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이가 <대항해시대>시리즈의 홍보를 위해 고안해낸 'ReKOEItion'이라는 괴상한 독자적 장르명은 코에이 혼자만 밀다가 슬그머니 묻혀버렸고, 남코의 명작 <괴혼> 시리즈는 '로맨틱 접착 액션'이라는 장르명을 붙이기도 했죠. 특히 중소규모 게임사들은 '폭유 하이퍼 배틀', '울며 싸우는 미소녀 RPG'등 해괴하면서도 어그로 충만한 장르명을 사용하며 관심을 끌기위한 소재로 장르명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독자적 장르명들은 마케팅의 목적으로 한정되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지만, 캡콤의 '서바이벌 호러', '헌팅 액션', '스타일리시 액션'처럼 적절한 네이밍과 인기가 수반되는 경우 넓은 층에서 받아들여져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독자적인 장르명들은 주로 게임의 홍보 목적으로 창조되는 것이기에, 타이틀의 특장점을 깔끔하면서도 임팩트 있게 담는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테일즈 시리즈도 각 작품마다 독자적인 장르명을 붙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신작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의 장르명은 '마음의 새벽을 밝히는 RPG']
최근 닌텐도 다이렉트를 통해 발표된 <베요네타 3>도 시리즈 내내 [논스톱 클라이맥스 액션]이라는 독자적 장르명을 꾸준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빠른 전투, B급 감성이 넘쳐 흐르는 게임의 분위기 등등 게임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 때문에 <베요네타> 시리즈는 <데빌 메이 크라이>나 구작 <갓 오브 워> 트릴로지, <애스트럴 체인>등의 게임들과 함께 '스타일리시 액션' (스팀 태그 기준으로는 '캐릭터 액션' 혹은 '스펙터클 파이터'로 분류) 장르로 묶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게임메커닉은 굉장히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기에 비슷한 서브장르로 묶인다고 하더라도 선사하는 플레이 경험은 판이합니다. 소울본의 진행공식을 대부분 그대로 가져가고 있지만 차별화된 전투요소 때문에 세키로를 '소울라이크'라 부르기 뭔가 어색해지는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베요네타3>의 닌텐도 스위치 출시를 기념하여 다른 '스타일리시 액션, 스펙터클 파이터'장르 게임들과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베요네타는 어떤 방법을 취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베요네타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캐릭터 '베요네타'의 비주얼 디자인부터 전투 메커닉과 게임의 진행방식까지, 게임의 사소한 요소들이 하나하나가 게임의 목표인 [논스톱 클라이맥스 액션]의 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그냥 즐겨도 좋은 게임이지만, 각각의 요소안에 숨겨진 설계 의도를 파악한다면 아마 앞으로 출시될 베요네타 3도 더 깊고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논스톱]이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멈추지 않음]은 베요네타의 설계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특히나 '내가 조종하는 주인공이 엄청 짱셈'을 강조하는 이런 서브장르의 게임의 특성상 신나게 적을 유린하는 와중에 갑자기 전투의 흐름이 끊어지면 재미까지 확 죽는다는 느낌을 받기 쉽거든요.
커맨드를 숙지하지 못해 멋진 전투연출을 감상할 수 없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베요네타의 기본 콤보는 킥과 펀치의 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펀치x4 - 킥을 하면 펀치콤보의 마무리로 연속 킥을 날리고, 펀치x5하면 펀치콤보의 마무리로 연속 펀치를 날리는 식이지요. 일단 대충 킥과 펀치를 섞어보면 새로운 기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기본 콤보가 채워져 있기에, 게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펀치-펀치-킥-킥-킥 콤보. 적을 띄운 뒤 마지막에 강한 킥으로 적을 날려버립니다. 연습모드에선 우측에 사용가능한 킥-펀치 커맨드 리스트가 표시됩니다]
하지만 액션게임에서 적이 가만히 서있지는 않지요. 적이 공격을 해올때는, 기본콤보를 끊고 회피를 수행해야 할 때가 생깁니다.
[펀치-펀치-킥-킥-회피-킥. 위의 기본콤보 도중에 회피를 수행하였습니다. 회피로 인하여 콤보가 끊어져 마무리 킥이 시전되지 않고, 킥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콤보에 돌입했습니다.]
공격 도중에 방어를 위해 내 공격의 템포를 끊어야 현상은 일반적인 액션게임에선 매우 자연스럽고 또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졌기에 누구도 크게 의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공방전은 베요네타의 설계 철학과 크게 충돌합니다. 회피를 시전해서 내 콤보가 끊어지고, 내가 의도하던 플레이가 방해받게 되버린 것이지요. 이 상충을 극복하기 위해 플래티넘 게임즈는 기가막힌 해답을 제시합니다.
베요네타의 모든 킥-펀치 조합 콤보에서는, 도중에 킥이나 펀치 버튼 홀드를 유지할 시 킥이나 펀치를 뻗은 상태에서 권총을 난사는 액션을 수행합니다.
[펀치~펀치~킥~킥~회피~킥~. 버튼입력 유지로 회피 이후의 콤보가 유지되면서 마무리 킥이 회피로 인해 방해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권총을 난사하는 와중에는 기본 콤보 입력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전황을 살펴보면서 콤보의 사용을 유연하게 앞당기거나 늦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버튼 입력 유지를 통한 권총 난사 와중에 회피를 입력할 경우에는 베요네타가 [회피 동작 도중에도 권총을 난사하며 콤보를 유지합니다]. 이 말인 즉슨 회피를 해야할 때가 생기더라도, 회피에 의해 킥-펀치 콤보가 끊어지지 않고 내가 의도한 콤보를 끝까지 욱여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특정 조작으로 회피 이후에도 콤보의 판정을 유지할 수 있는 이 메커니즘을 '닷지 오프셋'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회피에 잘 할당하지 않는 패드의 오른쪽 트리거를 회피에 배치하여 킥, 펀치와 동시에 입력하기 용이하게 한 것도 이 닷지오프셋 사용을 위한 세심한 설계이지요.
