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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23 23:45:27
Name 트린
Subject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8-끝)









누르자마자 모처에 모종의 연락이 갔다. 한국 공군이 가진 최신예 기 F-15K 슬램 이글 2기가
무장을 모두 제거한 상태로 대구 공군 기지에서 긴급 발진하였다. 이 긴급 발진은 과거 북한
도발 시나 일본 항공자위대, 구 소련의 정찰기 및 전폭기가 대한민국의 영공을 침범했을 때
행하던 수준의 경계 비행이었다. 4분 뒤 작전기들은 이들의 비행을 최우선 순위로 취급하여
붐비던 하늘의 길을 싹 정리한 관제탑의 지시로 충북에 있는 국정원 안가 위를 선회하면서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성은 흥분을 잔뜩 억누르며 말했다.


“운명의 라운드군요.”


은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200점 게임에 비해 병력수도, 병력의 질도 절반일 수밖에 없는 100점 게임의 특성상 여기서
선제권을 거머쥔 자가 사실상 승리자였다. 수성은 포위된 레드 사무라이를 구하기 위해 병력
을 집중할 생각이었다. 레드 사무라이의 포위를 풀고 늑대가 건 스턴 상태에서 벗어나야 주력
을 보전하고 다음 라운드까지 승부를 이끌고 갈 수 있었다.
은실은 항복을 권해도 무리 없을 만큼 사실상 전세가 크게 기울었기 때문에 레드 사무라이의
재기를 그대로 두고볼 수 없었다. 가급적 사기 굴림에 실패해서 도망가게 하려면 적 지휘관의
접근을 막고 지속적으로 피해를 줘야 했다.
은실은 먼저 선제권 굴림 주사위를 굴리며 기원했다.


‘제발. 제발 다이스야, 잘 나와 줘. 부탁해. 더러운 수를 안 쓰게 잘 나와 줘.’


똑또그르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탁자 위를 구르던 주사위는 “6”이 나왔다. 코퍼 사무라이의
지휘관 수치 2를 더하면 8. 높은 것도 아니고 아예 낮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숫자였다.
은실은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주사위를 가져가는 수성을 바라보았다.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의 수성은 정리를 덜한 덥수룩한 턱수염 탓에 좀 더 어두워보였다. 밤
처럼, 갓 염색하신 어머님들의 파마머리처럼 까만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곳이 눈이
었다. 얼핏 봤음에도 확신과 믿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수성은 눈에서 고밀도 고출력 레이
저처럼 자기긍정의 에너지를 쏟으며 주사위를 손 안에서 굴리는 중이었다.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은실은 그 눈빛 속에서 지금껏 수성이 지냈던 인생의 행보가 적힌 두꺼운 두
루마리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쓸데없이 조숙했던 수성은 유치원 때 유치원 선생님의 강력한 제지로 병원놀이를 금지당한
이후, 자꾸만 커져가는 리비도를 스무고개 카드 게임과 뱀 주사위 놀이판, 종이 인형 놀이에
쏟으며 보드게임 및 미니어처 게임 덕후의 길에 당당히 들어섰다.
SD 간담 디럭스 게임, 마경결전대마수 게임, 마계촌 게임, 말괄량이 대소동, 마왕성의 결투,
전쟁의 늑대, 간담월드, 괴수섬의 고지라 대소동, 울트라맨 총출동, 모여라 소년탐정단, 악
령도, 시티헌터 암흑가의 저격자 등 각종 졸리 게임과 컴뱃 카드 게임들을 섭렵하면서 수성
은 안정되고 비교적 손쉬운 일반인의 길에서 소싯적부터 점점 더 멀어지며 엘리트 레어 덕
후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인생을, 그렇게 얻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지
만 같은 부류 사이에서는 잘난 척할 수 있는 보드 게임 감각을, 손에 들고 있는 자원의 수량
과 질을 판단하고 (저급한, 산수 수준의 사칙연산을, 하지만 본인은 극구 부인하는) 수학과
찍기를 결합하여 상대방의 주사위 운과 자신의 주사위 운을 겨뤄 적재적소에 자원을 투입하
던 경험을, 투입된 자원이 적의 정신적 게임적 전선에 구멍을 뚫는 데 성공하면 더 많은 자
원을 투입하여 파쇄 및 붕괴시키고 그렇지 않다면 즉시 후퇴하여 훗날을 보전하던 전술적
경험을 믿었다.
미니어처 보드 게임에 불순한 의도로 들어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초보자에겐 질 수 없었다.
아이들이나 할 만한 취미를 하냐고 피식 비웃는 사람들 속에서 보드 게임과 미니어처 보드
게임, 그리고 이름도 생소하여 항상 거론할 때마다 이 알쏭달쏭한 이니셜 모음 이름과 성격
을 가진 TRPG의 고수 고수성은 고수라는 자신의 고유성과 자존심을 꼭 수성(守城)해야 했다.
일반인도 아닌 자신은 이 전장에서 지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까지 엿본 은실은 길게 탄식했다.


