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매일 몇 잔의 자판기 커피나 커피믹스를 마시는 분들 중 건강에 신경이 쓰이고 달고 느끼한
맛에 질리고 기왕에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겁니다.
말하자면 원두커피를 달여 마시는데에 수고와 비용이 적은, 그다지 전형적이지는 않은 방법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커피점에서 가끔 사 마시는 커피가 아닌 매일의 일상음료로서의 커피에 관한 글이란걸 감안하고 읽어보시길.
0.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커피 한 잔
커피믹스는 인스턴트 커피에다 설탕과 프림이 한 봉지에 들어있는 상품이죠. 자판기 커피도 마찬가지구요.
(사실 요새 광고에서 강조하는 프림의 카제인나트륨은 (기름기가 물에 잘 녹도록 도와주는 성분인데)
그다지 해로운 물질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설탕이랑 프림의 기름을 신경써야죠.
그런데 우유도 프림과 마찬가지로 포화지방이 들어 있습니다. 시럽 넣은 라떼와 커피믹스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자판기 커피 또는 커피믹스 한 잔은 종이컵 절반, 100ml 정도 입니다. 이걸 식후나 짬짬이 쉴 때 한 잔씩
마시고 사람에 따라 담배를 곁들이고 하는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패턴이죠.
(커피믹스야 물 양 조절하기 나름이지만 제조사가 권장하는, 최적의 맛을 내는건 자판기 커피 정도의 양입니다.)
참고로, 커피가게에서 파는 커다란 종이컵에 든 커피는 스타벅스 기준으로 제일 작은 컵이 240ml이며
사이즈가 4단계, 120ml씩 늘어납니다. 중소 커피점은 180ml 정도의 조금 작은 컵을 쓰기도 하고 반면에 많은
커피점들이 360ml가 기본이기도 합니다.
자판기는 통상 한 잔에 300원, 커피믹스는 한 잔에 100원대 초 중반 정도죠.
커피점 커피는 가격이나 사이즈가 부담되고 믹스나 자판기로 조금씩 자주 마시는데
당분과 지방, 칼로리가 신경쓰인다면? 그리고 기왕에 보다 맛있는 커피, 진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1. 그냥 물을 더 타서 드세요.
인스턴트와 원두커피는 일반적으로 (맛과 향은 무시하고) 가격과 수고에 넘사벽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커피 많이 마시면서 인스턴트 비율이 높은 나라 입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인스턴트
커피의 가격과 품질이 우수한 나라 입니다. 커피 원두로 직접 만들어 마시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지만
아직 보편적인 문화는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한국에서 일상 음료로 인스턴트 대신 원두로 바꾸려면 만만치 않은
장벽이 존재 합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블랙에다 물을 더 타는 겁니다.
자판기 커피 중 그냥 블랙 뽑아 마시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겁니다. 사실 별로 추천할만한 맛도 아닙니다.
이는 커피의 품질이 떨어져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애초에 설탕과 프림에 최적화되어 만들어진 커피이기
때문 입니다. (이건 커피믹스에 든 커피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블랙커피에다 온수를 더 타서 마시면 마실만 합니다. 아메리카노 비슷한 느낌이 납니다.
커피믹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냥 커피만 들어있는걸 사다가 물을 평소보다 더 타서 마시면 됩니다.
더구나 자판기와 달리 커피믹스는 프림과 설탕이 안들어간게 더 쌉니다.
요새 아라비카100이니 수프리모니 보다 커피맛에 신경 쓴 인스턴트도 있습니다. 이런 커피들도
근본적으로 설탕+프림에 최적화되어 나오긴 했지만 대체로 그냥 마시기에 기존 커피들보다 낫습니다.
(최적화 됐다는건 원두를 섞거나 볶을 때 쓰고 선명한 맛을 목표로 했다는 얘깁니다.)
이게 성에 안찬다면 진짜 원두커피로 넘어가 보죠.
2. 티백 형식의 원두커피
여기 잔에 담긴, 시커먼 액체인 한 잔의 커피가 있습니다. 커피원두를 갈아서 뜨거운 물과 접촉시켜
물에 녹는 성분을 우려내어 만들어지죠. 우리고 난 나머지는 버리구요. 이 잔에 든 물질의 대부분은 물 입니다.
인스턴트 커피란 이 한 잔의 커피에서 물을 제거한 겁니다. 이미 공장에서 커피 우리는 단계를 마쳤고 우리고 난
찌꺼기는 제거된 상태 입니다. 반면에 원두커피는 직접 우리고 버리고 해야 합니다. 훨씬 귀찮습니다.
앞서 인스턴트와 원두커피에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이 차이를 가장 좁힌 것이 바로 티백 형태의
원두 커피 입니다. 티백에 커피 원두가 갈려진채 들어가서 1잔 분량씩 따로 포장된 제품들.
그냥 잔에 넣고 뜨거운 물 부은 후 잠시 후 꺼내어 통째로 버리면 됩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빼면
인스턴트랑 별 차이 없습니다.