[일반적인 액션게임에서는 트리거나 범퍼를 회피에 할당하지 않지만, 베요네타 시리즈는 플레이어의 편의와 게임의 설계 메커니즘과 부합하는 조작법 설계를 통해 '닷지 오프셋'의 사용을 용이하게 하였습니다.]
베요네타의 캐릭터 설계 또한 게임의 메커니즘과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전반적으로 각선미와 머리카락의 곡선미를 강조하는 비주얼 디렉팅, 사지에 권총을 달고 있는 범상치 않은 무기 디자인, 신체를 쭉쭉 뻗어가며 회피를 할 때 마저도 유려한 동작을 이어나가는 베요네타의 모션까지 모든것이 이 흐름의 '논스톱'과 연관이 되어 있지요. 제가 <베요네타> 시리즈를 액션게임 매니아라면 반드시 경험해야 할 훌륭한 액션게임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본적인 전투시스템부터 조작법, 캐릭터의 디자인과 설계, 음악 등등 게임의 모든 요소들이 '멈추지 않는' 액션플레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통일감있게 설계되어 있거든요.
[누가봐도 위험한 누나처럼 보이는 베요네타의 캐릭터 디자인]
완벽한 타이밍에 회피하면 베요네타가 적들의 시간을 느려지게 하는 시스템인 '위치 타임'과 '닷지 오프셋'이 결합하면, 그야말로 멈추지 않고 쉴새없이 적을 유린하는 플레이의 구현이 가능하게 됩니다. 플래티넘 게임즈도 이 '닷지 오프셋' 시스템이 기가막힌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지, <메탈기어 라이징 리벤전스>, <트랜스포머 데바스테이션>, <니어 오토마타>, <애스트럴 체인>에 이르기 까지 이후 거의 모든 액션 게임에 이 닷지 오프셋 시스템을 적용합니다. 사실상 플래티넘 게임즈의 심장과도 같은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지요.
[직접 플레이한 베요네타 2 전투클립. 액션 시퀀스의 흐름과 템포가 싸움의 시작부터 끝까지 유려하게 이어진다는 점이 베요네타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등장 당시 평단/대중의 테이스트를 모두 만족시키며 높은 평가를 받고 이후 많은 액션게임에 영향을 주었지만, 특유의 B급 감성과 Wii U의 부진 등이 발목을 잡으며 베요네타 시리즈는 판매량에서는 썩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베요네타 1,2편을 합쳐도 삼백만장을 넘지 못하는 흥행 부진때문에, 어쩔수없이 닌텐도가 베요네타 시리즈의 운명을 쥐게 된 상황이 되며 닌텐도 스위치 외의 시스템으로 베요네타3를 즐길 수 없다는 점은 정말 아쉽게 다가옵니다. 닌텐도 스위치의 높은 보급률을 토대로 이번기회에 베요네타 시리즈도 명성만큼의 판매량을 누릴 수 있는 타이틀이 되어 더욱 발전하길 기대해 보면서, 베요네타3의 발매를 기다려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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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 메이 크라이를 위시해서 진짜 액션에서 나올만한건 다 나온거같은데 아직도 새로 만들 시스템이 있다는게 대단하기도 하고 제 생각이 좁다고도 느껴지긴 하더군요. 다만 이런류 게임들이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렵다는건 참 아쉽습니다. 물론 공부하고 익혀서 멋들어진 플레이를 할때의 쾌감은 이루말할 수 없지만, 데빌 메이 크라이 5편의 데빌 헌터 난이도 클리어조차 30%가 안되니.
이 서브장르의 구현 목표 자체가 액션게임에선 드물게 '플레이어 주도적, 추상적, 자기만족적'이죠.
이런 구현목표가 마인크래프트나 심시티같은 시뮬레이션이나 아트 장르면 좀 더 쉽게 다가오는 한편, 액션게임에선 좀 생소하게 느껴질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액션게임에 대한 인식은 [주어진 도전]을 극복하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레디-메이드 액션시퀀스]를 감상하는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한편 이 서브장르는 장르의 시초격인 데메크1 부터 '플레이어가 어떤 식으로 자기만의 액션시퀀스를 만드느냐'에 방점이 찍혀져 있어서 목표도 주관적이고, 플레이어의 창의력이나 스킬도 많이 요구를 하는편이지요. 게임을 깨는게 다가 아니고 자기 멋에 취해야 하는데 사실 그게 금방 다가오는 개념은 아니죠 크크. 데메크5는 마지막 스테이지까지도 플레이어한테 새로운 장난감을 던져주는 식으로 이걸 어느정도 해결했다고 보이고, 그래서 아마 시리즈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베요네타는 게임메커닉 측면에선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베요네타는 스킬실링도 어느정도 높지만 연출과 QTE액션 등 감상하는 액션에서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진 진한 B급 테이스트와 선정적인 표현이 이 진입장벽을 다시 높여놓은 꼴인데, 3에서 어떻게 될지 봐야겠죠. 베요 2가 1보다 그래도 거부감없이 다가갈수 있는 이유가 이 B급 테이스트를 좀 많이 희석시킨 덕분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