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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3/28 21:37:37
Name 방랑시인
Subject "야, 어제 스타 봤어?"
"스타크래프트 재미있다며?"
"야 요새 그거 안하면 왕따 당한다."
..........꼴값떨고들 있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때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되었다.


동생이 스타크래프트 시디를 집에 사오고, 친구들이 피씨방에 가는 빈도가 늘기 시작하면서,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래도 도저히 전략 시뮬레이션은...


나는 전략시뮬레이션보다 연애시뮬레이션을 더 좋아했고 그보다 더 RPG를 좋아했으며, 그보다 더 무협지나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그보다 더 WWE를 좋아했다. 정말 WWE의 모든 역사를 다 꽤는 그런 매니아는 아니었지만 영어로 하는 관중들의 응원 정도는 따라할 수 있었고 수능 전날까지도 부모님의 한심한 눈빛을 꿋꿋하게 견디며 TV로 WWE를 시청했던 고3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능을 보았고 대학에 들어왔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강시간에 애들은 피시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끼지는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종종 임요환 홍진호 라는 이름들은 내 귀에 들려왔기 때문에 그들이 유명한 프로게이머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나의 자취방에는 TV가 있었고-순전히 WWE를 보기 위함이었다- 어느날 TV 채널을 돌리다 온게임넷의 스타 경기장면을 보게 되었다.


"너 질레트때 부터 스타 봤냐?"
그렇다, 내가 소위 그 질레트때 부터 스타 보던 놈이다.



빌드, 테크트리, 투니버스, 인천방송, 그런거 다 몰랐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잘 모른다.



딱히 한명 꼽아보라고 하면 꼽을 수 있는 좋아하는 선수, 팀은 없었다.
나는 본좌든 시체말로 듣보잡이든, 그냥 경기에 집중하고, 이길 때 환호하고, 질 때 아쉬워하는 그런 선수들 자체의 모습을 좋아했다.


스갤 스갤 하지만 스갤에 들어가 본 횟수는 왼손가락을 꼽을 정도뿐이다.
하지만 난 대학교 1학년때 이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여기 사람들이 쓰는 글에 매료되버리고 말았다.
(이 사이트는 지금도 출입빈도가 높은 몇 안되는 사이트 중 하나이다)


대학교 1,2학년 동안 참 많이도 보았다. 반수를 할때도 스타 경기는 꼭 챙겨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빌드는 잘 모르겠다. 그냥 누가 유리하다 싶다 질것 같다 하는 막연한 느낌만 받을 뿐,


그냥 이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게 되었고 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게 되었다.
역전을 하면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고 역전을 당하면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XX...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친구들도 같이 보는 것을 좋아했다. 중요한 경기나 결승전이 있는 날이면 맥주와 치킨을 사다 놓고 보기도 했다.
정작 WWE PPV 가 있는 날은 그러질 않았는데,


군대를 갔다 오고 외국물 1년을 먹고 복학을 하게 되었다. 이제 주변 친구들은 다 바쁘다.
아직도 스타 할 줄도 모르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2D 그래픽의 화면을 바라보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스타보자~" 라고 말해도 한심하다는 듯,
"야 어제 스타 봤냐?" 그러면 한심하다는 투로



"너는 그거 아직도 보냐?"



복학한 지금 나는 자취방에 TV가 없다. 따른 짓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부모님의 배려였다.
하지만 나에겐 12인치 노트북이 있고 다음팟 플레이어가 있다. (엄마, 아부지 죄송해요...)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모든 경기를 다 생방으로 보는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학교가 일찍 끝나도 나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야 했고 경기 결과는 항상 이 사이트에 와서 확인했다.
게임게시판의 불판들을 보았고 경기 당시의 감정들 또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화요일날 발표하는 것에 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7시 30분이었다.
오늘 위너스리그 결승이 엠겜에서 한다는 건 알았고 화승 선봉이 이제동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제 이제동이 조일장을 3:0 으로 잡았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이제동이 또 뭔가 큰 일을 터트릴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마재윤이 나올것인지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생방으로 볼 생각은 안했다. 난 발표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예전 같았으면 발표준비를 미루고 소위 말하는 닥본사 했을텐데,



집에 오자 마자 다음팟을 켰다. 스코어는 3:2 였고 조병세가 임원기와 플레이 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이제동은? 마재윤은? 난 이사이트에 접속해 불판들을 쭉 훑어 보았다.
4세트에서 5드론이라는 악수를 둔 이제동, 그리고 그 이제동을 끌어내리고 노영훈을 잡고 이제는 임원기까지 잡아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조병세의 모습을 모니터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어제 수업시간에 배웠던 한여름밤의 꿈같은 일이,











난 아직도 드론이 미네랄을 몇 먹는지 모른다.
난 아직도 유일하게 플레이 할 수 있는 저그로 패스트 뮤탈 -사실 내가 하면 패스트 뮤탈도 아니지만-  이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으며 스타의 모든 유닛, 맵 이름, 종족 상성, 그런 것 잘 모른다.