단, 인스턴트 보다는 좀 더 뜨거운 물을 붓는게 좋습니다. 사실 인스턴트 커피에 물을 붓는건 콜라원액을 희석하듯
물을 더하는 것 외에 한 번 (공장에서 매우 뜨거운 물로) 우려낸 커피를 다시 데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너무 뜨거운 물은 맛을 떨어 뜨립니다.
반면에 원두커피는 처음으로 우려내는 겁니다. 커피 우려낼 때 적당한 온도는 원두의 종류, 볶은 정도,
우려내는 방법을 가지고 다양한 이론이 존재 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발달한 핸드드립 방식 중 일부는 꽤 낮은
온도 - 80도 대 초반 정도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낮은 온도 보다는 높은 온도가 낫습니다. 85도 보다는 차라리 95도가 낫습니다.
팔팔 끓는 물을 바로 붓는건 좋지 않지만 보통의 냉온수기의 온수 보다는 컵라면용으로 세팅된 온수가 더 낫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전기주전자 등으로 직접 끓인 물을 사용한다면 잔에 한 번 부었다가 다시 주전자에 붓고
따르고 하면 적당히 온도가 맞춰 집니다.
온도가 낮은 물로 우리면 향이 약하며 희미하고 묵직한 쓴맛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피가 됩니다.
온도 외에는 우려내는 시간에 달렸는데 이건 취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단 설명서의 추천대로 해보고
가감하는게 좋겠죠. 물 양은 대부분 커피믹스 한 잔과 비슷한 정도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티백 형식의 커피는 마트 등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가게에서 나온 '아름다운 커피'도 티백 형태의 제품이
있습니다. 탐앤탐스 같은 커피점에서도 팝니다. 가격은 아름다운 커피가 봉지당 500원 정도이며 마트 제품 중
더 싼 것도 있습니다.
단점은 일단 인스턴트 보다는 훨씬 비싸다는 거. 하루에 여러 잔 마셔도 커피점 한 잔 보다 싸긴 합니다만
비교대상이 어디까지나 커피믹스니까요.
그리고 따로따로 포장되어 있긴하나 갈려져 나온 원두인지라 상대적으로 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티백 안에, 좁은 공간에 입자가 뭉쳐 있다보니 물이 균일하게 닿지 않아서 골고루 우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맛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거죠. (탐앤탐스 등 몇몇 제품은 티백을 입체적인 형태로 만들어 이를 조금이나마
보완 했습니다.)
특정 제품 추천은 안하겠습니다. 어차피 저는 '아름다운 커피'만 마셔봤습니다.;
인스턴트의 3배 정도 주고 살만한가 묻는다면- 취향에 따라 차이가 많을 수 밖에 없지만
온도와 시간만 잘 맞추면 그럴듯하게 우려 집니다. 충분히 원두커피의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면서
대단히 편리 합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너무 낮은 티백 형태의 커피는 형편없는 커피를 쓴 제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 1회용 드리퍼가 들어있는 제품
티백과 비슷하게 작은 1잔 분량의 갈려진 원두 커피가 따로 포장되어 있는데 여기 티백 대신 여과지 - 잔 위에
걸쳐놓을 수 있는 종이가 같이 들어있는 제품이 있습니다. 이것도 마트, 백화점 등에서 살 수 있죠.
티백 형식과 다른 점은 물을 한 번에 다 붓고 가만히 기다리는게 아니라 잔 위에 고정시킨 종이 주머니 위에
있는 - 공중에 떠 있는 커피 가루에다 물을 몇 차례 나눠 부어서 통과시켜 우려 냅니다.
흔히 커피메이커라 부르는 기계와 같은 방식이죠. 다 우려내고 난 찌꺼기는 그 여과지와 함께 버리면 됩니다.
티백 형식과 비교하자면 물을 조금씩 부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번거로운 반면에 공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요령껏 물을 부으면 보다 나은 맛을 낼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커피 자체의 종류나 품질이 더 중요한데
보다 매니악한 방식이다 보니 대체로 더 나은 커피를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격도 더 비쌉니다.
일본산이 많고 국산도 있는데 티백 형태와 마찬가지로, 그리 다양하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커피가루와 드리퍼만 한데 포장되어 있지만 종이컵까지 포함된 제품도 있습니다. 이런건 편의점에서도 팝니다.
물을 주전자로 부으면 좋지만 냉온수기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거 살만한가 하면 좀 애매하긴 합니다. 대체로 커피맛 괜찮고 편리하긴한데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하지만 티백 형태건 핸드드립 형태건 이렇게 작은 한 잔 분량씩 포장된 편리한 원두 커피는 그 종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티백 외에 선택지가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삽입장. 원두커피 입문하기
커피를 우려내는건 정석이 없습니다. 몇 g, 몇 도, 몇 초 이런건 싸그리 무시해도 됩니다. 온도계나 저울, 계량컵이
아니라 자신의 혀가 유일한 측량 기구 입니다. 문제는 이 혀를 믿을 수 있느냐이죠. 평소 인스턴트나 라떼류만
마셔 왔다면 아무리 많이 마셔봤어도 원래 커피맛이 어떤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경지, 커피맛을 충분히 아는 상태에 이른 후에야 직접 만들어야 하는건 아닙니다. 계속 만들어
마시다보면 그 과정에서 차차 익숙해지고 거부감이 들던 맛의 매력을 느끼게 되고 미세한 차이도 느끼게 되고 하죠.