‘아아아아…….’


은실은 사회성이 없어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말도 안 되게 속마음을 포함한 인
생이 훤히 보이는 순진 멍청한 눈빛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질끈 눈을 감고 마지막 버튼
을 눌렀다.
고도 6천 피트, 미터법으로는 2킬로미터 상공을 날던 F-15K 슬램 이글 2기가 롤 레프트, 드
라이브 레프트를 거쳐 파워 다이브(*각각 기체를 상하를 역전하여 좌로 회전하는 기술, 크
게 좌선회하는 기술, 제동 없이 급강하하는 기술)를 구사하며 사전 작전 지시에 고지된 대
로 15초 안에 정해진 비행 구역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갑니다!”


수성의 외침과 주사위가 구르는 일은 거의 동시였다. 주사위가 두 번 정도 구르는 동안 작전
기들은 두 사람이 있는 안가 남쪽 1킬로미터 지점에 진입한 뒤 상공 30미터의 초저공비행으
로 안가를 스쳐 지나갔다.
충격파가 안가를 덮쳤다.
옆에서 타이어가 연속으로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안가 전체가 흔
들리고 탁자 위 꽃병이 흔들렸다. 본인이 네덜란드의 사례(*1977년 테러범이 열차에 난입해
인질을 잡자 전투기 6대가 초저공비행으로 테러범에게 충격을 주고 주의를 끄는 사이 진압
팀이 돌입해 진압에 성공했다.)를 표절하여 계획한 까닭에 미리 알고 있던 은실마저 크게 놀
랐을 정도였다.
수성은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굉음에도 조금은 들릴 정도로 튀어나오는 고함
을 질렀다. 한편 그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남쪽에서 북쪽으로 달리는 작전기들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 움직였다. 은실은 수성이 던지고 방치한 주사위를 얼른 집어 1을 위에 놓았다.
작전기가 지나가고 돌연 축복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수성이 귀가 멍멍한지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와, 전투기 한 번 낮게 나네요!”
“그러게요!”


수성은 탁자를 내려다보며 주사위를 찾다가 입을 떡 벌렸다. 그 뒤 그가 보인 말과 행동들은
마치 딱딱하게 굳어 불에 올려놓아 크게 부풀던 떡이 서서히 꺼지는 광경 같았다.


“아?”
“아아?”
“……아아아.”


수성이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 님 먼저네요. 좋으시겠다. 얼른 하세요.”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눈치였다. 은실은 최대한 시선을 회피하며 유닛들을 움직였다. 한층
더 강해진 코퍼 사무라이가 붙어서 15점을 때렸다. 45점 남은 상황에서 15점을 맞으면서 HP
는 30점으로 떨어졌고 사기 굴림을 할 순간이었다. 거짓말처럼 1이 나와 사기 굴림에 실패했
으나 사전에 스턴이 걸린 관계로 스턴부터 풀고 그 다음 바로 도망쳐야 했다. 물론 스턴을 푸
는 것도 레드 사무라이 턴을 소모해야 하는, 이중의 손해였다.
다음으론 하플링 레인저가 10점을 때렸다. 레드 사무라이 HP가 20점이 되었다. 갈수록 패배
와 죽음에 가까워졌다.


‘나는 저 사람을 사기를 쳐서 찍어 눌렀어.’


은실과 수성이 같은 동작, 다른 이유로 고개를 숙였다. 수성이 매가리 없는 손길로 레드 사
무라이에 붙어 있던 스턴 상태를 제거하고, 어비설 에비스레이터를 움직였으나 훤히 노출된
탓에 하플링 위저드의 15데미지의 불 공격 마법 스코칭 레이와 그레이클록 레인저의 활 두
대를 맞아 전장의 중심에 선 그 즉시 사기 굴림을 굴려야 했다. 이 역시 흑마법처럼 1이 나
와 실패했다. 어비설 에비스레이터는 무얼 해 보지도 못하고 열두 칸 도망을 쳐 던전 저 어
둠 속으로 사라졌다.
은실 턴. 원래 붙어 있던 늑대와 야생성이 그대로 남아 누구의 지휘도 받지 않고 오직 눈에
보이는 적에게만 돌진하는 다른 늑대가 레드 사무라이를 물어뜯었다. 레드 사무라이가 사망
했다.


