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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11월 20일 18시에 올라온 것임을 밝힘.
< 내전과 결승전의 다크호스 >
“내전이 끝난 뒤에도 다크호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2022년 8월 28일, Gen.G는 강릉 아레나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왕좌에 올랐다. 3:0으로 T1을 꺾고 1번 시드로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했다. 새로운 유니폼에 새겨진 멍청한 호랑이 머리를 제외하면 이 팀의 엄청난 기세는 대회 전부터 명확히 드러났다.
그로부터 엿새 뒤, LCK의 마지막 월드 챔피언십 참가팀으로 DRX가 결정됐다. 이틀 동안 두 번의 BO5를 모두 꽉 채우며 한 해 동안의 노력과 심혈을 기울인 끝에 간신히 4번 시드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 선발전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시즌 내내 이겨보지 못한 LSB를 상대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23분 만에 상대 진영의 넥서스를 파괴했다.
대회 전에는 그 누구도 GEN보다 DRX에 더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두 팀이 4강에서 만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8강에서 GEN은 DK와 최고의 맞대결을 펼치며 관중들에게 화답한 반면, DRX는 EDG를 3:2로 이겼다. 과연 그들이 LCK의 서머 챔피언을 만나도 다크호스라는 수식어를 유지할 수 있을 텐가.
다시 한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 DRX는 엄청난 우세로 GEN을 잡아냈다.
리그에서의 결과를 뒤집고, 팀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힘찬 다크호스를 위해 가장 넓은 무대를 제공하는 것. 어쩌면 이런 게 바로 월드 챔피언십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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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되기 전, ADC Ruler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먼 곳을 응시했다. 바로 맞은편 스크린에는 "WORLDS 2022"라는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이 선수가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것은 이번이 6번째다. 7년 중 6번, 1번의 8강, 1번의 4강, 1번의 준우승, 1번의 우승. 프로 무대에서 7년째 활동 중이지만, 지난 8강전 DK와의 경기만 봐도 Ruler의 경기력은 여전히 최정상급이다.
나는 당연히 징크스라는 챔피언이 Deft에게 있어 비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테스트를 진행하며 그가 이 챔피언을 선택하는 것을 보았을 때, 한 가지 생각이 번뜩 스쳤다.
‘혹시 올해 경기장에서 Deft가 징크스를 사용하는 걸 다시 볼 수 있을까?’
이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이미 무대 밑에 있었다. Deft는 마지막으로 디버깅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간 선수였다.
때마침 그는 Only라는 글자 위로 걸어갔다.
전날 경기와 마찬가지로 양 팀 선수가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예전엔 양 팀 선수들의 상호작용이라고는 경기가 끝난 뒤에 하는 피스트 범프가 전부인 수준이었지만, 이번에는 경기 전 입장부터 함께 했다.
JDG vs T1과 달리 이날은 LCK 내전이라 선수들끼리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무대에 오르기 전 이들의 화기애애한 행동들은 곧 펼쳐질 잔혹한 승부와는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경기에 참가하는 양 팀 AD가 무대에 오른다. 두 선수의 옷자락이 펄럭이던 순간, 나로 하여금 ‘일대종사¹’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사실 두 선수 모두 오랜 시간 동안 활동해온 베테랑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원딜러들이다. 긴 시간 속에서 승리를 향한 공통된 갈망은 필연적으로 서로를 만나게 했을 것이다.
“ 쿵후, 사실은 시간이야. (功夫,其实就是时间。)² ”
BO5의 첫 세트가 끝난 뒤, DRX는 8강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불리한 출발을 한다.
백스테이지에서 팀원들과 리플레이를 보던 Deft는 화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서있고, 나머지 4명은 다른 쪽에 서 있다. 선수 경력 초기에 네 명의 형들과 함께 경기에 나서던 그는, 이제는 다른 네 명의 형이 되었다.
BO5 2세트가 시작되기 전, GEN은 무대로 돌아왔고, 선수들은 거의 모든 관중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좋은 출발을 한 후, 그들은 필연적으로 승리를 가져갈 것만 같았다.
이런 등장은 전통 스포츠 선수들의 등장을 연상케 한다. GEN은 어쩌면 이번 월드 챔피언십에서 가장 전통 스포츠 명가 같은 느낌을 주는 팀일지도 모른다.
5-0-3, Deft는 2세트에서 케이틀린으로 퍼펙트 KDA를 기록하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Zeka는 아칼리를 밴 당하고, 사일러스를 빼앗긴 후에도 아리를 뽑아 팀원들을 위한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이 과정에서 Deft의 성장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중후반에 경기 흐름을 이어받을 ADC가 있었으니, DRX는 2세트에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한 세트를 만회한 DRX의 서포터 BeryL. 마스크도 그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4번 시드가 1번 시드를 상대로 맞서는 것은 절대적인 의미의 업셋. 첫 세트 패배 후, 두 번째 세트의 승리는 팀원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BO5 세 번째 세트 무대에 오르기 전, 세 명의 선수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뒷모습만 보아도 그들의 얼굴에 띈 미소를 느낄 수 있었다.