하지만 최초에 영점을 잡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본래 어떤 맛인지 감은 있어야 한다는거죠.
가장 좋은 방법은 커피점에서 '오늘의 커피'를 마셔보는 겁니다.
커피점에서 파는 커피 중에 순수한 커피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외에 오늘의 커피 - 드립커피 뿐입니다.
카라멜 마끼아또 등등은 라떼에다 시럽, 크림 따위를 넣은 겁니다. 라떼는 에스프레소에 우유 부은 겁니다.
아메리카노는 그냥 에스프레소에 물 부은 거구요.
대부분의 커피점 에스프레소는 커피믹스의 커피와 같은 맥락에서 라떼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희귀한 전문점들만이
에스프레소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그냥 마셨을 때에 최적화 시킵니다. 아예 따로 두 종류의 원두를 쓰는 데도 있습니다.
(물론 그 자체를 즐기는 에스프레소와, 커피 음료의 베이스가 되는 에스프레소가 아주 극단적으로 갈리지는 않습니다.
그런 경향이 있다는 정도죠.)
그리고 에스프레소는 주구장창 에스프레소 블렌드 라는 한 종류의 원두(에스프레소에 맞게 몇 종류의 원두를
섞어 강하게 볶은 원두)로 만듭니다. '오늘의 커피'는 정기적으로 원산지가 다른 원두로 바뀝니다.
커피점에서 드립 커피를 주문하면 커피 본연의 향이 주가 되는 커피, 원산지별 개성이 잘 드러나는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대체로 가격도 더 쌉니다.
그리고 이 커피를 마셔봤는데 아무 매력을 모르겠다, 너무 쓰다.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지 않다. 그러면
그냥 블랙 커피는 포기하면 됩니다.
- 말 나온 김에 에스프레소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죠.
에스프레소는 설탕 충분히 넣고 휘저으면 쉽게 마실 수 있습니다.굳이 설탕을 줄여가며 스트레이트에 다다르는
여정을 거칠 필요도 없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설탕 넣어 마십니다. 많은 로스터들이 설탕 넣었을 때 최적의 맛이 나도록
에스프레소 블렌드를 만듭니다. 에스프레소는 굳이 따지자면 설탕 넣어 마시는게 정석 입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설탕 안넣고 그냥 마시는 사람들을 전부 '잘난 체 하느라 저런다.'고 폄하할 이유도 없습니다.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저도 보통은 설탕 안 넣고 마십니다.)
설탕 넣으면 쉽게 마실 수 있다고 치자. 근데 굳이 그렇게 억지로 마실 가치가 있느냐.
에스프레소는 아메리카노로 희석시킨 커피에 비해 농축시킨 강렬한 맛과 향이 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에다 설탕과 약간의 우유를 넣으면 커피믹스와 꽤 비슷한 느낌이 나서 원두커피가 생소한
어르신 중에도 선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에스프레소는 몇 차례 나눠 마시면서 변화해가는 맛을 즐기는...이런 얘기들을 종종 보는데
원래 드립이나 에스프레소처럼 물이 커피가루 전체와 계속 맞닿아 있지 않고 조금씩 통과하면서
우려내는 방식의 커피는 처음에 우려져 잔에 떨어진 커피액과 나중에 떨어진 커피액의 맛의 차이가 두드러 집니다.
잔 바닥쪽이랑 윗쪽이랑 어느 정도 층을 이루게 된다는거죠. 이건 에스프레소 고유의 무엇인가 라기 보다는
그냥 추출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 입니다.
저는 이걸 휘저어 분리된 층을 무너뜨려 복합적인 맛을 느끼는게 낫다고 보는 편입니다. 꼭 휘젓고 나서 마시라고
권장하는 전문점들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관점의 차이일 뿐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드립 커피의 경우 무조건 마시기 전에 저어주는 편이 더 낫습니다.)
에스프레소의 카페인이 적다는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사용하는 원두의 양이
일반적으로 드립커피에 비해 적은 것도 감안해야 하구요. 그리고 에스프레소는 드립커피나 아메리카노에 비해
빨리 마셔치우게 됩니다.
소주 한 병을 한 두 시간에 걸쳐 마시는거랑 반 병을 원샷하는거랑 비교할 때 단순히 알콜의 양만 생각할 수는
없겠죠. (카페인이 두 배씩 차이 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랑 아메리카노, 라떼의 카페인 양은
똑같습니다. 물만 더 탔으니 당연하죠.)
카페인에 약하다면 오히려 에스프레소를 피하는게 좋습니다.
메모장에서 저장 안하고 붙여넣기 했는데 이제 보니 뒷부분이 상당히 날아가버렸네요.;;;; 다시 마무리 지어서 따로 올립니다.
https://pgrer.net/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3709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2-09 10:58)
연결된 글 : 커피믹스를 원두커피로 바꿔보자.(2)
https://pgrer.net/?b=8&n=33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