‘자신의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지만 같은 부류 사이에서는 잘난 척할
수 있는) 분야에서 별처럼 높게 빛나던 그를.’


수성 턴. 부하 네 명이 전부 사망하고 혼자 남아 있던 수성의 지휘관 티플링 캡틴은 제자리
에서 턴을 종료했다. 턴 종료까지 무려 2초 걸렸다.
다시 은실 턴. 은실이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물었다.


“저…… 얘 치료하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네? 아, 네! 하세요! HP 닳았잖아요. 야구도 미니어처 보드 게임도 앞날을 모르는 거예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은실은 이를 악물었다. 데비스 하프 엘프 바드가 뚜벅뚜벅 걸어와 20점 닳았던 하플링 레
인저의 HP를 5점 회복시켰다.
모든 유닛이 움직이고 새 턴을 위해 새 선제권을 굴려야 할 때가 되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수성은 1, 은실의 주사위는 20이 나왔다. 은실의 유닛은 하나도 죽지 않아 여섯 개였다.


‘국가의 권력으로, 국가의 힘을 총동원하여 이 멍청 순진한 중년 남자를 짓밟았어.’


은실이 참담함 속에 20면체 주사위를 응시할 때 수성이 벌떡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하하하, 대단하시네요. 아하하하하, 축하 드려요. 전 깔끔히 승복할게요. 아하하하하. 전
여간해서는 우는 놈이 아닌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네요? 아하하하하.”


은실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수성은 자신의 상태를 좀 잘못 짚었다. 눈물은 맺혀 있으나 흐르지 않고 잔뜩 고여 있었고,
정작 흐르는 것은 맑고 투명한 콧물이었다.
그녀의 눈길이 눈과 코를 오가자 그제야 수성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이놈의 감기가.”


참담한 마음으로 휴지를 찾는 수성에게 기습처럼 탁자를 크게 돌아온 은실이 안겼다. 처음
에는 태클이거나 변형 공격인 줄 알고 수성은 차렷자세로 뻣뻣이 굳었다.
은실이 울면서 소리쳤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울음소리만 듣고 그녀가 수성의 가슴팍에 머리를 파묻는 바람에 뒷말을 듣지 못한 국정원
요원들이 실탄을 장전한 각종 무기들을 앞장세워 쏟아져 들어왔다.
수계를 찍고 불문에 귀의한 것도 아닌데 이마에 선명한 붉은 점이 네 개 생긴 수성은 사살
당하고 싶지 않아 더욱 굳건히 차렷자세를 유지했고, 은실은 추가로 미안해져서 마치 레슬
러가 코브라 트위스트를 걸 때 일단 팔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껴안으며 수성의 몸을 파고들
고는 다량의 콧물과 눈물을 그의 냄새 나는 티셔츠에 묻혔다.









































* Tob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4-05-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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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3 23:50
수정 아이콘
연재를 한 주 아예 건너뛴 사실이 있습니다. 독자분들께 사과 드립니다.
요새 정식 웹툰 데뷔를 해서 그 스토리에 집중하느라 그랬습니다. 메인에도 걸리고 인기폭발이라 더욱 행복한 나날들입니다.
그러나 내왜미도, 그것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왜냐면 내왜미도 소중하거든요. 지켜봐주세요.
(그것의 정체는 pgr에 계신 분들께 도움되는 게시물을 만든 후 운영진의 심사를 맡은 뒤 공개하겠습니다. 애니멀 플래닛 연재시 웹툰 준비를 예고했을 때 꼭 알려달라고 리플 달아주신 분께는 쪽지 보냈습니다. ^^)
Friday13
14/04/24 00:02
수정 아이콘
엌 축하드려요
14/04/24 00:0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완전 자의적 해석으로 쪽지 보내드렸습니다. ^^
츄지핱
14/04/24 10:02
수정 아이콘
웹툰 정식 연재 축하드립니다. 오래전에 남긴 댓글 잊지 않으시고 정보 주신 것도 감사드려요! 피지알 분들도 많이들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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