그래, 난 핫바리 스타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 친구한테 나는 또 이러겠지,

"야, 어제 스타 봤어? 어제 진짜 BLAH BLAH B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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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8 21:41
수정 아이콘
최근에 학원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진적이 있는데 제 한마디에 주위가 웃음바다가 된적이있습니다.

"저는 게임방송, 스타리그 봐요"

반응이 한결같죠.

"그거 아직도 봐요?"

그럼 또 머쓱하게 웃으면서 "예"라고 할뿐이죠.

어쩌나요. 재밌는걸. 하하
힘내라!도망자
09/03/28 21:42
수정 아이콘
이맛에 봐요.

어쩌겠어요?
이철순
09/03/28 21:44
수정 아이콘
중딩때 임요환 박정석 홍진호 강민 박용욱 이윤열 모르면 왕따당했죠.. 여자애들도 임요환은 알았죠...(우리지역은 이때 옹겜만나와서 최연성선수가 덜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때 날잡고 매가웹갔던게 왜이리 재미있었는지..흐흐

요즘 제 주위 스타보는사람 저포함 3명입니다......흑흑..
항즐이
09/03/28 21:44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제가 있는 연구실은 1명(꽤 나이 있으신 군위탁생 형님) 빼고는 전원이 팀플을 같이 합니다. 아.. 여학생은 가끔만..
그리고 중요 경기 있는 날은 단체로 마비..
王天君
09/03/28 22:16
수정 아이콘
항즐이님// 부럽습니다..저는 언제 그렇게 스타를 즐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섞여 살수 있을지...

방랑시인님// 저도 항상 그런 핀잔을 듣습니다. 애나 보는 게임을 아직까지도 보냐구요. 그래서 저는 주위의 모든 사람을 다 굴복시키고 있습니다. 저희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고모 제가 스타보고 있으면 그러려니 합니다. 친구들도 그렇구요.
게임이나 봐?? 하고 비웃는 사람들은 많지요. 그러나 절 그렇게 비웃는 주변사람들의 고상하신 취미, 술먹고 당구치고 여자만나고 혹은 남자만나고 격투기나 레슬링 보고...가 뭐 그리 우월한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시간과 마음을 쏟을 무언가가 없어서 적적해하기만 하던데요 뭘. 뭔가에 열광하고 빠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스타라서 이 좋은 게임과 훌륭한 선수들에게 감동받는 다는게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09/03/28 22:18
수정 아이콘
이 글을 읽고나니 `아직도 스타하냐? 아직도 스타보냐?` 라고 빈정거리면 앞으로는

`아직도 스타한다! 아직도 스타본다!` 라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하게됬네요.
항즐이
09/03/28 22:31
수정 아이콘
王天君님//

음.. 저는 술도 먹고 당구도 치고.. 여자를 만나 결혼도 했고.. 야구축구배구.. 다 봅니다 흐흐.
감전주의
09/03/29 00:07
수정 아이콘
제 하루일과의 마무리는 스타경기 감상입니다.
이렇게 돈 안들고 즐길수 있는 취미생활은 많지 않죠..^^
곧 두 아이의 아빠가 되지만 이 취미생할만큼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하하하
방랑시인
09/03/29 08:07
수정 아이콘
사실 주변 친구들도 전에는 정말 스타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네들은 스타도 정말 잘하구요. 하지만 이제 졸업시기가 가까워져 가니까, 아무래도 잠시 그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 같네요. 혹시 또 알까요, 저에게는 앞에서만 핀잔주고 지들도 집에 가서는 다 경기 챙겨보고 경기결과 확인할지요 하하,

누군가가 저에게 비주류라고, 마이너라고 그럽디다. 아니 뭐 볼게 없어서 스타를 방송으로 보냐고. 하지만 어쩌나요, 저에겐 그사람이 비주류이고 마이너인 것을,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걸 어떻게,

그렇죠,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재미있는걸요. 정말 사람 심장을 쥐락펴락 하는게 이바닥 아니겠습니까? 누가 결승 무대에서 역올킬이 나올거라고 생각했나요? 3대0으로 이제동이 앞서갔을 때 역올킬이 나올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자신은 믿었다는 조규남 감독님의 한마디...이렇게 드라마틱한 일이 얼마나 또 있을까요?

저는 이제 나가보렵니다. 물론 만나는 친구들에게 어제 스타 봤냐고 물어보겠죠. 너 아직도 스타보냐? 그럼 전 또 이렇게 말하렵니다,

"어제 조병세가 말이야 blahblahb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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