으로 후퇴하며 보도연맹 학살이 일어날 때 끌려가서 죽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에 관한 내용은 눈시님이 자세히 써주고 계시니 패스.


반목이 시작되다

북한이 38선에서 밀려나서 북으로 후퇴하기 시작하자 아니나 다를까 남로당과 북로당의 반목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함께 싸우고 있지만 내부 분열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후퇴를 지휘해야 할 입장이었던 박헌영은 혼자 내빼었다며 거센 비판을 받게 됩니다. 걸어서 후퇴하는 다른 간부들과 달리 차로 이동한 것이 화근이었죠.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으니 걸리지 않을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제 고향에 돌아갈 희망은 없고 북로당 녀석들의 눈칫밥이나 얻어 먹는 것도 지겹고 꿈도 희망도 사라진 남로당 사람들도 점차 막 나가기 시작합니다. 술 마시면 북로당 사람들을 패고 다니고 남로당 끼리 모여서 대놓고 북한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었죠.


박헌영 간첩으로 의심받다

그러다 박헌영의 사상이 의심받게 되기 시작되는 사건이 터지는데 터지는데 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심문하는 역할을 맡았던 백형복과 이종렬이(이 둘도 월북자) 미국 정보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진성 공산주의자라며 풀어주고 이남 간부나 토벌당해 피해온 공산당원들을 미제 간첩이라며 마구 고문한 사건이었습니다. 고문 당한 사람들이 억울해하며 김일성에게 직접 탄원을 올렸고 조사 결과 남로당 이승엽이  두 사람을 승인하고 그 자리에 앉혔다는 것이 밝혀진 겁니다. 뭐 이건 당연히 남한 사정에 밝은 남로당에서 요원을 배치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현 앨리스와 이사민이라는 체코에서 북한이 고향이라는 남녀가 정치적 망명을 북한에 신청해 왔는데 체코에서도 거짓인 것 같다고 말하고 스파이로 의심하여 망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합니다. 근데 박헌영이 이걸 다 무시하고 입국허가증을 내주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해서 이번에도 박헌영이 안 된다는 걸 보내주고 결국 경유지인 모스크바 공항에서 이들의 몸과 집을 샅샅히 수색한 결과 그 동안 수집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이쯤되자 김일성은 박헌영과 이승엽이 사실상 미국과 내통을 하는 것이 아닌 지 의심하게 됩니다. 남로당 조직 넘버 1, 2가 미국과 내통하고 있다면 진짜 큰일이었습니다. 김일성은 남로당 간부들의 직책을 한 단계씩 올리고 차가 없는 사람은 차를 주고 있는 사람들은 운전수를 바꿉니다. 식모도 모두 다 바꾸었는데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잘 훈련된 여성 당원들이었죠.


박헌영 - 이승엽 무장폭동음모 사건

그런데 여기서 어이 없게도 대어가 걸려 들게 됩니다. 배치된 운전사나 식모나 한결 같이 남로당 사람들이 시간만 나면 모여서 무언가 꾸미고 있어서 "어떻게든 정전을 막아야 한다" "미군보고 밀고 들어오라고 우리들의 의사를 전하자" 이런 말들을 한다고 보고 해 온 겁니다. 반란 음모임을 알고 방학세의 지시로 남로당 간부들을(박헌영 제외) 모조리 잡아들이게 됩니다. 계획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된 지 몰라서 비상사태를 걸어 놓고 잡았다고 합니다.

조사한 결과 반란 계획은 1951년 가을 부터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새 내각으로 수상은 박헌영이 이승엽은 새로 만들 당의 제 1비서가 될 계획이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준비된 병력은 학생 병력까지 포함된 2700명 정도로 미군이 더 밀고 올라오면 지도부의 책임을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와 당을 전복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결과 이승엽, 조일명 이하 10명은 사형. 나머지는 8~15년 형. 남로당이어도 계획을 실제적으로 몰랐던 사람들은 교화 처분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문제는 박헌영이었는데 박헌영은 반란 계획을 몰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도 조사에서 이승엽이 주도했다고 나왔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박헌영 - 이승엽 무장폭동음모 사건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도 박헌영을 빼진 않는군요.


박헌영 재판

그래서 최종적으로 박헌영은 미국 간첩 혐의로 재판대에 오릅니다.

너희들의 주장대로 나는 미제의 간첩이었다. 그러나 너희들이 주장하는 미제 간첩과 내가 주장하는 미제 간첩은 엄격히 다르다.(중략) 나는 조국의 해방과 독립 통일을 위해 미국인과 만난것이지 결코 너희들이 말하는 간첩행위가 아니다.(중략) 그대들 말대로 내가 미국의 스파이였다고 하자. 모든 것은 내가 주도했을 뿐 남로당 간부들은 전혀 책임이 없다. 그들은 모두 조국의 해방과 통일, 사회주의 혁명과업을 위해 밤낮으로 일해온 정직한 애국자들이다. 나에게 떨어진 죄의 대가가 어떤 것이든 간에 달게 받겠으니 죄 없는 남로당 간부들을 용서해달라. 거듭부탁한다. 소련파 출신 망명가가 회고한 박헌영 재판기[47]

이건 엔하위키에 나온 박헌영 최후의 말이었습니다.이건 좀 멋지군요.


<김일성과 박헌형 그리고 여운형>이라는 책에 나오는 최후의 말은 이겁니다.

검사총장의 논고는 전적으로 지당하다. 따라서 나의 죄악의 엄중성으로 보아 사형은 마땅한 것이다. 내가 미국 간첩들의 두목이고 그들로 하여금 나 자신이 희망하는 범죄를 감행하도록 모든 것을 비호 보장하여 온 장본인 까닭에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다. 끝으로 내가 과거에 감행해온 반국적 죄악이 오늘 공판에서 낱낱이 폭로된 바이지만 여기 온 방청인들 뿐만 아니라 더 널리 인민들 속에 알려 매국역적의 말로를 경고해 주기 바란다.

