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은 실내 공기의 온도,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의미하는데요. 원시적인 형태의 에어컨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갈대를 꺾어 물에 적셔서 집 창문에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밖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이 갈대에 적셔진 물을 증발시켰고, 기화된 물이 주변 열을 빼앗기 때문에 주변 공기가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었다네요.
약 3천 년 전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윈드캐쳐라고 하는 타워형 구조물이 있는데요. 공기의 대류 현상을 이용하여 건물 내부를 환기 및 냉각하는 구조물이었죠. 이 구조물은 현재도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만 주변의 국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최근에도 전력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서 설치한다고 합니다.
#2. 하라는 말라리아 치료는 안하고..!
말라리아(malariya)는 "나쁜 공기"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인 mala aria에서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왜 갑자기 말라리아 이야기냐고요? 1850년 말라리아에 관해서 연구하던 의사 존 고리(John B. Gorrie)가 찬 기후에서는 말라리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냉방장치를 발명하거든요
그가 개발한 냉방장치는 소금물에 담긴 실린더와 피스톤, 그리고 피스톤을 작동시기키 위한 증기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압축기술을 사용해 냉각하는 것이었죠.
존 고리의 냉방장치는 너무 잘 작동해서 물이 얼어 붙기도 했어요. 기계가 잘 작동했던 것과 별개로 말라리아는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병이라 존 고리의 장치와 상관은 없었어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이제 존 고리에게는 말라리아가 문제가 아니였거든요. 존 고리는 의사를 관두고 미국 최초의 냉각 기술 특허를 얻고, 얼음사업을 시작하죠. 하지만 그가 만든 얼음은 천연 얼음에 비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사업은 실패했어요.
#3. 생각보다 더 대단한 윌리스 캐리어님
<윌리스 캐리어가 만든 ‘공기 처리 장치’ © Carrier Corporation>
20세기 초까지 인쇄소 들은 여름이 되면 고심에 빠졌습니다. 습한 날에는 용지가 늘어나고, 건조한 날에는 용지가 줄어들어 인쇄를 균일하게 하기 힘들었거든요. 특히 습한 날에는 잉크까지 잘 마르지 않아 문제가 더 컸죠.
뉴욕의 한 인쇄소(Sackett-Wilhelms Lithographing and Publishing Co)도 골치를 앓다가 버팔로 포그 컴퍼니에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의뢰합니다. 의뢰를 받은 버팔로 포그 컴퍼니는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해야 했죠.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바로 윌리스 캐리어였고, 캐리어는 ‘공기 처리 장치’ 그러니까 에어컨을 발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윌리스 캐리어가 더위를 해결해주었기 때문에 위대하다라고 하는데요. 사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분이십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기존에도 실내를 시원하게 하는 장치는 있었습니다. 문제는 시원해지면 습도도 같이 높아진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윌리스 캐리어가 발명한 장치는 냉방과 제습이 동시에 가능했죠. 심지어 난방과 가습도 가능했어요.
이걸 가능하게 한 그의 아이디어도 혁신적이었습니다. 윌리스 캐리어의 ‘공기처리장치'는 물을 분사해 그 사이로 공기를 통과시켜 공기의 이슬점을 제어하는 원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오히려 물을 이용한다는 것이었죠. 이를 토대로 캐리어는 상대습도, 절대습도 및 이슬점 등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고, 이 연구는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죠.
아무튼 ‘공기 처리 장치'로 캐리어는 1906년 특허를 취득하고 2년 후에 회사 동료들과 Carrier Air Conditioning Company of America를 설립합니다.
#4. 에어컨이라는 이름은 캐리어가 붙인 게 아니다
앞서 윌리스 캐리어의 장치를 에어컨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공기처리장치'라고 했는데요. 에어컨이라는 명칭은 캐리어가 붙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예요.
에어컨(정확히는 에어컨디셔너)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스튜어트 크래이머(Stuart Cramer)입니다. 섬유 공장 엔지니어였던 그는 1906년 습도와 환기를 제어하는 장치를 개발하는 데요. 이것을 에어컨이라 불렀죠.
#5. 이제 집에도 에어컨 설치됩니다! 1.5억만 내세요
이처럼 에어컨은 병원, 제지 및 섬유 산업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었고, 1924년 디트로이트의 허드슨 백화점과 1925년 뉴욕 티볼리 극장 등을 시작으로 백화점과 극장에도 설치되기 시작합니다. 1929년에는 백악관에도 에어컨이 진출하면서 정부 기관과 사무실에 에어컨이 보급되기 시작하죠.
최초의 가정용 에어컨은 1914년 찰스 길버트 게이트의 집에 설치되었습니다. 높이 약 2m, 너비 1.8m, 길이 6m의 무지막지한 크기로 알려져 있죠. 그런데 게이트가 1913년에 사망하면서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쉽지만 이 에어컨의 모습도 찾을 수 없는 것 같네요.
<창문 설치형 에어컨 광고>
1931년에는 창문 설치형 에어컨이 등장합니다. 슐츠(Schultz)와 셔면(Sherman)이 개발한 이 장치는 현재 가격으로 약 12~60만 달러였다고 합니다. 가격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아직까진 일반인을 위한 기계는 아니었죠.
에어컨이 진짜 일반 가정에 들어가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인데요. 1955년 미국의 건설업자 윌리엄 레빗이 주택에 에어컨을 기본 옵션으로 채택하면서 빠르게 확산되었죠.
#6. 국내 최초의 에어컨은 부처님 전용
<일제강점기 재조립 중인 석굴암의 모습>
국내에서 최초로 에어컨을 사용한 곳은 석굴암이에요. 석굴암은 원래 환기구를 통해 공기를 유통함으로써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었는데요. 일제강점기에 석굴암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를 사용해 공사를 해 결로현상이 나타났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0년대 다시 복원 공사를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결국 습도조절을 위해 에어컨을 수입해 석굴암에 설치한 것이죠. 당시 에어컨은 청와대도 없을 때라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 알 수 있죠.
국내 에어컨의 역사는 범양상선이 1960년대에 일본 다이킨에서 에어컨을 수입 판매하면서 시작됐어요. 1960년대 말에는 청계천의 경원 기계공업이 미군 부대의 고물을 수리해 판매하면서 ‘센추리’ 에어컨이 탄생했죠.
<국내에서 최초로 생산한 창문형 에어컨 GA-111>
제대로 된 에어컨 생산은 1968년 금성사(현재 LG)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금성사 역시 다른 나라 업체의 기술을 응용해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에 불과했는데요. 1986년이 되어서야 자체 기술로 에어컨을 개발하고, 미국에 수출까지 하게 되죠.
<참고문헌>
- C. P. Arora. (2000). Refrigeration and Air Conditioning. Tata McGraw-Hill Education
- Allan Kirkpatrick. (2017). Introduction to Refrigeration and Air Conditioning Systems. y Morgan & Claypool.
- R V Simha. (2012). Willis H Carrier - Father of Air Conditioning. Journal of Science Education.
- James Burke. (2000). Circles: Fifty Round Trips Through History Technology Science Culture. Simon and Schuster.
- 톰 잭슨. (2016). 냉장고의 탄생. MID.
- 김유경. 에어컨의 역사와 원리. 2021년 6월 20일 검색.
https://m.etnews.com/200706270028
- 강갑생. (2021). 교통전문기자의 교통이야기 (2) 80여 년 전 ‘에어컨’과 첫 만남, 여름에 기차 창문이 닫혔다. 교통 기술과 정책, 제18권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