7-0-2! Zeka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챔피언을 손에 쥐었을 때 어느 정도로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 본선 진출부터 4강이라는 긴 여정 동안, 이 열아홉의 어린 선수는 매번 그의 시그니처 챔피언으로 모든 관중들에게 한 번 이상의 놀라움을 선사했으며, 그 놀라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DRX가 BO5 3세트를 이기고 스코어를 뒤집자, 무대에서 내려오는 Zeka는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3세트가 끝난 후 GEN은 대기실로 돌아갔다. 여유로웠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LCK의 서머 챔피언은 벼랑 끝에 몰렸다. 일주일 전, 그들은 DK와의 8강전에서도 똑같이 가장 결정적인 매치를 앞둔 적이 있었다. 그 판에서는 Ruler가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플레이로 팀을 구해냈다. 그리고 지금, GEN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먼저 2점을 따낸 DRX이다.
BO5 4세트가 시작되기 전, Ruler는 쏜살같이 뛰어나와 관중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무대로 달려나갔다. 이런 식으로 등장하며 그는 다가오는 경기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려는 듯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이것이 바로 올해 GEN에서 Ruler의 마지막 경기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그는 자신을 도와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하고, 스킨을 갖게 된 챔피언, “자야” 를 꺼내들었다.
한편, BeryL은 레드 진영에서 마지막 픽으로 브라움을 뽑았다. 조별 리그에서 TES를 상대로 골랐던 브라움은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 이 천재적인 선수는 언제나 팀에게 또 다른 기적을 선사해 줄 초인적인 수준의 게임 이해도를 지니고 있다.
DRX가 승리를 확정 지은 순간. 에너지 넘치는 장면.
사실 DRX는 인터뷰 중에나 평상시나 비교적 차분한 팀이다. -- 아마도 Deft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그들이 GEN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는 것이 확정된 순간, 미드라이너 Zeka 선수의 감정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정글 Pyosik은 동료들을 꼭 껴안았다. 서포터 BeryL은 차분히 마스크를 착용했다. 만약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DRX 팀원들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모습이 찍힌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들이 대회 기간 동안 이토록 흥분한 것은 처음이었다.
Deft와 Chovy는 경기가 끝난 뒤 포옹했다.
이번 S12 월드 챔피언십 내내, Deft는 옛 팀원들을 만날 때마다 경기 후에 포옹을 했다. 지난번에는 Meiko, 이번에는 Chovy와 Doran.
이 역시 긴 선수 생활의 결과이다. -- 많든 적든 간에, 항상 당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예전의 동료들을 만날 것이다.
경기 후, 무대 위에서 가장 먼저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긴 선수는 Chovy였다. 그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 같았다. -- 하지만 자리를 뜨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며 무대를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
한편, 승리를 차지한 팀으로서 DRX도 마침내 현장 팬들의 환호를 만끽할 수 있었다.
경기 후 인터뷰를 할 때, Deft는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 내가 사진으로 남기기 가장 좋아하는 각도이다. 내전이 끝난 뒤에도 다크호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역시도 티저 영상에서 그가 했던 말을 증명해 준다.
"My dance, is not over yet."
나는 작년에 아이슬란드에서도 Chovy와 Deft는 만났다. 그때의 그들은 친형제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그들은 서로를 물리쳐야만 소환사의 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스포츠에서 이것은 아마도 모든 선수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GEN 선수들이 무대 뒤 통로를 지나갔다. 두 달 전, Lehends는 LCK 서머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던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지금, 그는 경기가 끝난 후 말없이 뒤를 돌아보며 이 경기장에 대한 깊은 미련을 전하는 듯했다.
애틀란타 이야기의 마지막 사진. 내가 이 사진을 찍었을 때, 관중들은 모두 경기장을 떠난 상태였다. 몇 시간 전에 관중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던 경기장은 텅 비어있었다. 사흘 후, 이곳은 그저 블랙핑크의 해외 투어 콘서트장 중 한곳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여전히 경기장에서 마지막 경기 후 인터뷰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던 중에 Ruler는 고개를 들어 커다란 스크린에서 4세트의 마지막 장면을 보았다. 꿈이 깨지는 순간이자, 이번 월드 챔피언십의 종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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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¹: 각 무술 문파에서 한 시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위대한 스승. 주로 각 분야를 부흥시키고 실력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고수에게 붙는 명예로운 칭호.
*영화 <일대종사>의 대사 중 “왜 무술을 쿵후라고 부르는지 아니? 쿵후는, 사실 시간이지²” 에서 나온 건데
해당 한문 功夫(쿵후)는 시간, 노력, 정성 등의 뜻을 지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잔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수련에 투자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생각에서
‘무술은 곧 시간이다’라는 인식이 갖춰짐.
데프트와 룰러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높은 위치에 오른 상태이기에 저 대사를 인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참고로 데프트의 "My dance, is not over yet"은 실제로 4강 티저 끝부분에서 했던 말임.
https://youtu.be/fA1l5faIMmo