두 쪽의 내용이 너무 틀려서 어느 것이 맞는 지 모르겠습니다. 둘 다 말했는데 따로 따로 기록된 거 같다고 보기엔 내용이 같은 사람이 말한 게 아닌 것 같네요.

박헌영이 이런 꼴이 되자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중 하나가 일제에 붙잡혔을 때 정신이상으로 풀려난 게 아니다. 동료를 팔아 먹어서 풀어 준거다. 란 주장이었습니다. 저도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일성의 승인이 떨어지자 방학세가 직접 박헌영의 형을 집행했다고 하네요. 위키백과에선가 보기로는 소련이 박헌영을 처형하지 말고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데 박헌영이 모스크바에서 유학해서 고위직에 지인이 있을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김일성은 그러나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처형...



그리고 책에서는 박헌영의 간첩 행위가 사실일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미군기록에 미공군 니콜스 특무상사가 직접 평양에 침투해 남로당 고위간부를 만났고 그게 이승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에도 박헌영이 미국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제가 박헌영이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남로당은 어차피 전쟁 끝나면 숙청될 게 뻔한데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중국이나 소련은 김일성 때문에 도움 청하기 힘들고 미국 밖에 없죠...

박헌영은 음... 삼국지로 치면 여포 같은 인물이 아니었나 합니다. 조직력이나 실행력 등은 무모하다고 보일 정도로 높았지만 공산주의에 너무 빠져서 현실 판단에 미스가 있었으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그를 구렁텅이로 몰아 넣지 않았나 합니다. 그냥 미국과 소련이 벌인 판에서 최선을 다하고여 살다간 인간 그렇게 생각됩니다. 영웅이라고 보기에는 편협하고 소인이라고 보기에는 그 족적이 너무 크네요. 다 쓰고 보니 인간 '박헌영'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8-14 11:12)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Tanqueray
12/07/30 23:36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평소에 관심 있던 주제라 그런지 흥미진진했네요.
앉은뱅이 늑대
12/07/31 00:03
수정 아이콘
북한에서는 그가 일제강점기 때부터 미국과 연을 맺고 지속적으로 스파이 노릇을 해왔다고 주장하죠. 그런데 별로 신뢰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의 그의 활동은 괄목할 만하지만 해방 이후의 그의 행적들을 보면 '미제의 스파이'라는 말을 들어도 그다지 억울할 게 없을만큼 무리수의 연속입니다. 이런 무리수의 연속으로 인해 남한 내 사회주의 계열의 역량을 탈탈 털어 말아 먹게 되죠. 조급증과 좌익 맹동주의라고 할까, 어쨌든 강직하긴 하지만 국면을 이끌어가는 지도력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쨌거나 일제 치하에선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사람인데 만년의 평가가 너무 박한 사람이긴 하죠.
율리우스 카이사르
12/07/31 09:27
수정 아이콘
광복후 미국/소련의 외세만 없었다면, 카스트로 정도 됐으려나요.. ..

한 인간으로서는 참 대단한 사람이긴 하네요.. 드라마 소재로 나와도 괜춘할듯...

(근데 북한이랑 외교분쟁 나려나?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901 첫 소개팅 이야기... [49] Eva0108679 12/07/30 8679
1900 [현대사] 풍운아 '박헌영' 2 [3] 진동면도기3836 12/07/30 3836
1899 [현대사] 풍운아 '박헌영' 1 [3] 진동면도기5201 12/07/30 5201
1898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한 GSL 선수 소개 [41] 여문사과8212 12/07/26 8212
1897 [연애학개론] 돌직구, 던져야합니까? [19] Eternity8449 12/07/28 8449
1893 빨치산 [20] 눈시BBver.26937 12/07/23 6937
1892 [뜬금없는 만화 리뷰] 딸기 100%를 몇년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42] 클로로 루실루플12145 12/07/22 12145
1891 추억 [25] 공룡6989 12/07/24 6989
1890 마지막 황제 [30] 한니발11612 12/07/22 11612
1889 고백 하셨군요! [9] Love&Hate9504 12/07/22 9504
1888 리그의 과금방식 비교 [46] 어강됴리7530 12/07/18 7530
1887 이영호 vs 정명훈, 최후의 테란 [65] becker10275 12/07/17 10275
1886 내가 좋아했던 동아리 여자아이 [88] 바람모리12269 12/07/18 12269
1885 [PGR 서바이버] 술자리에서 살아남는 법 [33] AraTa_JobsRIP8932 12/07/18 8932
1884 내가 싫어 하였던 동아리 여자아이 [303] 이쥴레이19275 12/07/18 19275
1883 근대화는 절대선인가에 대해서. (원제: 조선까들의 아주 못된 버릇) [158] sungsik6398 12/07/17 6398
1882 친일파의 군 장악을 옹호하는 어떤 글 [85] 눈시BBver.210317 12/07/17 10317
1881 [연애학개론] 데이트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21] Eternity9307 12/07/16 9307
1880 Hello Korea, 한국으로 오는 해외 게이머들 [20] 어강됴리9701 12/07/14 9701
1879 연정훈 신발색깔은 무슨색일까 [14] La Vie En Rose10233 12/07/10 10233
1878 스타리그, 낭만을 증명하다. [28] becker8137 12/07/10 8137
1877 빛보다 빠른 것들 (1) - 정말 짧아져 보일까? [9] 반대칭고양이7380 12/07/08 7380
1876 만나도 만난 게 아닌, 헤어져도 헤어진 게 아닌. [18] Right6605 12/07/05 660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